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뼈
송시우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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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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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더웠던 올 여름 그 끝자락, 서늘한 긴장감을 선사할 작품 『아이의 뼈』

송시우 작가님은 2008년 단편소설「좋은 친구」로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소설집 표제작인 「아이의 뼈」는 한국추리작가협회 황금펜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2014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이 그해 장르소설로는 드물게 세종도서 문학나눔에 선정되었으며, 출간 즉시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사회파 추리소설을 추구한다니, 마치 미미여사를 보는 것 같다. 과연 단편 소설집에서는 어떤 매력을 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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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뼈>


‘나’는 범죄 피해자학 강연회에 참석한 강사 일원으로, 2년 전에 뜻밖의 제의를 했던 노파를 만나 당시 미처 알지 못했던 의뢰 속 진실에 대해 듣게 된다. 2년 전, 나는 열두 살 아이를 유괴해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범죄자 김남호의 교도소 내 폭력사건에 대한 국선변호를 맡고 있었다. 나를 찾아온 노파는 김남호가 저지른 범죄의 피해자 유가족이었다. 당시 끝내 찾지 못한 아이의 시신을 찾아 달라 부탁하였고, 대가로 현금을 지불한다고 하자 김남호는 순순히 응했다. 그러나 아이의 시신이 묻힌 곳을 찾아내면서 알게 된 진실에 노파는 단 한 번도 김남호를 용서한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강연회 일정 중 추억의 물건들을 묻는 타임캡슐을 노파는 힘겹게 옮겨야만 했고, 그 열쇠를 내게 맡기고 떠나는데... 과연, 노파가 내게 준 것은 무엇인가.

  

노파가 돈을 주고 산 것은 아이의 죽음이었다. 28쪽 

  

<사랑합니다, 고객님>


홈쇼핑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혜연, 진상손님의 전화와 썩은 갈치 택배, 그리고 오해에서 비롯한 사건과 죽음. 감정노동자.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습성, 이기심의 악취를 가리기 위한 포장도 언젠가 다 맨얼굴을 드러내고 만다.



<좋은 친구>


유기견 나박이를 맡기고 여행을 떠난 연경은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된다.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가 된 연경과 그녀의 남자관계를 파헤치는 수사가 진행되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말에 걸맞게 살아있는 사람들의 증언으로 연경은 가벼운 관계를 즐기는 여자가 돼버린다. 나박이의 뱃속에서 나온 물건은 사건의 전말과 증거가 돼고, 동물병원 원장인 ‘나’는 나박이의 수술을 마치고 처음 연경을 봤을 때를 떠올려보게 된다.



<5층 여자>


명절 날 각자 집안의 노처녀 노총각 백수 재수생 실업자 타박하던 솜씨가 어땠는지 알만했다. 93쪽


이제 또 무슨 짓을 하라고 시키려나. 사는 건 왜 이렇게 힘이 든가. 125쪽


기숙은 '타미'라는 닥스훈트와 같이 살고 있다. 분리불안장애를 겪고 있다는 진단 하에 훈련을 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뜻대로 잘 되진 않는다. 우연히 목격한 가정 폭력 피해자인 주인집 여자는 며칠 뒤 옥상에서 추락하여 사망하게 되고. 주인집 남편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게 된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고, 유일한 목격자이자 얼결에 물증까지 찾아주게 된 기숙. 그 와중에 또 사람을 물은 타미를 보며 한숨 쉬는 기숙이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현실은 독신으로 있는 사람에게 오지랖으로 결혼에 대한 프로젝트를 건의하며 안줏거리 화두로 삼는다는 것이겠다. 



<원주행>


이전편 5층 여자 기숙이 다시금 등장한다. 기숙은 술친구 자영, 춘석과 함께 자영의 골칫거리가 된 원주의 한 아파트를 팔기 위한 작전으로 가짜 불륜 커플연기를 하기로 한다. 세입자가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어 세운 계획을 직접 실행하려고 보니, 세입자 양희영은 죽은 채로 발견되고, 그녀의 재산이 담긴 금고는 사라진 채 수사에 난항을 겪게 된다. 맥락 없이 ‘불쑥’ 말하는 습관이 있는 기숙은 또 한 번 훌륭하게 사건을 해결해낸다.


<이웃집의 별>


교육감에 낙선한 안만태 교수가 경영대학 건물에서 추락하여 사망한 사건으로 조교였던 서샛별에 용의자로 구속되게 된다. 샛별의 지인이었던 영훈은 그녀의 무죄를 주장하며 증언을 하기 시작한다. 그 안에는 철저히 을의 입장에 해당하는, 대학원생과 여성이라는 두 가지 충분조건을 갖춘 한 사람이 겪게 되는 고통과 좌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를 지키기 위한 한 사람의 마음이 있었지만 끝내 좌절되고 만다.


나는 금성을 지키는 위성이 되고 싶었다. 

어차피 원하는 만큼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 주변을 돌며 다가오는 위험에서 금성을 지켜주는 위성이 되고자 했다. 


(…)


금성에는 위성이 없다.


(…)


샛별은 애당초 혼자 궤도를 돌아야 했다. 200-201쪽



<잃어버린 아이에 관한 잔혹동화>


아이를 잃은 엄마는 짠내나는 홀어머니에게 틀어박힌 남자의 방을 열라고 했다. 방에 쳐박혀 나오지 않는 아들을 도와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방송국 사람들을 불렀지만 소용이 없었고, 한많은 차남은 집을 뛰쳐나가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했다. 한 사람의 의심은 부풀어 마을 공동체로 퍼져 나가 강압적으로 그 문을 열었지만...잃어버린 아이들의 이야기.


삶이란 발목을 잘라도 춤추는 동화 속 빨간 구두 같아요. 멈추지 않는 한 무언가는 해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늙어서까지 젓갈과 장아찌를 팔아 다 큰 아들을 먹이는 일이어서는 안 될 이유도 없었어요. 206쪽


그들은 서로에게 물었어요. 우리가 과연 잃어버린 아이를 남김없이 찾을 수 있을까.

우리가 과연 저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인하여 우리 곁을 떠난 아이를 찾아낼 수 있을까. 동시에 우리가 왜 아이를 잃어버린 것인지 그 이유도 알아낼 수 있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궁금해하며 그들은 서 있었어요.

옛날 옛날 그리 멀지 않은 옛날에. 229쪽


<어느 연극배우의 거울>


미혼모인 엄마는 조울증을 앓았고, 결국 미현을 혼자 두고 떠났다. 이모는 그런 미현에게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자, 동경하는 사람이었다. 8년 전 사고만 아니었어도. 총명하고 아름다운 이모의 삶을 대신 살기 위해 자신의 이름과 흔적을 지워가는 미현. 미현의 첫 남자친구였던 시열과 우연한 재회, 시열의 약혼자 지윤은 그의 실종에 불안한 의심을 품고, 이는 곧 확신이 되어간다.


이모와 나는 결국 같은 사람이니까, 삶을 나누어 살았으니까, 끝도 같이 내야 되는 거겠지. 264쪽



<누구의 돌>


수현은 무명가수인 남편 시준의 꿈이 헛된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느날 찾아온 기회는 부부에게 결코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의심만 남기게 된다. 단순히 치기로 그런 일들이 벌여졌다고 변명해볼 수 있을 것인가. 과연 고의가 아닌 고의로, 누구의 돌로 인해 장훈은 죽게 되었을까.

  

죽음보다 더한 복수.

나를 죽인 사람과 평생 같이 살도록 하는 거. 너는 나를 죽였고, 나는 너를 죽였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공평하긴 하구나. 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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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지 않은 진실은 늘 존재한다. 하지만 저절로 알게 되는 진실에 차마 고개를 돌릴 순 없는 건 그게 바로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마음 한 구석에 간절히 바라는 희망은 결코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건 소중한 존재를 위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마음 아픈 이야기였다. 단순히 소설 속 이야기로만 그치지 않는 게 현실에도 이런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가해자를 위한, 범죄자를 위한 나라라고들 한다. 견고할 것만 같은 사법체계 그 틈 사이로 빠져나갈 수 없도록, 더는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지 않도록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같이 접하는 기사에 한숨만 나온다. 

이렇듯 첫 단편을 읽고 나니 생각이 더욱 많아졌다.

  

그렇다. 이 소설집 전체적으로 지금의 현실과 아주 잘 맞닿아 있다. 

  

감정노동자로 칭하는 상담원. 서비스 직종에 일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함부로 대할 권리가 있는 듯 착각하는 행동과 말은 곧 폭력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사이 오해의 씨앗이 싹 틔우기도 한다.

  

선의라고 착각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탐욕의 시선으로 상대방을 바로보기도 한다는 것을, 스스로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지 알 지도 못한 채 행하곤 한다. 그런 걸 단순히 본능이라는 말로 포장해서는 안될 것이다. 

  

때로는 상대를 위한다는 착각에 그 마음이 엇갈리기도 하고, 당장의 불이익을 피하고자 불의에 눈을 감기도 한다. 원망스러워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신분은 사라졌지만 권력은 엄연히 존재하기에, 위치에 따라 갑을관계가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은 찰나였고, 한 번 일어난 일은 어떻게 해도 되돌릴 수 없기도 하다.

  

방에 틀어박힌 고독한 인물이 폭력과 죄책감으로 그 자리를 이어 받게 되기도 하며, 허무하게 떠나버린 사람의 생을 대신하고자 한다. 서로를 지키기 위한다는 착각으로, 침묵을 지켰던 사건은 그동안의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며 배신감에 서로를 떠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각 이야기마다 서사 구조가 탄탄하고, 인물들 모두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생동감이 느껴지는 게 이 소설집의 가장 큰 장점이다. 현실과 밀접한 상황들이 전개되기에 안타까운 사건들도 많았고, 서사의 특성에 따라 화자의 어조도 조금씩 결을 달리 하였기에 읽는 맛도 있었다. 잔혹동화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내레이션 같은 어조도 있었고, 통통 튀는 개성을 가진 인물의 목소리를 빌려와 재미를 더하기도 했다. 군더더기 없는 흘러가는 이야기는 몰입감과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고, 한 권의 소설집 속에 다양한 성격을 가진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어 더 좋았다. 연작으로 이어졌던 맥락 없이 불쑥 말해버리는 습관을 가진 기숙 캐릭터는 퍽 매력적이어서, 이는 블랙코미디 시트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인물을 살려 시리즈로 구성해도 좋을 것 같고, 꼭 다시 만나고픈 캐릭터이기도 하다. 

  

  

국내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님들 중 믿고 읽는 작가 목록이 있다면, 당연히 송시우 작가님도 추천하고 싶다. 괜히 많은 이들의 추천을 받는 게 아닌 것 같다. 아직 여름이 머무른 자리에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어 좋았다. 그래서일까,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서늘한 긴장감에 열불났던 마음의 기온이 아주 살짝 내려간 것 같기도 하다.

  


(이 리뷰는 한스미디어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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