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이다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9
장강명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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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현대문학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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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아프고, 내가 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알고 있다고 믿었던 확신이 한순간에 무너진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병을 치료할 수도 없고, 결과를 예측할 수도 없으며, 사랑한다는 말조차 상대를 살릴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말이다.

이 소설은 결혼 20년 차 부부에게 갑작스럽게 닥친 뇌종양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아내가 병원에 실려 간 순간부터 남편 안시찬은 아내의 병과 동시에 자신의 감정, 책임감, 죄책감, 무력감, 사랑의 깊이, 그리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의심까지 마주하게 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슬퍼해야 할 상황에서조차 자신이 정말 슬픈 사람인지 의심하는 인간의 마음이었다. 아내가 쓰러지고 응급실에 실려 간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의 감정을 끊임없이 검열한다.

🔖“나는 침통한가? 정말 슬픈가?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아내 곁을 지킬 건가?”

이 문장은 이 소설의 남편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처럼 느껴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놓였으니 당연히 슬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감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공포 속에서도 병원에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돈과 서류를 챙기고, 예정된 일을 취소하거나 처리해야 한다. 심지어 아내가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에도 현실적인 문제들은 멈춰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아내를 걱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걱정하는 남편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를 의심한다.

나는 이 부분이 오히려 이 인물을 더욱 현실적으로 만들었다고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다고 해서 인간이 갑자기 완벽하게 선하고 헌신적인 존재로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귀찮아하고, 원망하고, 화를 내고, 때로는 상대보다 나 자신의 삶을 먼저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정말 잃을지도 모른다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비로소 내가 얼마나 그 사람에게 기대어 살아왔는지 깨닫는다.

그래서 《서성이다》에서 말하는 사랑은
죄책감과 이기심, 후회와 애정이 뒤엉킨 채 존재하는 사랑이다.


🔖“우리는 밑바닥에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잖아.”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냉정한 부부의 모습처럼 느껴졌지만,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니 오히려 이 말이 작품 전체를 표현하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믿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믿음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온다.
평생 이성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사람이 병원 복도에서 기도한다.
자신의 힘으로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는 현실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 변화가 갑작스럽게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도 좋았다.

그는 여전히 의심한다.
신을 믿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고, 기도가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앞에서 인간은 무엇인가를 붙잡고 싶어진다.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보다 먼저 죽기 때문에 신을 발명한 것이다.”

참 아프게 다가온 문장이다.
신을 믿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사랑해서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

평생 무신론자로 살아온 사람에게조차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 앞에서는 기도가 절실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사랑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당신을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라는 것이 아프게 다가왔다.

남편은 병원과 현실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아내가 남몰래 감당해온 일들과 삶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동안 그는 아내에게 조언한다고 생각했지만, 뒤늦게 돌아보니 그 조언이 아내에게는 압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20년.. 오랜 시간을 함께 산다고 해서 상대를 전부 아는 것은 아니다.

매일 같은 집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수없이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해도 상대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모두 알 수는 없다. 오히려 너무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잘 알아’라는 착각 속에서 상대의 고통을 쉽게 지나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뇌종양'이라는 사건을 통해 관계의 맹점을 이야기하는 소설처럼도 읽혔다.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으면서도 그 사람의 삶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있다. 상대가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상대는 말할 힘조차 없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은 대부분 너무 늦게 찾아온다.


책을 읽으며 또 다른 한가지 고통을 함부로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태도가 느껴졌다.

흔히 사람들은 힘든 일을 겪고 나면 이렇게 말한다.

‘이 일을 통해 더 성장했어.’
‘힘든 일이 있었지만 나에게 좋은 경험이었어.’
‘이 또한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겠지.’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실제로 위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고통에 반드시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소설 속 그는 오히려 그것을 거부한다.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니, 그 얼마나 대단한 나르시시즘이냐.”

어떤 고통은 그냥 고통일 뿐이다.
누군가의 병이 반드시 누군가를 성장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삶의 교훈을 주기 위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그냥 몸부림쳐라. 배를 움켜쥐고 데굴데굴 굴러라. 먹은 걸 다 게워 낼 때까지 토하고 울어라……”

이 문장은 견뎌내면 성장한다는 말보다, 때로는 무너져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아무 의미도 찾지 못한 채 울어도 되고, 이해하지 못해도 되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끝내 답을 얻지 못해도 된다고.

나는 이 부분에서 오히려 큰 위로를 느꼈다.
고통받는 사람에게 꼭 ‘의미’를 찾아주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어떤 순간에는 해결책도, 긍정적인 말도 필요하지 않고 그저 함께 아파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는 것.

🔖“인간은 기쁨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열광으로는 잠시 묶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을 진정으로 묶어주는 것은 고통이다.”

읽고 난 뒤 한참 생각하게 만든 문장이다.
기쁨은 사람을 모이게 한다.
하지만 고통은 사람을 서로의 존재 깊숙한 곳까지 데려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 앞에서는 사회적 지위도, 성취도, 잘잘못도 잠시 뒤로 물러난다.
누구나 아프고,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 무섭다.
그래서 고통은 인간을 평등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남편이 끝내 발견하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완벽하게 설명할 수도 없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어야 한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서성인다.
하지만 그 서성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두려워하면서도 병원으로 향하고, 필요한 일을 처리하고, 아내의 삶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울고, 기도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제목 《서성이다》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처음의 ‘서성임’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의 움직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책이 끝나고 난 후의 서성임은 조금 다르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의 움직임처럼 느껴진다.

🔖“세상에는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적어도 그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은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순간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이 문장을 선택할 것 같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순간에 서성인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서.
무엇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어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서.

그렇지만 미래는 늘 들이닥친다.
준비가 되었든 그렇지 않든, 받아들였든 받아들이지 못했든 우리는 한 발을 내디뎌야 한다.

그것이 삶인지도 모르겠다.

《서성이다》를 읽고 난 뒤 가장 오래 남은 여운은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다는 것의 의미였다. 정말 절박한 순간에 사랑은 아주 현실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119를 부르는 일, 병원에 가는 일, 서류를 찾는 일, 돈을 마련하는 일, 가족에게 연락하는 일, 면회 시간을 기다리는 일.

그리고 그 모든 일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 계속 묻는 것이다.

‘이 사람을 정말 사랑하고 있는 걸까.’
‘이 사람을 그 동안 제대로 알고 있었을까.’
‘내가 조금만 다르게 했더라면 달라졌을까.’

하지만 어떤 질문에는 끝내 답이 없다.
그래서 이 소설은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력하고 불완전한 일인지 보여주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싶다는 마음.
하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대신할 수 없고, 그 곁에 있을 뿐이다.

그저 서성이고, 울고, 두려워하고, 도움을 청하고, 기도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
그리고 그렇게 서성이다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

사랑은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순간에도
그 사람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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