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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와 카유보트는 왜 트루빌로 갔을까? - 시인의 언어로 다시 만나는 명화 속 바다
김경미 지음 / 토트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라디오 작가이자 시인인 저자는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그림들로부터 시적 자극을 받거나
고통과 좌절에서 마음을 건져 올린 적이 많아 그 고마움을 갚기 위해
그림에 대한 산문집을 꼭 한 권 쓰고 싶어 마음에 들어오는 그림들을 계속 따로 모았는데
'바다와 해변'이라는 주제와 풍경이 모였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바다 그림만 찾고, 들여다보고, 모으고, 진짜로 바다를 보러 가기도 하면서
물 위를 달리는 배에 대해 병적인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게 되었다.
어느덧 배 갑판에 서서 바다 위 일몰에 감탄하기도 하고, 밤바다를 보며 눈시울을 붉히는
여행자로 거듭나게 해 준 바다 그림들을 붙여놓은 노트는 저자에게 습작 시절의 독서 노트
버금가는 구원 노트가 되었다. 그런 저자가 들려주는 바다 그림과 화가의 이야기라 무척 흥미로웠다.
모네가 지베르니의 정원을 가꾸기 위해 정원사 자격을 딸 정도로 몰두하였고
40대 후반부터 생을 마칠 때까지 40여 년을 지베르니에서 살았으므로
모네의 작품과 후반기 삶의 흔적을 생생하게 느끼려고 파리 근교의 지베르니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잘 가꾸어진 지베르니의 정원도 아름답지만, 저자는
<푸르빌, 절벽 위의 산책> 속 깎아지른 듯한 바닷가 절벽 위에 펼쳐진 야생 풀밭에 매료되어
푸르빌이 더 궁금했다고 한다. 무성하게 핀 야생 풀꽃들이 워낙 푹신하고 따뜻해 보이고,
절벽 아래 바다와 바다 위 배들과 하늘과 구름이 자아내는 풍경이 너무 환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지베르니를 매혹시킨 바닷가 절벽 위에 서서 풍광을 내려다보고 싶어졌다.
천문학자가 아니면서 밤하늘의 별에 이름을 남긴 실존 인물은 19세기 러시아 화가
이반 아이바좁스키다. 나에겐 생소한 화가이나 러시아에서는 지금도 사랑받는 국민 화가로서
구소련의 천문학자가 1977년 새로 발견한 소행성에 러시아 국민화가의 이름을 붙였다.
러시아 화가로는 처음으로 26살에 루브르 박물관에 작품을 전시한 천재 화가로
워낙 바다 그림을 많이 그려서 바다 화가, 해양 화가로 불린다.
바다 그림이 6000여 점에 이른다니 20세부터 세상을 떠난 83세까지 그렸다 치면
4일에 한 작품씩 바다를 그린 셈이니 정말 인생의 전부를 바다 그림에 바친 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앞 이상의 인파가 몰린다는 <아홉 번째 파도>를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오면 좋겠다.
점묘법이란 명칭보다 '색채 분할주의'라는 명칭을 더 좋아했던 쇠라는
시대를 앞서간 선구적인 화가인 동시에 천재 과학자였다.
광학 이론을 가지고 치밀한 연구 끝에 점묘법을 창안하여 신인상주의를 확립했지만,
동료 인상주의자들한테 환영받지 못했다니 안타까웠다.
붓질 한 번으로 그릴 수 있는 선 하나를 수천 개, 수만 개의 색깔 다른 점을 찍어서 대상을 묘사하는데
어지간한 인내심 없이는 작품을 완성하기 어려웠을 걸 생각하니 쇠라가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샤갈에게 그림에 사람, 암소나 양과 수탉, 책과 나무와 촛불과 집, 심지어 마을까지
왜 전부 다 허공을 날아다니냐고 물었더니 유대인, 벨라, 서커스 세 가지를 꼽았단다.
1. 나라도 없이 늘 쫓기고 박해받는 처지의 유대인들이 그림에서나마 마음껏 자유로웠으면 해서.
2. 아내 벨라에 대한 사랑으로 마음이 늘 하늘을 나는 듯 행복해서.
3. 매 순간순간 제대로 해내지 않으면 순식간에 목숨을 잃게 되는 공중 부양의 서커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져서.
동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유대인들은 가축들을 동물이라기보다 가족이라고 여겨서
고향 마을과 가족을 그릴 때 당연히 함께 그리는 거라니 마음이 절로 따뜻해지는 답변이었다.
19세기 영국 콘웰 어촌의 전통을 그린 토마스 쿠퍼 고치의 <생선 나누기>를 보며
마을 사람들 간의 나누기 전통 마을인 대만의 지우펀을 이야기하며
우리나라의 전라람도 나주도 풍요로운 수확물을 함께 나눈다는 뜻으로 마을 이름에 그물 나를 썼고,
경상남도 김해에도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함께 나눠 가졌다는 뜻에서 유래한 분포 마을이 있고,
경상남도 함양은 햇빛을 나눠 받는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아무런 생각 없이 알고 있었던 마을들을 이름은 어떤 뜻에서 유래한 것일까 궁금해졌다.
바다와 모래, 하늘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어떤 수준이 필요한데, 그 수준에 올랐으면 좋겠다는
열망을 이루기 위해 고흐가 자주 찾아갔던 스헤베닝겐 해변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두꺼운 모래층이 덮여 있어 2번이나 물감을 긁어내며 표현했던
<폭풍우 치는 스헤베닝겐 해변> 그림은 고흐가 그림을 그린 날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의 강한 바람을 입증이라도 하는 듯,
바람에 섞인 모래알이 아직도 남아서 버석댄다고 하니 그 바다가 더 궁금해졌다.

잘 알려진 화가뿐만 아니라 생소했던 화가의 이야기도 라디오 작가이자 시인인 저자의
담담하고도 다정한 말투 때문인지 너무나 친근하게 느껴지며
정말 바다를 보러 가고 싶어지는 바다 명화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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