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 질병, 돌봄, 노년에 대한 다른 이야기
김영옥 외 지음,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기획 / 봄날의책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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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돌봄노동, 돌봄정책, 돌봄사회 이런 말이 떠돌 때 무의식적으로 거부감이 든 거 같다. 내가 돌봄을 잘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서, 더 깊게는 내 자식조차도 성실하게 돌보지 않았다는 죄의식이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돌봄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괜스리 마음이 불편했다. 이 책은 돌봄에 대한 나의 '생각없음'을 완전히 깨트려주었다. 여지껏 나는 돌봄에 대해 '생각없을 수 있는' 운 좋은 상황에 있었던 것이다.

「돌봄은 ‘개인’이라는 개념에 기초한 고전적인 자유주의적 계약 그 이상이다. 개인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 개인들 사이의 돌봄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돌봄관계 속에서만 비로소 개인은 살아갈 수 있다.」 _p46~47

인간의 기능이 아니라 인간의 취약성에 기반한 사회라면 돌봄은 당연한 전제가 된다는 걸 미처 생각지 못했다. 나 역시 사회의 기반은 기능하는 인간에 의한 것이라 인식했던 것 같다. 취약한 인간들의 돌봄관계가 사회의 기반이라는 말이 머리를 때렸다. 돌봄은 선택이나 호불호의 문제도 아니고 재능의 여부에 따른 노동도 아니구나. 돌봄과 돌봄관계는 인간에게 필연적인 것이구나.

‘돌봄관계’라는 말이 새로웠다. 아픈 사람과 아픈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 있다고만 생각했지 그 두 사람 또한 인간관계의 한가지라 생각지 못했다. 어쩌면 이것은 정상성에 익숙해 있는 인식 탓인지 모른다. ‘인간관계’라고 할 때 ‘인간’이란 ‘정상적인 인간’으로 전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픈 사람은 아파서, 돌보는 사람은 돌보느라 힘들다고만 생각했지 그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만들게 되는지, 평등한 관계인지 아닌지 하는 문제는 전혀 염두에 없었다. 질병과 돌봄의 경험이 내겐 그만큼 희미한 것이었다.

앞으로 내게 질병으로 인한 돌봄관계가 생긴다면? 그 만약을 상상하려 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픈 사람이 될지, 돌보는 사람이 될지, 둘 중 하나는 될 텐데. 둘 다 될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어떤 돌봄관계를 만들게 될까 문득 두렵다. 그래도 이런 문장에 감탄하고 위안을 얻는다.

「각자, 혼자 알아서 하는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짐이고 힘이다.」 _p80

중년의 나이가 되어 노화를 느끼는 동안  청년들을 보면 ‘젊어 좋겠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나 역시 건강과 체력을 젊음의 상징으로 여긴 것이다. <젊고 아픈 사람들의 시간>은 내가 얼마나 ‘젊고 아픈 사람’들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그들의 경험을 통해 직선적이지 않은 시간, 생애주기의 허구, 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대해 배움을 얻는다. “낫거나 죽거나”의 이분법이 아닌 다른 길을 사유하도록 하는 '젊고 아픈 사람'들을 기억해야겠다.

젊음이 건강으로 상징된다면 늙음은 병듦과 동일시된다. 늙음에 대한 두려움 중 가장 큰 것은 치매를 앓을 가능성이다. 누구나 늙어가는 동안 치매를 걱정하고 피하고 싶어 하듯이 나도 그렇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주변에 치매를 앓는 부모를 둔 경우도 보지만 내게 닥치기 전까지는 그저 내 부모는 아니길 하고 바랄 뿐이다. 그래서인지 치매라는 주제를 궁금해하거나 공부해본 적이 없다.

치매를 노화의 불행한 증상쯤으로만 여긴 내게 <치매,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는 치매에 대한 다른 관점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치매 환자의 모든 행동을 증상으로 환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치매를 앓아도 그간 몸에 지닌 습속이 다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치매 환자의 제스처에 감응하는 돌봄과 돌봄관계가 필요하다는 것. 물론 쉽지 않겠지만 다른 관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덜 두렵다.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다. 하지만 이 운명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서로를 돌보기 힘든 지독한 사회에서 늙고 병드는 우리에게 필요한 관점이 무엇일지 이 책이 제공해주는 듯하다. 늙어가는 채로, 아픈 채로 사는 것이 삶의 본질에 더 가깝다. 늙음과 질병은 죽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이다.

「나는 늙어간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_p268.

이 문장 옆에 한 문장을 덧붙이고 싶다. ‘나는 아프다. 그러므로 나는 살아 있다.’ 

아프고 늙어가는 우리, 서로에게 짐이 되고 힘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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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방문
장일호 지음 / 낮은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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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보고 남성인줄 알고 읽기를 미루다가 여성인 걸 알고나서 읽었다. 나의 편견이란. 글이 솔직하고 재밌고 생각거리도 많고. 책을 인용한 에세이라는 점이 신선하다. 시사인 장일호 기자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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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 개정판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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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향은 아닌 이야기들. 기발함과 황당함 사이 어디쯤? 뭔가 은유나 상징을 담은 건 알겠는데 감흥이 일어나지 않더라. 책장은 잘넘어간다 옛날 이야기 듣듯이. 게중 ‘머리‘와 ‘즐거운나의집‘이 인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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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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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 때문인지 번역 때문인지 힘든 읽기였다. 저자 자신을 비롯해 여성이 겪는 섭식장애 등의 문제를 사회문화적인 조건과 여성의 욕망에 관련해 풀어내며, 여성의 주체적 행위가 가능해진 한편 여전히 욕망의 대상으로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우려해 변화가 계속되어야함을 말하는 듯하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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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사람들 - 인간 악의 치료에 대한 희망 보고서, 개정판
M. 스콧 펙 지음, 윤종석 옮김 / 비전과리더십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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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심리학이 가능할까? 악한 자의 대다수는 정신치료 혹은 심리치료의 장에 나타나지 않을텐데? 악의 원인이 게으름과 나르시시즘 뿐이겠는가. 사탄보다 사회를 연구하는 게 맞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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