포제션 - 그녀의 립스틱
사라 플래너리 머피 지음, 이지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포제션:그녀의 립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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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 남겨진 자의 슬픔 속에서 떠난 이들과의 조우를 도와주는 곳, 엘리시움 소사이어티. '로터스'라는 신비한 약물과 '바디' 역할을 하는 사람을 통해 망자의 영혼을 소환하는 곳이다. 소환하고 싶은 사람이 생전에 착용했거나 관련된 소지품을 가지고 알약을 삼키면 바디의 영혼은 곧 그 자리를 내어준다. 신비하고도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나는 그곳에서 훌륭히 '바디' 역할을 해내며 5 년째 유능한 영매로 일하고 있는 에디. 그런 그녀에게 여느 날과 같이 죽은 아내 실비아를 만나고 싶어 찾아온 패트릭. 에디는 매력적인 패트릭에게 빠져들게 되고, 그를 향한 에디의 욕망도 점점 커져만 간다. 고요했던 에디의 일상은 이제 그의 곁에 있기 위한 더 과감한 행동으로 많은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한편 '희망'이라고 불리게 된, 한 폐가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여자 시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고객을 가장한 캔디스 파울러 부인이 찾아오고, 그녀의 제안을 거절한 에디 대신 다른 바디가 채널링을 시도한다. 레너드 부인은 엄격한 규정으로 엘리시움 소사이어티를 관리하지만, 원치 않은 변수가 발생되고, 감춰왔던 추악한 이기심도 드러나게 된다. 

실비아의 죽음과 엇갈린 관계성, 옳고 그름이 불분명해진 욕망과 뒤틀린 관계의 비극성은 강렬한 빛을 발하며 끝을 향해 달려간다.


이야기는 에디를 찾아온 패트릭과의 첫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를 만나게 된 순간부터 이제껏 조우를 위해 대면했던 고객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게 된 에디는 패트릭이 전해준 아내 실비아의 유품인 립스틱을 바르며 채널링을 하게 된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커져가는 욕망을 억눌러보지만, 뜻대로 잘 되진 않는다. 사무적인 그녀의 태도에 반해 좋은 사람으로 묘사된 패트릭은 역시그녀에게 관심을 주었기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한편, 자살자의 채널링은 시도하지 않는다는  엘리시움 소사이어티의 규정에 반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어느 폐가에서 발견되 '희망'이라는 신원미상의 여자시신의 진실을 밝히고 싶다며 찾아온 캔디스 파울러 부인은 에디의 거절에 굴하지 않고, 다른 바디와의 접촉으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얻으려 한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다른 바디들과 달리 5 년째 꾸준히 일해오고 있는 에디와 그녀와 상극인 듯한 애나, 신입인 판도라, 에디를 애정어린 관심으로 보는 리까지. 이야기 초반부는 에디의 직업적인 측면에서 오는 혼란함과 사람들과의 관계, 패트릭에 대한 관심과 욕심 등에 대해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을 그리며 제자리에서 맴도는 듯 진전이 없다. 


중반부가 지나고 에디가 폭발하듯 자신의 욕망 실현을 위해 직접적인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할 때, 한층 더 날선 긴장감과 함께 사건이 전개되기 시작하며 이야기는 그 탄력성과 가독성을 더한다. 그리하여 끝끝내 밝혀지는 진실들은 작품 속에 내재된 신비롭고도 수상한 분위기에 반해 다소 힘에 부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감추고 싶었고, 없던 과거이길 바랬던 에디의 진짜 이름과 그에 관한 사건은 생각보다 큰 힘을 얻지 못한다. 엄청난 비극성을 띠고 있는 건 맞지만, 개연성을 떠올리면 그 결이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비아의 죽음 속에 감쳐진 여러 관계성 또한 김 빠지는 전개이다. 물론 서사가 진행되어 가는데, 엄청난 비밀을 감춰져 있다는 듯 비약이 그리 심하진 않았지만, 수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데 반해 드러난 민낯은 밋밋했던 게 사실이다. 오히려 모든 게 밝혀지는 순간 이야기가 가지고 있던 매력이 전반적으로 평이해진 느낌이다. 


인물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실상 패트릭과 에디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존재하는 아슬한 긴장감이 있었을 뿐이지, 패트릭이 그렇게 매력적인 인물인 건지도 에디의 말로 전해지는 것 외에는 느낄 수 없었다. 에디 역시 자신의 과거를 감추기 위해 과감해진 게 다른 방식이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되레 '희망'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시도한 채널링에 대한 묘사가 더욱 매력적이고 긴장감 있었던 부분이었다. 패트릭과 에디의 로맨스도 매력적인 부분이었던 것 같다. 에디의 내면에 관한 심리 묘사는 섬세하지만, 어지러웠다. 에디의 행동이 어떤 측면에선 과하고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배경이 독특한 만큼 이해하고 읽어갈 수 있었다. 고딕 소설에 대한 이해도 없이 처음 접한 작품이 잘 읽히지 않아 좀 당황스러웠다. 초반부를 힘겹게 읽어나간 후에서야 책장을 넘기는 게 수월해졌다. 너무 기대를 해서인지 생각보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정말 매력적인 설정 아닌가, 영매 역할을 하던 여자가 의뢰인이자 죽은 아내가 그리워 찾아온 남자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그를 갖기 위한 어떤 행동을 하게 되며, 자신의 비밀을 감추면서 또 다른 비밀을 알게 되는. 과연 두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삐걱대는 관계들에 대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곁가지로 등장하는 미해결 사건과 채널링 과정 그리고 그에 서린 비극성까지. 


456쪽에 달하는 분량의 첫 부분에서의 머뭇거림이 없었다면 더욱 인상 깊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여러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가진 장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몇몇 설정은 작품 속에서 자연스럽게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영매가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점, 그 작업이 '로터스'라는 알약 하나로 진행될 수 있다는 점, 엘리시움 소사이어티를 찾는 사람들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잘 살아가다 문득 소중한 이의 부재를 견딜 수 없어 그와 다시 조우하기 위해 방문한다는 점까지. 조우라는 표현도 무척 좋았다. 이야기의 큰 줄기와 주변을 확실히 하고 중심을 잘 잡고 진행한 것도 좋았다.


이 장르에 대한 갈증을 완전히 해소하진 못했지만 처음 접하는 작품으로서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다음은 이 작품과 설정이 비슷하다는 고딕 미스터리의 고전인 『레베카』를 읽어봐야 겠다.




(이 리뷰는 한스미디어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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