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는 인간은 놀라운 만큼 헛되고 변덕스럽고 흔들리는 존재라고 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해방의 선언이다.
우리에게서 일관성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해주고 흔들려도 괜찮다고
변덕스러워도 괜찮다고 결함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래 결의라고 말해주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수 있게 한다.
모순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조각상이다.
어제의 다짐과 전혀 다른 행동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부끄러운 순간이 많지만,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둘 다 나의 일부이다.
모순을 인정하면 신기하게도 타인의 모순도 너그럽게 보이기 시작한다.
자기 안의 모순을 미워하는 사람은 타인의 모순도 견디지 못한다.
일관성에 대한 강박은 결국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잔인한 잣대가 된다.
모순을 인정하는 일은 사실 자신을 위한 일이면서
동시에 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말을 새겨야 되겠다.
물론 이 말이 약속을 어기고 책임을 회피해도 좋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자기 안의 여러 목소리를 한 가지로 묶어 내려 너무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여러 목소리를 그대로 인정한 다음 그중 어떤 목소리를 따를 것인가를
그날그날 선택하면 그것이 정직한 삶의 방식이 된다.
몽테뉴는 틀린 정답이 아니라 정답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맹신이 위험하다고 했다.
어떤 사람을 오랫동안 미워했는데 우연히 그 사람의 사정을 알게 되어 마음을 풀린 적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어떤 선택을 비웃었는데 같은 처지가 되어보고 나서야
그 선택에 무게를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 어떤 가치를 절대적이라고 믿었는데
시간이 지나 그 가치가 한낱 유행이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내가 틀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몸으로 배우고 부끄러워할 줄 알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덜 입힌다.
좀 더 섬세하게 천천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영원한 진리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다른 답을 들고 와도 곧장 적으로 만들지 않을 정도의 여유,
약간의 머뭇거림은 한 사람을 광신에서 구하고 그가 속한 공동체를 학살해서 구할 수 있다.
너무나 강한 확신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조금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그 확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스스로 점검해 본 흔적이 있는 확신과
점검없이 그저 우렁찬 확신이라면 분명 다르다.
점검을 거친 확신은 부드럽다.
다른 의견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지만 다른 의견을 굳이 부수려 들지도 않는다.
영원히 살 것처럼 탐욕스럽게 일에 매달리며
정작 자기 자신이 되는 법을 잊어버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내면의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가니까 나도 가는 게 아니라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를 새삼 물어봐야 한다.
거대한 흐름 안에서 개인의 열심은 자기 의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옆사람의 속도에 끌려가는 관성에 가까운 경우도 많다.
타인이 정해진 속도를 맞추느라 정작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지 않는 것이다.
멈추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습관의 무서움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한번 굳어진 길은 그 자체로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 길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려는 사람은 게으르다는 비난, 무책임하다는 손가락질,
한심하다는 눈초리를 한꺼번에 감당해야 한다.
맹목적인 태도가 화를 부르지 않도록 목적지 없이
속도만 남은 질주를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끝을 일상의 한가운데로 의연하게 끌어안고
오늘을 자각하고, 오늘에 시선을 두고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함을 되새기게 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