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엔 카프카를 - 일상이 여행이 되는 패스포트툰
의외의사실 지음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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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여행되는 패스포트툰,



『퇴근길엔 카프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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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문학을 접하는 건 의외로 예상치 못한 데서 비롯되기도 한다. 다양한 매체 속에서 숨겨진 단서처럼 그 실마리를 얻게 되는데, 예를 들어 체호프 같은 경우에는 즐겨 찾아보던 외국 드라마에서 주인공 중 한명이 체호프 매니아로 나와 대사 중간 중간에 그의 작품 속 대사를 인용하는 걸 보고 처음 알게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경우 고등학교 때, 수행평가의 일부였던 일기 쓰기에서 의식의 흐름 기법이란 작법과 후에 '디 아워스'라는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카프카의 경우엔 대학 수업을 통해, 셰익스피어의 경우 중학교 때 100권 읽기 프로젝트를 통해 추천 도서 목록에 있어 접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추천을 받지 않았지만, 꼭 읽어야 된다는 강박감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는 은연중에 이러한 고전 작품들이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읽히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란 짐작과 약간의 지적 허영심이 투영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이 책에 소개된 작품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 번쯤 읽어보았거나, 마음 속에 담아두고 싶었던 게 많아서 반갑고 신기했다. 

그것도 어쩜 마음에 쏙쏙 와 닿는 포인트로 짚어 소개해주는지, 인상 깊은 장면까지 찾아볼 수 있어 좋았다. 그것도 웹툰 형식으로 되어 있다 보니 눈에 더 잘 들어왔던 것 같다. 시리즈로 해서 좀 더 내주면 안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같은 책을 읽더라도 대개 공감하는 부분도 비슷하게 있겠지만, 전혀 다른 부분을 중요하게 기억하기도 하기 때문에, 다른 의견들이 늘 궁금했다. 딱히 누구에게 이 얘기를 할 수도 없었고, 낯간지럽게 느껴졌는데 이 책을 읽을 때 만큼은 소통하는 마음으로 읽어나갈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고, 이 장면이 좋았는데 혹은 이 책은 진입 장벽이 높았는데 이렇게 매력적인 작품이었나, 읽어봐야겠네, 와 같은 감상을 읽는 동시에 하게 되니 얼마나 설레던지. 

근래에 나의 책임을 벗어난 일들 때문에 어찌나 버겁고 지겨웠는지, 소원해진 관계 속에 얼마나 외로웠는지 떠올랐던 괴로움을 잠시 잊게 해주었다. 육체의 실질적 고통을 지울 수 있는 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마음에서 오는 내적 고통에는 특효약처럼 느껴졌다. 

독서에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을 하는 중에도 힘들 때면, 아, 그 책 빨리 읽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작품을 읽을 때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되는 기분이 든다.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주 먼 나라, 그것도 먼 과거 속 작품들을 읽는 게 일종의 여행처럼 느껴진다는 작가의 말에 많은 공감을 할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기 때문이다.  





 
새로이 알게 된 사실도 있다.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도 잠깐 등장했던 『한 여름밤의 꿈』 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정작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의 초상화라든지, 후에 어떻게 작품을 복원해서 출판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참으로 흥미로웠다. 부끄럽지만, 내가 알고 있던 얼굴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 또한 새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체호프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 또한 흥미로웠다.





제목 또한 얼마나 적절한지, 당시 카프카의 생활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썼다고 하니, 그에겐 퇴근 후의 시간이 사회생활의 퍽퍽함과 강압적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난 잠깐의 휴식과 자유였을지 감히 짐작해본다.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사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출근하기 싫지만 정해진 시간에 기상해야 되고, 직장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빨리 집에 가고 싶다'인 것처럼.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개의 직장인들이 가지는 돈벌이에 대한 스트레스는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든다.  변신은 이러한 의무와 책임감과 불안을 아주 잘 표현한 작품인 것 같다. 때문에 정말 좋아하는 작품 중에 하나로 손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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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흥미롭고, 좋은 작품들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때론 신간을 알아가는 즐거움 못지 않게 고전문학을 되새기며 읽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문학 작품을 새롭게 읽는 방법으로 만화를 그렸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 만화를 통해 다시금 새로이 텍스트를 읽어볼 수 있다는 것도 신선한 접근법 같다. 

카프카나 버지니아 울프나 셰익스피어 작품과 같이 좋아했던 작품을 비롯하여 보르헤스나 소포클레스와 같이 다소 용기가 필요한 작품들까지. 작가의 바람대로 작은 환기가 되어 주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쉽게 열어볼 수 없었던, 무겁게만 느껴졌던 책장을 열어볼 용기 또한 주었다. 덕분에 이미 알고 있었던 작품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작가의 고요한 일상에 대한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작품을 선정하고 반복해서 읽고 맥락을 잡아 구성하고 그리고 정리하기가 얼마나 고되고 부담스러운 작업이었을지 생각해보면 감사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하고 싶다. 


그래서 다음은 또 언제일까요...?




(이 리뷰는 민음북클럽의 서평 프로그램 '첫 번째 독자'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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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욥기 43장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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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지에 대하여,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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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다섯 번째 소설선, 이기호의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욥기43장』은 2017년 8월호 『현대문학』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 후, 출간된 작품이다. 인터뷰 형식이랄까, 취조 형식의 구성은 여러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하나의 사건 혹은 중심인물에 대해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구성은 일본소설 『악녀에 대하여』를 통해 접해본 적이 있는데, 하나 차이점이라면 여기선 중심인물인 최근직 장로의 직접적인 증언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한적한 시골 마을 목양면의 한 교회에서 화재가 발생되고, 담임 목사 최요한 씨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지만 화재 발생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교회는 최요한 목사의 부친인 최근직 장로에 의해 세워진 곳이다. 환경적인 측면으로 보면 최근직 장로는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그의 나이 마흔 일곱이 되던 해, 봉사활동을 가기 위해 탄 기차에서 사고로 인해 자신을 제외한 가족 모두를 잃게 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삶을 포기하려고 올라간 고향의 오구산에서 목을 매려는 순간 신의 음성을 듣고 이를 계기로 새 삶을 살고자 한다. 제 2의 삶을 사는 그는 기적과도 같은 존재 아들 요한이 있고, 그의 신앙 간증은 대대적으로 많은 신자들에게 회자되며 희망으로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그 일면에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속사정 또한 있었다.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해 마을 사람의 증언을 모으면서 밝혀지는 진실은 과연,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이야기는 총 열두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방화자로 처음 지목됐던 인물 고등학생부터 교회에 사는 전도사, 화재 사고로 죽은 사람과 가까웠던 인물, 최 목사의 아내, 건물 내 세입자였던 식당 주인들과 최근직 장로에 하나님까지. 범접할 수 없는 영역까지 가뿐히 넘나들 수 있는 역량은 이기호 작가기에 가능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보통의 인물 구성에서 하나님(?)이라는 인물 또한 같은 연장선에서 놓고 말하고자 한다면 너무 가벼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숨길 수밖에 없던 이면을 밝혀주며, 중심 화두를 짚어주며 제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만큼 다양한 어조와 서술에 읽는 재미를 더한다. 각 인물마다 말하는 습관이나 특징이 달라서 생동감 있게 그려지는 것도 큰 장점이다. 말하는 이들로 봐선 질문하는 이는 형사로 추측된다. 질문은 없고 답만 표현됐는데도 대략 어떤 질문을 했겠거니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가독성도 좋았다. 알맹이가 탄탄한데 읽기에도 재밌다니... 

  

이건 이기호라는 하나의 장르로서 바라보면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다. 비극적이지만, 마냥 진창에만 빠지지 않고 삶의 비루한 구석구석을 보여주는 데, 특유의 위트를 가미하며 무게중심의 조화로움을 줄 수 있는 건 웬만한 내공이 아니면 안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작가는 ‘욥기’의 후속편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전체 42장으로 이루어진 성경 ‘욥기’의 번외로 이 작품이 쓰인 것이다. 자신의 자식들이 고통 속에서 죽은 뒤에도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는 이상한 아버지로 보였던 욥은, 정작 자신의 발바닥에 악창이 나자 비로소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했기 때문에, 이 아버지란 사람이 도통 이해가지 않았다고 한다. 작가 스스로 아버지가 된 후에도 이해가지 않았으나 관습적으로 읽지 않으려 애쓰며, 자식을 잃은 아버지라는 사실을 전제하며, 이해할 수 없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화재가 발생했고, 많은 사람이 다치고 목숨을 잃게 되었다. 최요한 목사는 모범생이라는 증언과 미혼모를 괴롭힌 인물로 증언되기도 했으나, 대체로 결핍을 가진 인물로 보인다. 최근직 씨의 두 번째 삶을 영위하는데 기적 같은 요소로만 여겨졌을 것만 같은, 그렇기에 아버지를 향해 순종적이었고, 두려워했으며, 한없이 갈망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라는 존재 하에 가려진, 마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 보여 안타까웠다. 물론 제목에서 이미 밝혀진 바, 그의 방화가 진실이라면 그건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의 이기심에서 온 범죄라는 건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커 보였던 아버지의 삶 속에 감춰진 비밀은 무엇이었는가. 그리하여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지게 된 최근직 씨가 화상으로 인해 진물나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삶을 포기하는 것보단 살아내고자 했던 걸 함부로 비난할 수 있을까. 살아가는 게 고통이고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 버텨내는 게 지옥같고 편히 잠들고 싶은 욕망이 존재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삶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졌듯이 어느 날 갑자기 끝나기도 하며, 길게 이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욥이라는 인물도, 최근직이라는 인물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최근직이라는 인물은 형편이 살만 했기에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문득 이런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인물이 화목했고, 소중했던 존재들을 모두 잃고 홀로 남겨지게 된다면, 과연 감히 짐작할 수 없는 그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 역시 그냥 개인적인 판단이나 논리로만 바라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된다. 삶, 그리고 사람 모두 복합적이고 알게 모르게 얽혀있는 것들이 많기에. 때론 나조차도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모순들이 늘 존재하기 때문에. 

  

  

역시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실망시키지 않는다. 지금껏 읽은 작품들 모두 만족스러웠다. 한 손에 쥘 수 있는 판형과 감각적인 표지 디자인에 소장 욕구를 높이고, 중요 요소인 작품까지 좋으니 앞으로도 출간 예정에 있는 핀 시리즈의 다른 소설 작품 또한 너무 기대된다. 기다림으로 그렇게 또 버텨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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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아버님이 말이야…… 하나님을 만난 게 먼저일까, 우리 어머님을 만난 게 먼저일까?”

저는 그 말에 아무 말도 없이 물끄러미 최 목사님을 바라보기만 했어요. 최 목사님이 또 무슨 말씀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우리 어머님을 먼저 만나고, 내가 태어나고…… 그러고 나서 아버님이 신앙 간증을 하기 시작했다면…… 그럼, 도대체 그건 무얼 의미하는 거지?” 110쪽

  


목사라는 직업이요, 어쨌든 다 우리 같은 영업직 아니겠습니까? 영업적 마인드가 있어야지 하나님도 팔고, 예수님도 팔고, 신앙심도 팔고, 복도 팔고, 하는 거죠. 네? 뭐 심한 말이에요? 그게 사실이죠…… 자본주의적 마인드로 보면 다 마찬가지에요. 열심히 하나님 믿고 신앙생활 하면 복 받는다, 그게 우리나라 교회에서 하는 말 아니에요? (…) 117쪽

  


최근직이 목을 매려는 순간, 누구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네가 아느냐? (…) 그때 최근직을 부른 사람이 누구인 거 같더냐? 네가 그를 모른다고 할 수 있느냐? 그건 최요한의 모친, 손순녀가 아니더냐? 그때 최근직과 손순녀가 만난 것이 나의 의지 같더냐? 내가 최근직을 그렇게 죽음에서 구한 것 같더냐? 말도 안 되는 소리. 최근직은 손순녀를 만나기 이전부터 이미 살려고 했던 사람이니라. 네가 그것을 알더냐? 가족을 다 잃어도 제 목숨을 스스로 끊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니라. 슬픈 것은 슬픈 것이요, 살고 싶은 것은 살고 싶은 것. 최근직은 자기 의지로 산 사람이니라. 154~155쪽

  

거, 아이 큰 사람으로 만들려면 하루빨리 우리 동네에서 이사 가야 할 텐데…… 여기 있으면 그냥 닭 되는데……. 164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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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제션 - 그녀의 립스틱
사라 플래너리 머피 지음, 이지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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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포제션:그녀의 립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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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 남겨진 자의 슬픔 속에서 떠난 이들과의 조우를 도와주는 곳, 엘리시움 소사이어티. '로터스'라는 신비한 약물과 '바디' 역할을 하는 사람을 통해 망자의 영혼을 소환하는 곳이다. 소환하고 싶은 사람이 생전에 착용했거나 관련된 소지품을 가지고 알약을 삼키면 바디의 영혼은 곧 그 자리를 내어준다. 신비하고도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나는 그곳에서 훌륭히 '바디' 역할을 해내며 5 년째 유능한 영매로 일하고 있는 에디. 그런 그녀에게 여느 날과 같이 죽은 아내 실비아를 만나고 싶어 찾아온 패트릭. 에디는 매력적인 패트릭에게 빠져들게 되고, 그를 향한 에디의 욕망도 점점 커져만 간다. 고요했던 에디의 일상은 이제 그의 곁에 있기 위한 더 과감한 행동으로 많은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한편 '희망'이라고 불리게 된, 한 폐가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여자 시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고객을 가장한 캔디스 파울러 부인이 찾아오고, 그녀의 제안을 거절한 에디 대신 다른 바디가 채널링을 시도한다. 레너드 부인은 엄격한 규정으로 엘리시움 소사이어티를 관리하지만, 원치 않은 변수가 발생되고, 감춰왔던 추악한 이기심도 드러나게 된다. 

실비아의 죽음과 엇갈린 관계성, 옳고 그름이 불분명해진 욕망과 뒤틀린 관계의 비극성은 강렬한 빛을 발하며 끝을 향해 달려간다.


이야기는 에디를 찾아온 패트릭과의 첫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를 만나게 된 순간부터 이제껏 조우를 위해 대면했던 고객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게 된 에디는 패트릭이 전해준 아내 실비아의 유품인 립스틱을 바르며 채널링을 하게 된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커져가는 욕망을 억눌러보지만, 뜻대로 잘 되진 않는다. 사무적인 그녀의 태도에 반해 좋은 사람으로 묘사된 패트릭은 역시그녀에게 관심을 주었기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한편, 자살자의 채널링은 시도하지 않는다는  엘리시움 소사이어티의 규정에 반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어느 폐가에서 발견되 '희망'이라는 신원미상의 여자시신의 진실을 밝히고 싶다며 찾아온 캔디스 파울러 부인은 에디의 거절에 굴하지 않고, 다른 바디와의 접촉으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얻으려 한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다른 바디들과 달리 5 년째 꾸준히 일해오고 있는 에디와 그녀와 상극인 듯한 애나, 신입인 판도라, 에디를 애정어린 관심으로 보는 리까지. 이야기 초반부는 에디의 직업적인 측면에서 오는 혼란함과 사람들과의 관계, 패트릭에 대한 관심과 욕심 등에 대해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을 그리며 제자리에서 맴도는 듯 진전이 없다. 


중반부가 지나고 에디가 폭발하듯 자신의 욕망 실현을 위해 직접적인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할 때, 한층 더 날선 긴장감과 함께 사건이 전개되기 시작하며 이야기는 그 탄력성과 가독성을 더한다. 그리하여 끝끝내 밝혀지는 진실들은 작품 속에 내재된 신비롭고도 수상한 분위기에 반해 다소 힘에 부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감추고 싶었고, 없던 과거이길 바랬던 에디의 진짜 이름과 그에 관한 사건은 생각보다 큰 힘을 얻지 못한다. 엄청난 비극성을 띠고 있는 건 맞지만, 개연성을 떠올리면 그 결이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비아의 죽음 속에 감쳐진 여러 관계성 또한 김 빠지는 전개이다. 물론 서사가 진행되어 가는데, 엄청난 비밀을 감춰져 있다는 듯 비약이 그리 심하진 않았지만, 수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데 반해 드러난 민낯은 밋밋했던 게 사실이다. 오히려 모든 게 밝혀지는 순간 이야기가 가지고 있던 매력이 전반적으로 평이해진 느낌이다. 


인물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실상 패트릭과 에디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존재하는 아슬한 긴장감이 있었을 뿐이지, 패트릭이 그렇게 매력적인 인물인 건지도 에디의 말로 전해지는 것 외에는 느낄 수 없었다. 에디 역시 자신의 과거를 감추기 위해 과감해진 게 다른 방식이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되레 '희망'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시도한 채널링에 대한 묘사가 더욱 매력적이고 긴장감 있었던 부분이었다. 패트릭과 에디의 로맨스도 매력적인 부분이었던 것 같다. 에디의 내면에 관한 심리 묘사는 섬세하지만, 어지러웠다. 에디의 행동이 어떤 측면에선 과하고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배경이 독특한 만큼 이해하고 읽어갈 수 있었다. 고딕 소설에 대한 이해도 없이 처음 접한 작품이 잘 읽히지 않아 좀 당황스러웠다. 초반부를 힘겹게 읽어나간 후에서야 책장을 넘기는 게 수월해졌다. 너무 기대를 해서인지 생각보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정말 매력적인 설정 아닌가, 영매 역할을 하던 여자가 의뢰인이자 죽은 아내가 그리워 찾아온 남자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그를 갖기 위한 어떤 행동을 하게 되며, 자신의 비밀을 감추면서 또 다른 비밀을 알게 되는. 과연 두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삐걱대는 관계들에 대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곁가지로 등장하는 미해결 사건과 채널링 과정 그리고 그에 서린 비극성까지. 


456쪽에 달하는 분량의 첫 부분에서의 머뭇거림이 없었다면 더욱 인상 깊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여러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가진 장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몇몇 설정은 작품 속에서 자연스럽게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영매가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점, 그 작업이 '로터스'라는 알약 하나로 진행될 수 있다는 점, 엘리시움 소사이어티를 찾는 사람들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잘 살아가다 문득 소중한 이의 부재를 견딜 수 없어 그와 다시 조우하기 위해 방문한다는 점까지. 조우라는 표현도 무척 좋았다. 이야기의 큰 줄기와 주변을 확실히 하고 중심을 잘 잡고 진행한 것도 좋았다.


이 장르에 대한 갈증을 완전히 해소하진 못했지만 처음 접하는 작품으로서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다음은 이 작품과 설정이 비슷하다는 고딕 미스터리의 고전인 『레베카』를 읽어봐야 겠다.




(이 리뷰는 한스미디어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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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뼈
송시우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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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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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더웠던 올 여름 그 끝자락, 서늘한 긴장감을 선사할 작품 『아이의 뼈』

송시우 작가님은 2008년 단편소설「좋은 친구」로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소설집 표제작인 「아이의 뼈」는 한국추리작가협회 황금펜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2014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이 그해 장르소설로는 드물게 세종도서 문학나눔에 선정되었으며, 출간 즉시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사회파 추리소설을 추구한다니, 마치 미미여사를 보는 것 같다. 과연 단편 소설집에서는 어떤 매력을 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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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뼈>


‘나’는 범죄 피해자학 강연회에 참석한 강사 일원으로, 2년 전에 뜻밖의 제의를 했던 노파를 만나 당시 미처 알지 못했던 의뢰 속 진실에 대해 듣게 된다. 2년 전, 나는 열두 살 아이를 유괴해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범죄자 김남호의 교도소 내 폭력사건에 대한 국선변호를 맡고 있었다. 나를 찾아온 노파는 김남호가 저지른 범죄의 피해자 유가족이었다. 당시 끝내 찾지 못한 아이의 시신을 찾아 달라 부탁하였고, 대가로 현금을 지불한다고 하자 김남호는 순순히 응했다. 그러나 아이의 시신이 묻힌 곳을 찾아내면서 알게 된 진실에 노파는 단 한 번도 김남호를 용서한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강연회 일정 중 추억의 물건들을 묻는 타임캡슐을 노파는 힘겹게 옮겨야만 했고, 그 열쇠를 내게 맡기고 떠나는데... 과연, 노파가 내게 준 것은 무엇인가.

  

노파가 돈을 주고 산 것은 아이의 죽음이었다. 28쪽 

  

<사랑합니다, 고객님>


홈쇼핑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혜연, 진상손님의 전화와 썩은 갈치 택배, 그리고 오해에서 비롯한 사건과 죽음. 감정노동자.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습성, 이기심의 악취를 가리기 위한 포장도 언젠가 다 맨얼굴을 드러내고 만다.



<좋은 친구>


유기견 나박이를 맡기고 여행을 떠난 연경은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된다.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가 된 연경과 그녀의 남자관계를 파헤치는 수사가 진행되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말에 걸맞게 살아있는 사람들의 증언으로 연경은 가벼운 관계를 즐기는 여자가 돼버린다. 나박이의 뱃속에서 나온 물건은 사건의 전말과 증거가 돼고, 동물병원 원장인 ‘나’는 나박이의 수술을 마치고 처음 연경을 봤을 때를 떠올려보게 된다.



<5층 여자>


명절 날 각자 집안의 노처녀 노총각 백수 재수생 실업자 타박하던 솜씨가 어땠는지 알만했다. 93쪽


이제 또 무슨 짓을 하라고 시키려나. 사는 건 왜 이렇게 힘이 든가. 125쪽


기숙은 '타미'라는 닥스훈트와 같이 살고 있다. 분리불안장애를 겪고 있다는 진단 하에 훈련을 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뜻대로 잘 되진 않는다. 우연히 목격한 가정 폭력 피해자인 주인집 여자는 며칠 뒤 옥상에서 추락하여 사망하게 되고. 주인집 남편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게 된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고, 유일한 목격자이자 얼결에 물증까지 찾아주게 된 기숙. 그 와중에 또 사람을 물은 타미를 보며 한숨 쉬는 기숙이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현실은 독신으로 있는 사람에게 오지랖으로 결혼에 대한 프로젝트를 건의하며 안줏거리 화두로 삼는다는 것이겠다. 



<원주행>


이전편 5층 여자 기숙이 다시금 등장한다. 기숙은 술친구 자영, 춘석과 함께 자영의 골칫거리가 된 원주의 한 아파트를 팔기 위한 작전으로 가짜 불륜 커플연기를 하기로 한다. 세입자가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어 세운 계획을 직접 실행하려고 보니, 세입자 양희영은 죽은 채로 발견되고, 그녀의 재산이 담긴 금고는 사라진 채 수사에 난항을 겪게 된다. 맥락 없이 ‘불쑥’ 말하는 습관이 있는 기숙은 또 한 번 훌륭하게 사건을 해결해낸다.


<이웃집의 별>


교육감에 낙선한 안만태 교수가 경영대학 건물에서 추락하여 사망한 사건으로 조교였던 서샛별에 용의자로 구속되게 된다. 샛별의 지인이었던 영훈은 그녀의 무죄를 주장하며 증언을 하기 시작한다. 그 안에는 철저히 을의 입장에 해당하는, 대학원생과 여성이라는 두 가지 충분조건을 갖춘 한 사람이 겪게 되는 고통과 좌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를 지키기 위한 한 사람의 마음이 있었지만 끝내 좌절되고 만다.


나는 금성을 지키는 위성이 되고 싶었다. 

어차피 원하는 만큼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 주변을 돌며 다가오는 위험에서 금성을 지켜주는 위성이 되고자 했다. 


(…)


금성에는 위성이 없다.


(…)


샛별은 애당초 혼자 궤도를 돌아야 했다. 200-201쪽



<잃어버린 아이에 관한 잔혹동화>


아이를 잃은 엄마는 짠내나는 홀어머니에게 틀어박힌 남자의 방을 열라고 했다. 방에 쳐박혀 나오지 않는 아들을 도와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방송국 사람들을 불렀지만 소용이 없었고, 한많은 차남은 집을 뛰쳐나가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했다. 한 사람의 의심은 부풀어 마을 공동체로 퍼져 나가 강압적으로 그 문을 열었지만...잃어버린 아이들의 이야기.


삶이란 발목을 잘라도 춤추는 동화 속 빨간 구두 같아요. 멈추지 않는 한 무언가는 해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늙어서까지 젓갈과 장아찌를 팔아 다 큰 아들을 먹이는 일이어서는 안 될 이유도 없었어요. 206쪽


그들은 서로에게 물었어요. 우리가 과연 잃어버린 아이를 남김없이 찾을 수 있을까.

우리가 과연 저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인하여 우리 곁을 떠난 아이를 찾아낼 수 있을까. 동시에 우리가 왜 아이를 잃어버린 것인지 그 이유도 알아낼 수 있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궁금해하며 그들은 서 있었어요.

옛날 옛날 그리 멀지 않은 옛날에. 229쪽


<어느 연극배우의 거울>


미혼모인 엄마는 조울증을 앓았고, 결국 미현을 혼자 두고 떠났다. 이모는 그런 미현에게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자, 동경하는 사람이었다. 8년 전 사고만 아니었어도. 총명하고 아름다운 이모의 삶을 대신 살기 위해 자신의 이름과 흔적을 지워가는 미현. 미현의 첫 남자친구였던 시열과 우연한 재회, 시열의 약혼자 지윤은 그의 실종에 불안한 의심을 품고, 이는 곧 확신이 되어간다.


이모와 나는 결국 같은 사람이니까, 삶을 나누어 살았으니까, 끝도 같이 내야 되는 거겠지. 264쪽



<누구의 돌>


수현은 무명가수인 남편 시준의 꿈이 헛된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느날 찾아온 기회는 부부에게 결코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의심만 남기게 된다. 단순히 치기로 그런 일들이 벌여졌다고 변명해볼 수 있을 것인가. 과연 고의가 아닌 고의로, 누구의 돌로 인해 장훈은 죽게 되었을까.

  

죽음보다 더한 복수.

나를 죽인 사람과 평생 같이 살도록 하는 거. 너는 나를 죽였고, 나는 너를 죽였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공평하긴 하구나. 317쪽

  


**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은 늘 존재한다. 하지만 저절로 알게 되는 진실에 차마 고개를 돌릴 순 없는 건 그게 바로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마음 한 구석에 간절히 바라는 희망은 결코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건 소중한 존재를 위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마음 아픈 이야기였다. 단순히 소설 속 이야기로만 그치지 않는 게 현실에도 이런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가해자를 위한, 범죄자를 위한 나라라고들 한다. 견고할 것만 같은 사법체계 그 틈 사이로 빠져나갈 수 없도록, 더는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지 않도록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같이 접하는 기사에 한숨만 나온다. 

이렇듯 첫 단편을 읽고 나니 생각이 더욱 많아졌다.

  

그렇다. 이 소설집 전체적으로 지금의 현실과 아주 잘 맞닿아 있다. 

  

감정노동자로 칭하는 상담원. 서비스 직종에 일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함부로 대할 권리가 있는 듯 착각하는 행동과 말은 곧 폭력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사이 오해의 씨앗이 싹 틔우기도 한다.

  

선의라고 착각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탐욕의 시선으로 상대방을 바로보기도 한다는 것을, 스스로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지 알 지도 못한 채 행하곤 한다. 그런 걸 단순히 본능이라는 말로 포장해서는 안될 것이다. 

  

때로는 상대를 위한다는 착각에 그 마음이 엇갈리기도 하고, 당장의 불이익을 피하고자 불의에 눈을 감기도 한다. 원망스러워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신분은 사라졌지만 권력은 엄연히 존재하기에, 위치에 따라 갑을관계가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은 찰나였고, 한 번 일어난 일은 어떻게 해도 되돌릴 수 없기도 하다.

  

방에 틀어박힌 고독한 인물이 폭력과 죄책감으로 그 자리를 이어 받게 되기도 하며, 허무하게 떠나버린 사람의 생을 대신하고자 한다. 서로를 지키기 위한다는 착각으로, 침묵을 지켰던 사건은 그동안의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며 배신감에 서로를 떠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각 이야기마다 서사 구조가 탄탄하고, 인물들 모두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생동감이 느껴지는 게 이 소설집의 가장 큰 장점이다. 현실과 밀접한 상황들이 전개되기에 안타까운 사건들도 많았고, 서사의 특성에 따라 화자의 어조도 조금씩 결을 달리 하였기에 읽는 맛도 있었다. 잔혹동화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내레이션 같은 어조도 있었고, 통통 튀는 개성을 가진 인물의 목소리를 빌려와 재미를 더하기도 했다. 군더더기 없는 흘러가는 이야기는 몰입감과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고, 한 권의 소설집 속에 다양한 성격을 가진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어 더 좋았다. 연작으로 이어졌던 맥락 없이 불쑥 말해버리는 습관을 가진 기숙 캐릭터는 퍽 매력적이어서, 이는 블랙코미디 시트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인물을 살려 시리즈로 구성해도 좋을 것 같고, 꼭 다시 만나고픈 캐릭터이기도 하다. 

  

  

국내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님들 중 믿고 읽는 작가 목록이 있다면, 당연히 송시우 작가님도 추천하고 싶다. 괜히 많은 이들의 추천을 받는 게 아닌 것 같다. 아직 여름이 머무른 자리에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어 좋았다. 그래서일까,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서늘한 긴장감에 열불났던 마음의 기온이 아주 살짝 내려간 것 같기도 하다.

  


(이 리뷰는 한스미디어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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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편지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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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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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4일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었다.  이제 일본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 스물일곱 분밖에 생존해 계시지 않는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 생존자 분들이 원하는 게 그토록 거창한 것이었나. 짐승 만도 아니, 버러지 못한 짓에 대해 인간이라면, 피와 살과 뼈가 있는 인간이라면 부끄러운 역사일지라도 인정하고 진정한 사과를 해야 되는 게 아닌가. 침통한 심정에 가슴만 먹먹하고 한없이 답답해진다. 


(※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하여 제정된 국가기념일로, 매년 8월 14일이다. 2017년 12월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이전까지 민간에서 진행돼 오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됐다.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부끄럽고 한심하지만 내가 자랑스럽게 여긴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일제강점기에 대해서는 관심을 멀리 했었다. 선조들이 피로 이룬 역사와 터전 위에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지만,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아픈 역사 앞에서는 그처럼 무심했던 것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감히 짐작하지도 상상할 수도 없지만, 그 아픈 과거의 현실을 생각하면 절망스럽고 막막하기만 했다. 


위안부 문제는 특히 더 그러했다. 꽃다운 어린 나이에 겪지 않아도 될 겪은, 참혹한 진실을 마주하기가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생존자 할머니들을 위한 일이라는 기부 등을 하며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더는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부끄러운 태도로, 어떻게 전 세계에 우리의 아픈 역사를 알릴 수 있을 거라 믿을 수 있겠나. 아플수록 더 알아야 하고, 알수록  더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김 숨 작가의  『흐르는 편지』는 당시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 분들의 증언을 토대로, 열 다섯 소녀 금자의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다. 작품 속 시간의 순서라면  『한 명』보다 먼저 나왔어야 했지만, 전작을 쓰지 않았다면 이 작품을 쓸 용기가 나지 않았을 거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이 간다.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는 써야만 했고, 꼭 나와야 할 작품인 것이다. 이렇듯 작품을 접하며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알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



'나'는 이제 열다섯 살, 글자를 배우지 못해 자신의 이름조차 쓸 줄 모르지만, 흔들리는 물결에 전하지 못한 편지를 써본다. 늘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해 배가 고프고,  얼어붙은 강물에 손을 담궈 삿쿠(일제강점기 군용 콘돔)를 씻는다. 자신의 나이도 정확히 모르고 나물 캐는 대신 공장에 돈 벌러 왔다는 소녀들. 속아서 왔고, 무작위로 끌려서 왔고, 팔려서도 왔다.  일부러 밉게 보이려 하고, 굶주림에 상상하는 찬거리들은 호사스러운 것도 아니고, 당장 오늘이 며칠인 지 알길 없어도 알고 싶지도 않은 그런 지옥 같은 날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었다. 


성병이 걸리지 않았나 치욕적인 검진을 받아야 하며, 606호 주사라는 불같은 주사도 맞아야 했다. 붉은 소독약은 매우 독하지만, 물에 희석헤서 씻어야만 병을 막을 수 있다고 믿기에 쓸 수밖에 없다. 어린 소녀는 늘 소독물로 가득 찬 놋대야가 비어져 있을 때면 좁고 꽉 막힌 방 구석구석 물건 하나 둘 챙기며 짐을 챙겨 떠날 준비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허기는 채울 길 없고, 밤낮없이 일본 군인들을 받아야만 할 때면 송장놀이를 하는 것이다. 


타들어 갈 듯 쓰려오는 사타구니. 일본 군인들이 주고 가는 군표를 위안소를 운영하는 오지상(할아버지)에게 내야만 한다.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는 것들을 쥐어 주고선 빚이라 속이며, 철망 건너편으로는 감히 도망도 생각치 못한다. 오갈 데 없는, 중국 마을은 피신할 데도 없고, 도망친 소녀들은 하나같이 폭력으로 제압했기 때문이다.


병이라도 옮을까 소독하고 이미 쓴 삿쿠를 다시 씻어 말리면서, 수치심에 몸부림치면서도 바뀌지 않을 내일에 다시 절망하고, 고통을 잊기 위해 아편도 하게 되고, 끊임없이 허기에 시달리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구름 한 점마저 모두 고향의 그리운 음식으로 보이게 한다. 

 

에이코, 연순, 점순, 악순, 울숙, 끝순, 해금, 금실, 은실, 요시에. 죽은 이름 뒤에 새로 그 이름을 쓰게 되는 소녀들. 요시에게 죽고 새로 온 요시에가 되고. 본래의 이름도 언어도, 몸도 마음도 모두 빼앗아가는 것이다. 영혼까지 점령하려 들다니, 종국에는 일본말만 쓰게 해 조선말을 잊게 하다니. 다음 장을 넘기기가 두려운, 믿지 못할 진실들이 계속 이어지는 게 고통스럽기만 하다.  


'나'는 나이 열 셋에 비단 공장에 돈을 벌기 위해 떠나왔다. 불러도 부를 이름이 없는 '나'의 어머니는 어린 딸이 돈을 벌겠다 떠나는 게 안쓰럽지만 말리지는 못한다. 머슴살이 하는 아버지와 잔일을 하는 어머니가 얻어오는 것들로는 식구들의 끼니를 해결하기 퍽 버겁기 때문에. 잠시 '나'를 말리지 않은 어머니가 원망스럽기도 하나, 모두 '나'의 선택이었으니 자신의 잘못이라 말한다. 소녀들 모두 조선삐라 불리는 치욕을 스스로에게 돌리며, 잘못을 묻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런 와중에 어린 소녀가 아기를 갖게 되다니.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죽은 아기를 낳는 소녀도, 약으로 떨쳐내는 소녀도, 낳아 버리는 소녀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기집을 들어내게 됐던 소녀까지도. 배가 불러가는 소녀에게 달려드는 군인들, 


산속에 있는 군부대에서 죽음을 목도하게 되는 소녀에게, 총탄이 날아드는 위기일발의 상황에서조차 욕구를 채우고자 달라붙는 게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혼란한 상황 속에서 살고 싶다 외쳤다. 죽어가는 군인들 사이로 소녀는 외쳤다. 그러나 끝내 죽음이 소녀를 찾아왔다.


미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것이었다. 죽는 게 두려웠던 건 그 고통 속에서도 죽음을 보았기 때문에, 병에 걸려 생살을 찢는 고통 속에서도 살아 있어야 했기 때문에. 미쳐갔고, 아편에 중독되어 갔고, 자신을 괴롭혔고, 군인들 손에 죽어갔다.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군인들에 대한 연민이라니, 그들의 행태에 분노가 치민다. 음험한 자기연민이 혐오스럽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소녀들을 짓밟았다. 그리고는 살아 돌아오길 빌어달라 했다. 전쟁의 참상을 견디기 힘들었기에 더 약한 존재에 화풀이를 했단 말인가. 


자신들 때문에 걸린 성병을 옮을까봐 두려워하면서도 그 짓을 하러 오는 작태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인간의 이기심, 탐욕은 또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적으면 열두 살부터 많으면 스무 살 남짓 되는 어린 소녀들을 속이고 얻은 게 다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이란 참으로 알 수 없고,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짐승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원치 않는 생명을 가지게 된 소녀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쓰는 편지는 전해지지 못하였고, 배는 점점 불러왔다. 죽기를 바랬지만, 아기가 죽을까 두려워했다. 금자라는 이름 대신 일본 군인이 제멋대로 지어준 후유코로 불리는 소녀. 소녀의 이름은 열 개가 넘는다. 오늘은 몇 명의 군인을 받은 건지 세어 보는 것도, 며칠이 지났는지도 세어 보지 않게 된다. 오지 않았으면 내일은 다시 오기 때문에. 그래서 암흑의 시대가 지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에 소녀들의 삶은 또 어떠했을까. 생각만 해도 막막하다. 안팎으로 손가락질 받고서 상처에 더한 상처를 받진 않았을까. 


아프고 아프고 또 아프다. 그저 죄스럽고 부끄럽기만 하다. 다음 장을 넘기는 게 두려웠지만 넘겨야만 했다. 중국에 그렇게 많은 위안소가 있었는지 미처 알지 못하였다. 인간으로서 하지 말았어야 할 많은 일들이 행해졌었지만, 실상을 알지 못하였다. 그런 무지와 회피가 죄스럽기만 하다. 작고 여린 손을 잡고 모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 따뜻한 밥 한 끼를 제대로 먹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의 호사가 죄스럽기만 하다.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다음날인 광복절엔 제 1348차 수요집회가 열렸었다. 공식 명칭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라 하며, 대한민국 주재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에 열린다.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총리의 대한민국 방문을 앞두고 시작되었고, 이후 정기적인 시위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여성단체, 시민단체, 학생들을 비롯한 여러 시민들이 함께 모여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지속적인 관심과 행동으로 더욱 널리,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진실한 역사 앞에서. 일본은 반드시 인정해야 할 것이며, 진정한 사과를 해야만 한다. 전쟁의 잔혹함 속에서 행해진,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훼손했던 잘못들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지난 정권의 매국, 친일의 결과 일본은 같잖은 보상으로 10억엔 협상안을 받아들였다. 얼마나 부끄러운 행태인가. 그때 그 소녀들의 청춘과 삶의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도 없다. 심신을 다치게 한 모든 폭력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깟 돈으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라니. 다행히 현 정부에서는 재협상 요구를 하지 않는다 하였고, 정부 예산으로 충당할 것이라 했다. 일본에게 제대로 한 방 먹였으니, 앞으로도 더 두고 볼 일이다. 지난 역사를 인정하고 진정한 사과를 받기 위한 수요집회는 계속 될 것이다. 반드시 그날이 올 것이라 믿고 싶다. 그래야만 남은 생존자 분들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아물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은 그날이 오기까지 조금만 더, 

오래 오래 곁에 계셔주었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




어머니, 나는 아기를 가졌어요.

 

오늘 새벽에는 초승달을 보며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고 빌었어요. 변소에 가려고 마당에 나왔다가요. 초승달에 낀 흰 달무리가 몽글몽글 떠오르는 순두부 같아 나도 모르게 입을 벙긋 벌렸어요. 그것을 먹으려고요.

 

어머니, 나는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어요.

눈동자가 생기기 전에…….

심장이 생기기 전에…….


7쪽



외할아버지는 어째서 딸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을까. 이름을 지울 줄 몰라 지어주지 않은 걸까. 아니면 여자라 이름이 없어도 되어서 지어주지 않은 걸까. 13쪽

 


아기가 들어선 뒤로 나는 눈동자가 아니라 아기집이 내 몸에서 가장 슬픈 곳이라는 걸 알았다. 19쪽

 


나는 죽었는데 내 심장은 뛴다. 23쪽



정말, 나는 무슨 죄를 지어서 조센삐가 되었을까. 26쪽 (삐, 여자성기)

 


살아서 돌아와 다시 나를 찾아올까봐.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들이 다시 나를 찾아오는 이유는 뻔했으니까. 살아 돌아온 군인들 대개는 반쯤 미치광이가 되어서 나를 짓뭉개고, 깨물고, 찔렀다. 29쪽

 

 

어머니가 날 좀 데리러 왔으면……주문을 아무리 외워도 어머니는 나를 데리러 오지 않는다. 꿈에서조차. 95쪽

 


천황은 어째서 일본 여자애들이 아니라 조선 여자애들을 하사품으로 내려주었을까. 낙원위안소에 일본 여자애는 없다. 세계위안소에도 일본 여자애는 없었다. 전쟁은 일본 군인들이 하는데. 115쪽

 


죽은 개구리를 넣지 않았는데 아래에서 개구리 썩는 냄새가 난다. 

죽은 쥐를 넣지 않았는데 아래에서 구더기가 끓는다.

감자를 넣지 않았는데 보라색 싹이 자라 아래를 찌른다.

보라색 싹이 덩굴 숲처럼 우거져 내 아래를 뒤덮어버렸으면……. 

123쪽

 


몸이 내 것이 아닌데 나는 어째서 몸을 떠나지 못하는 걸까. 새장 속 새처럼 몸에 꼼짝없이 갇혀 있는 걸까. 몸이 죽어야 몸에서 놓여날 수 있으려나. 심장이 멎고 숨이 끊어져야. 하지만 몸이 죽으면 나는 있을 데가 없다. 숨을 데가 없다.

군인들이 들끓는 낙원위안소에서 내가 숨을 데라고는 몸뿐이다.

125쪽

 


 

세계위안소에도, 낙원위안소에도 구장이나 반장의 딸은 없었다. 일본 순사들과 친하게 지내는 집 딸들은. 열세 살이면 다 컸다던 공 씨의 말이 내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는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몰랐다. 칭찬인 줄로만 알았다. 

151쪽



“버려지겠지……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면 산 채로, 지면 죽은 채로……. 두 살 먹어서는 엄마에게 버려지고, 아홉 살 먹어서는 큰어머니에게 버려지고, 시집가서는 문둥이 남편에게 버려지고…… 가는 데마다 버려지다 보니 버리는 걸 배워서 나도 아기를 버렸어.” 

157쪽

 


죽어가는 새가 내 사타구니에 부리를 박고 있는 것 같다. 신음을 토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몸을 일으킨다. 다리를 벌리고 매스꺼운 냄새를 풍기는 사타구니를 내려다본다.

새다……. 까마귀가 내 사타구니에 부리를 박고 있다.  170쪽

 


어머니, 오늘 밤 나는 아기를 낳을지도 몰라요.

닭띠 아기를요.


어머니, 그런데 나는 무슨 죄를 지은 걸까요.

무슨 죄를 지어서 이 먼 데까지 끌려와 조센삐가 되었을까요. 

291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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