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에 대하여
아리요시 사와코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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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개의 시선이 엇갈리는 미스터리, 

도미노코지 기미코 그녀는 과연 '악녀'일까,





『악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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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전후 격변의 시대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여성 사업가의 수수께끼 같은 죽음, 그리고 그녀와 관련된 27명의 인물들의 인터뷰로 구성된 작품이다. 


어느 화창한 날, 도쿄 빌딩가 뒷골목에 미모의 여성 사업가가 마치 새빨간 꽃 한 송이가 떨어진 듯한 모습으로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젊은 나이에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업의 여왕’ 도미노코지 기미코의 돌연한 죽음에 언론에서는 일제히 ‘자살인가 타살인가’, ‘허식虛飾의 여왕, 수수께끼 같은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한다. 온갖 억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한 작가가 그녀의 삶을 추적하기 위해 관련자들을 찾아 나선다. 27인의 중요한 관련자들이 각자의 시점에서 풀어놓는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도미노코지 기미코의 실체를 점점 더 미궁으로 몰아넣는다. 그녀가 뒤틀어놓은 순수와 허식의 꼬리는 쉽게 잡히지 않고 진실은 갈수록 모호해진다. ('책소개' 참고)


소설 속에서는 인터뷰의 주제가 되는 기미코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진 않는다. 27개의 에피소드 전부, 그녀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등장하고 있다. 차례대로 한 인물씩 인터뷰가 나열돼 있으며, 서로 모르는 사이 얽혀 있는 관계 속 인물들간의 시간도 묘하게 겹쳐 있기에 퍼즐조각을 맞춰가듯 읽는 재미도 있다. 실로 치밀한 구성으로 계획하지 않는 한 개연성 확보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개연성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이야기가 가지는 힘이 탄탄한 것은 물론, 뛰어난 흡입력으로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작가의 내공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문장이 장황하게 늘어지는 것도 없으며, 소설 내 정확한 사실을 전달할 때와 인물 심리를 묘사할 때의 완력 조절이 잘 되어 있다. 드라마같은 서사와 27인의 인물 설정 또한 각각의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기에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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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개의 시선, 한 사람의 생에서 마주한 인물들


스즈키 기미코, 그녀는 채소가게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전후시절, 어려운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사정이 어려워진 모녀는 귀족 출신인 비토 가의 식객으로 얹혀 살게 된다. 기미코는 중학교 의무과정을 마치고 야간대학을 다니며, 비토 가에서는 가정부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며 살아간다. 낮엔 보석점에서 저녁엔 중화식당에서 야간엔 부기학원까지. 잠깐의 짬내기도 힘든 일정 속에서 그녀는 참으로 다양한 관계를 쌓아간다.


결혼과 출산, 이혼, 레스토랑 사업과 보석, 여성들을 위한 사교클럽에 방송까지, 굴곡을 넘어 화려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만큼, 그녀를 기억하는 27명의 시선 또한 천차만별로 다르다. 부정적인 시선과 긍정적인 시선, 적당한 관심에서 나오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 과반수 이상이었다.


어떤 마음에서 그녀를 바라보던 간에 하나같이 가지는 첫인상은 대체로 비슷했다. 대단한 미인은 아니나 예쁜 얼굴을 가졌으며, 고귀한 언품을 구사하고, 차분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가진 여자라는 것이다.


사람을 홀리는 듯한 매혹적인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었음에 분명한 듯한 진술들이 이어진다. 자신만이 그녀의 진정한 사랑이었음을 고백하는 남자들의 말들은 모두 한결같다. 비슷한 색채를 지녔거나 그보다 더 못한 인물 유형만 빼고. 


차분한 말투에 화려한 언변으로 신뢰도를 높였기에, 있어 보이거나 허술해 보이는 인물들을 이용해 잇속을 챙기기도 하지만, 고용한 사람들에겐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며, 이해관계 또한 확실히 했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그녀가 부렸던 인물들에게서는 놀랍게도 부정적인 평가가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했던 여러 사업들을 키워가는 과정은 다양한 술수가 섞여 있었다.  보석 매매와 부동산 매매에서 또한 그러하다. 


이렇듯 기미코는 해내고자 했던 일들에 대한 열의와 천부적인 사업가 기질, 타고난 감으로 이뤄낸 것들도 많았다.


같은 시기 비슷한 관계로 겹쳐 있는 인물들의 증언을 읽다 보면, 어떻게 이렇게 하나같이 서로를 엇갈리게 관계를 이어 갔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했고, 한편으론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러한 활동력과 계획성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에게 한결같은 이미지로 비춰졌음에도 불구하고, 극과 극을 오가는 기억을 남기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이토록 많은 성과를 더불어 많은 관계를 낳게 했던 것일까.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만나는 인물, 인연, 형성된 관계들은 또 어떠한가.



스스로를 속이는 인물, 생화보다 생명력 있는 조화


기미코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하는 거짓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출생에 관한 것이다.

바로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자신이 사실은 귀한 집의 자식일 가능성이 있는 업둥이라는 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출생과 도벽이 있는 어머니의 기질을 부끄러워 하며, 그 혈연을 감추고 싶어 스스로부터 속이려던 게 아닐까 싶다. 거짓말이 힘을 가질 때는 그 속에 일말의 진실이 있어야 한다는 것처럼, 그녀는 올바른 삶을 지향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처럼 보여지게끔 행동한다. 그 스스로 자신을 그렇게 그리고 인식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이상적 자아를 만들어내고, 그를 연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그녀를 대하는 이들의 기억의 일부에선 그녀가 원했던 방향으로 기억할 수 있게 돕게 된다. 그렇게 믿고 행동하는 힘의 결과가 놀랍다. 


그러한 자아는 본래의 자아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자신을 포장하는 기술도 남다르다. 예를 들어 방송을 출연하게 된 그녀가, 실제로는 온갖 고생을 해왔으면서도 자신은 고생 한 번 한 적 없음을 강조할 때 더욱 그러하다. 모든 게 신뢰에서 얻어진 사랑을 통해 이뤄진 것이라니. 실로 이상적인 발언이 아닌가 싶다. 현실의 지지부진한 비루함은 모두 걷어낸 채, 힘든 일 하나 없이 순탄하게 흘러온 삶, 귀하게 살아온 사람인 것마냥 꾸며대는 태도. 이는 뜻밖에도 현실의 척박함 속에서 아름다운 희망을 그려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열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녀가 옷에 달았던 많은 조화들. 생화보다 조화를 좋아했던 것처럼, 살아있는 '진짜' 꽃보다, 만들어진 '가짜' 꽃에 담긴 향기는 그녀 자체를 형상화한 것처럼 보인다.


― 나는 죄가 없어요. 그저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했을 뿐이랍니다.




일본의 '여성'에 대한 시선, 왜 '악녀'라고 지칭되는 것일까


한편 이 소설은 그 시대의 여성에 대한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지금과 크게 다르진 않는 듯 하다. 정조를 강조하며, 남자는 되지만 여자는 용납해줄 수 없는 것들.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쓸 지는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린 것이지만, 도미노코지 기미코는 이를 자신이 가진 매력에 더불어 배가 되도록 활용한 인물이기도 하다. 올바른 삶을 살고자 하면서 그 방식은 올바르지 않는 모순을 보여준다. 어떤 측면에선 기발하고 영리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꽃뱀이라 불리는 데는 그런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 관계를 강박적으로 밀어붙이기도 한다. 그러한 시도는 번번이 실패에 이르고, 너저분한 관계들만 이어가게 된다. 그래서 과연 그녀의 진의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실은 그녀 자체도 모르게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본에서는 어떤 여성들을 대할 때 붙이는 수식어로 '악녀'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 듯 하다. 그러나 악녀란 무엇인가. 그게 붙여질 만큼의 일들을 행한 것일까. 일부에서는 여성을 아래로 보는 듯한, 깎아내리는 듯한 말이 아닐까. 언론이 간과하는 듯한 말의 힘은 실로 대단한 게 아닌가. 작정하고 몰아가면 정말 그렇게 보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기미코의 행실이, 그 삶이 마냥 옳고 타당했다고 주장할 수 만은 없을 테지만. 하루 만에 열광했다 하루 만에 식고 마는 세태. 한 사람을 공격할 때 쓰이는 말들 중에 좋지 않은 여파를 지닌 단어들을 사용할 땐 극히 주의해서 써야 한다. 그저 궁금했다. 왜 악녀라는 불리는 것일까.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해자를 말하건 피해자들 말하건, '-녀'라고 붙여지는 것들의 습성에 대해 늘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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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라고 수식됐지만, 그것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는 소설이다. 꽤 심도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기미코라는 인물의 죽음의 성질이 타살인가, 자살인가에 대해서 궁금하여 읽게 된 독자에게 깔끔한 결말이 주어지진 않는다. 그저 한 사람의 생에서 마주한 인물들의 여러 관계 속에서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 것인가. 나와 관련한 사람들 속에서 나는 과연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 것일까. 흐릿한 존재감으로 누구에게도 민폐를 끼치기 싫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민폐를 끼치게 된 경우도 있지 않을까, 누구에겐 좋은 사람이지만 누구에겐 싫고 불편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사람은 보통 한결같이 지니는 본래의 기질이나 속성과 다르게 여러 얼굴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흔히 행하는 오류이다. 쉽게 고쳐지지 않는 습관이기도 하다. 때문에 편견과 선입견이 생겨나기도 한다.


기미코에 대한 여러 인터뷰 중에서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과 또 다른 인터뷰이가 말하는 그 사람의 얼굴은 다른 것이기에 흥미롭다. 직접적으로 연결된 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평가가 각기 다른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단순한 오락성에 더불어 또 하나의 힘이 여기서 형성된 게 아닐까 싶다. 인간관계와 상대에 대한 평가, 보여지는 것들에 대한 생각과 의문.


그러나 후반부의 인물들 인터뷰 중 몇 개는 되레 개연성이 떨여져 보이기도 했다. 순서대로 창작했을지는 알 수가 없으나, 다소 긴장이 풀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친어머니와 큰 아들의 증언들이 그러했다. 아무리 드라마식 서사라 해도 그렇지 알랭 들롱같은 인물이 카운터에 있다니 소설 속이라고 해도 과한 게 아닌가. 


아리요시 사요코는 남성 중심의 일본 문단에서 당당하게 본인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작가라고 한다. 애초에 문학에서조차 여성의 언어, 목소리를 가지게 된 게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저 남성의 시선에서 여류라고 폄하되었을 뿐이다. 우위에 서서 일컫는 말이다. 여자치고는 잘 쓰네, 하는 시선이 담긴 말.


직설적인 성품으로 문단에 도전을 했다는 이 작가는 글에 대한 집중도가 대단했다고 한다. 글을 쓸 때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않아 얼굴이 새파래지기도 했으며, 한 작품이 끝나면 탈진하여 입원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가독성이 좋았고 힘 있는 문장 덕분에 단숨에 읽어나가게 됐다. 당연히 다음 작품 또한 기대가 된다. 오히려 거창한 것이 아닌, 지적 받았던 드라마식 서사가 가지는 통속성이 더 맘에 들었다. 과감한 도전의 시도처럼 느껴졌다. 작가의 또다른 작품을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본다.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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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담꾼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
M. C. 비턴 지음, 지여울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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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소설에서 추리소설까지 아우르는 작가, 메리 채스니의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험담꾼의 죽음』은 해미시 맥베스 시리즈 첫 번째 신호탄을 알리는 소설이다. 이 소설이 창작된 시기는 아마도 작가가 스코틀랜드 최북단 서덜랜드를 여행 중에 구상했다고 하니 80년대 시대성이 담겨져 있기도 하다. 주요 무대는 스코틀랜드 북부의 산자락에 자리한 가상의 시골 마을 로흐두이다. 우리의 주인공 해미시 맥베스 순경은 붉은 머리, 녹갈색의 눈동자, 훤칠한 키, 낡은 정복을 입었지만 멀쩡한 의복을 갖춘 뒤엔 미남자가 되는 놀라운 매력을 가지고 있으며, 직업은 승진을 기대할 수 없는 시골 순경에 각종 대회 및 출제에서 치뤄지는 스포츠 경기나 우승 상금으로 가외 소득을 올리거나 밀렵을 일삼으며 작은 농장 일을 한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친척 덕을 톡톡히 보는 해미시 순경은 전통에 따라 가난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동생들과 부모를 부양하기 위해 애쓰는 인물이기도 하다. 


뭐든 아껴야 하기에 이 집 저 집 들러 차를 얻어 마시며 순찰을 돌지만, 재치와 지성을 갖춘 다정다감한 남자이기도 하다. 소설의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다. 중심축이 되는 사건 속에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꼭 밉상, 진상에 민폐를 일삼는 죽어도 마땅할 법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 자는 곧 피해자가 되고 만다. 권선징악의 프레임이 뚜렷하다. 모두에게 동기가 주어지기에 그중 어떤 인물이 범인에 더 가까울까 추측하는 재미가 주어진다. 


여기에는 꼭 못되고 막돼먹은 상사도 등장해주는데, 바로 블레어 경감이다. 허술한 듯 보이는 해미시 순경이 위기 대처 능력을 발휘하며 넘어갈 때는 블레어 경감을 대할 때이다. 번잡한 도시보다 슬로우 라이프 스타일로 인간관계에선 적당한 관심과 거리를 두며, 부 수입까지 챙길 수 있는, 별다른 모험이 없는 시골 생활이 퍽 맘에 들기에, 사건 해결의 공을 블레어에게 돌린다. 


그러나 읽는 독자가 알고, 사건 속 인물들 또한 모두 알테지만. 홈즈가 사건을 푸는 과정을 순수한 쾌락으로 즐겼듯이, 해미시 역시 그 과정에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는 듯 하다. 직업적인 부분에서는 자기 할 일은 제대로 하는 인물이기에, 허술한 평상시와 다르게 사건을 대처하는 자세는 프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와 더불어 소소한 러브 라인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마을 지주의 딸인 프리실라이다. 외동딸인 그녀에게 부모님은 남편감이 될만한 사람일 고이 갖다 바치지만 프리실라는 낡고 허름하며 괴상한 해미시의 공간에서 되레 편안함을 느낀다.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하지만, 썸인 듯 아닌 듯 아리송하다. 여하튼 그런 묘한 러브 라인까지 있으니, 이야기만 훌륭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독서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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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험담꾼의 죽음』은 휴가철이 되어 각각의 사람들이 방문한 마을 로흐두. 이야기는 그들이 낚시를 안내 받으면서 시작된다. 다양한 직업군과 성별이 모여 낚시를 하는데, 불평 불만을 일삼고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한 인물이 얼마 안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모두 한결같이 그 사람은 죽어 마땅할 만큼 끔찍한 사람이었다는 평을 한다. 또한 범인을 밝혀가는 과정이 꽤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다. 각 인물들의 동선을 따라가며 숨겨진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재밌다. 읽다 보면 어느새 이 순경의 수더분함과 의외의 지성과 대범함 등이 눈에 잘 들어오게 된다. 흥미로운 인물로서 일단 이 이야기를 읽어나가는데 큰 동력이 되어준다. 시점 또한 각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변화한다. 시선을 주고 받으며 옮겨가는데, 그 지점에서 생각과 심리적 관점을 잘 보여준다. 첫 스타트로 나쁘진 않다. 오락성은 평타를 치는 정도다. 가볍게 읽기에 참 좋다.

2편 『무뢰한의 죽음』 해미시의 애간장을 태우던 처자 프리실라가 런던 기자생활 중에 만난 헨리라는 극작가와 약혼을 하여 그 파티를 자신의 고향의 저택에서 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여기서 지칭되는 무뢰한은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 끔찍한 언행을 일삼는 피터 버틀릿 대위이다. 인간말종같은 이 인간에겐 얽히고 설킨 여자관계, 내기, 재산적 피해를 얻은 사람, 취미 활동 등등 역시 모두에게 마땅한 동기가 있었다는 것. 허둥지둥 대다 또 한번의 사건이 발생하고 이 지점에선 혹시, 했던 인물이 역시 범인이었다. 알기 쉬웠지만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 궁금하고 재밌어서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이 분명히 있다. 확실히 1편보단 2편의 사건이 더 흥미롭고 재밌게 풀려나간다. 프리실라와의 관계도 눈여겨 볼만 하다.

3편 『외지인의 죽음』 안락한 삶을 지향하는 해미시는 석 달간 시노선에 차출돼 생활하게 된다. 이 마을은 광신도적인 종교 분위기가 가득한 곳이며, 멀리 떠난 프리실라를 볼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에서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싶어 그런 행세를 하고 다니는 잉글랜드인 윌리엄 메인워링은 누구에게나 참견을 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아내가 괴롭힘을 당했다며 신고를 했던 이 자는 하룻밤 사이 바닷가재로 가득한 물탱크 속에서 뼈만 남고 모든 게 사라지고 만다. 뒤늦게 수습하기 위해 애썼던 순경은 원한을 먹고 산 피해자를 둘러싼 인물들을 두고 힘겹게 정보를 얻어가며 수사에 임한다. 

3편에선 런던에 있는 프리실라를 대신해서 등장한 듯한 인물인 화가 제니가 있다. 역시 해미시와 엮이는 인물. 그래서 이 시리즈의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는 그래서 프리실라와 해미시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에 대한 궁금증에 있다. 

전체적으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추리소설 같다. 드라마적 서사와 인물의 개성이 각기 잘 살아 있어서 읽기에도 수월하다. 연극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이야기가 가진 힘, 그 흡입력이 대단한 소설임은 분명하다. 영국인 특유의 비꼬는 식의 대화, 유머가 그 재미를 더한다.

피로한 일상 중 쉬는 시간, 차와 함께 즐기기에 좋은 작품들이다. 벌써 다음 편이 궁금해진다. 이런 흥미로운 작품이 앞으로도 이십여 편 이상 남아있다니,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알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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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F가 된다 S & M (사이카와 & 모에) 시리즈 1
모리 히로시 지음, 박춘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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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본격 미스터리?!! 본격 이공계 미스터리 소설



『모든 것이 F가 된다』






이 소설은 이공계 미스터리의 최강자 모리 히로시의 대표작이라 한다. 작가에 대해서는 잘 못랐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최근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출간된『작가의 수지』의 대략적인 책 소개를 보면서 호기심이 일었다. 소설가는 얼마나 버는지, 인세나 수입 관련된 부분을 적나라하게 까발린 책인 듯 했다. 작가가 소설을 쓴 계기도 독특하다. 철도 덕후가 원 없이 덕질을 하기 위해, 설정만 그럴 듯한 게 아닌 전문성을 갖춘 치밀함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이공계 소설을 쓰기 위해 시작했다고 한다. 


소설의 큰 이야기 축과 인물소개는 다음과 같다. 출판사 리뷰를 참고한 것이다.


14세 때 부모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았으나, 다중인격으로 판정되어 풀려난 뒤 외딴섬에 세워진 하이테크 연구소의 밀실에 15년 째 격리되어 살고 있는 천재 공학 박사 마가타 시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연구소를 찾은 N대학 공학부 건축학과의 사이카와 소헤이 교수와 제자 니시노소노 모에는 마가타 박사가 1주일 동안 외부와의 교신을 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 마가타 박사의 방으로 향하던 순간 갑작스런 시스템 오류가 발생한다. 당황한 그들이 박사의 방 앞에 이르렀을 때 밀폐되었던 문이 열리며, 웨딩드레스가 입혀진 사지 절단된 시체가 운반용 로봇에 실린 채 나타난다. 마가타 시키 박사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다. 


최첨단 시스템에 의해 24시간 감시되고 있던 박사의 방은 어떤 침입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밀실에 숨어 들어가 그녀를 살해하고 도망친 것일까. 뜻밖의 살인사건과 시스템 오류에서 비롯된 외부와의 연락 두절로 연구소는 혼란에 빠진다. 그런 와중에 외부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헬기에 있던 무전기로 연락하려던 신도 소장마저 살해된 채 발견된다. 한편 부소장 야마네는 중요한 계약을 앞두고 있는 연구소의 사정을 내세우며, 사건을 잠시 은폐하려는 계획을 조심스레 내놓는다. 사이카와 교수와 제자 모에는 마가타 박사의 컴퓨터에 남겨져 있던 ‘모든 것이 F가 된다’는 메시지를 실마리 삼아 밀실 살인에 숨겨진 비밀을 밝히기 위한 조사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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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어떤 만남 속 대화로 시작된다. 주인공 콤비 중 조수격인 대학생 모에가 혈연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성사 시킨 마가타 사키와의 만남이다. 그러나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마가타 시키는 왠지 모르게 차가운 로봇같이 느껴진다. 모에와 나누는 그녀의 대화 방식은 낯설고 기계적인 데에 비해 호기심이 가득하다. 사람과는 직접적으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화면으로만 대화하는 괴짜이기도 하다. 


이른바 밀실 살인 사건이 발생된 지 얼마 안돼 또 한 번의 살인 사건이 발생된다. 사이카와 교수와 모에 콤비는 서로 다른 관점으로 사건의 단서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섬 밖의 세상에선 평범하지 않은 것들이 이 섬의 연구소에서는 평범한 것이 되고, 소통은 메일 같은 메신저로 이어질 뿐, 직접적인 대면이 없는 곳이다. 개인 거처의 독립성이 주가 되는 곳. 유용한 시스템에 의해 조절되는 공간. 즉, 이중밀실인 셈이다. 연구소, 그 연구소가 있는 섬. 



완벽한 밀실을 구조하고 그 안에서도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발상과 트릭은 기발하고 놀랍지만, 그에 비해 정작 중요하게 다뤄줘야 할 인물들이 일종의 장치로만 활용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사이카와 교수와 모에의 케미를 비롯해 별다른 매력을 못 느낀다는 점이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작가는 트릭과 밀실을 만들고 이를 풀기 위해 과정 속 이공계 지식들을 발산시킬 때 왠지 모를 희열과 즐거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놀라움의 반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끌리진 않았다. 풀어가는 과정은 길고 장황했으며, 딱딱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인물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재능이 있는 이는 천륜을 어기는 것 또한 용납되어지는 것인지, 납득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런 일들을 벌였음에도 가진 능력과 변명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자체가 놀랍고 신기했다.


그러니 본격 이공계 소설을 창조하기 위해 인물들이 소모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동기나 문제해결 과정에서 발휘되었어야 할 각각의 요소들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증발하고 만다. 


좀더 정밀히 다뤄야 할 심리적인 묘사 부분이 사건과 잘 부합되지 않는 느낌이 든다. 즉. 밸런스 붕괴 같다. 사건과 인물을 적당히 배합시켜야 되는 게 아닐까.

작가는 어떠한 사건을 다룰 때 중점적으로 보는 시선이 다른 듯 하다. 왜 그러한 일들이 벌어지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세밀하지 못하다. 전반적으로 도식적이고 기계적인 느낌이 강하다.


사건도 중요하지만 인물의 매력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텍스트에서 탐정 역을 하게 된 사이카와 교수는 골초에 특이한 기질을 가진 괴짜인데다, 내면에 꿈틀대는 새로운 자아는 아드레날린의 폭발이 이뤄지는 긴장의 순간 제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뿐이다. 왠지 모르게 별다른 매력을 못 느끼겠다. 모에라는 대학생 역시 마찬가지. 설정은 있으나, 텍스트 밖의 독자로서는 그저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점은 90년대에 이런 소설이 쓰여졌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서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등장하는 지식과 언어는 생소하지만 신뢰감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공상소설에 약간의 미스터리가 가미 됐다고 느낄 뿐. 애매하다. 


읽다 보니 히가시노 게이고의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가 떠올랐다. 이 작품도 드라마화 되어 인기를 끌었듯이,『모든 것이 F가 된다』역시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로 각각 제작되었다. 읽다 보면 느낄 테지만, 솔직히 드라마보단 애니메이션쪽이 소설의 이미지를 극대화 시켜주고, 표현하기에도 수월했을 것을 것 같다. 이 텍스트의 감성을 잘 포옹할 수 있는 장르가 애니 같다고 느낀 이유는 가상 공간을 표현하는 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갈릴레오 시리즈는 영상화되고 나서 추가된 인물인 우츠미와 유카와 교수 케미, 캐릭터성이 조화로웠기에 매력적이었다. 모리 히로시의 다른 작품 시리즈를 더 찾아보면 알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만으로는 더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나와는 상성이 맞지 않았고 취향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심 분야와 가까워졌을 때 다시 찾아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좋은 부분들에 비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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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펭귄클래식 19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최진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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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랑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첫사랑』





저자 투르게네프는 1818년 아룔 현에서 태어나, 포악하고 전제적이었던 어머니와 이상적인 남성상인 아버지의 냉정함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첫사랑』은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한 작품이기도 하다.


19세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처음 경험한 사랑의 감정, 그 본질에 눈뜨게 되는 한 소년의 성장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성숙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주인공인 블라디미르는 부모님의 시골 영지의 이웃이 된 자세키나의 공작부인의 딸 지나이다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신기하게도 이 시대에는 아름다운 여성에겐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게 되는데, 그녀는 여지를 줄 듯 안 줄 듯 그들이 서로 대적하게 만든다. 블라디미르는 처음 겪는 열병같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소년이였고, 그녀가 원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모른 채, 미소와 애정어린 눈빛 하나만으로도 착각하며 설렜다가 절망하기도 한다.


사람을 본다는 것,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본래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먼저 보게 되는 듯 하다. 몇 번의 만남과 인사로 상대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오류는 이 소설에서도 자연히 발생된다. 심지어 블로다미르는 시간이 흐른 뒤, 첫사랑을 회상하며 지나이다를 묘사할 적에 과거의 '연인'이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이 소년이 그녀의 '연인'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다수의 연적들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그가 그중 특별하게 대해졌다 느껴졌다면 순수한 열정 혹은 다른 이유가 바탕이 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겠다. 어린 소년은 직선적인 루신 박사와 달리 그녀의 미소와 말에 가려진 진짜를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길지 않지만, 소년이 화자로 발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 순수한 열정, 열에 달뜬 듯한 감정, 흥분, 설렘, 기쁨 그리고 분노, 좌절, 절망, 포기 등 다양한 감정 변화를 읽는 독자가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야기 속 갈등은 소년이 '진짜' 연적의 상대를 알게 된 순간, 취하게 된 태도로 인해 발생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 어린 소년의 첫사랑에 내포된 함의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다. 단순히 사랑의 감정을 경험한 이야기라 하기도 애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의 유년시절과 그가 느꼈던 감정들을 작품 속에 그대로 녹여냈다고 한다. 특히 자신이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꼽는 아버지에 대한 동경이 그러하다. 지나이다에 대한 감정에 대한 묘사에 비해 아버지에 대한 감정 묘사의 극히 일부, 군데군데 있을 뿐이지만 그 힘의 파장은 분량에 못지 않다. 가히 복합적인 감정의 덩어리가 아닌가 싶다.


또한 시간이 흐른 후, 지난 시절의 자신이 어린 아이였음을 인정하고 이제는 성숙해졌다 말한다. 그러나 이때 화자가 어떤 광경을 목격하고서 내린 판단만 봐도 그는 여전히 아이같이 느껴진다. 잘 모르겠지만, 신체적 고통을 인내하는가 사랑인지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에.


어쩌면 우린 사랑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선 모두 어린아이가 되는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사랑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지나이다가 권한 여러 놀이 중 만약을 가정하며 상상을 이야기 하는 것만 봐도 그녀 역시 사랑에 빠졌고, 그 상대의 생각이 궁금하여 그녀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일말의 실마리라도 얻으려고 하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



여러 물음과 흥미로운 지점들이 포함돼있다. 러시아 작품들을 읽을 때의 곤란함, 인물들의 이름이 길고 복잡했지만(다른 러시아 소설에 비해 쉬운 것일수도), 각 인물의 개성을 잘 묘사해주었기에 단순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머릿 속에 장면이 잘 그려지는 묘사가 인상적이기도 하다. 문장이 시원했고, 여려 겹으로 꼬아 놓은 것이 아니기에 고전문학에 대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도전해볼 수 있는 좋은 책인 듯 하다. 


세계문학고전은 출판사별로 다양한 구성으로 출간돼 있는데, 구미별로 찾아 읽으면 될 것 같다. 같은 작품이라도 역자에 따라 그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첫사랑』같은 경우, 민음사의 번역보다 펭귄클래식의 번역이 가독성이 더 좋았기에 선택하게 됐다. 민음사에서 나온『첫사랑』은 이 작품 외 2편이 더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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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밤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2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석환 옮김 / 해문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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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집시의 집에 숨겨진 이야기



『끝없는 밤』





보통의 추리소설과는 달리 이 소설의 사건은 거의 후반부쯤에나 발생한다. 그전에는 한 한량과 순진한 재벌 처녀와의 로맨스만 이어진다. 그들은 운명적으로 집시의 땅 그 언덕에서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소설은 영국남자 마이크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시작된다. 순수한 여인 엘리의 배경을 모르고 만났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나, 상당한 유산을 물려 받을 그녀 옆엔 많은 인물들의 시선이 교차된다. 마이크가 특히 경계하고 싫어하는 그레타라는 여인은 젊은 여성이지만 엘리의 옆에서 친구이자 의지가 되는 사람으로, 그녀를 조종하다시피 움직이게 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를 경계하는 변호사, 연이어 사업실패를 하는 삼촌, 새어머니 등등 모두 하나같이 수상해보이는 인물만 등장한다.


반면 마이크의 옆에는 괴짜지만 실력있는 건축가 산토닉스가 있다. 건강이 나빠 요양중이지만, 마이크의 부탁에 따라 집시의 땅에 집을 지어주는 인물이다. 반면, 마이크의 어머니는 마이크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이는 중요한 반전과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별다른 사건 없이 그들이 만나고 사랑에 빠지며, 반대의 끝에 결혼을 하게 되고 결국 저주받았다는 그 땅에서 집을 짓고 살아가는 이야기만 차례로 나열되고 있다. 마이크는 꿈도 없이 떠도는 인물로, 그의 시점으로만 전개되기 때문에, 그가 무척 순진하고 검은 속내라곤 하나도 없는 듯이 느껴지게 한다. 더군다나 가장 경계하는 인물이 일에도 능숙하고 매혹적인 외모를 가진 그레타라니, 지나치게 경계할 때 뭔가 더 수상해 보이긴 했지만...


이 소설의 사건은 엘리의 죽음이며, 그 핵심은 이와 관련된 마이크의 고백에 있다. 흔히 서술트릭이라고들 한다. 홈즈의 시대에는 없었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시대에는 있었다는 작법. 이는 치밀한 구성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 진행으로 구축되어야만 그 맛을 한층 더 잘 살릴 수 없는 기법인 듯하다. 자칫 잘못 하다간 김이 팍 새어버리듯, 이야기의 맛도 멋도 모두 증발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작품 중엔 이와 비슷한 작법으로 서술된 앤터니 호로비츠의 <모리어티의 죽음>이 있다.


<끝없는 밤>의 아쉬운 점은 치밀한 구성에 비해 이야기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엘리의 죽음에 감춰진 비밀과 있는 힘껏 잡아뒀던 분위기가 막상 그 빛을 발하게 될 범인의 등장의 순간 아, 역시 하고 예상과 맞아 떨어진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시대에는 무척 놀랍고 재밌는 이야기이었을 것 같다.


왜 마이크는 어머니를 두려워했는가, 산토닉스의 마지막 말에 담긴 뜻은 무엇인가, 

마이크는 왜 그리 그레타를 경계하고 싫어했는가, 집시 부인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왜 끝없는 밤인가. 


이러한 물음들의 대한 답은 모두 마이크의 고백 속에 있다. 해소되지 않는 것 없이 끝나니 완결성은 탄탄한 작품인 듯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스포일러는 이 책의 소개에 있다. 


첫번째 살인, 두번째 살인, 세번째 살인, 네번째 살인 - 여기까지는 욕망에 의한 살인이었다. 그러나 이제 살인하는 재미가 붙은 그는 자기의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드디어 그는 지금까지 살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쾌감을 느끼며 다섯 번째 희생자의 목을 조른다. 애거서 크리스티만이 창조할 수 있는 교묘한 범죄의 세계 - 우리는 이 작품을 읽으며 끝없는 고독을 느끼게 된다. 범죄 세계에서 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영혼의 고독을..... (예스24)


개인적으로 내겐 애거서 크리스티보단 아서 코난 도일의 홈즈가 더 매력적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읽을 것이 아직도 무수히 많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때론 아무것도 모르고 읽을 때 그 재미가 더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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