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꾼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1
M. C. 비턴 지음, 문은실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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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코지 미스터리계의 웰메이드 작품!




『잔소리꾼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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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해미시 맥베스 시리즈의 열 한 번째 작품이 출간됐다. 전편 『아도니스의 죽음』에서는 해미시의 인생의 또 한번의 터닝 포인트가 될 만한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했었다. 바라지 않았건만 얻었던 자리인 경사에서 순경으로 좌천되었고, 비공식적이지만 로흐두 마을 내 공식적인 약혼자 프리실라와도 파혼을 하게 되었다. 일과 사랑을 동시에 잃었다고 해야 하나, 원점으로 되돌아갔다고 해야 하나.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그에겐 휴식이 정말 필요했다. 

침울하기도 하지만, 주변의 눈초리에 더 불편한 해미시. 자신도 마음을 다친 건 매한가지인데, 애초에 넘볼 자리를 잘못 보고 덤볐다는 듯이 애정을 가지고 살폈던 마을 사람들 하나같이 해미시의 행동과 잘못에 대해 탓하기만 한다. 

해미시는 자신이 원하던 여행지는 아니지만, 우연히 보게 된 신문기사의 민박집 '프랜들리 하우스'의 광고를 보고 떠나기로 결심한다. 전 작품에서도 활약했듯이 사기꾼으로 보이는 점쟁이 앵거스의 구설수 예언 따위는 가볍게 무시한 채로. 그러나  이게 우연히 들어맞은 건지, 아님 정말 용한 점쟁이의 점괘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해미시는 휴가지에서 결코 평온한 휴식을 얻지 못한다. 불쌍한 해미시.



그는 썰물을 한가로이 바라보았다. 하늘은 진줏빛이었고, 아름답고 조용한 늦은 오후였다. 고요한 공기 중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머리 위를 갈매기들이 느릿느릿하게 선회했다. 81쪽 

그렇게 해미시의 영혼의 동반자와도 같은 타우저와 함께 휴가지로 떠났건만, 과장광고임에 틀림없는 프랜들리 하우스는 초라한 티타임과 부실하고 위생불량한 식사, 그냥저냥 쓸만한 숙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끊임없이 잔소리와 구박을 일삼는 밥 해리스와 부인 도리스 해리스. 단골손님 같은 화목한 가족 더모트 브렛과 아내 준 브랫 그들의 딸 해더 브랫, 일탈을 꿈꾸는 것처럼 보이는 트레이시 핑크와 셰릴 겜블, 젠틀하지만 도리스 해리스와의 정분이 날 듯한, 불화를 싫어하는 해미시의 걱정을 더해주려 듯한 퇴역군인 앤드루 버거, 전직 교사이자 해미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는 여인 펠리시티 거너리, 양심불량 민박집 부부 핼리 로저스와 리즈 로저스가 등장한다. 

늘 그렇듯이 우리의 주인공이 가는 길은 피곤하게도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주인공의 활약할 무대가 주어져야지만 활력을 띠는 게 미스터리 소설의 법칙과도 같기에 당연한 수순이지만.

물론 해미시는 어떠한 사건에도 끼어들 의도와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사건의 전조로 보이는 두 남녀의 눈맞춤이라든지, 끝없이 세상 모든 불평을 아내에게 퍼붓다 못해 폭행까지 휘두르는 밥 해리스 덕에 해미시는 결국 사건에 휘말리고야 만다. 

한밤 중에 소란을 일으키는 민페객에게 한방 시원하게 날렸다가, 조사받게 되고, 그것도 모자라 당시 밥 해리스에게 폭력과 좋지 못한 언행을 그만 두라는 해미시만의 위협적 발언을 투숙객 모두가 듣고야 말았는데, 나중엔 이 잔소리꾼이 정말 죽은 채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최초 발견자가 해미시 본인이라는 게 더 문제였다. 그러나 해미시는 늘 인명을 우선시하는 경찰이기에 열심히 인공호흡도 해보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인 이 사람. 밥 해리스와 오해를 풀기 위해선 영락없이 범인을 추적해야만 하는 해미시. 특유의 익살스러움과 짖궂지만 다정한 모습도 여실히 보여주며 사건 해결에 힘쓴다.


폐소 공포증이 일어날 정도였다. 그는 가려고 일어섰다. "차 한잔 마시고 가요." 그녀가 말했다. 벌겨벗겨진 외로움이 그녀의 눈에서 황급히 튀어나왔다. 외롭지 않을 리가 없지, 해미시는 생각했다. 고약하고 성가신 늙은이. 하지만 그는 다시 앉았다. 언젠가는 그도 늙고 고약해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차를 마시고 그녀의 스콘이 세계 최고라고 맞장구를 치면서 그녀가 쏟아 내는 불만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108-109쪽 


"이보세요, 로저스 씨. 정도껏 하셔아죠. 이 똥 같은 거 치우고 먹을 만한 걸 내오세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관광청과 보건당국에 신고할 테니까요." 125쪽 

오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다행히 꽉 막힌 전개는 오래가지 않는다. 그의 활약을 듣게 된 담당 경찰 샌디 디컨 경감은 추후 해미시의 사건 해결능력에 의존하며, 실리의 표본을 보여준다. 그 곁엔 여자여서 차별받는 것에 대한 불만을 여자여서 할 수 있는 행동으로 기회를 얻으려는 매기 도널드가 등장한다. 우직한 여성 캐릭터가 없다는 게 한숨이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해미시의 미남계는 여전히 잘 통하는 듯하고, 의도치 않았다해도... 러브 라인이 생기려나 했지만, 금방 무산되고 만다.  

그 사이 갖가지 오해가 생겼다 풀리기도 하고, 또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가장 큰 사건은 아무래도 타우저의 죽음이었다. 세월의 흔적이야 비켜나갈 수 없다고는 하지만,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 앞에 해미시는 모든 것을 상실한 듯  상심할 수밖에 없다. 그의 가족이었자, 친구였다. 일상은 물론 경찰로서 일할 때조차 항상 옆에 있어주었던 존재이기에, 이 모든 게 갑작스럽기만 하고 혼란스럽게만 느껴진다. 




개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서, 이 녀석아, 다 큰 녀석이." 해미시가 타우저에게 다가갔다. 그는 타우저의 거친 털에 손을 얹었다가 이내 꼼짝도 하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그는 개를 흔들었다.  
 그러다가 흔들던 손을 문득 거두었다. 크나큰 고통의 검은 파도가 그를 에워샀다.   
 타우저가 죽었다. 135쪽 


매기는 디컨 경감의 지시로 해미시가 로흐두로 돌아가 타우저를 묻어주기 위해 되돌아가는 길을 동행하게 된다. 

그들 앞에 첩첩산중이 펼쳐져 있었다. 산 위의 구름이 빛줄기로 갈라져 있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천사들이 사다리로 썼을 법한 모양이었다. 딱히 감성적이지 않은 매기마저 전율이 이는 것을 억눌러야 했다. 마치 어떤 기이한 야만의 땅으로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140쪽

그를 외면하며 상처를 줬던 로흐두 마을 사람들은 해미시의 사정을 알게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타우저를 보내는 엄숙한 장례식을 함께 치른다. 그것도 복장도 신경써 갖춰 입고서 온 마음으로 상실과 애도를 표한다. 다시 한번 마을의 정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는 듯 했다. 미우나 고우나 정다운 이웃이라는 것일까. 

이따금씩 타우저의 흔적과 빈 자리를 떠올리면서 수사에 집중하게 되는 해미시.  알리바이를 추적하고, 기자 친척인 로리의 정보통과 널리 퍼져 있는 해미시가 사람들과의 연락으로 차근차근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씩 찾게 된다. 그와중에 밝혀지는 곁다리 사연이랄까, 불법 식품 유통과 불륜, 그리고 시한부, 새로운 시작 등 인물간의 관계성도 묘하게 맞물려가고, 또 다시 해체되기도 한다.

워낙 여러 사연들이 등장하고, 여러 인물들이 얽혀 있기에 스피드한 전개라기보다 짜임새가 촘촘한 스토리 라인에 지루해할 틈 없이 재밌게 읽어 나갈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해미시 특유의 비꼬는 듯한 익살스러운 유머가 있기에 재밌긴 했지만, 이번 작품은 유독 더 읽을 거리가 많아 즐거웠다.

여전히 직관적인 추리력으로 사건을 무사히 해결해가는 해미시, 이번에는 무사히 증거도 찾았건만 범인의 사정과 마지막 결정이 너무 안타깝고, 역시 인간이란 욕망의 동물인가 싶어서 씁쓸해졌다. 그렇게 모든 걸 걸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안타깝기만 했다.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싶고, 사람은 모두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신의 기준에서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싶다. 사랑이 전부였기에 이루지 못한 사랑을 대신 이뤄주고 싶었던 소박한 바람이 어쨌거나 한 생명을 앗아가게 됐고, 그게 공공의 적이자 인류의 해충같은 존재일지라도 그것을 함부로 판단할 권리는 타자에게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하여 해미시의 휴가는 결국 물거품이 된 셈이다. 승진과 공로에 별 욕심없는 해미시와 블레어 경감만큼의 욕심을 가졌지만 그보다는 인정(?)이 있는 디컨 경감과 해미시의 티키타카. 모두가 윈윈하는 결말이 됐다.



"잊었습니다. '경감님'. 제가 어쩌다 보니 휴가중이어야 하는데, 라는 미친 생각을 하고 있었지 뭡니까."
"뭐, 휴가가 아니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잊자고. 자네는 겉보기와 다르게 상황 판단이 빠른 사람이라고 정평이 나있더군. 이 사건이 자네 관할 구역에서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세. 자네 같으면 어떻게 하겠나?" 182쪽


 디컨은 다시 앉아 책상 서랍을 열고 봉투를 하나 꺼냈다. 
"내 밑에서 일하느라 휴가를 망쳤으니, 여기 동봉한 게 보상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
 해미시는 봉투를 열었다. 안에 450파운드가 들어 있었다. 감히 경찰에게 뇌물을 주다니, 하는 게 처음 든 생각이었다. 뒤이어 상관이 부하에게 주는 뇌물은 뇌물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는 실용적인 생각이 따랐다……그렇지 않은가?
 그는 봉투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 일어섰다. "저는 그럼 가보겠습니다, 경감님." 
 디컨이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311쪽

이번 편에서는 프리실라의 등장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름을 언급한 것은 빼고서. 그래서 다음 편에서의 둘의 관계성을 다시 어떻게 풀어낼 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해미시의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은 치유받지 못했으며, 가족같은 타우저마저 잃었다. 온전히 혼자의 삶이 돼버린 그가 앞으로 어떻게 생활해나갈 것인지. 좋은 쪽으로 풀리기를 바랄 뿐이다. 로흐두 덕후 해미시는 다시 마을 속으로 틀어박히게 된다. 해미시에게는 '이불 밖은 위험해'가 아니라,'로흐두 밖은 위험해'인 셈이다. 주로 경찰서 일로 인해 이동하여 근무하거나, 근처 마을을 돌았었는데 이번엔 휴가지라 더 색다른 스토리가 많이 나왔던 것 같다. 다음 사건이 벌어질 공간은 어디일지, 어떤 괴짜들이 등장할 것인지도 기대된다. 


 웬 인생의 낭비인가, 그것도 모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후 세계가 있었으면 좋겠네, 사나워진 심정으로 해미시는 생각했다. 거너리 양, 그래서 당신이 이 모든 걸 보고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책상 서랍에서 위스키를 꺼내 잔에 따랐다. 올해는 그도 어디가 됐든 휴가를 떠나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저 로흐두에 눌러앉아서 낚시나 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로흐두 밖 세상은 사악했다. 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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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의 서두에는 작가님의 친서와 같은 인사말이 담겨 있다.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는 건 작가님의 로흐두 마을의 배경이 된 서덜랜드에 대한 충만한 애정이 듬뿍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해미시 시리즈를 읽다 보면 주변 풍경과 사람에 대한 묘사에 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훌륭한 필력과 다채로운 스토리가 구성되어 함께 어우러지니 재밌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코지 미스터리의 '코지'는 편안함이나 안락함 등을 뜻한다고 한다. 즉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추리소설 장르인 것이다. 또한 코지 미스터리는 생각보다 오래된 장르로써, 등장 인물들 사이의 관계성이나 가십 등이 중심이 되는 사건에 영향을 미치고 범인을 추적해나가는데 주요 실마리가 된다. 


코지 미스터리를 알게 되고 접한 뒤에 가장 많이 추천받고 읽게 되는 것은 조앤 플루크의 컵케이크 살인사건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컵케이크, 쿠키 등이 들어가는 살인사건이라니, 심지어 주인공은 쿠기가게의 주인이다. 물론 로맨스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여 삼각관계도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다. 이 시리즈는 맛있는 디저트들의 잦은 등장으로 허기짐의 고통을 더해준다면, 해미시 맥베스 시리즈는 정말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 로흐두 마을을 관광하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한다. 때론 그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상상마저 하게 된다. 


모든 걸 잃게 된 주인공의 휴가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을 보자니, 하나씩 쌓아 왔던 작가의 내공이 순간 폭발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해미시 맥베스는 코지 미스터리계의 웰메이드 작품이다라는 생각을 감히 해보았다. 이는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며, 언제든 믿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자국에서 사랑받는 작가라는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요즘과 같은 오락가락한 날씨와 미세먼지의 답답한 공기 속에서 멜랑꼴리한 기분을 해소시켜줄 훌륭한 시리즈이다.


해미시, 또 언제 만나볼 수 있는 걸까요. 다음 편이 너무 기다려집니다...





(이 리뷰는 현대문학의 '해미시 맥베스 순경 독자단 3기' 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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