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서바이벌 - 올리버쌤 가족의 1,600km 로드무비
올리버 그랜트.정다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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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21세기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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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을 이야기할 때 보통은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더 넓은 땅, 더 많은 기회, 가족과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삶.

하지만 정말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넓은 땅에 직접 집을 짓고, 가족과 함께 살아갈 공간을 마련했다고 해서 그곳이 반드시 안전한 삶의 터전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반대로 가진 것이 많지 않더라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오늘을 견뎌낼 수 있다면, 그곳이야말로 삶을 지켜주는 집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것은 ‘미국에서 성공한 가족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한 가족이 실제 삶을 살아가며 마주한 기후, 의료, 경제적 현실, 이민자로서의 불안, 가족의 죽음과 상실을 솔직하게 들여다본다.

처음에는 가족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집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집을 둘러싼 환경은 조금씩 달라졌다.
폭염과 한파, 물과 전력에 대한 불안, 의료 시스템 앞에서 느끼는 막막함,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의 병.

삶은 어느 날 갑자기 완전히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믿고 있던 것들이 하나씩 흔들리면서 무너진다는 사실을 이 책은 보여준다.

집을 짓는 것과 삶의 터전을 만드는 것은 달랐다.
책을 읽으며 특히 마음에 남았던 것은 ‘요새’라는 이미지였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집을 짓고, 그곳에서 오래 살아갈 미래를 꿈꿨지만 정작 그 요새를 위협한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었다. 자연환경의 변화와 사회 시스템의 한계,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사건들이었다.

🔖“저희가 요새를 지은 땅은 아슬아슬한 모래밭이었습니다.”

사람은 미래를 준비하면서 무언가를 쌓는다.
집을 사고, 돈을 모으고, 직업을 만들고, 아이를 키우며, 안정적인 삶을 꿈꾼다.
그런데 내가 단단하게 쌓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주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떨까.

어쩌면 살아가며 ‘안정’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영원히 보장되는 상태가 아니라, 수많은 불확실성 속에서 잠시 유지되고 있는 균형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은 ‘무엇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초반부에서 좋았던 부분은 완성되지 않은 집에서 부부가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이다.

🔖“이제 더 이상 빚 독촉에 가슴을 졸이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새벽까지 마우스 클릭 소리를 내도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안도감이 웃음으로 터진 것이었다.”

가구도 없고, 매트리스도 없고, 완성되지 않은 집.
객관적으로 보면 부족한 것투성이인데 그 순간만큼은 두 사람이 웃을 수 있었다.
행복은 완벽하게 갖춰진 환경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사람은 모든 조건이 갖춰져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진 것 안에서 함께 웃을 사람이 있을 때 버틸 힘을 얻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후에 닥치는 수많은 위기들이 크게 다가온다.
이 가족이 지키려고 했던 것은 ‘집’ 안에서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기후 위기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다.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거대하다.
기후 위기라는 말을 뉴스에서 자주 접한다. 폭염, 산불, 가뭄, 한파, 폭우 같은 단어들도 이제 낯설지 않다. 하지만 숫자와 뉴스 화면으로 접하는 재난과, 실제로 살아가는 공간에서 물과 전기와 집과 가족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전혀 다르다.

🔖“모두가 똑같은 빨대를 땅속 깊이 꽂고 마지막 남은 생명수를 들이켜고 있는 형국이었다.”

지하수를 빨대로 표현한 이 문장은 인간이 자연을 소비하는 모습을 상당히 직관적으로 떠올리게 했다. 한 사람에게는 작은 집 한 채를 짓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같은 방식으로 자연을 사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개인의 선택과 사회 전체의 구조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기후 위기는 먼 미래의 거대한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사는 집과 아이들의 미래, 그리고 가족의 안전에 직접 연결된 현재의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그리고 이 책의 중심에는 ‘상실’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묵직하게 다가온 부분은 아버지의 투병과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였다.

가족이 아무리 노력해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질병도 그렇고, 죽음도 그렇다.
특히 아버지가 자신의 죽음보다 남겨질 아내를 걱정하는 장면은 오래 남았다.

🔖“내 인생에는 아무런 미련도 없어. 다만… 다만 걱정되는 것은 혼자 남을 로이스야.”

죽음을 앞둔 사람이 마지막까지 걱정하는 것이 자신의 삶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삶이라는 사실이 먹먹했다.

사람은 살아 있을 때 수많은 것을 원한다.
더 좋은 집, 더 많은 돈, 더 안정적인 미래, 더 나은 환경.
하지만 삶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어쩌면 그런 것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이 괜찮을까.’ 라는 질문만이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장면은 사랑이란 상대방의 삶을 걱정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키워드를 하나 고른다면 나는 ‘어른’이라는 단어를 고르고 싶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선택하는 것이 어른의 모습에 더 가깝지 않을까.

🔖“어른이 되어가며 우리는 필연적으로 상실의 고통과 마주합니다. 하지만 고통은 우리를 완전히 쓰러뜨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인간으로서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연결하게 만들며, 끝내 우리를 성숙하게 합니다.”

상실은 사람을 약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게 하기도 한다. 잃어버린 것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경험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고 앞으로의 삶을 다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1,600킬로미터의 길은 결국 ‘도망’이 아니었다.
후반부의 이주 과정은 한 편의 재난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을 준다.
폭설과 한파,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 지쳐가는 몸과 마음.
그리고 결국에 1,600킬로미터를 달려 새로운 곳으로 향한다.

🔖“그것은 잠을 포기하고, 지금 당장 시동을 거는 것.”

그리고 이어지는 1,600킬로미터의 여정.
이 장면을 읽으면서 ‘떠난다’는 것이 반드시 도망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때는 떠나는 것이 오히려 가족을 지키기 위한 가장 책임 있는 선택일 수 있다.

한곳에 오래 버티는 것을 '인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버티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때로는 내가 애써 쌓아온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선택할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미네소타로 향하는 길은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다시 선택하는 길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진짜 요새는 무엇일까?’

돈일까. 집일까. 직업일까. 내가 오랫동안 쌓아온 경력일까.

물론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상실을 지나고, 무너지는 현실을 견디고, 가족과 함께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곳.
그곳이야말로 진짜 집일 것이다.


《아메리칸 서바이벌》은 삶에서 무엇을 안전이라고 믿고 있는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지, 그리고 무너진 자리에서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힘들었고, 두려웠고, 때로는 무력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결국 떠나야 했다.
그럼에도 다시 움직였다.
아마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서바이벌’의 진짜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생존은 살아남는 것만이 아니라, 상실 이후에도 다시 삶을 선택하는 것일 테니까.

책을 읽고 나니 ‘행복한 삶’에 대한 기준도 달라졌다.

완벽한 집을 갖는 것보다 그 집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모든 위험을 없애는 것보다 위험한 순간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것.
상실을 겪은 뒤에도 다시 내일을 살아가는 것.

안식처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속에 만들어가는 공간인지도 모르겠다.

가족을 다시 삶으로 데려가기 위해 끝까지 달려간 1,600킬로미터의 길은,
누구에게나 언젠가 한 번쯤 찾아오는 ‘이제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순간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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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소설이라는 이름의 소설 괴담
사와무라 이치 지음, 강영혜 옮김 / 리드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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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리드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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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를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무언가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을 때일까.
끔찍하게 훼손된 시체를 보았을 때일까.
아니면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분명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을 때일까.

무서운 이야기는 반드시 귀신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아무것도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을 때, 독자의 상상력이 빈틈을 채우면서 공포는 훨씬 오래 지속된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발표된 단편들을 엮은 이 작품집은 제목부터 흥미롭다. ‘괴담을 소재로 한 소설’인 동시에 ‘소설 자체가 하나의 괴담’이 된다는 발상 때문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이 이야기도 혹시 괴담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묘한 의심이 생긴다.


첫 번째 이야기인 〈고속 괴담〉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사람들이 괴담을 하나씩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처음에는 ‘괴담회’라는 익숙한 설정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것은 이야기를 무섭게 만드는 방식이다.

🔖“어, 저 사람은 말 안 해도 돼요?”
라고 말하는 장면은 노골적으로 귀신을 등장시키지 않으면서도 강한 불안을 만든다.

나는 이런 종류의 공포가 오히려 더 무섭다고 느꼈다.
귀신이 눈앞에 나타나는 장면이라면 ‘귀신이 나왔다’고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분명 아무도 없어야 하는 곳을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못 보고 있는 것이 있는 건 아닐까?’
공포는 그때부터 독자의 몫이 된다.
처음에는 다소 느리게 느껴졌던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앞에서 무심하게 던져놓았던 요소들과 연결되면서 속도를 높이는 것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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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의 방향이 더욱 일상적인 공간으로 이동하는 <피리 부는 집>

가족과 함께 산책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집.
누군가 그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보다,
집 자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감각이 더 기괴하게 다가온다.

🔖“집이 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집 그 자체가 나를, 우리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라는 표현은 평소에는 아무런 의식 없이 지나치던 창문과 지붕과 벽이 갑자기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이런 공포가 오래 남는 이유는 ‘집’이라는 공간이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매일 집에 들어가고, 창문을 바라보고, 어두운 방을 지나간다. 그런데 그 익숙한 공간이 어느 순간 나를 관찰하는 존재처럼 느껴진다면 평범했던 일상이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기 어렵다.

그래서 이 작품의 공포는 책을 읽는 동안보다 책을 덮은 뒤에 더 강해진다.
창문이 괜히 눈처럼 보이고, 밤에 집 밖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 하나에도 잠시 귀를 기울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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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작품들과는 형식부터 다른 <쿠쿠다의 가면>
영화와 관련된 사건을 인터뷰, 기사, 인터넷 게시판 등의 기록을 통해 쌓아 올리는 방식은 독자가 하나의 사건을 직접 목격하는 것이 아니라 흩어진 자료를 통해 진실을 추적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오히려 확신하기가 어렵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느 정도 알 것 같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완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다. 독자는 자료와 자료 사이의 빈 공간을 스스로 메워야 하고, 바로 그 빈 공간에서 불안이 자라난다.
나는 이 작품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 것’이 공포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무서운 이야기라고 해서 반드시 모든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끝까지 설명되지 않은 무언가가 훨씬 오래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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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우와 게이>, 아무것도 모르고 읽고 싶었던 이야기!
신혼여행이라는 가장 평온하고 행복해야 할 시간에 낯선 시골 마을과 수상한 남매가 등장한다.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내용을 많이 알고 읽을수록 손해를 보는 이야기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구체적인 사건을 설명하기보다는 독자가 직접 만나보기를 권하고 싶다.

🔖“어린아이 것으로 보이는 작은 손이 두 개 붙어 있었다.”
그리고
🔖“지문까지 보였다. 장식이 아닌 진짜 손이다.”
라는 묘사는 상상하는 순간 장면이 머릿속에 그대로 떠오른다.

이 작품에서 무서운 것은 그것이 왜 그곳에 있는지, 그 공간에서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내가 아직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래서 책장을 빨리 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음 내용을 알고 싶지 않은 묘한 감정이 생긴다.

무서운데 궁금하다.
읽기 싫은데 계속 읽게 된다.
호러 소설의 가장 이상한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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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라미 선생님>이 남긴 잔혹한 배신감!

학교에 갇힌 아이들이 살인귀에게 쫓긴다는 설정만 보면 넷플릭스 슬래셔 호러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익숙한 틀 안에서 독자가 예상할 법한 방향을 이용해 다른 곳으로 끌고 간다.

🔖“남자의 얼굴이 엉망진창이었다.”

이어지는 얼굴에 대한 잔혹한 묘사는 상상만으로도 불편할 정도로 강렬하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잔혹한 장면 자체보다 반전이 주는 감정적인 충격이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막상 진실과 마주하면 ‘설마 이 방향일 줄은 몰랐다’는 감정이 남는다.

호러와 미스터리를 함께 쓰는 작가의 장점이 이런 부분에서 드러난다.
무섭게 만드는 것과 속이는 것은 서로 다른 기술인데, 이 책에서는 두 가지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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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기묘했던 이야기, <마른 우물의 목소리>

개인적으로 이 책의 핵심적인 공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는
〈마른 우물의 목소리〉라고 느꼈다.

자신이 쓴 적 없는 소설을 누군가가 읽고 극찬한다.
‘존재하지 않는 소설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는 발상은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그렇다, 나는 이미 공포에 질려 있다. 이 소설을 읽기 전부터, 읽으려고 생각한 것만으로, 읽으려고 기대한 것만으로.”

무서운 이유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공포가 시작되었다는 데 있다. 무언가를 읽었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읽으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무서워진다. 이것은 이 책 전체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독자는 책을 펼치기 전부터 ‘호러 소설을 읽겠다’는 마음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작가는 그 기대 자체를 공포의 재료로 바꿔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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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 <괴담 괴담>

〈괴담 괴담〉은 여러 기록과 자료를 통해 하나의 사건으로 접근해 가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특히 음성 기록과 체험담, 기획서 등이 서로 무관해 보이다가 점차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면서 ‘아, 그래서 이것들이 여기에 있었구나’ 하는 느낌을 준다.

작가는 공포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 미스터리를 심는다.
그리고 독자가 ‘무섭다’고 느끼는 동시에 ‘왜?’라는 질문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이야기의 추진력이 된다.


괴담은 왜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계속 생각나는 이야기’일까
이 책을 읽고 사람은 왜 무서운 이야기를 계속 찾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서운 이야기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주는 가장 이상한 방식의 오락이기도 하다. 우리는 안전한 장소에서 위험한 이야기를 읽는다.

침대에 누워서 살인 이야기를 읽고, 불을 켜놓고 귀신 이야기를 읽으며,
현실에서는 절대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상황을 책 속에서는 일부러 찾아간다.

그런데 《괴담 소설이라는 이름의 소설 괴담》은

‘만약 실제라면?’
‘내 주변에도 이런 일이 있다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정말 전부일까?’

이런 질문을 독자의 현실로 가져온다.

무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책 속에서는 분명 이야기가 끝났다.
그런데 머릿속에서는 끝나지 않는다.

읽는 동안보다 책을 덮은 뒤가 더 무서웠다.
이 책에는 유령도 있고, 저주도 있고, 살인도 있고, 오컬트도 있고, 잔혹한 장면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무섭다고 느낀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감각이었다.

아무도 없는 곳을 사람으로 인식하는 순간이 무섭고,
평범한 집이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무섭고,
설명하기 어려운 흔적이 머릿속에 남으며, 예상했던 방향을 배신하는 반전이 충격을 준다.

모든 이야기가 같은 방식으로 무섭지 않아서 오히려 더 좋았다.
어떤 이야기는 서늘했고, 어떤 이야기는 잔혹했으며, 어떤 이야기는 기괴했고,
어떤 이야기는 미스터리에 가까웠다.
그 다양한 공포가 한 권 안에서 교차하면서 ‘호러’라는 장르가 생각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보여준다.


읽는 순간에는 무서워서 빨리 끝내고 싶었지만,
‘도대체 그게 무엇이었을까?’ 하고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것.
읽고 나서는 괜히 주변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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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이다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9
장강명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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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현대문학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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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아프고, 내가 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알고 있다고 믿었던 확신이 한순간에 무너진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병을 치료할 수도 없고, 결과를 예측할 수도 없으며, 사랑한다는 말조차 상대를 살릴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말이다.

이 소설은 결혼 20년 차 부부에게 갑작스럽게 닥친 뇌종양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아내가 병원에 실려 간 순간부터 남편 안시찬은 아내의 병과 동시에 자신의 감정, 책임감, 죄책감, 무력감, 사랑의 깊이, 그리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의심까지 마주하게 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슬퍼해야 할 상황에서조차 자신이 정말 슬픈 사람인지 의심하는 인간의 마음이었다. 아내가 쓰러지고 응급실에 실려 간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의 감정을 끊임없이 검열한다.

🔖“나는 침통한가? 정말 슬픈가?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아내 곁을 지킬 건가?”

이 문장은 이 소설의 남편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처럼 느껴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놓였으니 당연히 슬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감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공포 속에서도 병원에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돈과 서류를 챙기고, 예정된 일을 취소하거나 처리해야 한다. 심지어 아내가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에도 현실적인 문제들은 멈춰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아내를 걱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걱정하는 남편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를 의심한다.

나는 이 부분이 오히려 이 인물을 더욱 현실적으로 만들었다고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다고 해서 인간이 갑자기 완벽하게 선하고 헌신적인 존재로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귀찮아하고, 원망하고, 화를 내고, 때로는 상대보다 나 자신의 삶을 먼저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정말 잃을지도 모른다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비로소 내가 얼마나 그 사람에게 기대어 살아왔는지 깨닫는다.

그래서 《서성이다》에서 말하는 사랑은
죄책감과 이기심, 후회와 애정이 뒤엉킨 채 존재하는 사랑이다.


🔖“우리는 밑바닥에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잖아.”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냉정한 부부의 모습처럼 느껴졌지만,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니 오히려 이 말이 작품 전체를 표현하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믿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믿음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온다.
평생 이성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사람이 병원 복도에서 기도한다.
자신의 힘으로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는 현실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 변화가 갑작스럽게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도 좋았다.

그는 여전히 의심한다.
신을 믿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고, 기도가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앞에서 인간은 무엇인가를 붙잡고 싶어진다.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보다 먼저 죽기 때문에 신을 발명한 것이다.”

참 아프게 다가온 문장이다.
신을 믿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사랑해서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

평생 무신론자로 살아온 사람에게조차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 앞에서는 기도가 절실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사랑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당신을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라는 것이 아프게 다가왔다.

남편은 병원과 현실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아내가 남몰래 감당해온 일들과 삶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동안 그는 아내에게 조언한다고 생각했지만, 뒤늦게 돌아보니 그 조언이 아내에게는 압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20년.. 오랜 시간을 함께 산다고 해서 상대를 전부 아는 것은 아니다.

매일 같은 집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수없이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해도 상대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모두 알 수는 없다. 오히려 너무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잘 알아’라는 착각 속에서 상대의 고통을 쉽게 지나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뇌종양'이라는 사건을 통해 관계의 맹점을 이야기하는 소설처럼도 읽혔다.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으면서도 그 사람의 삶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있다. 상대가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상대는 말할 힘조차 없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은 대부분 너무 늦게 찾아온다.


책을 읽으며 또 다른 한가지 고통을 함부로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태도가 느껴졌다.

흔히 사람들은 힘든 일을 겪고 나면 이렇게 말한다.

‘이 일을 통해 더 성장했어.’
‘힘든 일이 있었지만 나에게 좋은 경험이었어.’
‘이 또한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겠지.’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실제로 위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고통에 반드시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소설 속 그는 오히려 그것을 거부한다.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니, 그 얼마나 대단한 나르시시즘이냐.”

어떤 고통은 그냥 고통일 뿐이다.
누군가의 병이 반드시 누군가를 성장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삶의 교훈을 주기 위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그냥 몸부림쳐라. 배를 움켜쥐고 데굴데굴 굴러라. 먹은 걸 다 게워 낼 때까지 토하고 울어라……”

이 문장은 견뎌내면 성장한다는 말보다, 때로는 무너져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아무 의미도 찾지 못한 채 울어도 되고, 이해하지 못해도 되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끝내 답을 얻지 못해도 된다고.

나는 이 부분에서 오히려 큰 위로를 느꼈다.
고통받는 사람에게 꼭 ‘의미’를 찾아주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어떤 순간에는 해결책도, 긍정적인 말도 필요하지 않고 그저 함께 아파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는 것.

🔖“인간은 기쁨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열광으로는 잠시 묶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을 진정으로 묶어주는 것은 고통이다.”

읽고 난 뒤 한참 생각하게 만든 문장이다.
기쁨은 사람을 모이게 한다.
하지만 고통은 사람을 서로의 존재 깊숙한 곳까지 데려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 앞에서는 사회적 지위도, 성취도, 잘잘못도 잠시 뒤로 물러난다.
누구나 아프고,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 무섭다.
그래서 고통은 인간을 평등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남편이 끝내 발견하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완벽하게 설명할 수도 없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어야 한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서성인다.
하지만 그 서성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두려워하면서도 병원으로 향하고, 필요한 일을 처리하고, 아내의 삶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울고, 기도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제목 《서성이다》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처음의 ‘서성임’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의 움직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책이 끝나고 난 후의 서성임은 조금 다르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의 움직임처럼 느껴진다.

🔖“세상에는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적어도 그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은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순간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이 문장을 선택할 것 같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순간에 서성인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서.
무엇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어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서.

그렇지만 미래는 늘 들이닥친다.
준비가 되었든 그렇지 않든, 받아들였든 받아들이지 못했든 우리는 한 발을 내디뎌야 한다.

그것이 삶인지도 모르겠다.

《서성이다》를 읽고 난 뒤 가장 오래 남은 여운은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다는 것의 의미였다. 정말 절박한 순간에 사랑은 아주 현실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119를 부르는 일, 병원에 가는 일, 서류를 찾는 일, 돈을 마련하는 일, 가족에게 연락하는 일, 면회 시간을 기다리는 일.

그리고 그 모든 일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 계속 묻는 것이다.

‘이 사람을 정말 사랑하고 있는 걸까.’
‘이 사람을 그 동안 제대로 알고 있었을까.’
‘내가 조금만 다르게 했더라면 달라졌을까.’

하지만 어떤 질문에는 끝내 답이 없다.
그래서 이 소설은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력하고 불완전한 일인지 보여주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싶다는 마음.
하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대신할 수 없고, 그 곁에 있을 뿐이다.

그저 서성이고, 울고, 두려워하고, 도움을 청하고, 기도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
그리고 그렇게 서성이다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

사랑은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순간에도
그 사람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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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별이다 - 나태주 대표 시선집
나태주 지음 / 더블북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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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더블북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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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의 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작고 평범한 것들을 오래 바라보는 시선’이다. 들길에 피어난 꽃 한 송이, 문득 떠오르는 사람, 오래된 부모님에 대한 기억, 오늘 하루 무사히 살아낸 자신까지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충분히 아름답고 귀한 존재라고 말한다.

《너는 별이다》는 그런 나태주 시인의 시 세계를 141편으로 엮은 대표 시선집이다. 특히 이 책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한국어를 배우는 세계의 독자들이 한글로 직접 시를 읽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에서 출발한 책이라는 점이다.

책의 첫머리에 놓인 신작 <80의 꿈>은 이 시집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제 나의 나이는 80 / 그래도 나는 꿈을 꾼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많은 것을 내려놓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시인은 오히려 팔순의 나이에 새로운 꿈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어린 사람들이 “저 시인이 새롭게 쓰는 시를 읽지 못해 얼마나 섭섭하냐!”라고 말해주기를 바라고, 더 나아가 세계의 젊은 영혼들이 한글을 배워 자신의 시를 직접 읽어주기를 꿈꾼다.

여기에서 이 책의 제목인 ‘너는 별이다’도 새롭게 다가온다.
별은 아주 멀리 있지만 어둠 속에서 분명하게 빛난다. 나태주 시인이 말하는 별 역시 특별한 누군가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 것이다. 시를 읽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 모두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빛나는 존재라는 뜻으로 읽힌다.

이 책은 외국인 독자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기존의 시선집과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나태주 시인은 해외 문학강연에서 세종학당을 통해 한글을 배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한국어로 쓰인 시를 직접 읽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해외의 한글 학습자들에게 자신의 시를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시집을 만들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시는 언어의 가장 섬세한 영역이다. 단어 하나의 뉘앙스와 문장의 호흡, 번역하기 어려운 감정의 결까지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시를 다른 언어가 아닌 한글 그대로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나에게도 새롭게 느껴졌다.

너무 익숙해서 한글의 아름다움을 자주 잊고 살아간다. 매일 읽고 쓰는 문자이기에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배우고 익혀야 비로소 읽을 수 있는 언어이고, 그 언어로 쓰인 시 한 편이 마음을 움직이는 경험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시집은 한글이라는 언어가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매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처럼 느껴졌다.

나태주 시인의 대표작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중 하나가 <풀꽃>이다.

🔖“자세히 보아야 / 예쁘다
오래 보아야 /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짧은 시이지만 이 시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어쩌면 너무 분명하다.
사람을 너무나 빨리 판단하고,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스스로에게도 쉽게 실망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고 오래 바라보라’는 시인의 시선은 조금 천천히 살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듯하다.

특별해 보이지 않는 풀꽃도 자세히 보면 예쁘고, 오래 바라보면 사랑스럽다. 그렇다면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너는 별이다》를 읽으며 특히 인상적인 것은 꽃과 별이 반복해서 등장한다는 점이다. 꽃은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존재이고, 별은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존재다. 그런데 나태주 시의 세계에서는 이 둘이 모두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상징처럼 이어진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꽃처럼 바라보고, 멀리 있는 사람을 별처럼 그리워한다.
그 사이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있고, 살아가는 일의 쓸쓸함도 있다.


1부 [서로가 꽃]과 2부 [끌리는 마음]에서는 사랑과 그리움이 중심에 놓인다.
나태주의 사랑은 서툴고 조심스럽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사랑은 언제나 서툴다>라는 제목만 보아도 그렇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해서 언제나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고, 소중하기 때문에 더 서툴러질 때가 있다.

<별들이 대신해주고 있었다>에서는 말보다 먼저 마음이 흔들린다.

🔖"이미 우리들이 해야 할 말을 / 별들이 대신해주고 있었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이미 마음이 전해지고, 오히려 말을 덧붙이는 것이 그 감정을 흐트러뜨릴 때도 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시가 가진 힘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긴 설명 없이도 몇 개의 이미지와 짧은 문장만으로 한 사람의 마음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시가 가진 놀라운 힘일 것이다.


4부의 제목은 [부디 아프지 마라]다.

이 제목만으로도 마음이 잠시 멈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족과 부모님을 다룬 시에서는 그 마음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한 사람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다른 사람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고,
한 사람의 가족 이야기가 또 다른 사람의 가족을 생각하게 한다.

시는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타인의 마음으로 건너가는 순간이다.

‘나중에’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야 한다는 것!
5부와 6부로 넘어가면 시선은 조금 더 삶 자체를 향한다.

수록된 시 제목들이 보여주듯, 여기에서는 거창한 성공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이 강조된다. 이 시들은 익숙한 ‘언젠가’를 돌아보게 한다.

언젠가 만나야지. 언젠가 여행해야지. 언젠가 고맙다고 말해야지.
언젠가 나 자신을 위해 살아야지.

그런데 삶에는 그 ‘언젠가’가 반드시 찾아온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나태주의 시가 말하는 행복은 오늘의 삶을 제대로 바라보는 태도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너는 별이다》를 읽으며 또 하나 느끼게 되는 것은 ‘쉬운 말의 힘’이다.
어쩌면 좋은 시는 어려운 말을 많이 사용하는 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단어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시인지도 모르겠다.

‘꽃’이라는 단어를 읽었는데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별’이라는 단어를 읽었는데 멀리 있는 사람이 생각나고,
‘집’이라는 단어에서 가족이 떠오르고,
‘오늘’이라는 단어에서 지금의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단어를 하나 고르라면 나는 ‘다정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거대한 희망을 외치는 대신 작은 존재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하기보다 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완벽한 삶을 이야기하기보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라고 말한다.

그 다정함은 때로 사랑이 되고, 때로 그리움이 되고, 때로 가족에 대한 감사가 되고, 때로 자신을 잃지 말라는 응원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제목처럼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어떤 별로 살아가고 있는가.'

책을 덮은 뒤, 마음 한구석에 작은 별 하나가 남아 있는 듯하다.

잘 살아내는 것. 서로를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는 것.
사랑하는 마음을 아끼지 않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남의 삶을 따라가기보다 나 자신의 별을 잃지 않는 것.

《너는 별이다》가 내게 남긴 가장 따뜻한 여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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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별이다 #나태주 #시인 #더블북 #서평단
#시집추천 #시 #시집 #한국시 #신간 #신간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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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사랑
아나 황 지음, 윤선미 옮김 / 모모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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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오팬하우스 (@ofanhouse.official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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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를 읽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랑은 사람을 구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 상처를 건드리는 감정이기도 하다는 것.

아나 황의 《뒤틀린 사랑》은 겉으로 보면 ‘얼음 같은 남자와 햇살 같은 여자’가 서로에게 끌리는 전형적인 다크 로맨스처럼 보인다. 복수에 사로잡힌 남자 알렉스와 사랑과 선의를 믿는 여자 에바. 서로 정반대에 서 있는 두 사람이 만나고, 거부할 수 없는 끌림에 빠져드는 이야기다. 하지만 내게는 사랑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사랑의 방법을 다시 배워 가는 이야기에 더 가까웠다.


에바를 설명하는 가장 인상적인 단어는 역시 ‘선샤인’이다.
에바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가지고 있음에도 세상의 선함을 믿는다.
사람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호의를 베풀고, 누군가를 믿으려 한다.
상처가 없어서 밝은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가지고도 밝음을 선택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에바라는 캐릭터를 특별하게 만든다.

🔖“인생의 쓴맛, 단맛, 순전히 추한 맛까지 모두 맛봤으면서도 선함을 믿는 것은 에바가 자신을 나타내는 방식이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밝은 사람’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세상이 늘 친절하기 때문에 밝은 것이 아니라, 세상이 때로 잔인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선함을 포기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진짜 강함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알렉스는 정반대의 사람이다.
그에게 세상은 사랑보다 복수가 먼저였고, 믿음보다는 의심이 익숙했으며, 감정보다는 목적이 중요했다. 가족을 잃은 충격과 복수심은 그의 삶을 한 방향으로 몰아갔다.

그런 알렉스 앞에 에바가 나타난다.
그에게 에바는 처음부터 너무 밝아서 오히려 불편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밝음이 알렉스가 오랫동안 닫아 놓았던 마음을 조금씩 흔들어 놓는다.



알렉스가 정말 원하는 것은 복수였을까
알렉스의 가장 큰 특징은 ‘감정이 없는 남자’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 속 문장을 보면 그의 내면은 오히려 감정으로 가득하다.

🔖“너는 온 우주가 네가 피도 눈물도, 아무 감정도 없는 인간이라고 여기길 바라지. 하지만 진실은 말이야, 네 마음은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지. 마음은 꽁꽁 언 얼음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그 얼음 아래는 누구보다 따뜻하고 사랑이 가득해.”

그는 사랑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했기 때문에 너무 큰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 이후 사랑 대신 복수를 선택했다. 감정을 없애버린 것이 아니라 감정을 다시 느끼는 것이 두려워 마음 전체를 얼려버린 것에 가깝다.

알렉스는 에바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자신이 복수 이외의 것을 원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누군가를 걱정하고, 질투하고, 함께 웃고,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마음. 복수를 위해 살아온 사람에게 그런 감정은 오히려 낯선 감정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알렉스는 과거의 기억을 너무 선명하게 가지고 있다.
반면 에바는 자신의 가장 큰 상처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한 사람은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른 한 사람은 기억 속에 묻힌 진실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구원하는 구조가 아니다.

알렉스는 에바에게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주고, 에바는 알렉스에게 자신이 잃어버린 감정과 사랑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둘 모두 상대를 통해 자신이 외면했던 것을 마주한다. 이런 의미에서 ‘쌍방구원’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다만 내가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구원(사랑)이 모든 상처를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처가 있었던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그 상처를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진다.


‘뒤틀린 사랑’이 아니라 ‘뒤틀려 버린 사랑’
책을 읽고 난 뒤 제목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뒤틀린 사랑》이라는 제목은 처음에는 집착과 욕망, 비밀과 복수가 뒤엉킨 관계를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랑이 처음부터 뒤틀린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배울 기회를 빼앗긴 사람들이
사랑을 뒤틀린 방식으로 붙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알렉스에게 사랑은 상실과 복수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
에바에게 사랑은 자신을 받아들여 줄 누군가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둘 다 사랑을 원하지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이들의 관계에는 집착도 있고, 불안도 있고, 소유하려는 마음도 있다.

특히 알렉스의 사랑은 상당히 강압적이고 위험한 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안에서 그가 점차 깨닫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과 ‘소유한다는 것’이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과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마음 사이에서 그는 계속 흔들린다. 그리고 바로 그 흔들림이 알렉스라는 캐릭터를 조금 더 흥미롭게 만든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알렉스의 소유욕은
이 작품의 다크 로맨스적인 성격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다.

🔖“에바는 나의 것이었다. 에바가 아직 그 사실을 몰랐을 뿐.”

이 한 문장만 놓고 보면 상당히 위험한 사랑이다.
아직 관계가 시작되기도 전에 상대를 자신의 것으로 규정해 버리니까.
그런데 이 작품의 재미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알렉스는 말로는 에바를 밀어내면서 행동으로는 누구보다 집요하게 에바를 신경 쓴다. 에바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반응하고, 다른 남자가 가까이 다가가면 질투하고, 위험이 닥치면 과할 정도로 보호하려 한다.

그의 감정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지 않을까.
머리로는 ‘아니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

그래서 알렉스가 에바를 ‘선샤인’이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둘 사이의 관계가
사실상 끝났다고 느껴지는 것도 재미있었다.
자신이 싫어하던 빛을 결국 가장 필요로 하게 된 사람이니까.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알지 못했던 면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죽어도 알 수 없는 법이었다.”

이 작품의 관계성을 꽤 정확하게 표현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오래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전부 아는 것이 아니다.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마찬가지다.
특히 상처를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개의 얼굴을 만들어 살아가기도 한다.

알렉스에게는 복수에 미친 냉정한 사업가라는 얼굴이 있고,
그 아래에는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이 있다.

에바에게는 누구에게나 다정한 ‘선샤인’이라는 얼굴이 있지만
그 안에는 어린 시절의 공포와 상처가 자리하고 있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상대가 숨기고 있던 가장 어두운 부분까지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랑이 더 위험하고, 동시에 더 깊게 느껴진다.

사랑한다고 해서 갑자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신이 가진 방식 안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다.

🔖“나는 에바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에바를 다치게 하느니 에바를 포기하는 쪽을 택할 거야.”

이 작품에서 가장 오래 남은 감정은 의외로 뜨거운 로맨스보다 이 부분이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이 사랑할 만한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나는 인생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을 두려워하며 평생을 보내기보다 믿음을 갖기로 했다. 두려움이 나를 쥐락펴락하며 내가 한없이 움츠러들게 만드는 일이 진절머리가 났다.”

나는 이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과거의 상처를 가진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로도 읽혔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라는 것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때로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까지 지배한다.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또 상처받으면 어떡하지?’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이 가장 안전해진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은 상처받지 않는 대신 새로운 것을 얻을 기회도 잃어버린다.


페이지가 두꺼워도 속도는 오히려 빨랐던 소설!
《뒤틀린 사랑》은 상당히 많은 요소를 한꺼번에 끌어안고 있다.

앙숙에서 연인으로 이어지는 관계, 강한 집착, 다크 로맨스, 복수, 가족의 비밀, 트라우마, 기억과 진실, 배신과 구원까지.

그럼에도 이야기가 쉽게 늘어지지 않는 이유는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궁금증을 계속 만들어 내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랑한다고 해서 과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상처가 없었던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제는 그 상처를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어둠을 가진 사람도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고,
상처받은 사람도 다시 누군가를 믿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제목인 ‘뒤틀린 사랑’이 마지막에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사랑은 자신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원래 가지고 있었지만 너무 깊이 숨겨 두었던 모습을 꺼내 주는 것일까.

책을 읽고 가장 오래 남는 여운은 에바가 말한 그 한 가지였다.

두려움 때문에 움츠러든 채 살아가기보다, 두려움이 있어도 제대로 살아가는 것.
알렉스와 에바가 서로에게 준 가장 큰 선물도 어쩌면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사랑할 용기.
믿을 용기.
그리고 과거가 아닌 앞으로의 삶을 선택할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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