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못다 한 이야기들
마르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건축 설계 전문 회사 CEO로 승승장구하다 첫 소설 <저스트 라이크 헤븐>으로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마르크 레비의 소설은 영화화되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다.



<차마 못다 한 이야기들> 역시 한 편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는데, 반전이 있었으니...

기욤 뮈소의 <종의 여자>를 읽으며 판타지 멜로 장르인가 했다가

나중에 약간 허망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로맨틱 코미디는 해피엔딩이어야 하니까 진실된 사랑이 오랜 세월에 퇴색되지 않고

굳건히 되살아났다는 게 중요하니까 속아도 괜찮았다.

성공한 사업가 아버지 안토니 왈슈의 비서로부터 하나뿐인 딸인 자신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다는 전화를 충분히 예상할 만큼 부녀의 사이는 나빴다.

그런데 이번에 참석이 불가능한 이유가 사업차 바빠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파리에서 죽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특별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으로 인해 아담과의 결혼식이 불발되고,

마음이 복잡해진 줄리아에게 배달된 커다란 상자에는

안드로이드 아버지가 등장했다.

딸과 화해하지 못한 부자 아빠가 안드로이드로 딸과의 6일간 여행을 통해

부녀간의 사랑을 확인한다는 진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줄 알았는데,

딸과 아버지의 사이가 나빠지게 된 결정적 계기에 한 남자가 있었다.

토마스...

동쪽 남자와 서쪽 여자의 사랑이라니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그 극적인 순간에 자유로운 미국인 소녀와

자유를 업악당하며 살았던 독일 남자의 극적인 사랑이라니

너무 작위적이고 영화 같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영화 같은 순간을,

영화 같은 사랑의 존재가 우리의 삶을 더 아름답게 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장벽이 무너진 이상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기 불가능해질 것이기는 해도

독재로 인해 겨우 자유를 향해 열렸던 문이 다시 닫힐까 봐,

전체주의의 힘으로 사랑하는 딸을 영영 잃게 될까 봐

겁이 난 아빠는 미성년자였던 딸을 베를린에서 뉴욕으로 강제로 끌고 왔다.

갑작스레 헤어지게 된 두 연인은 다시 만날 날을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기자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취재를 갔던 토마스의 죽음을 전해 들은

줄리아는 아빠에 대한 원망이 분노로 변해 아빠와 연을 끊고 살게 되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토마스의 생존 편지를 받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17년을 토마스가 죽은 줄로만 알고 살았던 줄리아에게

아버지는 진짜 사랑을 묻고 아담과 결혼하려는 딸에게

진짜 사랑을 되찾아주려고 했던 것이다.

부자 아빠라서 가능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라서

황당하긴 하지만 뭐 로맨틱 코미디가 현실 고증적일 필요는 없으니까

몬트리올, 파리, 뉴욕, 베를린, 뉴욕을 그렇게 며칠 만에 쓔융 쓔융

활보할 수 있는 경제력이 부러운 걸 보면 삶에 찌들려 있나 보다.^^



어쨌든 부자아빠는 후회로 가득한 과거 속에서 삶을 영위할 수는 없음을

딸에게 일깨우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아무리 소소한 행복이라도 확신이 있어야 하기에,

스스로의 인생을 결정하라고,

운명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눈물만 짓지 말라고 알려주는 아빠는

한때 사랑하는 방법이 서툴긴 해서 실수를 했지만,

줄리아가 필요로 할 때 부재하는 아빠였긴 했지만,

줄리아의 엄마를 만나 줄리아의 아빠가 된 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고

아름다운 선택이었다고 자부하는 최고의 아버지였다.

17년을 오해 속에서 살아온 연인들이 돌고 돌아 다시 찐 사랑을 확인하고,

아버지의 사랑도 확인하는 해피엔딩이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차마못다한이야기들 #열림원 #마르크레비 #북유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난할 권리 책고래숲 8
최준영 지음 / 책고래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로 꼭 스무 살을 맞이한 거리의 인문학을 기념으로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 교수가

그동안 강의에서 만났던 노숙인과 미혼모, 어르신, 교도소 수형자들에게 바치는 책이다.



모든 인간은 공포와 궁핍으로부터 해방될 권리가 있다,

넘어진 자는 반드시 바닥을 짚고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20여 년을 지나며

저자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았는데 사랑의 상호 감염이라는 찬사의 의미가 이해되었다.

노숙인 인문학 MT에서 저자가 구운 돼지갈비를 아무도 먹지 않아 서운해할 뻔했는데

그 이유가 치아가 성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라니 마음이 아팠다.

신체 중에서 가난이 가장 먼저 가장 심각하게 치고 들어오는 부위가 바로 치아란다.

치아 질환은 대체로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고 치료에 큰 액수가 되기 때문에

치료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방치되기 때문이다.

이가 아프면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축나고, 힘듦을 잠시 잊기 위해

안주 없이 깡소주를 마시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깡소주가 안주 값이 없어서인 줄만 알았지 이가 성하지 못해서 그런 줄은 몰랐다.



노숙인이 16년 만에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게 해주는 게 인문학의 놀라운 힘이었다.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게 하고 표현하지 않았던 말을 표현하게 하고

마음의 근육을 단단하게 하고, 다시 희망의 삶을 살게 하는 것.

그럼에도 길 위의 인문학을 만난 이들이 모두 해피엔딩을 맞는 건 아니었다.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준비를 착실히 하는 듯 보였던 사람도

거리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하는 걸 보니, 하루라도 더 빨리

인문학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해져서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어른들의 무관심에 방치된 아이는 거리의 삶을 살아갈 확률이 높다.

그렇지만 그렇게 자란 어른이라도 거리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는 분들이 계시고, 인문학을 만난 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걸 보니 감동적이었다.

여러 연구에서도 어려운 환경에서도 제대로 성장한 아이들은

예외 없이 그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 주고받아 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아이 곁에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연민, 관심, 애정 등 어떤 형태가 되었든 미약한 작은 관심은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기꺼이 고통을 감내해 내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손을 내밀어 주고 인문학과 만날 기회를 만난 사람들의 삶이 바뀌는 것을

보니,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소외되고 방치된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전 사회적인 관심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성격과 정체성은 유전자나 양육환경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결정된다.

나도 누군가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처럼 나도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영향을 끼칠 수 있게 잘 살아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저자가 좌절과 결핍의 시기, 심하게 흔들릴 때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었다고 한다.

마라톤같이 스스로가 지치지 않도록 공부에 대한 강약 조절과 리듬 조절을 하면서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 본받을 만하다.

전문가 바보가 되어 자신의 전문 영역에만 갇혀 세상의 보편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한 종류의 나무만 심어서는 숲을 이루지 못한다는 저자의 조언이 기억에 남는다.

혼자 하는 공부는 개인적 성취에 머물지만, 함께 하는 공부는 문명적 성취가 된다.

모든 사람들은 결핍이 있다. 거리의 삶을 사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결핍, 정서적 결핍, 연륜과 경험의 결핍, 젊음의 결핍 등

내 안의 결핍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이 달라짐을 잊지 말아야겠다.

'인'은 충만한데 '연'이 닿지 않아 일이 풀리지 않는 일은 없다.

나의 부족함을 생각하지 않고 거만하면 진정한 연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걷어차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 인간이다.

'인 + 간'의 의미를 알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나의 내면과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하게 만드는 만드는 책이었다.



#가난할권리 #최준영 #거리의인문학자 #성프란시스대학

"책과 콩나무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래스가 남다른 과학고전
조숙경 지음 / 타임북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난다.

작은 인연이 삶의 경로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바꾸기도 한다.

세계 과학커뮤니케이션학회 아시아 최초 회장인 저자가 지난 40년간

과학고전 12권에서 사람을 만나고 사건을 접하면서 삶의 경로가 어떻게 바뀌고

또 새로운 경로를 찾게 되었는지를 아주 친절하고 쉽게 알려주어서

'과학고전'이라는 말에 겁을 먹을 필요가 전혀 없는 책이다.

리처드 파인만 <파인만 씨, 농담도 정말 잘하시네요!>

제이컵 브로노프스키 <인간 등정의 발자취>

칼 포퍼 <과학적 발견의 논리>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노우드 러셀 핸슨 <과학적 발견의 패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찰스 스노 <두 문화>

제임스 왓슨 <이중나선>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제러미 리프킨 <엔트로피>

로이 포터 <2500년 과학사를 움직인 인물들>

과학사와 과학문화를 강의하는 저자가 40년간 만나온 과학고전 중 12권을 엄선해서 그런지

완독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통로를 통해 그 내용을 익히 알고 있거나,

내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도 제법 있었다.

파인만은 물리학 전공자라면 너무나 애정하는 과학자라 알쓸신잡을 비롯한 여러 TV 프로그램에 소개되어

얼마나 유쾌하고 재미난 사람인지 잘 알려진 것 같다.

파인만은 자신이 좋아하고 흥미 있어 하는 일이나 연구에 몰입한 나머지

시대 정신이 부족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원자폭탄 투하 이후 인류의 대의를 위해 과학 연구를 시작했던

과학자의 연구와 연구 결과물을 사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깨닫고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고민하고 성찰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이젠베르크 또한 과학 발전이 선향 방향으로 향하고 지식 확장이 인간의 복지를 위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지만, 과학적 결과가 어떻게 사용될지 아직 모르는 과학자가 과학 연구물 사용 결과에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과학은 한 부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의 전체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분과 전체>를 읽으며 저자 또한 과학자는 누구여야 하고,

과학의 결과는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하여 진정한 전문가가 된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것 같다. 특정한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아는 사람은 넘쳐나지만,

사람이 범할 수 있는 오류도 알고 피해 갈 수 있는 진정한 전문가로 거듭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중나선>으로 많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제임스 왓슨의 말년 소식들은

너무나 안타깝고 끝까지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멋진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프랭클린의 업적이 축소되어 있는 초본과 다르게 10년 후에 쓰인 후기에 프랭클린의 업적과

성실함과 용기를 높이 평가해 시대적 불합리함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는 줄 알았는데,

뿌리 깊은 편견을 뽑아낸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인가 보다.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라는 말처럼, 어려운 상황을 얼마나 잘 견디고 극복하느냐에 따라

그다음 인생의 행로가 결정된다. 뉴턴이 흑사병 때문에 케임브리지대학교가 휴교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한가롭고 무료한 시간을 보냈기에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었고,

케플러가 오스트리아의 그라츠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프라하의 튀코 브라헤를 찾아 나서서

우주의 중심이 태양이고 행성이 타원 궤도로 돌고 있음을 계산할 수 있었다.

다윈이 에든버러대학교와 케임브르지대학교에서 의학과 신학을 실패했기 때문에

헨슬로 교수를 만나 식물학과 지질학을 만나고 비글호 항해에 오를 수 있었다.

지금은 힘들어도 이 힘든 시기가 인생의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회복탄성력을 잘 키우고, 만나는 인연마다 소홀히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래스가남다른과학고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인호의 인생 꽃밭 - 소설가 최인호 10주기 추모 에디션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70~1980년대 한국문학의 축복과도 같은 존재이자,

청년문화의 아이콘으로서 한 시대를 담당했던 소설가 최인호 10주기 추모 에디션이다.

수많은 작품을 펴냈지만 수필이나 단상을 모아 책을 내는 일이 드물었던 작가가

"인생은 아름답다고 죽도록 말해주고 싶어요."라고 마음을 다잡고 쓴 에세이들은

우리들의 인생이 신이 내려준 정원에 심은 찬란한 꽃임을 깨닫게 한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요..."

가 대중가요 가사인 줄만 알았는데 조선의 세종조에 최한경이란 유생이 남긴 <반중일기>

중의 아름다운 연시였다니. 어느 시대이건 여인을 사랑해서 지은 연애시는 세대불문

사람을 설레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도 부인을 향한 작가의 사랑과 믿음이 전해져서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피천득 선생님께서 '시집가는 친구의 딸에게' 주는 글에서

"아내. 이 세상에서 아내라는 말같이 정답고 마음이 놓이고 아늑하고 편안한 이름이 또 있겠는가.

천 년 전 영국에서는 아내를 피스 위버 Peace-Weaver라고 불렀다. 평화를 짜는 사람이란 말이다."

고 했다는데, 언제 평화를 짜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싶다.

아내의 잔소리는 전 세계적으로 되풀이되기도 해서 모든 나라에 아내의 충고에 관한 속담이 존재하는데,

공통적으로 아내의 충고를 받아들여라는 것이다. 언제 급소에 일침을 놓아 빨리 낫게 할 수 있는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곁에 있는 부부라서 그런가 보다.

작가의 말처럼 서로의 결점을 지적하고 고치려고 애를 쓰다 보면,

잘못된 결점이 되풀이되어 습관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채찍질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윈윈할 수 있다.



작가가 소개한 17세기의 어느 수녀님의 기도문은 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을 상세히 알려주는 것 같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인생 꽃밭에서 고운 빛을 발하기 위해 더 선해져야겠다.



#최인호의인생꽃밭 #최인호 #최인호10주기추모에디션 #열림원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편한 레스토랑 - 오지랖 엉뚱모녀의 굽신굽신 영업일기
변혜정.안백린 지음 / 파람북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섹슈얼리티 전공 문학 박사 엄마 변혜정 서버와 영국에서 유학하다 갑자기 요리에 꽂힌 딸 안백린 셰프의

좌충우돌 다이닝 프로젝트, 음식 창업 분투기이다.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비건 다이닝, 불편한 레스토랑 천년식향을 꾸려가는 이야기를 통해

음식과 섹슈얼리티, 지구 건강과 상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천년식향이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냐, 먹고 살 만해서 자아실현이라도 하는 거냐는

비판의 소리를 듣는 공간임을 인정하며 기이한 실험의 장이자 요리에서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엉뚱 모녀의 불편한 공간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비재무적 자원을 버는 곳이었다.

알코올 쓰레기라 내추럴 와인과 컨벤셔널 와인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천년식향이 추구하는 바가 내추럴 와인을 만드는 과정과 유사하다니 그 맛이 궁금해졌다.

칵테일보다 더 과실미가 풍성하고, 콤부차보다 더 오래 숙성된 깊은 맛이 나지만,

지하철 냄새처럼 쿰쿰하기도 하다니 마셔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맛이긴 한가보다.

쿰쿰하지 않은 맛있는 내추럴 와인도 많다고 하니 쥬시하고 클래식한 술 같지 않은

내추럴 와인을 맛있는 비건 요리와 페어링 해보고 싶었다.

알코올 맛을 싫어하는데 수박 주스같이 알코올 향이 전혀 없는 와인도 있고,

열대과일 향이 나는 풍부한 오렌지 와인, 오크 향이 나는 중후한 오렌지 와인 등

얼마나 맛있었으면 '엠버&처빌' 내추럴 와인 수입사를 운영하게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손이 많이 가는 맛있는 식물성 요리의 가격, 비싼 채소 요리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해결되지 않으면 맛있는 비건 요리의 대중화는 어려울 것 같다.

버섯 10kg이 1kg이 될 때까지 졸이게 되면 버섯 가격이 한우와 같아지는 것은

허영이 아니라 정성이라는 말은 이해가 되었다.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채식을 선택하는 것이 윤리적이고

대체육처럼 고기를 따라 한 요리는 탐욕적이라고 여겨지는 경향이 있어

대체육을 터부시하는 문화가 있는데 천년식향의 타깃은 1%의 비건이 아니라 99%의 논비건이다.

그래서 한 끼라도 고기 덜먹어 탄소중립의 의미를 이해하도록 하고,

채소의 사치를 통해 농부도 살고 지구도 살 수 있다면 천년식향이 허영스러운 공간이 되어도

좋다는 뚝심이 마음에 들었다. 천년식향을 방문하러 서울에 갈 정도의 열정은 없지만,

내추럴 와인과 채소발효 요리를 판매하는 식당이 인근에 생긴다면 방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만으로도 천년식향의 존재는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다행히 공장식 축산 소비에 대한 문제의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게 되었다.

이제는 문제의식으로부터 당과 육식이 주는 쾌락이 과식 또는 불균형한 식사로

개인의 건강을 위협하고, 지구 전체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음을 외면하지 않도록

식습관을 살펴봐야 할 때이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의 고통과 소수자, 비정상이 인정되고

그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믿고 묵묵히 어려운 길을 선택한 천년식향의 욕망에

박수를 보낸다.

섹스와 음식은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둘을 연결하여 설명하면 이해가 빠르다.

나는 어떤 음식을 (안) 먹고, 어떤 섹스를 (안) 할 때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하고, 더 지속 가능해진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또 메뉴판의 '섹스'처럼 꺼려질 수 있는 주제인 동물의 삶과 지구의 건강,

그리고 그것 때문에 우리가 감내야 할 불편도 이야기한다.

그래서 '섹스&스테이크'라는 손님의 감탄에서, '쉬쉬' 거리는 이야기들이,

서로 충돌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맛있게 소통하는 과정에서

가시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다. 단순히 숨겨서 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누군가의 '고통'과 '소수자' '비정상'이 인정되고

그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그렇게 메뉴판에 담았다.

p.213

 

"책과 콩나무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불편한레스토랑 #천년식향 #맛있는비건 #내추럴와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