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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보이 ㅣ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박현주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2월
평점 :
시기라는 그림자 속에 가려진 차별에 대하여
『뉴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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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대표적인 작품으로도 손꼽히는 '오셀로'는 베니스 공국의 흑인 장군 오셀로가 명망 높은 집안의 딸 데스데모나와 사랑에 빠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기와 야망에 눈이 먼 부하의 꾐에 속아 사랑하는 사람을 의심한 끝에,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작품이다.
셰익스피어 다시 쓰기 프로젝트를 통해, 이 작품을 선택한 작가는 『진주 귀고리 소녀』작품으로 유명한 트레이시 슈발리에이다.
새로 각색되어 탄생된 현대판 오셀로 『뉴 보이』는 1970년대 미국 워싱턴의 외곽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전학 온 ‘오’와 그런 ‘오’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디’와의 관계를 비롯하여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1974년 워싱턴 교외의 한 초등학교. 백인 아이들로 가득했던 이곳에 검은 피부를 가진 소년이 전학을 온다. 가나 출신 소년 오세이 코코테. ‘오’ 교내 최고 인기 여학생 이탈리아계 미국인 소녀 다니엘라. ‘디’
디는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매력을 지닌 오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에게 관심을 표현한다. 이는 평상시의 늘 수동적이어야만 했던, 어른들의 눈에 들려 애썼던 것과는 전혀 다른 행동이었다. 오는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누나 시시의 변화에 대해 아직 아물지 않는 상처와 두려움이 있었지만, 이방인인 자신에게 다가와준 디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이내 자연스럽게 교내 풍경에 녹아들기 시작한 오,
이를 불안하고 달갑지 않게 여기지 않은 이도 있었으니, 바로 운동장의 왕으로 불리는 이언이다. 교묘하고 저열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 시기심의 인물이라기보다 그저 독재자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오는 그런 이언의 꾐에 넘어가고, 작은 오해와 의심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
『뉴 보이』 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의 플롯 그 위에 새로이 덧그려진 설정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또 다른 비극을 보여준다. 성인에서 아이로, 연령도 시대도 각기 다르기에, 이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비교해보는 맛도 있다. 아이들도 단순히 어린 나이의 순수성 뿐만 아니라 사춘기로 접어드는 과정에서의 성에 대한 관심, 미묘한 감정과 시기, 질투 등 그 관계성이 드러나는 게 탁월했다.
원작에서는 비극의 씨앗 같은 소품 손수건이 이 작품에서는 필통으로 대체됐다. 또한 오는 이방인으로서, 소외받는 입장에서 서 있을 수밖에 없고, 그가 받게 되는 완고한 벽 같은 편견과 상처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마지막까지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한 언어적인 폭력이 오에게 가해진다.
그렇다면 비극으로 치닫기 위해 그랬을까, 자신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간단히, 그리고 직접적으로 한 마디로 물어봤으면, 이러한 비극적인 결말이 나오지 않았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만이 남았다. 원작의 플롯을 토대로 하는 작품이기에 당연한 결말이었지만, 서로를 통해 변화하게 되는 오와 디의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에 결말으로 향할수록 그 감정상태가 아쉽게 느껴졌던 것 같다.
각 인물들이 본연의 설정과 캐릭터를 잃지 않고, 그대로 연령만 낮아진 느낌이다. 간악하고 비열한 인물 이야고는 운동장의 왕 이언으로, 그의 아내였던 인물은 미미라는 섬세한 기질의 소녀로, 이야고가 오셀로를 꾀어내려 이용한 인물인 캐시오와 그의 연인 비앙카는 학생들의 인기와 평판이 고루 좋은 선한 남자아이 캐스퍼와 발랄한 소녀 블랑카로 재탄생 되었다. 데스데모나의 완강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브라반트 선생님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또한 시간성도 한정되어 있다. 『뉴 보이』속 사건과 시간의 흐름은 오가 전학온 날 오전에서부터 오후까지, 딱 하루의 일어난 일들이다. 하루사이에 그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디는 차분하며 매력적인 소녀로 등장한다. 그녀는 엄격한 어머니의 기준 아래, 반항이란 걸 해본 적도 없었던 걸로 보인다. 심지어 학교에서조차 브라반트 선생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애정을 받기 위해 얌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모범생 같은 그 아이 옆에 오라는 소년이 서게 되자 디의 세계는 좀더 다양한 색채로 빛나게 되는 것 같다. 머리스타일 하나 자유롭지 못한 그녀가 길게 풀어헤치거나, 둘만의 세계에 빠져 서로를 만지게 됐을 때,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세계에 머물고 싶어 하기도 한다.
오는 겉으로 보기엔 차분하지만, 내면은 혼란스러움을 담고 있는 소년이다. 자신의 영혼의 단짝 같았던 누나는 흑인에 대한 사상과 본질에 대해 몰두하여 점차 멀어져 갔고, 집안에서는 이야기할 상대를 찾을 수가 없다. 부유하지만, 외교관이라는 아버지의 직업이 무색하게, 오의 집안은 어디서나 시선을 받게 된다. 오는 디와의 애정과 관심에 기쁨과 더불어 의기소침했던 마음의 균열은 아주 쉽게 일어났고, 이는 충동적이지만, 마음을 다친 오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그 결과는 너무 참혹했다.
놀라움과 안도가 디의 몸속에 넘쳐흘렀다. 오도 디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안에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디는 이제 진짜 연인들이 서로에게 사귀자고 말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두 사람은 이미 함께였다. 물어본다는 건 아기 같은 짓, 애들이나 하는 농담이었다. 디와 오세이는 이미 그 단계를 훨씬 뛰어넘었다. 99쪽
원작 '오셀로'에서의 중점은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더불어 자신이 겪어왔던 불합리함에 몰두하여, 익숙한 나머지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한 남자의 비극적 결말과 보지 않아도 될 것을 잘 보는 인물의 저열한 행태의 연쇄작용의 결과로 보여진다. 결국 오셀로는 자신의 사랑에 자신이 빠져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이는 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더 크게 다가온다. 오가 겪었을 차별의 상처들이 채 가시기 전에 스스로 자초한 일들로 인해 더 큰 상처로 뒤덮이게 된다.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이에 대해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곳곳에 차별은 존재한다. 선생님들 마저도 오를 구역질 난다 표현했을 때, 읽는 나에게도 왠지 모를 상처가 되었다.
디가 사라지자 세계는 납작하고 어두워졌다. 디가 있어서 오의 아침은 참을 만했다. 더 나아가, 디는 그 아침에 색을 입혔다. 이제 디가 사라지자 사물은 다시 흑백으로 바뀌었다. 128쪽
다시 찾아온 흑백은 오가 스스로 자초한 셈이다. 하지만 오 역시 상처에 무디지 못한 아이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상처는 더 겪지 않아도 될 것들이었다.
오래전 어머니가 머리카락을 직접 자르고 보통 정도의 아프로 머리를 하고 다녔을 때는, 가끔 줄에 서 있으면 뒤에 선 여자애들이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경탄하거니 다음 순간 손가락을 치마에 닦곤 했다. 137쪽
"왜인지 아시잖습니까." 브라반트 선생은 음침하게 대답했다. " 이 학교는 흑인 학생을 받을 준비가 안 된 겁니다."
"안 된 것 같네요."
"그리고 하루는 아직 끝나지도 않았어요. 이런 말 아시죠? 말썽은 늘 셋씩 무리 지어 온다." 198쪽
오세이는 생각했다. 누나는 이 백인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 지 알 터였다. "검은 것이 아름답다." 오세이는 중얼거렸다. 이보다 더 믿고 싶었던 말은 없었다. 241쪽
오의 순간의 어리석음과 자조가 안타깝기만 하다.
정글의 왕, 미미는 생각했다. 하지만 가엾은 왕이야.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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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호흡이 끊기지 않고 한 번에 읽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이 좋았다. 왜 연령 설정을 굳이 중학생에 올라가기 직전의 아이들로 했을까, 이는 원작의 플롯을 살리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다. 무대를 조금 옮겨왔지만, 여전히 비극으로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는 원작 못지 않게 이성간의 긴장감을 묘하게 잘 살렸기 때문이다. 또한 본래의 이야기를 훼손하지 않고 또다른 비극으로 재탄생되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작품의 각색이라니, 말만 들어도 부담일 것 같은데...지금까지 읽은 작품들은 모두 각각의 특성과 매력이 있었다.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는 굉장히 매혹적인 시리즈 같다. 원작과 닮은 점과 다른 점을 찾아보며 읽는 재미도 있을 것 같고, 또 새삼 역시 셰익스피어는 대천재구나,싶기도 하다.
본래 타고난 것에 대해 어느 누구든 차별할 권리는 없다. 차별이란 무엇인가. 자신을 상대보다 우위를 두기에 나오는 저급한 사고와 행동들이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한 위치에서 바라봐야 하는 게 아닐까, 단순히 시기심과 질투가 아닌 묵직하고 꼭 생각해봐야 할 필수적인 질문들에 답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주는 작품인 것 같다. 조금씩 변화해나가는 것이다. 아주 긍정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반문하고 끊임없이 소리내야 한다. 조화롭게, 평화롭게.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