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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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만약'이라는 가정 속에서,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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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이 좋지 않지만, 좋은 이야기를 마주할 때면 지독히도 빠져들게 된다. 그날은 그렇게 빠져든 상태로 흘려보내야 한다. 이 작품이 그러했다. 피하고픈 슬픔이 찾아들어 곤욕스러웠다.

    

여기 모든 것을 잃은 남자가 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다. 그것도 아주 소중한 존재들 모두. 그에게 남은 거라곤 그 뒤를 따르겠다는 허망한 죽음에의 의지뿐. 텅 빈 가슴으로 겨우 숨을 내쉬던 그에게 쪽지 속 한 문장이 모든 것을 뒤집어버렸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진실을 향한 갈망은 짙어졌다.

  

  

우진은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에게는 지켜주고 싶은 아내와 별을 사랑하는 딸이 있다. 지독한 운명의 굴레인지,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난 후, 과실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차를 분해하기 시작했고, 아무 생각 없이 몰두할 수 있는 그 일이 잘 맞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어느 날, 우진의 시끄러운 정비소에 날카로운 벨소리가 울려 퍼진다. 유독 그의 귀를 잡아끄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불안감이 일렁였고, 외면하고 싶어졌다. 그 예감을 비웃듯 우진의 아내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우진에게 또 다른 불행과 상실을 암시했다. 

  

아내는 왜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는가, 자신에게 이러면 안됐다는 아내의 말에 우진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우진의 서사가 진행될수록 그가 어떤 상실을 겪었는지, 어떻게 가족을 떠나보내게 됐는지 아픈 상처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혼자 남겨진 우진이 선택이란 결국 그 뒤를 따르는 게 최선인 듯 했으나, ‘진범’이라는 단어 하나로 딸의 죽음 속 감춰진 진실을 찾기 위해 다시 일어서게 된 것이다. 

  

간결한 문장과 정확한 묘사로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와 그들의 사정이라는 것들이 하나씩 드러나게 된다. 

  

별을 사랑하고 드넓은 하늘을 향한 꿈을 키웠던 수진, 모든 걸 다 가진 듯 보이는 가정 속에서, 부모의 이기심으로 인해 따뜻한 애정을 갈구하지도 받아보지도 못한 세영과 수진의 죽음을 미성년이라는 이름 아래, 가벼이 넘기려 했던 세 아이들. 아슬한 관계성에서 피어난 악랄함과 또 다른 피해자. 가해자와 피해자. 한 끗 차이가 된 셈이다. 그러나 그 무게를 감히 비교하지도 가늠할 수도 없겠다. 특히나 그 이유라는 게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시기심이라 하더라도. 그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이건 가족을 잃은 한 남자의 처절한 추적이다. 우진은 딸과 아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고자 했다. 도대체, 왜,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 사랑스러운 딸, 수진이어야 했나, 왜 하필, 그 많은 병원 중에서도 그 병원이어야 했나, 아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방편이 또 다른 악연으로 이어지고, 어떻게 서로 엇갈리게 되었는가. 자식을 잃은 슬픔이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또한 지독히 현실적인 상황에 맞물려야 할 때, 그 치욕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왜, 운명은 유독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시련을 주었는지. 사는 게 더 고통인 삶속에서 우진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 또 다른 아버지가 있다. 유능한 검사에서 변호사로. 재혁이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행했던 것들이 어떤 결과로 돌아오게 되었는가. 왜 가진 자들의 행패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가. 다소 상투적인 구조와 진행방식일 수도 있다. 미성년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범법을 저지른 인간들이 아무런 반성도 없이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유사사례들을, 그보다 더한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고, 그래서 더욱더 거침없는 청소년 범죄를 어떻게 판단하고, 어떤 징벌을 가할 것인가. 너무나도 어렵고 안타깝고 한탄스러운 일이다. 

  

가족을 잃은 한 사람의 끈질기고, 처절한 복수극에 대한 서사는 다수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 작품이 더 와 닿았던 이유는 그 안에 담긴 마음이 내게 전달됐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도 믿기 어려운 죽음에 대하여, 그 상실과 허무에 대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외면과 회피를 일삼으며 비루한 하루를 더 연명해나가는 지금. 그래서 더 아픈 작품이었고,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수많은 가정들 속에서 괴로웠다. '만약'이라는 수많은 가정들. 

'만약' 그날 끝까지 연락을 했더라면, '만약' 그날 자신을 대신하지 않게 했다면, '만약' 자신이 나서서 무언가 행동했다면, '만약' 알게 된 진실 앞에 간절했어도 다른 병원을 찾아 갔더라면, '만약' 고통스러움 속에서 더욱더 그 곁에 있었다면...

  

사회파 미스터리하면 떠오르는 작가는 미야베 미유키였다. 단순히 다루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심리와 사회구조와 현상에 대해 끝없이 파고드는 그 힘과 끈기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국내 미스터리를 비롯한 장르물에 대한 갈증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잘 찾아보지 않았다. 특유의 정서와 담긴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잘 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작품들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도 미지했다. 

  

여기 서미애 작가의 이름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다. 믿고 보는 작가리스트에 추가할 수 있겠다. 치유되지 않은 상실에 대하여. 감히 권할 수는 없으나, 여기 나와 같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다. 문득 문득 견디기 힘든 순간이 올 때에도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피하고 마는, 아직도 어리석은 회피가 이어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있기에, 살아가고자 하기에...언젠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이 리뷰는 엘릭시르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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