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 - 돌봄을 살아낸 우리에게 쉼이 되는 그림들
오희승 지음 / 그래도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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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 명확히 알지 못한 채 끌렸던 그림들에 다가가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지금의 자신을 비추는 장면들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

저자가 들려주는 그림 이야기라 공감이 많이 되었다.

자기 자신을 지키러 미술관에 갔었다는 저자의 고백이 엄마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느낌이었다.

아이를 키우고 몸이 불편한 채로 일상을 꾸리고 가족의 시간을 지탱하는 일은

분명 자신이 선택한 삶이었고 그 안에서 보람도 느끼지만,

동시에 자신을 조금씩 닳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는 말은 세상 모든 엄마가 느껴본 감점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는 역할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던 날이면 미술관으로 향했다는 저자는

미술관에서 굳이 무언가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경험했다.

미술관에서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엉킨 매듭이 천천히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 저자의 이야기가 더 공감되었다.

엄마는 언제나 당연히 존재하는 배경과도 같다. 너무나 당연히 내 주변에 있는 존재여서

오히려 그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날 갑작스레 뚜렷하게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가족을 위해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던 엄마가

너무나 가까운 존재였기에 독립된 인물로 인식되지 않다, 제대로 보기 시작하는 순간

오열하지 않도록 엄마에게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대부분 자기가 그냥 자란 줄 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밥을 하고 돌아서면 또 밥을 해야 하는 쳇바퀴 같은 일상의 노고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 반복되는 수고를 계속해 나가는 것은

먹는 일을 향한 엄마의 마음과 사랑 때문이다.

엄마의 매일 반복되는 사랑과 수고를 너무 당연시 여기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다.



침묵의 화가라 불리는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함메르쇠이의 작품에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거나 나타나더라도 대부분 뒷모습이다.

인기척 없이 고요하고 차분한 빈 공간에 눈길이 간다.

창을 통해 스며든 햇빛은 실내를 은은하게 밝히며 생기를 불어넣기보다는

침묵과 평온을 가득 머금고 있다. 단순하지만 일상적인 섬세한 감각이 깃들어 있다.

빛과 그림자의 미묘한 경계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공간은 오히려 깊은 정서로 채워진다.

벽면에 길게 드리워진 햇빛과 짙은 그림자에 대비는 이 방의 구조와 시간을 암시하는데,

낮게 드리운 햇살과 긴 그림자가 북유럽의 상대적으로 낮은 태양 구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북유럽은 겨울철에는 태양의 남중고도가 더욱 낮아져 빛이 비스듬하게 들어오고

그림자가 길어지는 특징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은 화가가 선택한 색감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의식이 감지하는 계절과 시간의 흐름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주중에는 일하고 오직 주말에만 그림에 몰입했기에 일요화가로 불리는 앙리 루소에게

일요일은 일상을 견디게 하는 도피처이자 안식처였다.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기 때문에 오히려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었던 루소는

여행을 가거나 거주해 본 경험이 없었음에도 환상적이고 이국적인 풍경을 많이 남겼다.

자연사박물관과 파리 식물원을 오가며 정글의 이미지를 상상했고,

루브르와 클뤼니 미술관에서 대가들의 그림을 익혔다.

독학의 기술적 한계였는지, 미학적 지향이 달랐던 것인지

루소는 중세 후기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평면적 구도와 화면을 빽빽하게 채워 놓는 구성 방식을

고수해서 당시 평론가들로부터 원근법도 모르는 유치한 그림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오히려 초현실적인 분위기와 신비로움이 깃든

독특한 작품 세계로 평가받지만 말이다.

단조로운 생업과 빠듯한 형편, 사랑하는 가족들의 죽음까지 그의 삶은 늘 고단했지만,

그는 하루 일을 마친 후 음악을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불행한 가정사와 냉담한 평단, 가난까지 삶의 고난이 끊임없이 에워싸면

대부분의 사람은 쉽게 좌절하거나 극심한 정성적, 정신적 고통에 휘말리지만

루소는 이상하리만큼 단단한 자기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혹평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믿음을 마침내 인정받는 자리까지 이끌었다.

그가 세상의 입장이나 기술적 기술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마침내 자신의 꿈에 닿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삶은 멀리서 보면 단조로워 보일 수 수 있으나 그 안에는 수 없는 파도가 일고 있다.

루소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계를 그려냈다.

환상에 빠지지 않았기에 환상을 그릴 수 있었던 루소는 그 누구보다 꾸준히, 묵묵히, 성실하게

자신의 일상을 살아내었다.

결코 현실을 떠나지 않았기에 누구보다 자유로운 꿈을 꾸었던 루소의 그림이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지치고 힘든 날 문득 자신의 마음을 닮은 장면 하나를 발견하고 위안을 받을 터이니,

미술관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에세이 #쉼이되는그림들 #회복의기록 #돌봄을살아낸시간들 #나를지키고싶을때미술관에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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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맞는 말
김나영 지음 / 별빛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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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작가 소개에 경력 10년 차 교포어 번역가라고 되어 있어

교포어 번역이 뭔가 싶었는데, 남편이 교포였다.

오탈자에 빨간 밑줄을 긋던 저자가 남편의 오역에 하트를 그리게 된 사랑의 에세이였다.

한번 '맞나줘요' 라는 문법 정신에 어긋난 텍스트를 두고 평소 같았다면 볼 일이 없었을 텐데

운명적이게도 만남이 성사되었고, 보고 싶어서 만나자는 당연한 말에 울림이 있었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맞나다를 검색한 결과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는데,

'맞나다'는 마주하다에 '맞'과 나가다의 '나'가 결합한 형태였다.

'맞나다'는 '마주 나다'란 뜻이다.

서로 상대방을 향하여 마주 대하고 안에서 출발하면 바깥의 어느 시점에서 만난다란 행위가 이루어진다.

오늘날의 만나다라는 의미가 마주 나가다의 결과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만나다란 단어의 초기 의미는 마주 나가다란 행위의 시작 부분을 일컫는 것이다.

상대방을 마주 대하고 상대에 대한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것임을

남편의 만남으로 저자는 알게 되었다.

한번 맞나자는 그 말을 거절했다면 남편을 마주하지 못했을 것이고

자신의 마음이 세상 밖으로 나가는 기쁨을 아마 영영 모른 채 살았을 수도 있었다니

정말 인연은 따로 있나 보다.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언어를 주고받으며 남편이 한국어를 알지만 온전히 알고 있지는 못하고

자신이 영어를 할 때처럼 미묘한 차이를 느끼며 그 틈에서 오는 오역을 좋아한단다.

언어로 사람을 해석해 왔던 자신에게 남편의 오역은

단어와 삶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두 부부의 이야기가 정말 사랑스러웠다.

교포의 단어 혼동에서 오는 에피소드가 시트콤같이 소소하게 재미있었다.

"갑자기 왜 뾰루지가 됐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뾰로통한 마음이 사라진단다.

얼굴에 난 뾰루지처럼 하루 종일 심란하고 뾰족하게 가시를 세우고 있던 마음이

그 앞에 선 사라진다고 하니 사랑이 전제가 되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긴 하다.


같은 단어도 각자의 상황이나 경험에 의해서 정의가 달라진다.

이 다름은 부부가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 하더라도 바뀌지 않을 것이고 바꾸고 싶지도 않단다.

관계를 이어간다는 것은 언어를 주고받고 삶의 궤적을 나누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어휘가 다양해진다.

십 년이면 모든 걸 알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놀랄 일들이 많다고 한다.

우리가 모르고 있던 동음이의어들이 얼마나 많을지 그로 인해 자신들의 어휘가 얼마나 다양해질지

기대된다고 하는 부부의 언어가 참 사랑스러웠다.

발음의 차이, 문화의 차이에서의 오역이 오히려 사랑의 언어로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고 우리가 무심코 쓰는 단어의 본 뜻을 들여다보게 되는

유쾌한 시트콤 같은 사랑스러운 부부의 이야기였다.


#에세이 #사랑의언어 #교포어 #관계의문 #거의맞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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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을 포기할 때 삶은 가벼워진다 서양철학전집 하이엔드 고전 1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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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몽테뉴는 인간은 놀라운 만큼 헛되고 변덕스럽고 흔들리는 존재라고 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해방의 선언이다.

우리에게서 일관성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해주고 흔들려도 괜찮다고

변덕스러워도 괜찮다고 결함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래 결의라고 말해주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수 있게 한다.

모순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조각상이다.

어제의 다짐과 전혀 다른 행동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부끄러운 순간이 많지만,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둘 다 나의 일부이다.

모순을 인정하면 신기하게도 타인의 모순도 너그럽게 보이기 시작한다.

자기 안의 모순을 미워하는 사람은 타인의 모순도 견디지 못한다.

일관성에 대한 강박은 결국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잔인한 잣대가 된다.

모순을 인정하는 일은 사실 자신을 위한 일이면서

동시에 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말을 새겨야 되겠다.

물론 이 말이 약속을 어기고 책임을 회피해도 좋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자기 안의 여러 목소리를 한 가지로 묶어 내려 너무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여러 목소리를 그대로 인정한 다음 그중 어떤 목소리를 따를 것인가를

그날그날 선택하면 그것이 정직한 삶의 방식이 된다.

몽테뉴는 틀린 정답이 아니라 정답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맹신이 위험하다고 했다.

어떤 사람을 오랫동안 미워했는데 우연히 그 사람의 사정을 알게 되어 마음을 풀린 적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어떤 선택을 비웃었는데 같은 처지가 되어보고 나서야

그 선택에 무게를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 어떤 가치를 절대적이라고 믿었는데

시간이 지나 그 가치가 한낱 유행이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내가 틀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몸으로 배우고 부끄러워할 줄 알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덜 입힌다.

좀 더 섬세하게 천천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영원한 진리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다른 답을 들고 와도 곧장 적으로 만들지 않을 정도의 여유,

약간의 머뭇거림은 한 사람을 광신에서 구하고 그가 속한 공동체를 학살해서 구할 수 있다.

너무나 강한 확신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조금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그 확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스스로 점검해 본 흔적이 있는 확신과

점검없이 그저 우렁찬 확신이라면 분명 다르다.

점검을 거친 확신은 부드럽다.

다른 의견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지만 다른 의견을 굳이 부수려 들지도 않는다.

영원히 살 것처럼 탐욕스럽게 일에 매달리며

정작 자기 자신이 되는 법을 잊어버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내면의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가니까 나도 가는 게 아니라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를 새삼 물어봐야 한다.

거대한 흐름 안에서 개인의 열심은 자기 의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옆사람의 속도에 끌려가는 관성에 가까운 경우도 많다.

타인이 정해진 속도를 맞추느라 정작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지 않는 것이다.

멈추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습관의 무서움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한번 굳어진 길은 그 자체로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 길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려는 사람은 게으르다는 비난, 무책임하다는 손가락질,

한심하다는 눈초리를 한꺼번에 감당해야 한다.

맹목적인 태도가 화를 부르지 않도록 목적지 없이

속도만 남은 질주를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끝을 일상의 한가운데로 의연하게 끌어안고

오늘을 자각하고, 오늘에 시선을 두고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함을 되새기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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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다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2
다크모드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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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잠든 채로 사람을 죽인 파크스 사건은 몸 안에 의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몸이 움직이면 마음도 그곳에 있고, 손이 무언가를 쥐면 의지도 함께 작동한다고 믿지만,

몽유병은 그 믿음에 작은 균열을 말해준다. 몸은 움직였지만 판단은 따라오지 못했을 수도 있고,

행동은 이어졌지만 기억은 남지 않았을 수 있다고 하니 정말 불편해졌다.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명백한 악의를 품은 것도 아니고, 평소 폭력적이지도 않은 사람이

몽유병으로 그 순간 의식이 작동하지 않았고 저지를 살인은 단순히 기괴한 이야기가 아니라,

의식이 비어 있는 동안의 행동의 주인은 누구일까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우리는 있지도 않았던 기억을 하기도 한다.

어떤 기억의 조건을 반복한 연구에서 없던 기억을 진짜로 받아들이는 비율이 높게 나왔다.

어릴 때 동물들에게 공격당했다는 식의 더 강렬한 기억,

심지어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는 장면조차 사람들은 그럴듯한 기억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

어떤 음식을 먹고 어릴 때 크게 탈이 났다는 가짜 기억을 심으면

그 사람은 나중에 음식을 고를 때 예전보다 더 꺼리는 반응을 보인다.

없던 기억이 나중의 선택까지 바꾼 것이다.

상담자가 처음부터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고 질문을 반복하면

사람은 자기 기억에서 그에 맞는 장면을 찾으려 할 수 있다.

실제로 없던 장면까지 기억처럼 만들기도 한다.

암시하는 질문이 반복되면 사람은 일어나지 않는 일을 자기 기억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기억이 본인에게는 진짜 기억과 거의 똑같이 느껴지기 때문에

고통이 진짜라고 해서 그 기억 속 장면이 반대로 반드시 그대로 실제였다는 뜻이 아니다.

나의 또렷한 어린 시절이 정말 그 순간 직접 본 것인지 앨범 속 사진과

식구들이 수십 번 들려준 이야기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냥 내 기억에 또렷하니까 진짜라고 여길 뿐이다.

하지만 실험에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없던 일을 디테일까지 붙여서 진심으로 기억해 냈다는 점이

무섭게 느껴졌다. 우리는 기억을 카메라에 저장된 사진처럼 여긴다.

시간이 지나 조금 흐려질 수도 있고 머릿속 어딘가에 있는 그날의 장면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기억은 사진처럼 보관되지 않고 기억을 꺼낼 때마다 조금씩 다시 만들어지기 때문에

기억의 선명함은 사실의 증거가 아니다.

다들 자기 기억이 맞다고 믿지만 불편한 건 모두가 조금씩 틀렸을 수도 있다는 점을 떠올리니,

늘 신중하게 한 번 더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현재의 말과 감정과 상상으로 조금씩 다소 다시 맞추기 때문에

가장 확실하다고 믿는 내 과거조차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한 내 것만은 아닐 수 있다니,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확신은 기억이 맞다는 신호가 아니다. 확신은 반복 속에서 자란다.

틀린 기억 위에서도 확신은 얼마든지 자랄 수 있음을 알고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심리와 역사, 범죄, 전쟁, 뇌과학, 철학을 넘나들며

우리가 믿어온 '정상'과 '합리성'의 허상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실험과 사례를 모아보니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신을 속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되면서,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함부로 단언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위험한인문학 #다크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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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의 월든 - 길가에서 발견한 자연의 생존 전략
정주혜 지음, 김나연 그림 / 이케이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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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생태 공동체 '초생달과곰'을 운영하며 전 세대에게 자연의 경이로움을 전하는

자연언어 통역사 겸 교육활동가인 저자가 20년 동안 활동하며,

식물의 위대함에 감탄하며 써 내려간 관찰기이다 보니 정말 매혹적인 풀 이야기가 펼쳐졌다.

풀은 연약해 보이지만 실은 연약하기로 작정한 것이지 결코 힘이 없는 것이 아니다.

발에 밟히지만 그것조차 삶의 방편으로 삼는 식물들의 작지만 위대한 삶의 이야기를 통해

정말이지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추위와 더위를 맨몸으로 견디는 풀들은 여리지만

단단하게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그들만의 전략으로 인간의 지혜를 넘어선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냥 지나쳤던 풀들이 달리 보이고 그들의 생존 전략에 감탄하게 된다.

잎에 나타나는 특이한 무늬나 얼룩은 독이 있거나 독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의 표시이다.

흔하게 만나는 토끼풀잎을 잘 살펴보면 선명한 흰 얼룩이 있는 개체가 있다.

토끼도 즐겨 먹는 풀인 것으로 보면 치명적은 독은 없겠지만, 흥미로운 방어 흔적으로

아주 작은 애벌레가 잎을 갉아 먹다가도 흰선을 넘어가지 않고 멈춘다니

정말 식물이 그어놓은 경계선인 셈이다.

그늘에서 편안하게 무리를 지어 사는 토끼풀에는 흰 무늬가 없거나 희미한 반면

땡볕 아래에서 사람들에게 밟히며 고단하게 살아가는 토끼 풀잎에서는

유난히 흰 무늬가 선명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연구에 따르면 토끼풀의 흰 무늬는 단순한 무늬가 아니라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치밀한 방어전략이다.

사실 잎에 흰 무늬는 식물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의 손해를 감수하는 일이다.

엽록소가 없는 부분만큼 광합성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장을 조금 포기하는 대신 식물은 안전을 택했다.

잎의 무늬를 통해 마치 이미 다른 벌레가 갉아 먹은 것처럼 위장함으로써

곤충들의 추가 공격을 피하는 방패가 된다. 영양분이 부족하거나 천적이 많은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린

토끼풀일수록 방어막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제 몸을 지켜낸다고 한다.

무늬가 있는 잎이 곤충들에게는 이미 누군가 먹다 남긴 맛없는 잎,

시들어가는 잎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같은 땅에서 자라면 조건이 다 같다고 생각하지만 식물이 체험하는 환경은

단 한뼘거리라도 완전히 다르다.

어울려 사는 풀이 다르고 머리 위 햇살의 각도가 다르고 땅속 미생물의 생태계조차 다르기 때문이다.

식물이 땅으로 돌려보내는 영양분이 제각각이다 보니 흙과 섞이는 과정에서

바로 옆자리라 해도 토양의 성분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 작은 차이에 따라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곤충과 동식물의 종류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옆에 붙어 있더라도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미세한 환경의 차이가

각기 다른 무늬와 삶의 방식을 만들어낸다니 정말 신기했다.

토끼 풀 잎은 원래 세 장이 기본이지만 4장, 5장, 6장짜리 토끼풀도 있다.

4장 이상이 되는 것은 잎이 만들어지는 초기 단계에서 생장점이 자극을 받아 분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토끼풀 줄기 끝에서 잎눈을 만드는 생장점은 본래 세 개의 세포로 갈라져야 하는데,

어떤 이유로 생장점이 상처를 입게 되면 세포가 4개 혹은 그 이상으로 쪼개진다.

그래서 사람의 발길이 잦은 곳에서 네 잎 토끼풀이 자주 발견된다.

땅속에 특수한 화학물질이나 기온의 급격한 변화가 생산점에 영향을 주기도 하며

타고나기를 4잎을 잘 만드는 유전자를 가진 개체도 있지만,

풀밭에서 발견되는 네 잎 토끼풀은 대부분 성장 과정에서 겪은 시련이

생장점의 영향을 미친 결과물이라고 한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관찰할 수 있는 풀의 생존 전략을 알게 되어

너무나 유익하고 흥미로웠다. 거대한 숲을 거닐지 않더라도 일상의 산책 속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되는 풀의 월든을 통해 자연의 경이로움을 발견하게 해주는

안내서여서 큰 도움이 된다.



#풀의월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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