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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서바이벌 - 올리버쌤 가족의 1,600km 로드무비
올리버 그랜트.정다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26년 8월
평점 :
🔻이 게시물은 21세기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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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을 이야기할 때 보통은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더 넓은 땅, 더 많은 기회, 가족과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삶.
하지만 정말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넓은 땅에 직접 집을 짓고, 가족과 함께 살아갈 공간을 마련했다고 해서 그곳이 반드시 안전한 삶의 터전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반대로 가진 것이 많지 않더라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오늘을 견뎌낼 수 있다면, 그곳이야말로 삶을 지켜주는 집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것은 ‘미국에서 성공한 가족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한 가족이 실제 삶을 살아가며 마주한 기후, 의료, 경제적 현실, 이민자로서의 불안, 가족의 죽음과 상실을 솔직하게 들여다본다.
처음에는 가족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집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집을 둘러싼 환경은 조금씩 달라졌다.
폭염과 한파, 물과 전력에 대한 불안, 의료 시스템 앞에서 느끼는 막막함,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의 병.
삶은 어느 날 갑자기 완전히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믿고 있던 것들이 하나씩 흔들리면서 무너진다는 사실을 이 책은 보여준다.
집을 짓는 것과 삶의 터전을 만드는 것은 달랐다.
책을 읽으며 특히 마음에 남았던 것은 ‘요새’라는 이미지였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집을 짓고, 그곳에서 오래 살아갈 미래를 꿈꿨지만 정작 그 요새를 위협한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었다. 자연환경의 변화와 사회 시스템의 한계,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사건들이었다.
🔖“저희가 요새를 지은 땅은 아슬아슬한 모래밭이었습니다.”
사람은 미래를 준비하면서 무언가를 쌓는다.
집을 사고, 돈을 모으고, 직업을 만들고, 아이를 키우며, 안정적인 삶을 꿈꾼다.
그런데 내가 단단하게 쌓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주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떨까.
어쩌면 살아가며 ‘안정’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영원히 보장되는 상태가 아니라, 수많은 불확실성 속에서 잠시 유지되고 있는 균형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은 ‘무엇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초반부에서 좋았던 부분은 완성되지 않은 집에서 부부가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이다.
🔖“이제 더 이상 빚 독촉에 가슴을 졸이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새벽까지 마우스 클릭 소리를 내도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안도감이 웃음으로 터진 것이었다.”
가구도 없고, 매트리스도 없고, 완성되지 않은 집.
객관적으로 보면 부족한 것투성이인데 그 순간만큼은 두 사람이 웃을 수 있었다.
행복은 완벽하게 갖춰진 환경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사람은 모든 조건이 갖춰져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진 것 안에서 함께 웃을 사람이 있을 때 버틸 힘을 얻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후에 닥치는 수많은 위기들이 크게 다가온다.
이 가족이 지키려고 했던 것은 ‘집’ 안에서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기후 위기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다.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거대하다.
기후 위기라는 말을 뉴스에서 자주 접한다. 폭염, 산불, 가뭄, 한파, 폭우 같은 단어들도 이제 낯설지 않다. 하지만 숫자와 뉴스 화면으로 접하는 재난과, 실제로 살아가는 공간에서 물과 전기와 집과 가족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전혀 다르다.
🔖“모두가 똑같은 빨대를 땅속 깊이 꽂고 마지막 남은 생명수를 들이켜고 있는 형국이었다.”
지하수를 빨대로 표현한 이 문장은 인간이 자연을 소비하는 모습을 상당히 직관적으로 떠올리게 했다. 한 사람에게는 작은 집 한 채를 짓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같은 방식으로 자연을 사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개인의 선택과 사회 전체의 구조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기후 위기는 먼 미래의 거대한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사는 집과 아이들의 미래, 그리고 가족의 안전에 직접 연결된 현재의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그리고 이 책의 중심에는 ‘상실’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묵직하게 다가온 부분은 아버지의 투병과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였다.
가족이 아무리 노력해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질병도 그렇고, 죽음도 그렇다.
특히 아버지가 자신의 죽음보다 남겨질 아내를 걱정하는 장면은 오래 남았다.
🔖“내 인생에는 아무런 미련도 없어. 다만… 다만 걱정되는 것은 혼자 남을 로이스야.”
죽음을 앞둔 사람이 마지막까지 걱정하는 것이 자신의 삶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삶이라는 사실이 먹먹했다.
사람은 살아 있을 때 수많은 것을 원한다.
더 좋은 집, 더 많은 돈, 더 안정적인 미래, 더 나은 환경.
하지만 삶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어쩌면 그런 것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이 괜찮을까.’ 라는 질문만이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장면은 사랑이란 상대방의 삶을 걱정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키워드를 하나 고른다면 나는 ‘어른’이라는 단어를 고르고 싶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선택하는 것이 어른의 모습에 더 가깝지 않을까.
🔖“어른이 되어가며 우리는 필연적으로 상실의 고통과 마주합니다. 하지만 고통은 우리를 완전히 쓰러뜨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인간으로서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연결하게 만들며, 끝내 우리를 성숙하게 합니다.”
상실은 사람을 약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게 하기도 한다. 잃어버린 것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경험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고 앞으로의 삶을 다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1,600킬로미터의 길은 결국 ‘도망’이 아니었다.
후반부의 이주 과정은 한 편의 재난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을 준다.
폭설과 한파,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 지쳐가는 몸과 마음.
그리고 결국에 1,600킬로미터를 달려 새로운 곳으로 향한다.
🔖“그것은 잠을 포기하고, 지금 당장 시동을 거는 것.”
그리고 이어지는 1,600킬로미터의 여정.
이 장면을 읽으면서 ‘떠난다’는 것이 반드시 도망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때는 떠나는 것이 오히려 가족을 지키기 위한 가장 책임 있는 선택일 수 있다.
한곳에 오래 버티는 것을 '인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버티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때로는 내가 애써 쌓아온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선택할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미네소타로 향하는 길은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다시 선택하는 길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진짜 요새는 무엇일까?’
돈일까. 집일까. 직업일까. 내가 오랫동안 쌓아온 경력일까.
물론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상실을 지나고, 무너지는 현실을 견디고, 가족과 함께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곳.
그곳이야말로 진짜 집일 것이다.
《아메리칸 서바이벌》은 삶에서 무엇을 안전이라고 믿고 있는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지, 그리고 무너진 자리에서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힘들었고, 두려웠고, 때로는 무력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결국 떠나야 했다.
그럼에도 다시 움직였다.
아마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서바이벌’의 진짜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생존은 살아남는 것만이 아니라, 상실 이후에도 다시 삶을 선택하는 것일 테니까.
책을 읽고 나니 ‘행복한 삶’에 대한 기준도 달라졌다.
완벽한 집을 갖는 것보다 그 집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모든 위험을 없애는 것보다 위험한 순간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것.
상실을 겪은 뒤에도 다시 내일을 살아가는 것.
안식처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속에 만들어가는 공간인지도 모르겠다.
가족을 다시 삶으로 데려가기 위해 끝까지 달려간 1,600킬로미터의 길은,
누구에게나 언젠가 한 번쯤 찾아오는 ‘이제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순간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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