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
고정순 지음 / 만만한책방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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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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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은 유배지에 머물렀지만, 마음과 배움까지 가둘 수는 없었다.

역사 속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다 보면 때로는 업적보다 그 업적을 만들어 낸 사람의 마음에 더 오래 시선이 머문다. 어떤 시간을 견뎌 냈는지, 누구를 그리워했는지, 무엇을 포기하지 않았는지를 알고 나면 역사책 속 이름은 비로소 한 사람의 얼굴을 갖게 된다.

고정순 작가의 그림책 《흑산》은 정약전과 정약용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통해 그런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조선 후기 실학을 대표하는 두 형제가 정치적 격변 속에서 서로 다른 유배지로 흩어지고, 다시 만날 수 없는 거리에서 편지로 마음을 나누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애틋하다. 그러나 이 책이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고립과 상실 속에서도 인간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1801년 신유박해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서로를 아끼고 학문적으로도 깊이 교류했던 형제에게 이별은 세상의 이치를 함께 고민하고 새로운 지식을 나누던 동반자를 잃는 일이었을 것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정약전에게 흑산이라는 이름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낯선 섬과 검은 바다, 육지와 단절된 환경은 유배라는 현실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에게 바다는 두려움의 공간인 동시에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공간으로 변해 간다.

🔖“호기심이 많고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나에게 흑산의 바다는 가장 커다란 책이 아닐까 싶다.”

이 문장을 읽으며 배움이란 반드시 좋은 환경이나 충분한 기회가 주어져야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유롭게 배우고 탐구할 수 있는 환경은 중요하다. 그러나 자신이 처한 현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같은 공간도 감옥이 될 수 있고, 세상으로 향하는 창이 될 수도 있다.

정약전은 자신이 원해서 흑산도에 간 것이 아니었다. 유배는 분명 부당하고 가혹한 현실이었다. 그렇다고 그 시간을 온전히 절망으로만 채우지는 않았다. 그가 바라본 바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은 관찰하고 기록해야 할 지식의 대상이었다.

이 대목에서 환경의 한계와 삶의 가능성을 구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바꿀 수 없는 순간에도 그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까지 완전히 빼앗기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정약전은 바다를 통해 자신이 머무는 장소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했고, 그 발견은 훗날 [자산어보]라는 결과물로 이어졌다.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흑산도 주변의 해양생물을 관찰하고 정리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의 특별함은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과 지식을 살피고, 생물의 특징과 쓰임을 관찰하며, 당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흑산》은 이러한 학문적 성취를 딱딱한 역사적 사실로 전달하기보다 한 사람의 일상과 감정을 통해 보여 준다.

정약전은 물고기를 관찰하고,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생물들을 비교한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호기심으로 보일 수 있는 일이 그에게는 중요한 탐구가 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만으로 세상을 판단하지 않고,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정약전이 바다 생물의 특징을 알아내는 일이 섬사람들의 생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대목은 실학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학문이 학문 자체의 권위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삶에 쓰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지식의 진정한 가치는 얼마나 많이 아느냐보다 무엇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눈앞의 대상을 충분히 관찰하고, 서로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듣고, 사실과 소문을 구분하는 태도는 여전히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약전이 바다를 바라보며 배운 것은 물고기의 생김새와 이름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그리고 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래 들여다보아야 하는지도 배웠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산어보]는 지식의 기록인 동시에 한 인간이 절망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선택한 삶의 방식으로 읽힌다.


《흑산》에서 가장 애틋하게 다가오는 것은 형제 사이에 오가는 마음이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서로를 걱정하고, 일상의 작은 일을 전하고, 학문에 관한 생각을 나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상대가 무엇을 궁금해할지 생각하고, 자신이 발견한 것을 가장 먼저 들려주고 싶어 한다.

다음 문장은 그 마음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신기한 것을 보면 가장 먼저 나에게 보여 주던 너였는데 네가 곁에 없는 지금에서야 그 마음을 이해하겠구나.”

유독 오래 마음에 남는 문장이었다.
좋은 것을 보았을 때, 재미있는 일이 생겼을 때,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자신의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해 줄 것 같은 사람을 마음속에 두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정약전에게 동생은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함께 성장하고 공부하며 쌓아 온 시간은 서로 다른 유배지에 놓인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할 수 없게 된 순간,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관계의 소중함이 더욱 또렷해졌을 것이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내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언젠가는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아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서 마음을 뒤로 미룬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예상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형제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리움은 함께했던 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그 사람과 여전히 연결되어 있고 싶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약전은 편지를 통해 동생에게 자신이 잘 지내고 있다고 알리고, 흑산의 풍경과 바다 생물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안에는 형으로서 동생을 걱정하는 마음도 있고, 학문을 함께 나누던 동료를 향한 마음도 있다. 자신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동생을 안심시키려는 태도에서는 애틋함과 함께 인간적인 다정함이 느껴진다.

편지는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을 물리적으로 만나게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서로의 하루를 알게 하고, 마음속 생각을 나누게 하며,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되살려 준다. 유배지에서 편지는 두 사람을 이어 주는 작은 다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그 다리는 이어질 것이다. 수백 년 전에 쓰인 마음을 지금 읽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사람의 처지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도 그리움과 외로움, 이해받고 싶은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형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바다 생물을 관찰하고 기록했으며, 동생 정약용은 강진에서 학문과 저술을 이어 갔다. 두 사람은 같은 정치적 사건으로 유배되었지만 각자가 마주한 환경과 일상은 달랐다. 그럼에도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이 처한 현실 속에서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섬마을 서당은 특히 의미 있게 다가온다. 정약전은 자신만의 연구에 몰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칠 공간을 마련한다. 정약용 역시 강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학문을 이어 갔다. 두 사람에게 배움은 자신의 지식을 쌓는 일이면서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이기도 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배움이란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세상에서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보다 조금 더 넓게 이해하기 위해 배우는 일, 자신의 지식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일도 충분히 의미 있다.

누군가는 배움의 적절한 시기를 놓쳤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가진 조건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포기한다. 나 역시 무엇인가를 시작하기에 늦었다고 느끼거나, 지금의 환경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정약전과 정약용의 삶을 떠올리면 배움에는 하나의 정해진 장소나 시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궁궐과 관직에서 멀어졌다고 학문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고, 원하는 곳에 머물 수 없다고 해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가능성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부당한 현실은 부당한 현실로 남아 있지만, 그 안에서도 인간은 배우고 관계를 맺으며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갈 수 있다는 데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가능성이 아닐까.


《흑산》은 정약전의 편지 형식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동시에 흑백 연필화로 독자를 흑산의 세계에 데려간다. 고정순 작가는 [자산어보]에 기록된 해양생물과 흑산의 풍경을 자신만의 흑백 그림으로 재현했다. 원작의 글에 그림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림책 《흑산》은 글로 기록된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흑백이라는 표현 방식이 이야기의 정서와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화려한 색채가 없기에 검은 바다의 깊이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의 움직임, 외로운 섬의 풍경을 천천히 바라보게 만들었다.

검은색은 때로 두려움과 상실을 상징하지만, 이 책에서 흑산의 바다는 수많은 생명이 있고, 어부들의 노동이 있으며, 아이들의 배움이 있고, 정약전의 관찰과 발견이 있다.

처음에는 자신을 가두는 공간처럼 느껴졌던 바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지식을 만나는 세계가 된다는 점에서, 바다는 정약전의 내면을 비추는 풍경처럼 읽힌다.

고정순 작가가 정약전의 삶에 주목한 이유도 이 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의 후반부에 실린 작가의 편지는 정약전의 유배와 작가 자신의 삶을 연결한다. 작가는 아픈 몸으로 인해 자유로운 이동과 경험에 제약을 받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배움의 길을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두 사람의 삶을 동일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약전이 겪은 정치적 유배와 작가가 겪는 신체적 제약은 서로 다른 경험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한계 앞에서도 배움과 창작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자 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삶은 서로를 비추는 듯하다.

정약전은 바다를 관찰하며 글을 썼고, 고정순 작가는 그가 바라보았을 세계를 연필로 그려 낸다. 그렇게 한 시대의 학문과 또 다른 시대의 예술이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림은 글만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외로움과 생명력을 함께 전하는 또 하나의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인어에 관한 이야기다.
흑산의 바닷가에는 인어를 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사람들은 그 이야기에 여러 의미를 덧붙인다. 정약전은 자신이 직접 확인하지 못한 이야기를 사실로 단정하지 않고, 소문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퍼져 나가는지 생각한다.

이 장면은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학자의 태도와 연결된다. 눈앞에 나타난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실제로 관찰한 것과 전해 들은 것을 구분하고,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에 무조건 기대지 않는 자세다.

정약전이 바다 생물을 자세히 살피고 기록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전에 그 근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호기심은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게 하는 출발점이지만, 호기심이 곧 믿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관찰과 검증, 그리고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가 함께할 때 비로소 이해는 깊어진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 보는 일과도 닮아 있다. 내가 직접 가 보지 못한 곳의 풍경을 만나고, 살아 보지 못한 시대의 고민을 이해하며,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의 생각을 따라가 볼 수 있다. 책은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혀 줄 수 있다. 지금의 환경이 내 삶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순간에도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줄 수 있다.

정약전이 흑산의 바다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듯이 고정순 작가는 책을 통해 정약전을 만났고, 그 만남을 다시 그림책으로 만들어 독자에게 건넸다. 그렇게 한 사람의 배움이 다른 사람의 배움으로 이어지고, 한 사람의 기록이 또 다른 사람의 창작을 이끌어 낸다.

이 연결이 참 좋았다.

배움은 혼자 시작할 수 있지만 언제나 혼자만의 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내가 알게 된 것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받아들이며, 또 다른 이야기가 탄생한다.

우리가 남기는 모든 기록이 업적이 될 필요는 없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한 문장,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적어 둔 기록, 다른 사람과 나눈 작은 배움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진 것을 세상과 연결하려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정약전은 흑산의 바다를 관찰하며 자신의 시간을 채웠지만, 그 바다를 바라보며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멀리 떨어진 동생이었다. 새로운 생물을 발견하면 보여 주고 싶었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면 함께 웃고 싶었으며, 자신의 생각을 이해해 줄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그의 기록은 차가운 지식에 머물지 않고 한 인간의 삶을 품은 이야기로 다가온다.


익숙한 일상이라는 이유로 주변의 세계를 무심히 지나치고 있지는 않을까.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일을 너무 쉽게 미루고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내가 원하는 환경에 놓이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금 할 수 있는 배움까지 포기하고 있지는 않을까.

《흑산》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때로 삶은 우리를 원하지 않는 곳에 데려다 놓는다.
계획이 어긋나고, 관계가 멀어지고, 몸과 환경이 마음처럼 따라 주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 잃어버린 것만 바라보느라 지금 곁에 남아 있는 가능성을 놓치기도 한다.

정약전의 삶이 내게 전해준 것은 고난이 사라지지 않는 순간에도 세상을 관찰하고, 배우고,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삶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쌓여 한 사람만의 기록이 되고, 훗날 다른 사람에게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검은 바다라고 해서 그 안에 빛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약전에게 흑산의 바다는 처음부터 친숙한 세계가 아니었다. 두려움과 외로움이 깃든 장소였지만, 그곳을 오래 바라보고 배우는 동안 새로운 생명의 세계가 열렸다. 동생을 향한 그리움은 편지가 되었고, 바다를 향한 호기심은 [자산어보]가 되었으며, 그 기록은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 고정순 작가의 그림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 사람의 유배가 다른 사람의 배움이 되고, 오래전 형제의 편지가 오늘의 독자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 책이 가진 힘은 어쩌면 이런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지금의 삶에서 내가 할 수 없는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고 싶다. 당장 상황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배우는 마음을 놓지 않고,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미루지 않으며, 익숙한 풍경 속에서도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몸이 머무는 곳이 삶의 전부는 아니며,
지금의 한계가 앞으로의 배움까지 가두지는 않는다.

그 사실을 일깨워 준 《흑산》.
검은 바다를 건너온 형제의 그리움은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속에서
또 다른 길이 되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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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oroo333 2026-10-18 0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한 글 감사합니다.
 
해고된 김에 교토 - 조각난 자존감을 모으는 시간
노푸름 지음 / 상록의서가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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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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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출근하고, 주어진 일을 해내고,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애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 올리다 보면 어느새 직업은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을 넘어 나를 설명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어디에서 일하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얼마나 인정받는지가 한 사람의 능력과 가치를 말해 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자리를 잃는다면 어떨까. 그동안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사실까지 부정당한 기분이 들지는 않을까.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마음보다, 더 이상 자신을 소개할 말이 없다는 사실이 먼저 서글퍼질지도 모른다.


《해고된 김에 교토》는 회사에서 해고된 한 사람이 교토로 떠난다. 언뜻 보면 실직을 계기로 떠나는 여행 에세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여행보다 더 깊은 질문이 자리하고 있다. 자신이 무엇으로 가치를 증명해 왔으며, 그것을 더는 증명할 수 없게 되었을 때에도 자신을 믿을 수 있을지.

해고는 고용관계의 종료라는 말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매일 출근하던 곳이 사라지고,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이 흔들리고, 미래를 위해 세워 놓았던 계획들이 한순간에 불확실해진다.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타인의 시선보다도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순간일 것이다. 이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자신의 능력과 노력이 갑자기 의심의 대상이 되고,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잘못된 선택의 연속이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해고된 김에 교토》. 그래서 제목에 해고라는 사건에 여행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순간, 무너진 일상에 작은 틈이 생긴다. 삶에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들이 있다. 아무리 성실하게 준비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 최선을 다했는데도 인정받지 못하는 일,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끝나 버리는 관계와 기회가 있다.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원인을 찾고, 잘못을 돌아보고, 다음에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 애쓴다. 물론 반성과 개선은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실패를 자신의 부족함으로만 해석하기 시작하면 삶은 끝없는 자기 심사가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 심사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데 너무 익숙하다. 학교에서는 성적을, 직장에서는 성과를, 사회에서는 지위와 경제력을 통해 자신이 어느 정도의 사람인지 확인받는다. 그러다 보면 평가받지 않는 시간조차 불안해진다. 쉬면서도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하루를 보내면 괜히 죄책감이 든다.

그런 우리에게 저자는 여행이라는 공간을 통해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이외에 낯선 길에서 헤매고, 계획에 없던 일을 만나고, 예상하지 못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기도 하다. 때로는 제대로 보지 못한 풍경이 아쉽고, 사소한 실수 하나에 하루의 계획이 어그러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여행은 실패한 하루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길을 잃었기 때문에 발견한 골목이 있고, 계획이 틀어졌기 때문에 오래 기억하는 순간이 생긴다.

그렇다면 왜 일상에서는 같은 실수를 그렇게 쉽게 실패라고 단정하는 걸까.
낯선 곳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소동과 유쾌한 에피소드들은 잠시 웃을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주지만, 여행이 끝난 뒤에도 현실은 그대로 남아 있다. 취업의 어려움과 면접의 긴장,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과 마주했을 때 되살아나는 감정까지. 마음은 여행 가방처럼 간단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해고는 내 자리를 지워 버렸지만, 사람까지 지워 버리지는 못했다.”

직장은 삶에서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 오랜 시간 쌓아 온 경력과 능력을 펼치는 장소이자,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직장을 잃는 일이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다. 상실의 크기를 가볍게 여기거나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직장이 나의 일부라는 사실과 직장이 나의 전부라는 믿음은 다르다.
이 문장이 건네는 위로는 현실을 부정하는 낙관이 아니다. 직장을 잃었으니 이제 자유롭게 살면 된다는 식의 가벼운 격려도 아니다. 잃어버린 것의 무게를 인정하면서도, 그 상실이 나라는 사람 전체를 설명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자는 제안이다.

이 태도가 실직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험에 떨어진 사람, 오랫동안 준비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은 사람, 관계의 끝에서 자신을 탓하는 사람, 남들보다 뒤처진 것 같아 조급해하는 사람에게도 같은 생각이 필요하다.

지금 잃은 것은 무엇이며, 그 상실 때문에 내가 가진 모든 것까지 잃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실패는 하나의 사건이지, 사람에게 붙여 놓을 영구적인 이름이 아니다.


책 속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교토의 오래된 공간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다.
100년 전통의 스마트 커피, 낡은 목조 가옥을 살린 블루보틀 교토, 전통 향과 종이를 다루는 큐쿄도, 지역의 디자인과 생활문화를 보여주는 디앤디파트먼트 등. 이곳들은 오래된 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어 갈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공간들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오래되었다는 것은 종종 뒤처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낡은 것은 새것으로 교체하고,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개선하고, 지금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된 건물은 낡았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허물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채 새로운 쓰임을 얻을 수도 있고, 과거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지금의 삶과 공존할 수도 있다.

교토의 공간들이 보여주는 매력은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꾸는 데 있지 않고, 이미 존재하는 것의 가치를 발견하는 데 있다.


저자가 교토에서 마주하는 공간과 사람들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쓸모가 다했다고 여겨지는 것에도 새로운 역할이 생길 수 있고, 완벽하지 않은 것에도 고유한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짧지만 마음에 맴도는 문장이다. 우리는 부족한 것을 발견하면 가장 먼저 채우려 한다. 남들보다 부족한 능력, 부족한 돈, 부족한 경험, 부족한 성취를 헤아리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애쓴다. 물론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결핍을 제거해야만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삶은 끝나지 않는 보충 수업이 되고 만다.

결핍은 무조건 채워야 하는 빈칸이 아니라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려주는 신호일 수 있다. 실패를 경험했기에 내가 그동안 무엇에 지나치게 의존했는지 알게 될 수 있고, 익숙한 역할을 잃었기에 그 역할 바깥에 존재하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전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된 순간이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결핍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면, 그 안에서도 다른 길을 찾아볼 여지는 남아 있다.

이 책의 유쾌함 역시 그런 여지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공항에서의 뜻밖의 만남, 낯선 식당에서 벌어지는 소동, 노래를 부르며 느끼는 소박한 즐거움, 여행 중 휴대전화 배터리가 나가는 난감한 상황까지. 여행은 멋진 풍경과 감동적인 깨달음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당황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런 장면들이 해고라는 무거운 주제와 어울린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삶이 흔들릴 때,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웃음이 상처를 없애 주지는 않지만, 상처가 삶의 모든 장면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작은 틈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잠깐 웃었다고 해서 덜 힘든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루 동안 즐거웠다고 해서 내일의 불안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즐거움은 필요하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남아 있어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노래를 듣고, 낯선 골목을 걷고, 누군가와 다정한 말을 나눌 수 있다는 것. 그런 사소한 경험들이야말로 삶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증거일 수 있다.


🔖“저는 실패 컬렉터인데, 이만하면 훌륭한 컬렉션이죠.”

실패를 컬렉션에 비유하는 시선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컬렉션은 각기 다른 물건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기도 한다. 실패 역시 마찬가지다. 실패한 경험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고 무엇을 견뎌 왔는지 돌아볼 수는 있다.

실패를 컬렉션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그저 실패한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자신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겠다는 태도에 가까울 것의 의미일 것이다. 실패를 겪은 자신에게도 다시 시도할 기회를 허락하는 것,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자기 존중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일의 의미이기도 하다. 일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사회와 연결되는 방식이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성취감을 얻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일을 잃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은 자신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누구에게 필요한 존재인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까지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일 것이다.


사람은 종종 쉬기 위해서도 이유를 필요로 한다. 충분히 일했기 때문에, 아파서, 지쳐서, 혹은 다음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휴식마저 미래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투자로 설명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반드시 무언가를 생산해야만 하루를 살아갈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무런 성과도 남기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직 알지 못하는 시간,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시간,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 있다. 그런 시간까지 실패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언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해고된 김에 교토》가 건네는 위로는 당장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재촉하지 않는다. 모든 경험에서 교훈을 얻으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지금의 상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상처가 앞으로의 삶을 전부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책을 덮고 나면 교토의 풍경보다도 그 풍경을 바라보던 시선이 오래 남을 것 같다.
낡은 공간을 무조건 허물지 않고 새로운 쓰임을 찾아가는 태도, 계획대로 되지 않은 여행에서도 작은 즐거움을 발견하는 마음, 실패를 없애기보다 실패한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방식.

남들이 정한 속도에 맞추지 못하면 뒤처졌다고 생각하고, 계획에서 벗어나면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고 판단하며,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결론 내리지는 않았을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과거의 자신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 완벽하게 회복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여전히 불안하고, 때로는 자신이 없고, 실패의 기억이 남아 있더라도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선택부터 시작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 괜찮아질 것이라는 확신보다, 아직 괜찮지 않은 자신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낯선 도시의 골목에서, 우연히 마주친 친절에서, 계획에 없던 웃음에서, 오늘 하루를 무사히 건너온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에 찾아올지도 모른다.

해고는 한 직장에서의 끝일 수 있지만, 한 사람의 가능성까지 끝내는 사건일 필요는 없다. 실패는 삶의 한 장면일 수 있지만, 그 장면만으로 전체 이야기를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책을 덮으며 나 자신에게도 속삭여본다.
'아직 내게 남아 있는 것들을 너무 쉽게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지금의 나를 함부로 포기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삶의 페이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책 전체를 덮어 버릴 필요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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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읽는 힘, 사기열전 - 2천 년 전 고전에서 배우는 70가지 인생 수업
김태현 지음, 사마천 원작 / 리텍콘텐츠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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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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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없이 많은 선택 앞에 놓인다.
누군가를 믿어야 할지 의심해야 할지, 눈앞의 기회를 붙잡아야 할지 한발 물러서야 할지, 끝까지 버티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물러나는 것이 현명한지 고민한다. 때로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실패하고, 진심을 다했음에도 배신당하며, 능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좌절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문득 궁금해진다. 인간관계에서 반복되는 갈등과 권력 앞에서 드러나는 민낯, 성공한 사람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대가 달라지고 세상이 발전해도 인간은 왜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일까.

사마천의 [사기]를 김태현 작가의 시선으로 풀어낸 《사람을 읽는 힘, 사기열전》은 2천 년 전의 역사 속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인간관계와 조직, 성공과 실패, 선택과 후회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지나간 시대를 공부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지금의 나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마천의 [사기]가 오랜 세월을 넘어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왕과 장군, 재상과 유세가, 상인과 자객의 삶은 서로 다른 시대와 환경 속에 놓여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욕망과 두려움, 자존심과 신념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역사를 떠올리면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나 나라를 세운 영웅부터 생각하게 된다. 누가 전쟁에서 승리했고, 누가 권력을 차지했으며, 누가 시대를 바꾸었는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생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성공이라는 결과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사정이 존재한다.

뛰어난 능력을 지녔어도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해 무너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능력보다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으로 기회를 얻는 사람도 있다. 충성을 다하고도 의심받는 사람이 있고, 원칙을 지켰음에도 끝내 세상으로부터 보상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사기열전》의 매력은 인간을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단순하게 구분하지 않는 데 있다. 한 인물 안에서도 지혜와 어리석음이 공존하고, 용기와 오만이 맞닿아 있으며, 의리와 욕망이 충돌한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반드시 훌륭한 인격을 갖춘 것은 아니며, 실패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눈에 보이는 결과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그 사람이 처했던 상황과 선택의 배경, 그리고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진실을 놓치기 쉽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인 '사람을 읽는 힘'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사람을 읽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 보거나 타인의 약점을 이용하는 기술만을 뜻하지 않는다. 말과 행동 사이의 간격을 살피고, 그 사람이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 이해하며,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모습을 성급하게 단정하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사람을 보는 안목은 타인의 속내를 정확하게 알아맞히는 능력보다, 내가 보고 싶은 모습만 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PART 1과 PART 2에서 다루는 야망과 처세, 권력의 흥망은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강력한 동력이면서 동시에 위험한 함정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범저와 채택의 이야기에서는 복수와 성취의 끝에서 멈출 줄 아는 지혜를, 여불위의 이야기에서는 부와 권력의 관계를, 이사의 이야기에서는 야망이 파멸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이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성공을 이루는 능력과 성공을 지켜 내는 지혜가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때로 집요함이 필요하다. 부당한 상황을 견디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며, 기회가 왔을 때 주저하지 않는 용기도 필요하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은 뒤에도 계속 더 높은 곳만 바라본다면 어떨까. 처음에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던 욕망이 어느 순간 삶 전체를 지배하는 목적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복수라는 감정에 관한 문제다.
억울한 일을 겪으면 상대방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 있다. 부당한 일을 바로잡고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의지는 때로 다시 일어설 힘이 된다. 그러나 복수에 성공하는 것과 그 이후에도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 책의 범저와 채택 이야기는 바로 그 경계에서 내가 지금 붙잡고 있는 것이 정당한 목표인지, 아니면 과거의 상처가 만들어 낸 집착인지 스스로 구별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모든 싸움에서 이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언제 싸움을 끝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개인의 삶에서도 이 질문은 유효하다.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지나치면 타인의 평가에 매달리게 되고,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이 지나치면 이미 얻은 것의 가치를 잊기 쉽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정당함을 증명하려다 정작 자신이 지키려던 삶을 놓치는 일도 생긴다.

절제란 욕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나를 어디까지 끌고 가도록 허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능력일 것이다.


PART 3의 리더십과 용인, PART 4의 신념과 의리를 읽으며 생각하게 되는 부분은 인간관계에서 신뢰가 갖는 무게다.

대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실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실력만으로 모든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능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어야 재능이 세상에 드러나기도 하고, 어려운 순간에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어야 다시 일어설 수 있기도 하다.

관중과 포숙아의 관계를 다루는 이야기가 오랫동안 회자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당장 보여 주는 성과만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때로는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안목이 그 사람 자신의 능력만큼이나 중요하다.

반대로 능력과 신뢰가 언제나 함께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뛰어난 인재를 곁에 두고도 의심 때문에 그를 잃을 수 있고, 오랫동안 쌓아 온 우정도 자존심과 이해관계 앞에서 무너질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현대의 조직에서도 낯설지 않다.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제도와 규칙만이 아니다. 구성원들이 서로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어 있는지, 성과를 나누는 과정이 공정한지에 따라서도 조직의 방향은 달라진다.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유능한 사람을 알아보는 눈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태도일 것이다. 개인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를 무조건 칭찬하는 사람보다 나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필요한 순간에는 솔직하게 말해 주는 사람이 더 소중할 수 있다.

다만 신뢰한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무조건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과 잘못된 행동을 용인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진정한 신뢰는 서로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관계에서 자란다.

책을 읽고 사람을 읽는 힘이란 누구와 함께해야 하는지 판단하고 자신 역시 누군가에게 믿을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PART 4의 신념과 의리, PART 7의 인생과 허무에서 마주하게 되는 질문은 조금 더 묵직하다.

올바르게 살아가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정직한 사람은 결국 인정받고, 원칙을 지킨 사람은 언젠가 보상받을 수 있을까.

사람은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그래야 힘든 순간에도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부정한 사람이 이익을 얻기도 하고, 정직한 사람이 손해를 보기도 하며,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킨 사람이 오히려 외면받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사마천의 기록은 쉽게 위로하거나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책 속 백이 열전의 주제인 '하늘의 도는 과연 공평한가'라는 물음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선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결과와 상관없이 지켜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인가를 묻게 한다.

만약 정직함이 언제나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직할 필요가 없을까. 신의를 지키는 일이 때로 손해가 된다면 약속을 가볍게 여겨도 되는 것일까.

이 질문 앞에서 결과와 가치의 차이를 생각하게 된다.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중요하지만, 결과가 좋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과정까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해서 옳은 선택의 의미가 전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물론 원칙을 지킨다는 이유로 자신을 끝없이 희생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감내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신념에도 현실을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하고, 의리에도 자신을 지키는 경계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은 가치가 있다는 사실은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세상이 반드시 공정하리라는 믿음보다, 공정하지 않은 순간에도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태도가 더 현실적인 지혜일 수 있다.

이것이 고전을 읽으며 얻을 수 있는 깊은 질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PART 6의 경계인의 초상은 특히 흥미롭다. 토사구팽당한 한신과 비운의 명장 이광, 제국의 영광과 비극을 함께 짊어진 몽염의 이야기는 능력과 공적이 반드시 안전한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큰일을 이루는 데 필요한 사람과 그 일이 끝난 뒤에도 필요한 사람은 다를 수 있다. 전쟁 중에는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평화가 찾아온 뒤에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데 기여한 인물이 그 질서에 적응하지 못해 밀려나기도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오늘의 시선으로 읽으면 조직과 사회에서 개인이 놓인 위치를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더라도 자신이 속한 환경의 변화와 권력의 이해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예상하지 못한 위기에 놓일 수 있다. 반대로 조직이 개인의 능력을 이용하면서도 그 사람의 희생과 기여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처세 문제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환경을 읽되 무엇을 지킬 것인지 결정하고, 자신이 가진 능력이 어떤 관계와 구조 안에서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일이다.

특히 한신의 이야기에서 유명한 '토사구팽'의 고사는 성공의 이면을 돌아보게 한다.
책 속 문장인 🔖“교활한 토끼를 다 잡으면, 좋은 사냥개를 삶아 먹고, 높이 나는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을 감추며, 적국을 깨뜨리면, 모신(계략을 내는 신하)은 죽는다.”는 공을 세운 사람이 오히려 쓸모를 다한 뒤 버려질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드러낸다.

이 문장은 누군가의 헌신을 당연하게 여기는 관계는 그 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조직이든 개인적인 관계든, 상대방이 더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존중마저 거두어 버린다면 그동안 쌓은 신뢰는 얼마나 쉽게 무너질 것인가.

동시에 이 고사는 우리에게 자신의 가치를 외부의 인정에만 맡기지 말라는 질문도 남긴다. 내가 이룬 성과가 사라지거나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나의 존재와 삶의 가치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지만, 그 이해의 방향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타인의 욕망과 실수를 관찰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누군가의 오만함이나 탐욕, 경솔한 판단은 비교적 쉽게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자신이 비슷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의 욕심은 정당한 목표가 되고, 나의 고집은 신념이 되며, 나의 실수는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설명되기 쉽다.

그래서 역사 속 인물의 삶을 읽는 일은 타인 분석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책 속 문장 가운데 🔖“나라를 다스림은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데 있지 아니하고, 오직 힘써 실천함을 어찌 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는 말도 눈길을 끈다.

이 문장을 오늘의 삶에 비추어 보면,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것 사이의 간격을 생각하게 된다. 좋은 책을 읽고 좋은 문장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관계에서 배려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도 막상 감정이 상하면 상대방을 배려하기 어렵고,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도 욕심이 앞서면 멈추기 힘들다.

지혜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보다 알고 있는 것을 실제 삶에서 어떻게 실천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인물이 저지른 실수를 비웃거나 그들의 선택을 평가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상황이 내 앞에 놓였을 때 조금 더 신중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을 읽는 힘이 깊어진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관찰하고, 판단의 오류를 인정하며, 필요하다면 지금까지의 선택을 수정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일일 것이다.


《사람을 읽는 힘, 사기열전》은 방대한 열전을 일곱 가지 주제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야망과 처세에서 시작해 권력과 리더십, 신념과 전략, 소외된 영웅들의 삶을 거쳐 인간 존재의 본질과 허무에 이르는 흐름은 사람의 인생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게 한다.

이러한 구성은 고전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도 흥미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처음부터 역사적 배경과 인물 관계를 모두 파악하려 하기보다, 지금 자신의 관심사와 맞닿은 주제부터 읽으며 생각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과 조직에서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 독자라면 리더십과 용인에 관한 이야기에 눈길이 갈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신뢰와 배신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의리와 우정에 관한 열전이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고 있지만 어느 순간 무엇을 위해 애쓰는지 혼란스러워진 사람에게는 야망과 절제에 관한 이야기가 또 다른 질문을 건넬 수 있다.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의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 순간은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다. 역사는 수천 년 전에 끝났지만, 그 속에 담긴 인간의 고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인정받고 싶어 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며, 성공을 바라면서도 실패를 두려워한다.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욕망에 흔들리고, 때로는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선택을 후회한다.

그렇다면 오래된 기록을 읽는 일은 지금의 나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여행일 것이다. 사람을 읽는다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다음 선택을 돌아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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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경영을 재설계하라
이동권 외 지음 / 성안당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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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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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일자리를 얼마나 대체할 것인지, 어떤 업무를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낯설지 않다. 글을 쓰고, 자료를 분석하고, 복잡한 정보를 정리하는 일까지 AI가 맡아 주는 시대다. 기업들은 앞다투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개인 역시 뒤처지지 않기 위해 AI 활용법을 익힌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새로운 시대에 맞게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익숙한 방식은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AI라는 편리한 도구만 얹고 있는 것은 아닐까?

《AI로 경영을 재설계하라》는 AI를 업무 효율을 높이는 기술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기업의 전략과 조직, 운영 방식, 비즈니스 모델까지 근본적으로 다시 살펴보자고 제안한다.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설명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기술을 받아들이는 인간과 조직은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묻는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AI의 도입 자체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이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구매하고, 업무에 AI를 활용하고, 처리 시간을 단축하는 것만으로 기업의 경쟁력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이 바뀌었다면 그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하고, 일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면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 역시 달라져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를 통해 무엇을 새롭게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에 있다.

이 책은 익숙한 업무의 틀을 유지한 채 효율만 높이려는 접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이끈다. AI 시대의 변화는 새로운 도구를 배우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일하고 판단하고 성장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비유는 DX와 AX의 차이를 내비게이션과 자율주행에 빗댄 설명이다. 내비게이션은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안내하지만, 실제로 방향을 결정하고 운전대를 조작하는 것은 사람이다. 반면 자율주행은 주어진 목적을 향해 시스템이 주변 환경을 분석하고 판단하며 움직이는 단계로 나아간다.

이 비유를 따라가다 보면 AI를 활용한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기존의 업무에 AI를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AI가 업무의 일부를 판단하고 실행하도록 설계하는 것은 분명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전자가 기존 체계 안에서 효율을 높이는 일이라면, 후자는 그 체계 안에서 인간과 AI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부터 다시 정하는 일이다.

물론 현실의 AI가 언제나 정확하게 판단하거나 인간의 개입 없이 모든 일을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율적으로 실행하는 시스템일수록 오류와 예외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누가 결과를 검토하고 책임질 것인지에 관한 설계가 더욱 중요해진다. 그래서 자율주행이라는 비유는 기술의 발전 가능성뿐 아니라 그에 따르는 책임의 무게까지 생각하게 한다.

'어떤 AI를 도입할 것인가?'에서 멈추지 말고
'AI 시대에 맞게 무엇을 다시 설계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

이와 같이 질문의 방향이 달라지면 해결책도 달라진다.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는 방법을 찾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업무 절차가 정말 필요한지, 사람이 직접 판단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AI에 맡겨도 되는 일은 어디까지인지 살펴보게 된다.

이 대목은 기업 경영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꼈다. 사람 역시 새로운 도구를 배울 때 기존의 습관을 그대로 유지한 채 편리함만 더하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하면서도 정작 절약한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인지는 고민하지 않는다. 효율은 높아졌는데 삶의 방향은 그대로라면, 과연 무엇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기술의 발전이 곧바로 삶의 발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이 책의 경영 재설계라는 개념은 그런 점에서도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책에서 특히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AI를 생산성 도구가 아닌 판단 구조의 문제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면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업무의 속도가 빨라졌다고 해서 의사결정의 질까지 반드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기준으로 내린 판단을 자동화하면 잘못된 결과가 더 빠르게 반복될 수 있고, 부정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분석은 그럴듯한 결론을 내놓더라도 실제 상황과 어긋날 수 있다.

따라서 AI를 활용할 때는 무엇을 자동화할 것인지에 앞서 어떤 판단이 필요한지부터 살펴야 한다. 데이터가 제공하는 정보와 인간이 현장에서 쌓아 온 경험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지, AI의 제안을 어떤 기준으로 검증할 것인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가 개입할 것인지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AI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역할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과도 거리를 둔다. 인간이 직접 처리하던 모든 일을 붙잡고 있는 대신, AI가 맡을 일과 인간이 책임져야 할 일을 구분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케팅 부서에서 AI가 고객 데이터를 분석하고 개인별 추천을 제안한다고 생각해 보자. 분석 속도와 처리량은 크게 개선될 수 있지만, 어떤 고객 경험을 제공해야 하는지, 고객의 개인정보를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 매출과 고객 신뢰가 충돌할 때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AI가 분석을 수행하더라도 기업이 지켜야 할 원칙까지 저절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재무와 인사, 개발, 생산 등 다른 업무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술은 선택지를 넓히고 판단을 보조하거나 일부 실행을 맡을 수 있지만,
조직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대한 기준까지 대신 정해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은 기술을 다루는 능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하고,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예외 상황에서 적절한 결정을 내리는 능력 역시 중요하다.

AI를 잘 사용하는 조직은 AI를 많이 사용하는 조직이 아니라, AI가 내놓은 결과를 어떤 원칙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할 것인지 알고 있는 조직일 것이다.


이 책은 경영 재설계의 대상을 고객 경험, 운영 체계, 조직 구조,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네 가지 축으로 구분한다. 이 구성은 AI 전환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경영 과제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먼저 고객 경험의 변화다. 과거에는 고객을 연령이나 성별, 구매 이력과 같은 비교적 고정된 기준으로 분류하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 널리 활용되었다. 하지만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과 필요에 따라 원하는 경험은 달라질 수 있다. 고객을 하나의 고정된 유형으로 이해하는 데서 벗어나 그 순간의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은 개인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다만 고객의 상황을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언제나 더 좋은 경험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정보 수집이나 불투명한 추천은 고객에게 불편함과 불신을 줄 수 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과 고객에게 바람직한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고객 경험의 재설계에는 편리함뿐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와 선택권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두 번째는 운영 체계다. 책은 정해진 절차를 반복하는 자동화에서 벗어나 예측과 조정, 최적화가 이어지는 지능형 운영을 강조한다. 이는 문제가 발생한 뒤 대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변화의 징후를 파악하고 적절한 조치를 준비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려는 시도라고 이해할 수 있다.

기업의 운영은 수많은 변수와 연결되어 있다. 수요 변화, 재고 부족, 생산 일정의 지연, 고객 문의의 증가 등 한 영역의 변화가 다른 영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연결을 파악하고 적절한 시점에 대응하는 데 AI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운영은 비용을 줄이는 활동을 넘어 기업의 대응 능력을 높이는 기반이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조직 구조다. 책은 조직을 사람의 수나 직급의 배열로만 바라보지 않고, 누가 어떤 판단을 맡고 어떤 책임을 지는지를 중심으로 다시 생각하도록 제안한다.

AI가 일부 업무를 수행하게 되면 관리자의 역할도 달라질 수 있다. 모든 작업을 직접 확인하고 지시하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 업무의 기준을 설정하고, 결과를 검토하며, 구성원이 더 중요한 문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역할이 중요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경험과 전문성을 알고리즘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쌓인 지식에는 데이터로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맥락과 판단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AI 전환이 사람이 가진 역량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려면 교육과 역할 재설계, 책임에 대한 합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마지막은 비즈니스 모델이다. 제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관계가 끝나는 구조에서 벗어나, 제품 사용 과정에서 생성되는 데이터와 고객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개선하고 지속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는 방향을 다룬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이 고객에게 무엇을 판매하는지뿐 아니라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어떤 가치를 장기적으로 제공할 것인지 묻게 한다. 다만 모든 기업이 데이터 기반 생태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사업의 특성과 고객의 요구, 보유한 역량에 따라 적합한 모델은 달라질 수 있다.

네 가지 축을 살펴보면서 느낀 것은 경영 재설계에 정해진 만능 공식은 없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유행하는 기술을 무조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가장 의미 있는 변화부터 시작하는 일이다.


이 책의 실무적인 강점으로는 AI 적용 수준을 L1부터 L5까지 구분하는 진단 모델을 들 수 있다. AI를 도구로 사용하는 단계에서 보조자, 운영자, 행위자, 자율적인 전략적 힘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구분하고, 조직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점검하도록 안내한다.

이 모델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은 AI 전환을 단순히 도입 여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같은 AI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조직에 따라 활용 수준은 다를 수 있다. 어떤 곳에서는 문서 작성이나 자료 요약에 활용하는 데 그치지만, 다른 곳에서는 여러 업무 시스템과 연결해 일정한 절차를 수행하거나 제한된 범위에서 판단과 실행을 맡길 수 있다.

그러나 더 높은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 무조건 더 좋은 결과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율성이 높아질수록 잘못된 판단이 미치는 영향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업무의 위험도와 오류 발생 시의 피해, 결과를 되돌릴 수 있는지 여부,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지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책에서 다루는 HITL(Human-in-the-Loop)과 HOTL(Human-on-the-Loop)의 구분도 이러한 문제와 연결된다.
인간이 각 단계의 판단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과 시스템을 감독하면서 필요한 경우 개입하는 방식은 서로 다른 책임 구조를 요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개입을 무조건 늘리거나 줄이는 것이 아니다. 어떤 업무에서는 사람이 매번 확인해야 하지만, 다른 업무에서는 일정한 기준과 안전장치를 마련한 뒤 예외 상황에 집중하는 방식이 더 적합할 수 있다. 그 경계를 정하는 일이야말로 기술과 경영이 만나는 지점일 것이다.

또한 책은 12주 프로젝트 로드맵과 업무별 우선순위 선정 매트릭스 등 실행을 위한 도구도 소개한다. 이러한 구성은 AI 전환을 막연한 미래 전략으로만 남겨 두지 않고 실제 업무의 문제와 연결해 생각하도록 돕는다.

특히 모든 업무를 한꺼번에 바꾸기보다 영향도가 높고 실행 가능성이 있는 과제부터 시작하라는 방향은 현실적이다. 작은 범위에서 결과를 검증하고, 실패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한 뒤 확대하는 방식은 기술에 대한 기대와 실제 성과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진단표나 로드맵은 출발점이지 성공을 보장하는 공식은 아니다. 조직의 규모와 데이터 환경, 구성원의 역량, 규제와 보안 요구에 따라 실행 과정은 달라져야 한다. 도구를 적용하는 것만큼이나 그 도구가 우리 조직에 적합한지 검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책을 읽으며 가장 깊이 생각하게 된 부분은 AI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에 관한 이야기였다.

AI는 방대한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고 사람이 놓칠 수 있는 패턴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언제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잘못된 정보가 입력되거나 데이터에 편향이 존재하거나, 질문 자체가 잘못 설정되면 결과 역시 왜곡될 수 있다. 그럴듯한 설명이 제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AI가 제시한 답변을 검토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습관이 반복된다면 인간의 판단력과 비판적 사고가 약해질 가능성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편리함에 익숙해질수록 스스로 질문하고 근거를 확인하는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기업의 의사결정에서도 중요하다. 경영자가 AI가 제시한 분석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전략을 결정하거나, 구성원이 AI의 결과를 근거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다면 조직은 취약해질 수 있다.

따라서 AI를 활용하는 능력에는 결과를 의심하고 확인하는 능력도 포함되어야 한다. 어떤 데이터에 근거했는지, 다른 해석은 가능한지, 결과가 현실과 맞는지, 오류가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질 것인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특히 기업이 AI를 활용할 때는 개인정보와 기밀정보 보호, 데이터 접근 권한, 결과에 대한 감사 가능성도 중요하다. 편리함을 이유로 검증과 통제를 생략한다면 단기적인 효율이 장기적인 위험으로 돌아올 수 있다.

책에서 다루는 AI 기반 ESG 전략 역시 이러한 문제와 맞닿아 있다. AI를 활용해 환경 관련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규제 대응을 지원할 수 있겠지만, 기술을 도입했다는 사실만으로 기업이 지속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성과를 측정하고, 그 결과를 검증하며, 외부에 제시하는 정보가 사실과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무엇을 자동화할 수 있는지에만 달려 있지 않다.
무엇을 자동화해서는 안 되는지,
어떤 결정에는 인간의 책임이 반드시 필요한지 판단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AI가 답을 제안할 수는 있어도,
그 답을 어떤 기준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결국 사람이 결정해야 한다.


《AI로 경영을 재설계하라》를 읽고 나면 AI를 통해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먼저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만날 때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부터 찾는다. 어떤 기능이 있는지, 얼마나 편리한지, 다른 사람보다 더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하지만 익숙한 업무를 그대로 유지한 채 도구만 바꾼다면 기술이 가진 가능성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목적이다. 업무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무엇을 줄여야 하는지 살펴야 하고, 고객 경험을 개선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고객에게 실제로 필요한 변화가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고 싶다면 지금까지 유지해 온 방식 가운데 무엇이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속도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AI를 빠르게 도입하는 것보다 제대로 이해하고 책임 있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할 때도 있다. 자율성이 높아질수록 검증과 통제의 기준은 더욱 명확해야 하며,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 내는 결과를 지속적으로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반복적인 작업이 줄어든 자리에 더 깊은 사고와 창의적인 시도, 사람 사이의 소통과 책임 있는 의사결정이 자리 잡을 수 있다면 기술의 발전은 단순한 효율 개선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경영을 재설계한다는 것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고, 어떤 방식으로 일하며, 누구와 어떤 책임을 나눌 것인지 다시 정하는 과정에 가깝다. AI가 변화의 속도를 높여 주더라도 변화의 방향까지 저절로 정해 주지는 않는다. 더 나은 방향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이해하는 능력과 함께 인간과 조직을 이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이 얼마나 현명하게 판단하는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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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리 숍앤센터
설재인 지음 / 나무옆의자 / 202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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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교보문고 VORA (@kyobobook_vora )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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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으로 인간이 되는가.
몸인가, 마음인가, 아니면 타인을 대하는 태도인가.

설재인 작가의 《셸리 숍앤센터》는 버려진 인체 기관을 조합해 만들어진 생명체 ‘프랑’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이다. 순간이동에 버금가는 교통수단 웨일홀의 부작용으로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그렇게 버려진 인체 기관들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재료가 된다는 설정부터 파격적이다. 여기에 인간의 취향에 맞춰 제작되고, 사랑받다가 버려지며, 심지어 죽은 뒤에도 재활용되는 프랑의 세계가 더해진다.

처음에는 기괴한 신체 묘사와 파격적인 세계관이 시선을 사로잡지만,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불편함의 정체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프랑의 모습이 낯설고 기이하게 느껴지지만, 어느 순간 그들을 그렇게 만든 인간 사회가 더 섬뜩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몸이 조각나고 찢기는 공포보다 더 무서운 것은 누군가의 고통을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고, 자신의 필요가 사라지는 순간 그 존재의 가치마저 없애버리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프랑은 인간이 버린 신체 기관을 재료로 만들어진다. 어떤 프랑은 팔이 여덟 개이고, 어떤 프랑은 코가 여러 개이며, 인간과 거의 구별할 수 없는 외형을 가진 존재도 있다. 인간은 자신의 취향에 맞춰 프랑을 주문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반려의 모습으로 소비한다. 하지만 그 사랑에는 분명한 조건이 붙어 있다. 인간이 원하는 모습이어야 하고, 인간의 말을 따라야 하며, 인간에게 쓸모가 있어야 한다.

이 설정을 보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소유욕에 대해 생각했다.

반려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때로는 자신의 생활 방식에 맞춰 행동하기를 바라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라기를 기대한다. 물론 현실의 반려동물과 소설 속 프랑을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상대를 독립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대상으로만 바라볼 때, 사랑은 얼마든지 통제와 소유의 형태로 변할 수 있다.

특히 프랑을 설명하는 광고 문구인 '개보다 나은 프랑'은 이 세계의 가치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의 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훈련하기 쉽다는 점이 프랑의 장점으로 내세워진다. 여기에는 생명체의 가치를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한지에 따라 평가하는 시선이 담겨 있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사랑받을 만한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세계.
쓸모가 없어진 순간 사랑받을 자격까지 사라지는 세계.

프랑의 비극은 바로 이 부분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은 프랑을 만들었지만,
그들이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지 결정할 권리까지 정당하게 갖게 된 것일까. 창조했다는 이유만으로 마음대로 소유하고, 이용하고, 폐기해도 되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은 소설 속 가상의 생명체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쓸모없거나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인간 여자아이와 똑같이 생긴 프랑 노엘과 거대한 몸집에 거친 성격을 지닌 프랑 허슬이 있다. 노엘은 인간과 닮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하고, 허슬은 인간의 기준에서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위협적인 존재처럼 취급된다. 두 존재는 외형부터 성격까지 대조적이지만, 인간이 정해놓은 질서 속에서 상처받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노엘의 고민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과 똑같이 생겼다면 인간일까? 인간의 뇌를 가졌다면 인간일까? 생각하고 분노하고 사랑하고 고통을 느낀다면, 그 존재를 인간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노엘이 느끼는 혼란은 인간이라는 범주가 얼마나 견고한지 묻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인간과 프랑의 차이를 구분하는 기준이 외형이라면, 노엘은 그 기준을 흔드는 존재다. 하지만 인간과 비슷한 얼굴을 가졌다고 해서 노엘이 인간 사회에서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닮음은 정체를 감춰야 하는 이유가 된다.

책 속에서 노엘은 이렇게 생각한다.
🔖“프랑임을 숨겨야 했지만. 그것은 프랑 때문이 아니라 오롯이 인간들 때문이었다. 인간들이 자신을 소름끼쳐 할까 봐.”

자신이 누구인지 부끄러워서 숨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두려워 숨겨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존재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닌데도 세상의 시선 때문에 자신을 감추고, 자신의 모습을 부정해야 하는 상황은 얼마나 외로울까.

종종 차별받는 사람에게 왜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정작 돌아봐야 할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배척하는 사회일 것이다.

다름은 그 자체로 잘못이 아니다.
다름을 이유로 타인을 밀어내는 시선이 문제다.

허슬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이 질문을 드러낸다. 거대한 몸과 거친 말투, 폭력적인 행동 때문에 쉽게 위협적인 존재로 보이지만, 그의 내면에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다. 노엘을 괴롭히는 존재처럼 보이면서도 다른 이들이 노엘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함께 고통을 겪은 존재로서 노엘과 연결된다.

이들의 관계는 우정이라고 부르기에는 거칠고, 애정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모순적이다. 그러나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같은 세계의 폭력에 맞서게 된다는 점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서로 닮아서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임에도 같은 고통을 알아보기 때문에 연대할 수 있다는 사실.

노엘과 허슬의 관계는 연대가 반드시 온화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때로는 분노와 불신, 충돌을 거쳐서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기도 한다.


작품에서 인간다움을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 있다.
🔖“혹시 인간을 공격한다는 죄책감이 든다면 마음을 편히 먹으렴. 그 사람들은 짐승만도 못하니까, 괜찮아.”

노엘에게 이런 말을 건네는 인물의 태도는 겉으로는 이해와 허용처럼 보인다.
그러나 노엘은 속으로 되묻는다.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은 인간답나요?”

인간은 자신을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성과 도덕성, 공감 능력, 언어와 사회성 같은 특성을 인간다움의 근거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과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은 다르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한 것은 아니며,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악한 것도 아니다.

소설 속 인간들은 프랑에게 충성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은 프랑을 학대하고, 사랑을 말하면서 필요에 따라 버리며, 생명을 만들어내면서 그 생명이 겪는 고통에는 무관심하다.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는 프랑을 사랑스러운 반려라고 부르지만, 불편해지는 순간에는 통제하고 처분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한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은 인간이라는 신체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완성되는 것일까.

인간다움이란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대하는 태도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에게 친절한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하지만 아무런 보상을 돌려주지 못하는 존재, 자신과 다르게 생긴 존재,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존재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윤리적 태도가 드러난다.

물론 인간다움을 단 하나의 기준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고, 자신의 힘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으며, 상대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려는 태도는 중요하게 여길 만한 가치일 것이다.

그래서 노엘의 질문은 프랑에게 인간의 자격을 부여해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독점해온 그 자격이 과연 정당한지 묻는 반문에 가깝다.

인간이 프랑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려면, 그 우월함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인간이라는 이름만으로 충분하다면, 인간다움이라는 말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버려진 프랑의 입양 절차와 과거의 동물 입양에 관한 이야기가 대비되는 대목이었다.

🔖“당신은 인간인가? 인간다운가? 인간답다는 개념을 알고 있는가? 끝까지 인간답고 싶은가?”

과거에는 유기된 개와 고양이를 입양할 때도 복잡한 문답을 거쳐야 했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질문들은 어느 순간 인간에게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

이어지는 질문은 더욱 묵직하다.
🔖“왜 유기된 프랑들은 이렇게 죽고 '재활용'되어야 하는가? 왜 인간다움에 대한 문답은 더 이상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는가? 아니, 애당초 '인간답다'는 게 뭔가? 인간이 뭔가?”

이 대목을 읽으며 기준을 만드는 사람과 그 기준으로 평가받는 사람 사이의 권력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는 규칙을 만들고, 누군가는 그 규칙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누군가는 판단하는 자리에 서고, 누군가는 판단받는 자리에 머문다. 그리고 그 기준이 불공정하더라도 권력을 가진 쪽이 그것을 정상적인 질서라고 주장하면, 차별은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진다.

작품 속 프랑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지만, 정작 자신들의 삶을 결정할 권리는 갖지 못한다. 인간은 프랑을 소유할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하면서도 프랑에게 인간을 대할 때와 같은 도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는 편견을 넘어선다. 한쪽은 다른 쪽의 존재 가치를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다른 쪽은 그 판단에 저항할 수단마저 제한당한다.

차별이 무서운 이유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에만 있지 않다. 차별이 제도와 관습, 경제적 이해관계와 결합하면 폭력은 개인의 악의가 없어도 반복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잔인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참여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세계가 더욱 섬뜩하게 느껴진다.
인간들은 프랑을 괴롭히는 행위를 악행으로 여기기보다, 자신들이 만든 시스템 안에서 허용된 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프랑을 만드는 것도 인간이고, 프랑의 쓰임을 정하는 것도 인간이며, 프랑이 버려진 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도 인간이다.

그렇다면 프랑에게 필요한 것은 친절한 주인이 나타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주인의 선의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는 구조 자체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더 근본적인 변화일 것이다.


노엘과 허슬이 자신들을 파괴하려는 세계에 맞서기로 결심하는 과정은 작품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들의 저항은 복수하고 싶다는 욕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자신들의 삶을 다른 존재가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그 안에 자리한다.

노엘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하면서도, 그보다 더 근본적인 확신을 얻으려 한다.
🔖“나는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확증을 얻고 싶어.”

이 말은 노엘이 인간과 프랑 사이에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압축한다. 인간과 같은 얼굴을 가졌다는 이유로 인간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 확인하려는 것이다.

노엘은 인간이 인간을 쉽게 죽이지 않는다는 말과, 프랑을 손쉽게 죽이는 현실 사이의 모순을 마주한다. 그렇다면 인간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인간이라는 이름을 유지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은 노엘의 선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억압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것은 정당한 자기방어일 수 있지만, 저항의 과정에서 폭력이 반복된다면 그다음에는 어떤 세계가 만들어질 것인가.

작품은 이 문제를 단순하게 정리하지 않는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아주 느리게.”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은 흔히 비극이 되풀이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여기서 더 생각해볼 것은 반복되는 것이 사건 자체인지, 아니면 사건을 만들어내는 구조인지에 관한 문제다.

지배하는 존재와 지배받는 존재가 바뀌어도 누군가를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고, 그들에게 불평등한 권리를 부여하며,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방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과거의 비극은 다른 모습으로 되풀이될 수 있다.

그러므로 혁명은 권력을 빼앗아오는 일로 끝나서는 안된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이전의 질서에서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새롭게 얻은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까지 고민해야 한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도 기존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장면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이후에 어떤 세계가 가능할지 질문을 이어간다는 점이다.

억압받던 존재가 권력을 얻는 순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세계에서도 누군가는 타인을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싶어 할 수 있다. 누군가는 더 많은 권리를 원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얻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다른 존재의 자유를 제한하려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진정한 해방은 지배자의 자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마음대로 결정할 권리가 누구에게도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는 세계를 만들어가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흔히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차이를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가진 존재를 마주하면 누구나 낯섦을 느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낯섦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낯섦을 이유로 상대의 권리를 빼앗지 않는 태도를 배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존중은 무엇일까.

상대가 나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친절하게 대하는 것일까.
상대가 나와 비슷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일까. 아니면 나에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 존재가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를 인정하는 것일까.

나는 마지막에 가까운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존재를 좋아할 수는 없다. 모든 차이를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함부로 대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존중은 반드시 호감에서 출발할 필요가 없다.

프랑의 세계는 이 사실을 불편할 정도로 선명하게 드러낸다.
인간이 프랑을 사랑하는지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프랑을 사랑하지 않을 때조차 그들의 존재와 삶을 존중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셸리 숍앤센터》를 읽고 남는 것은 인간다움이라는 말의 무게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다운 것은 아니다.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은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다른 존재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끊임없이 질문받아야 하는 가치가 아닐까.

물론 타인을 존중한다고 해서 언제나 선한 선택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의로 시작한 행동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정의를 위한 저항도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인간다움은 한 번 획득하면 영원히 유지되는 자격증처럼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계속해서 자신의 행동을 돌아봐야 한다.
옳다고 믿는 기준이 누군가를 부당하게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질서가 다른 존재의 고통 위에 세워져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 가지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다운 것일까,
아니면 인간답게 행동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존재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부터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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