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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에 관한 생각 - 영장류학자의 눈으로 본 젠더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11월
평점 :
현대 사회는 권력과 특권의 젠더 차이를 바로잡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남성 여성 모두가 동시에 변할 필요가 있다.
한쪽 젠더에 낙인을 찍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화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끊임없이 압력을 가한다.
젠더는 생물학적 암컷을 여성으로 생물학적 수컷을 남성으로 바꾸는 학습된 오버제리를 가리키는데
문화마다 양성에 대해 각각 다른 규범과 관습, 역할이 있다.
인간은 완전히 문화적 존재인데 저자는 영장류에게도 젠더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면 영장류를 칭찬하고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불쾌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양성 사이의 관계가 극단적으로 다른 두 종인 침팬지와 보노보를 연구하는 저자는
차이에 관해 양쪽의 입장을 관찰할 수 있었고, 그 결과가 이 책에 집약되어 있어 아주 놀랍고 흥미로웠다.
저자가 침팬지에 대해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저자가 수컷의 권력과 잔인성을 옹호한다고 생각하고,
보노보에 대해 이야기하면 저자가 에로티시즘과 암컷의 통제를 좋아한다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보노보와 침팬지는 서로 다른 우리의 양면을 드러내며, 우리 속에 두 유인원의 특성이 각각 조금씩 들어있으며
또한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한 인간만의 독특한 특성도 있을 뿐이며 저자는 두 유인원을 모두 좋아한다.
보노보와 침팬지에게서 관찰된 특성을 우리에게 직접 적용하기는 어렵다. 최선은 가까운 친적들과 우리를 삼각에 두고
비교하면서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저자는 문화와 생물학 중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할 필요는 전혀 없으며, '상호 작용주의자'가 되면 된다고 말한다.
유전자와 환경 사이에 역동적인 상호 작용이 일어나야만 한다. 유전자 자체는 포장도록에 떨어진 씨앗과 같아서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가 없다. 환경 역시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고 거기에 작용해야 할
생명체가 있어야만 한다.
과학자들이 전형적인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어 연구하기 때문에 암컷과 수컷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명확한 그림을 얻길 원해서 쌍봉 분포에서 봉우리 쪽을 집중적으로 살피는 한편 골짜기는 무시되어
정상에서 벗어나는 개체나 생동은 제대로 연구가 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것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저자 또한 수십 년 동안 유인원을 연구하면서 수컷이나 암컷으로 분류하기 힘든 개체를 상당수 보았다고 한다.
근육질 거구를 가졌음에도 대결을 피하고 지위 다툼을 하지 않는 수컷이 존재하는데,
자신을 지킬 능력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바닥으로 추락하지는 않지만 지배성 추동이 없는 수컷은
조용하고 고립된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 정치적 모의를 도모하기 위한 동맹으로 적합하지 않기에 수컷들은 무시하고,
수컷이나 다른 암컷에게 괴로움을 당할 때 막아줄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암컷들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 사회나 유인원 사회나 주류의 삶에서 벗어난 존재들은 외롭고 고단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
저자가 출간한 <침팬지폴리틱스>로 인해 알파 수컷이란 단어가 워싱턴 정가에서 널리 유행하게 되었는데
불행히도 그 용어가 역겨운 성격을 지닌 남성 지도자를 가리키며 불한당 같은 사람의 이미지가 된 것은
영장류학자로서 속상할 것 같다. 실제로 알파 수컷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와는 전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파 수컷은 그저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하는 수컷을 가리킬 뿐이며, 그 수컷이 좋게 행동하거나 나쁘게 행동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모든 집단에는 알파 암컷도 있는데 각각의 성에 알파가 오직 하나만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알파는 약자를 괴롭히는 우두머리가 아니라 집단을 조화롭게 잘 이끌어나가는 지도자라니
알파 암컷, 알파 수컷들은 정말 억울할 것 같다.
DNA에는 어떤 의도도 없다. 어떤 목적도 염두에 두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하는 유전자는
이기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않다. 마찬가지로 두 성을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양분하면서 영장류의 끔직한
상황을 드러낸 주커먼의 잘못된 이야기가 왜 대세가 되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정말 미국 소설가 토니 모리슨의 말처럼 악은 블록버스터처럼 청중을 끌어모으고 선은 무대 뒤에 숨어 있기 때문일까?
악은 경렬한 연설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선은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아서 세상이 요지경이 되는 것인지...
멍키힐의 비극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는데, 제인 구달이 주커먼의 원숭이 연구를 쓰레기라고 일축할 만했다.
보노보를 피그미침팬지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은데 피그미침팬지라는 말 자체가 난쟁이 침팬지인 양 오도하고 비하하는
측면이 많다. 유전적으로 침팬지와 보노보는 우리와 정확하게 똑같은 거리만큼 가깝다.
우리가 유인원 조상이 오늘날의 침팬지와 생김새와 생동이 비슷했다고 상정한 것은 초기의 탐험가들이 침팬지를 먼저 만났기 때문이다.
만약 탐험가들이 보노보를 먼저 만났더라면 보노보가 우리의 1차 모델이 되었을 것이다.
보노보는 너무 성을 밝히고 너무 평화적이고 너무 여성 지배적이어서 정말 사람들을 만족시키기가 어려웠을까?
아벨의 후손이 아닌 카인의 후손인 인류이기에 카인의 징표가 굳건한 지배적 가설이 더 사람들에게 편안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침팬지 중심의 유인원 이야기가 익숙하기에 보노보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어 너무나 신기하고
잘못된 실험으로 인해 각인된 잘못된 과학 지식들이 빨리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과
차이에 관해, 젠더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