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남은 시간 -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는 시대, 인류세를 사는 사람들
최평순 지음 / 해나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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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평순 PD의 다큐를 기회가 될 때마다 지인들에게 소개한다.

<하나뿐인 지구>, <인류세>, <여섯 번째 대멸종> 등을 통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이 많이 알려졌지만,

여전히 '에라, 모르겠다!'라며 그냥 외면하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슬픈 현실이다. 기후 위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생존이 달린 위기가 아니라

다른 여러 문제 중 하나로 인지되고 있는 이유는 자기중심성 때문이다.

알고리즘으로 더욱 견고해지는 확증편향은

기후 위기는 다른 나라의 일이나 내가 죽을 때까지는 벌어지지 않을

먼 미래의 일로 치부해버리게 된다.

그러나 2014년 <하나뿐인 지구>에서 경고한 빙하 홍수의 쓰나미는

7년 후 2021년 히말라야에서 진짜 현실이 되었다.

빙하가 녹으며 생기는 물로 인해 없던 빙하 호수가 생기고

있던 빙하 호수는 거대해지면서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해 터져버려

호수의 물과 흙이 쓰나미가 되는 빙하 홍수(GLOF, Glacial Lake Outburst Flood)는

인간이 만들어 낸 새로운 재해다.

제3의 극지라 불리는 히말라야는 인류세 현장이 이미 되어 버린 것이다.

기후 위기는 과학계의 기우가 아니라, 현실이고

당장 변하지 않으면 인류는 물론 지구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위험에 직면한 것이다.

착한 소비로 해결될 간단한 문제였다면 수십 년째 전 세계 기후과학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장기간에 걸쳐 IPCC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2022년 '기후 변화 대응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63개국 중 60위를 차지했다.

K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치솟은 현재 우리나라의 불편한 민낯이 아닐까?

착한 소비자 운동으로 외면하기에 낯 뜨거운 순위이다.

대참사를 직면하면서도 마주 보기를 거부하는 위기감의 만성화.

이에 대해 도나 해러웨이는 <트러블과 함께하기>에서

생각하기를 포기함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지적한다.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사유 무능력에 관한 한나 아렌트의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홀로코스트에 비견될 인류세 재앙에 맞서려면

악의 평범성에 비견될 만성화된 위기감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는 사유해야만 하는 것이다.

인류세 시대는 인간의 산업화의 결과로, 재난의 전조를 방기한 사회의 공동 책임이다.

무감각하기에 기후 재앙의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인류세 사전을 만드는 '언어현실사무국'에서

'지루한 재앙 Ennuipocalypse'이란 신조어를 만들었다.

세상의 종말이 드라마틱 하지 않고 일상적이고 평범할지도 모른다는

단어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코로나19를 겪으며 지구적 수준의 생태 위기의 심각성을

절실하게 인식하게 되었으니, 인간의 활동이 비인간 생명에 가하는 가해를 지각하고,

인간이 환경에 가하는 유해에 대해 윤리적 의식을 계속 일깨워야만 한다.

기후 위기, 에너지, 인구, 쓰레기, 식량 문제는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

인류세라는 거친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

자기중심성을 버리는 포스트휴머니즘의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

지구는 단순히 우리가 사는 땅이 아니라

항상성이라는 자기조절 능력을 가진 가이아이며,

그 가이아와 생명체 인류와 비인간들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한다.

마음이 많이 불편했는데 정치적으로, 세대로도, 젠더적으로도 분열이 심한 한국 사회에

지구의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해서 희망적이었다.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무해한 삶의 태도와 실천적 연대가 함께한다면 가능하다니 다행이다.

미세 플라스틱 문제가 이슈화되었기에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가 논의되었고,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지구적 위기를 인지하고 몸으로 실천하는 감수성이 짧게 끝나고 작은 규모로 이뤄지더라도

감수성이 바뀌었다는 것은 지구의 위기를 외면하지 않는 사회적 연대로 이어질 수 있다.

에드워드 윌슨 교수님께서 DMZ를 세계적인 공원, 보전 지역으로 만들면

미국 최고의 국립공원인 엘로스톤과 미국 역사를 상징하는 게티스버그의 조합

같은 곳이 될 거라고 하셨는데, 그 기회를 K부심 가득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제발 놓치지 않길 소망해 본다.



"책과 콩나무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에게남은시간 #최평순 #인류세 #여섯번째대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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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공부 - 논어에서 찾은 인간관계의 처음과 끝
조윤제 지음 / 청림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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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수록 어떻게 사람답게 살 것인가 고민하게 되는데,

결국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됨을 깨우쳐주는 <논어> 공부법 책이다.

동양 고전 50반 베스트셀러 작가가 논어에서 찾은 인간관계의 처음과 끝,

정수가 집약되어 있어 한자 무식자도 부담감 전혀 없이

두고두고 또 보고 또 보고 싶은 책이었다.

인은 애인, 사람을 사랑하는 것!

지식은 지인, 사람을 아는 것!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알고, 인자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만

기억해도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고 상처받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언제 어느 때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어 좌절할지 모르는 인생에서

배움은 삶의 장애물을 헤쳐나가는 도구와도 같다.

상황에 연연하지 않고, 부귀할 때는 절제와 겸손을,

고난에는 도전과 열정을 새기며,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논어>는 좋은 지침서의 역할을 한다.

사람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를 내 잘못이나 부족함이 아니라

내 일과 환경 때문이라고 여기면 불행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하는 일과 삶이 고단하고 느껴진다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니, 주어진 위치에서 소명과 의미를 찾아보아야 한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움이 없다면 위태로움을 잊지 않아야겠다.

매일 자신에게 "오늘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물으면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을 수 있다.

인간관계의 정수는 결국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좋은 습관으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주변 사람들과 조화를 추구하되 같음을 강요하지 않고 어울림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나 자신을 사랑하고 더욱더 잘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성은 비슷하지만, 습관은 차이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삶의 격을 높이는 <논어> 공부를 계속해나가야겠다.



"책과 콩나무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사람공부 #조윤제 #논어 #동양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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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르 곤충기 8 - 파브르와 손녀 루시의 매미 여행 파브르 곤충기 8
장 앙리 파브르 지음, 지연리 그림 / 열림원어린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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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도 우리처럼 물질적 곤경에 처한다.

자기 몫을 차지하려는 애벌레는

인간만큼 격렬하게 투쟁한다.

-장 앙리 파브르-

믿고 보는 파브르와 손녀 루시의 곤충기 8편은 매미 이야기이다.

여름의 끝을 알리며 맴맴~~장렬히 울다 죽음을 맞이하는

매미가 울 수 있게 되기 까지는 짧게는 4년, 길게는 17년을

땅속에서 애벌레로 보낸다고 한다.

도시에서도 나무만 있으면 얼마든지 매미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친숙하면서도 생활사는 전혀 몰랐는데,

역시 친절한 파브르 할아버지 덕분에 매미의 한평생을 알게 되어 보람찼다.

어미 매미의 배끝에는 1cm 정도의 양쪽이 톱처럼 되어 있고

한가운데에 송곳 같은 것이 있는 산란관이 있다.

양쪽의 톱이 무척 단단하고 위아래로 엇갈리게 움직이도록 되어 있어

딱딱한 나무껍질을 슥슥 자를 수 있다고 하니 신기했다.

산란관으로 나뭇가지 속을 찌르고 들어가 0.5~1cm 정도의 깊이로

구멍을 파고 10개 정도의 알을 낳고,

1cm 정도 더 위로 올라가 또 방을 만들고 알을 낳기를 반복해서

300~400개의 알을 죽을 힘을 다해 낳는다.

하지만 그 많은 알 중에서 살아남는 건 겨우 몇 개뿐이다.

왜냐하면 40개 정도의 방을 만들어 방마다 열 개씩의 알을 낳지만

매미알좀벌이 졸졸졸 따라다니며 어미 매미가 만든 방마다

자기 알을 낳기 때문이다. 매미알좀벌은 어미 매미가 열심히 파놓은

방에 딱 한 개의 알을 낳지만, 그 알이 일찍 깨어나

매미 알들을 다 먹어치운다니 안타까웠다.

어미 매미는 그것도 모르고 알을 낳느라 기운이 다 빠져

땅에 떨어져 죽고 만다니 참으로 애석했다.

음흉한 매미알좀벌로부터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매미는 전유충이 되고,

멋진 매미가 되기 위해 땅속으로 들어가 길고 긴 시간을 이겨내야만 한다.

집짓기 기술을 익히고 허물을 몇 번이나 벗어내며

끈질기게 지루한 땅속 생활을 버터 내고 땅 위로 올라와

또 한 번 껍질을 벗어내고 마침내 어른 매미로 거듭나게 되는

매미의 용기와 끈기로 가득 찬 인고의 시간이 경이로웠다.

그 오랜 기다림 끝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분은 과연 어떨까 너무 기뻤다.

매미의 가슴 아래쪽 뒷다리가 붙어 있는 곳에 비늘처럼 생긴 단단한 판

두 장이 배판이고, 그 밑에 소리를 내는 기관이 있다.

매미 등의 뒷날갯죽지 바로 밑에 양쪽으로 작게 튀어나온 등판 안쪽에 있는

발음막에 조갯살을 닮은 발음근이 연결되어 있는데,

발음근이 오므라들면 발음막이 당겨져서 소리가 나게 된다.

발음근이 1초 동안 약 100번이나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면서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는 아주 작다.

그 작은 소리가 배판에 위치한 공명실 안에 울려 큰 소리가 되기 때문에

죽은 매미라도 발음근을 하나 잡아서 당기면 소리가 난다니

다음 여름엔 죽은 매미도 다시 봐야겠다.

이미 죽은 매미라 공명실이 제 역할을 못해 큰 소리가 나지는 않지만

소리는 나고, 살아있는 매미를 잡아 발음막에 조그마한 상처라도 내면

소리를 낼 수 없게 된다는 알면 알수록 신기했다.



"책과 콩나무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파브르곤충기8 #파브르와손녀루시의매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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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떠나는 게 뭐 어때서 - 27살, 결혼 8개월 차 나는 배낭을 메고 여행을 시작했다 Collect 25
이소정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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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에 3천 명이 조금 안 되는 회사의 유일한 고졸로 대기업에 취업해서

어린 나이에 외제 차며 명품에 화려하게 살다

연간 퇴사율이 1%도 되지 않는 평생직장 대기업을 25세에 퇴사하고,

비혼주의라 외치다 26세에 돌연 결혼해서는

27세 결혼 8개월 차 남편을 두고 홀로 배낭여행을 떠난

멋진 여성의 여행기이다.

외로움은 꼭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고, 결혼했다고 꼭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 자신 안의 외로움과 공존하는 여행을 떠난

그녀가 용기 있고 멋있어 보였다.

톡파원 25시에서 밝은 에너지를 뿜뿜 하며 장기 배낭여행 중인 기혼자라

남다르다고,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기혼자의 혼자 여행이 웬 말이냐며

각종 악플 세례를 받았다니 놀랐다.

사랑하는 사람과 둘이 함께 하는 여행,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는 로망이 있지만

연인들의 취향이 늘 같지도 않건만, 사람들의 편견과 폭력적인 오지랖이 놀라웠다.

저자를 보며 모든 것이 정반대인 것이 서로에게 매력이 되어 잘 살아가는 부부들도

많은 걸 보며 난 재미있고 응원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저자는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가 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편안한 여행을 선호하고 긴 여행을 불편해하는 반면

저자는 온몸으로 깨우치며 여행하길 좋아했기에

서로에게 좋은 여행 파트너가 아니었다.

그런 두 사람은 서로의 성향을 존중해서 저자 혼자 여행하기를 선택했고,

남편 역시 그런 부인을 응원하여 서로 존중하며 혼자 & 같이의 여행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회사 생활을 하며 정해진 틀에 박혀 수동적으로 일하는 삶에 익숙해지고

강제로 타인과 비교하며 자신을 좀 먹이며 혼자 하는 모든 것을 잊어가던 저자가

회사를 그만두고 결혼을 하고 진정한 홀로서기를 위해

장기 여행을 떠났으니,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어떻게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멋있었다.

특히 저자의 여행 원칙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었다.

이때부터 내 여행에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 번째는 늘 새로운 선택을 할 것.

두 번째는 첫 번째 원칙을 따를 것.

p.10

첫 마라톤이 무려 킬리만자로 국제 마라톤이라는 저자의 모험 정신과,

아프리칸 흥으로 가득 찬 마라톤 현장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신이 났다.

출발선에서 정렬을 가다듬으며 스트레칭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없이 춤추며 하이파이브하고 엄청난 리듬에 몸을 맡기며

저마다의 속도로 달리며 서로를 응원하는 마라톤이라니 너무 좋았다.

생면부지이지만 환하게 웃어주며 지금 여기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환대하고 받아들이며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것을

가슴 깊이 각인시켜주는 사람들의 다정함에 뭉클해졌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코스에서 배려심 깊은 포터 수잔을 만나

길잡이가 앞장서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위험한 길이 아니라면 바로잡아주지 않고 목적지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저자가 선택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항상 존중해 주는 포터의 행동은

길잡이와 리더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해주었다.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에게 저자의 여행은 그들의 일상이다.

사람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 자체가 여행이 되면서

여행이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처음 꿈꿨던 낭만적인 여행과는 다른 걱정들이 생겨나는 시점이 온다.

여행은 행복을 위한 도피처가 아니고

어느 곳이든 삶은 치열하게 진행 중이니,

장기 배낭여행을 떠났다고는 해도 여행은 짧고 일상은 길다.

일상으로 돌아갈 용기를 얻기 위해 언젠가 끝날 여행을 또 하게 된다는

그녀의 일상 또한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잘 흘러가길 응원한다.

"책과 콩나무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혼자떠나는게뭐어때서 #이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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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
김준녕 지음 / 고블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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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한국 과학 문학상 장편 대상 수상 작가 김준녕 작가의 첫 SF 소설집이다.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살아가지만,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이들을

상상하며 위안 받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들을 해결하지 못했을 때의

미래의 지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블랙 코미디 같기도 하고, 철학적 우화 같기도 하여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다면 진짜로 펼쳐질 것 같은,

전혀 낯설지 않는 디스토피아를 들여다본 것 같아

마음 한편 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우주선 외벽을 수리하는 일로 입에 간신히 풀칠하면서

우주 방사선에 심하게 피폭을 당해

딸 상아에게 비정상적인 유전 형질을 물려주게 된 부부와

그들을 지켜보는 친구의 이야기인 <경매>는

가난을 대물림하는 지금의 모습이 떠올라 착잡하였다.

사랑에 빠진 절친 상욱에게 결혼해서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 아이도 우리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자신의 우려대로

상아의 부모들은 오롯이 딸을 치료하기 위해 쉬는 날도 없이

일만 하다 우주로 사라져 보리고 상아는 홀로 남았다.

상아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기억 컬렉터에게 기억을 팔았기 때문에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는 상아를 친딸처럼 키운 남자는

상아의 기억을 찾아주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팔기로 한다.

기억이 온전한 사람만이 대학에 갈 수 있는 세상에서

상아가 자신들처럼 녹슨 우주선의 때를 벗기다 소행성에 맞아 죽어버리는

암울한 미래를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어 기억 재건술을 위해

상아에 대한 기억을 파는 남자의 이야기는 기억 컬렉터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생명체에게 있을 수 있는 원초적인 이야기라 여운이 많이 남았다.

먼 미래에도 태양계 행성 어딘가의 토지 증서를 손에 쥐고

태양 폭발이 자신의 토지에 미치지 않기를 소원하며

부동산 투자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씁쓸하기도 하고,

블랙홀 충돌 사고를 해결하기 위해 외계인 보험사 직원과 협상을 하며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약점을 잡아내기 위한 일개 보험사 직원의

활약 덕택에 지구가 사라지지 않게 된 이야기 등

먼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현재 우리 사회의 일들과 유사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특히 개인 회생이나 파산 같은 채무 조정 없이

죽지 못하고 끔찍한 굴레 속에서 빈을 갚으며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빛보다 빠른 빚>은 끔찍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빚을 안고,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아 죽지도 못하고 빚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기억을 삭제하고 복구하길 반복하며 영원히 일하게 되는 미래라니

상상만으로도 오싹했다.

인류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우리의 선택들이 또 어떤 선택들을

만들어나가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하는 SF 소설들이었다.


"책과 콩나무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0번버스는2번지구로향한다 #김준녕 #한국과학문학상 #SF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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