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편지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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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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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4일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었다.  이제 일본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 스물일곱 분밖에 생존해 계시지 않는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 생존자 분들이 원하는 게 그토록 거창한 것이었나. 짐승 만도 아니, 버러지 못한 짓에 대해 인간이라면, 피와 살과 뼈가 있는 인간이라면 부끄러운 역사일지라도 인정하고 진정한 사과를 해야 되는 게 아닌가. 침통한 심정에 가슴만 먹먹하고 한없이 답답해진다. 


(※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하여 제정된 국가기념일로, 매년 8월 14일이다. 2017년 12월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이전까지 민간에서 진행돼 오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됐다.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부끄럽고 한심하지만 내가 자랑스럽게 여긴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일제강점기에 대해서는 관심을 멀리 했었다. 선조들이 피로 이룬 역사와 터전 위에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지만,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아픈 역사 앞에서는 그처럼 무심했던 것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감히 짐작하지도 상상할 수도 없지만, 그 아픈 과거의 현실을 생각하면 절망스럽고 막막하기만 했다. 


위안부 문제는 특히 더 그러했다. 꽃다운 어린 나이에 겪지 않아도 될 겪은, 참혹한 진실을 마주하기가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생존자 할머니들을 위한 일이라는 기부 등을 하며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더는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부끄러운 태도로, 어떻게 전 세계에 우리의 아픈 역사를 알릴 수 있을 거라 믿을 수 있겠나. 아플수록 더 알아야 하고, 알수록  더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김 숨 작가의  『흐르는 편지』는 당시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 분들의 증언을 토대로, 열 다섯 소녀 금자의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다. 작품 속 시간의 순서라면  『한 명』보다 먼저 나왔어야 했지만, 전작을 쓰지 않았다면 이 작품을 쓸 용기가 나지 않았을 거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이 간다.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는 써야만 했고, 꼭 나와야 할 작품인 것이다. 이렇듯 작품을 접하며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알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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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열다섯 살, 글자를 배우지 못해 자신의 이름조차 쓸 줄 모르지만, 흔들리는 물결에 전하지 못한 편지를 써본다. 늘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해 배가 고프고,  얼어붙은 강물에 손을 담궈 삿쿠(일제강점기 군용 콘돔)를 씻는다. 자신의 나이도 정확히 모르고 나물 캐는 대신 공장에 돈 벌러 왔다는 소녀들. 속아서 왔고, 무작위로 끌려서 왔고, 팔려서도 왔다.  일부러 밉게 보이려 하고, 굶주림에 상상하는 찬거리들은 호사스러운 것도 아니고, 당장 오늘이 며칠인 지 알길 없어도 알고 싶지도 않은 그런 지옥 같은 날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었다. 


성병이 걸리지 않았나 치욕적인 검진을 받아야 하며, 606호 주사라는 불같은 주사도 맞아야 했다. 붉은 소독약은 매우 독하지만, 물에 희석헤서 씻어야만 병을 막을 수 있다고 믿기에 쓸 수밖에 없다. 어린 소녀는 늘 소독물로 가득 찬 놋대야가 비어져 있을 때면 좁고 꽉 막힌 방 구석구석 물건 하나 둘 챙기며 짐을 챙겨 떠날 준비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허기는 채울 길 없고, 밤낮없이 일본 군인들을 받아야만 할 때면 송장놀이를 하는 것이다. 


타들어 갈 듯 쓰려오는 사타구니. 일본 군인들이 주고 가는 군표를 위안소를 운영하는 오지상(할아버지)에게 내야만 한다.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는 것들을 쥐어 주고선 빚이라 속이며, 철망 건너편으로는 감히 도망도 생각치 못한다. 오갈 데 없는, 중국 마을은 피신할 데도 없고, 도망친 소녀들은 하나같이 폭력으로 제압했기 때문이다.


병이라도 옮을까 소독하고 이미 쓴 삿쿠를 다시 씻어 말리면서, 수치심에 몸부림치면서도 바뀌지 않을 내일에 다시 절망하고, 고통을 잊기 위해 아편도 하게 되고, 끊임없이 허기에 시달리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구름 한 점마저 모두 고향의 그리운 음식으로 보이게 한다. 

 

에이코, 연순, 점순, 악순, 울숙, 끝순, 해금, 금실, 은실, 요시에. 죽은 이름 뒤에 새로 그 이름을 쓰게 되는 소녀들. 요시에게 죽고 새로 온 요시에가 되고. 본래의 이름도 언어도, 몸도 마음도 모두 빼앗아가는 것이다. 영혼까지 점령하려 들다니, 종국에는 일본말만 쓰게 해 조선말을 잊게 하다니. 다음 장을 넘기기가 두려운, 믿지 못할 진실들이 계속 이어지는 게 고통스럽기만 하다.  


'나'는 나이 열 셋에 비단 공장에 돈을 벌기 위해 떠나왔다. 불러도 부를 이름이 없는 '나'의 어머니는 어린 딸이 돈을 벌겠다 떠나는 게 안쓰럽지만 말리지는 못한다. 머슴살이 하는 아버지와 잔일을 하는 어머니가 얻어오는 것들로는 식구들의 끼니를 해결하기 퍽 버겁기 때문에. 잠시 '나'를 말리지 않은 어머니가 원망스럽기도 하나, 모두 '나'의 선택이었으니 자신의 잘못이라 말한다. 소녀들 모두 조선삐라 불리는 치욕을 스스로에게 돌리며, 잘못을 묻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런 와중에 어린 소녀가 아기를 갖게 되다니.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죽은 아기를 낳는 소녀도, 약으로 떨쳐내는 소녀도, 낳아 버리는 소녀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기집을 들어내게 됐던 소녀까지도. 배가 불러가는 소녀에게 달려드는 군인들, 


산속에 있는 군부대에서 죽음을 목도하게 되는 소녀에게, 총탄이 날아드는 위기일발의 상황에서조차 욕구를 채우고자 달라붙는 게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혼란한 상황 속에서 살고 싶다 외쳤다. 죽어가는 군인들 사이로 소녀는 외쳤다. 그러나 끝내 죽음이 소녀를 찾아왔다.


미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것이었다. 죽는 게 두려웠던 건 그 고통 속에서도 죽음을 보았기 때문에, 병에 걸려 생살을 찢는 고통 속에서도 살아 있어야 했기 때문에. 미쳐갔고, 아편에 중독되어 갔고, 자신을 괴롭혔고, 군인들 손에 죽어갔다.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군인들에 대한 연민이라니, 그들의 행태에 분노가 치민다. 음험한 자기연민이 혐오스럽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소녀들을 짓밟았다. 그리고는 살아 돌아오길 빌어달라 했다. 전쟁의 참상을 견디기 힘들었기에 더 약한 존재에 화풀이를 했단 말인가. 


자신들 때문에 걸린 성병을 옮을까봐 두려워하면서도 그 짓을 하러 오는 작태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인간의 이기심, 탐욕은 또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적으면 열두 살부터 많으면 스무 살 남짓 되는 어린 소녀들을 속이고 얻은 게 다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이란 참으로 알 수 없고,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짐승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원치 않는 생명을 가지게 된 소녀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쓰는 편지는 전해지지 못하였고, 배는 점점 불러왔다. 죽기를 바랬지만, 아기가 죽을까 두려워했다. 금자라는 이름 대신 일본 군인이 제멋대로 지어준 후유코로 불리는 소녀. 소녀의 이름은 열 개가 넘는다. 오늘은 몇 명의 군인을 받은 건지 세어 보는 것도, 며칠이 지났는지도 세어 보지 않게 된다. 오지 않았으면 내일은 다시 오기 때문에. 그래서 암흑의 시대가 지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에 소녀들의 삶은 또 어떠했을까. 생각만 해도 막막하다. 안팎으로 손가락질 받고서 상처에 더한 상처를 받진 않았을까. 


아프고 아프고 또 아프다. 그저 죄스럽고 부끄럽기만 하다. 다음 장을 넘기는 게 두려웠지만 넘겨야만 했다. 중국에 그렇게 많은 위안소가 있었는지 미처 알지 못하였다. 인간으로서 하지 말았어야 할 많은 일들이 행해졌었지만, 실상을 알지 못하였다. 그런 무지와 회피가 죄스럽기만 하다. 작고 여린 손을 잡고 모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 따뜻한 밥 한 끼를 제대로 먹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의 호사가 죄스럽기만 하다.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다음날인 광복절엔 제 1348차 수요집회가 열렸었다. 공식 명칭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라 하며, 대한민국 주재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에 열린다.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총리의 대한민국 방문을 앞두고 시작되었고, 이후 정기적인 시위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여성단체, 시민단체, 학생들을 비롯한 여러 시민들이 함께 모여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지속적인 관심과 행동으로 더욱 널리,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진실한 역사 앞에서. 일본은 반드시 인정해야 할 것이며, 진정한 사과를 해야만 한다. 전쟁의 잔혹함 속에서 행해진,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훼손했던 잘못들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지난 정권의 매국, 친일의 결과 일본은 같잖은 보상으로 10억엔 협상안을 받아들였다. 얼마나 부끄러운 행태인가. 그때 그 소녀들의 청춘과 삶의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도 없다. 심신을 다치게 한 모든 폭력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깟 돈으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라니. 다행히 현 정부에서는 재협상 요구를 하지 않는다 하였고, 정부 예산으로 충당할 것이라 했다. 일본에게 제대로 한 방 먹였으니, 앞으로도 더 두고 볼 일이다. 지난 역사를 인정하고 진정한 사과를 받기 위한 수요집회는 계속 될 것이다. 반드시 그날이 올 것이라 믿고 싶다. 그래야만 남은 생존자 분들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아물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은 그날이 오기까지 조금만 더, 

오래 오래 곁에 계셔주었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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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나는 아기를 가졌어요.

 

오늘 새벽에는 초승달을 보며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고 빌었어요. 변소에 가려고 마당에 나왔다가요. 초승달에 낀 흰 달무리가 몽글몽글 떠오르는 순두부 같아 나도 모르게 입을 벙긋 벌렸어요. 그것을 먹으려고요.

 

어머니, 나는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어요.

눈동자가 생기기 전에…….

심장이 생기기 전에…….


7쪽



외할아버지는 어째서 딸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을까. 이름을 지울 줄 몰라 지어주지 않은 걸까. 아니면 여자라 이름이 없어도 되어서 지어주지 않은 걸까. 13쪽

 


아기가 들어선 뒤로 나는 눈동자가 아니라 아기집이 내 몸에서 가장 슬픈 곳이라는 걸 알았다. 19쪽

 


나는 죽었는데 내 심장은 뛴다. 23쪽



정말, 나는 무슨 죄를 지어서 조센삐가 되었을까. 26쪽 (삐, 여자성기)

 


살아서 돌아와 다시 나를 찾아올까봐.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들이 다시 나를 찾아오는 이유는 뻔했으니까. 살아 돌아온 군인들 대개는 반쯤 미치광이가 되어서 나를 짓뭉개고, 깨물고, 찔렀다. 29쪽

 

 

어머니가 날 좀 데리러 왔으면……주문을 아무리 외워도 어머니는 나를 데리러 오지 않는다. 꿈에서조차. 95쪽

 


천황은 어째서 일본 여자애들이 아니라 조선 여자애들을 하사품으로 내려주었을까. 낙원위안소에 일본 여자애는 없다. 세계위안소에도 일본 여자애는 없었다. 전쟁은 일본 군인들이 하는데. 115쪽

 


죽은 개구리를 넣지 않았는데 아래에서 개구리 썩는 냄새가 난다. 

죽은 쥐를 넣지 않았는데 아래에서 구더기가 끓는다.

감자를 넣지 않았는데 보라색 싹이 자라 아래를 찌른다.

보라색 싹이 덩굴 숲처럼 우거져 내 아래를 뒤덮어버렸으면……. 

123쪽

 


몸이 내 것이 아닌데 나는 어째서 몸을 떠나지 못하는 걸까. 새장 속 새처럼 몸에 꼼짝없이 갇혀 있는 걸까. 몸이 죽어야 몸에서 놓여날 수 있으려나. 심장이 멎고 숨이 끊어져야. 하지만 몸이 죽으면 나는 있을 데가 없다. 숨을 데가 없다.

군인들이 들끓는 낙원위안소에서 내가 숨을 데라고는 몸뿐이다.

125쪽

 


 

세계위안소에도, 낙원위안소에도 구장이나 반장의 딸은 없었다. 일본 순사들과 친하게 지내는 집 딸들은. 열세 살이면 다 컸다던 공 씨의 말이 내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는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몰랐다. 칭찬인 줄로만 알았다. 

151쪽



“버려지겠지……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면 산 채로, 지면 죽은 채로……. 두 살 먹어서는 엄마에게 버려지고, 아홉 살 먹어서는 큰어머니에게 버려지고, 시집가서는 문둥이 남편에게 버려지고…… 가는 데마다 버려지다 보니 버리는 걸 배워서 나도 아기를 버렸어.” 

157쪽

 


죽어가는 새가 내 사타구니에 부리를 박고 있는 것 같다. 신음을 토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몸을 일으킨다. 다리를 벌리고 매스꺼운 냄새를 풍기는 사타구니를 내려다본다.

새다……. 까마귀가 내 사타구니에 부리를 박고 있다.  170쪽

 


어머니, 오늘 밤 나는 아기를 낳을지도 몰라요.

닭띠 아기를요.


어머니, 그런데 나는 무슨 죄를 지은 걸까요.

무슨 죄를 지어서 이 먼 데까지 끌려와 조센삐가 되었을까요. 

291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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