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을 듣고 싶었나 보다
권지은 지음 / 부크럼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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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요조앤 ( @yozo_anne ) 님이 모집한 서평단에 선정되어 부크럼 ( @bookrum.official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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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관계를 맺는다. 가족, 친구, 연인, 동료처럼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만나고 가장 오래 함께해야 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는 괜찮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할 때가 많다.

잘하지 못한 일은 오래 기억하면서 잘해낸 일은 쉽게 지나치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는 마음을 쓰면서 정작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뒤늦게 알아차리기도 한다.

권지은 작가의 《이런 말을 듣고 싶었나 보다》는 누군가에게 건네는 위로처럼 보이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 말들은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아주 사소하고 현실적인 마음의 태도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잘 버티고 있는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것, 남의 기준과 비교하지 않는 것, 때로는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실패가 아니라 용기로 받아들이는 것. 행복 역시 멀리 있는 내가 만들어 놓은 일상의 안락함을 제대로 누리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사실 이토록 줄곧 향하던 길에서 다른 노선을 생각한다는 건, 여태 펼쳐 온 꿈이 나와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는 건 포기가 아니라 용기다.”라는 문장이 오래 남았다.

한 번 선택한 길을 계속 가야만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미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는 이유로 마음이 떠난 일도 붙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만으로 앞으로의 시간까지 내어줄 필요는 없다. 방향을 바꾸는 것은 지나온 시간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포기’라는 단어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때로는 내려놓는 것이 나를 지키기 위한 적극적인 선택일 수 있으니까.

또 하나 마음에 남았던 부분은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많이 애썼다고. 여러 일 사이에서 잘 버텨 줘서 고맙다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응원한다고.”라는 문장이다.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참 따뜻할 것 같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으며 한편으로는 ‘나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얼마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가 힘들어하면 쉽게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내가 힘들 때는 왜 그렇게 쉽게 나를 몰아붙이는 걸까.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적어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책에서 🔖“내가 만든 안락함을 내가 만끽하는 것.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 올린 매일이 모여 깊은 안정이 채워지는 것.”이라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행복을 생각하면 자꾸 큰 사건을 떠올린다. 원하는 것을 이루거나,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거나, 누군가에게 사랑받거나, 인생에서 특별한 순간을 맞이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실제 삶의 대부분은 아주 평범한 날들로 이루어진다. 잘 먹고 잘 자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편안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아무 일 없는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 행복은 평범한 날을 대하는 자신의 마음속에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책은 자연스럽게 ‘나’에서 ‘사랑’으로, 다시 ‘우리’라는 관계로 시선을 넓힌다.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나를 희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소중히 여긴다는 이유로 나를 잃어버려서도 안 된다. 건강한 사랑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각자의 존재를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특히 🔖“사랑을 발음하지 않고도 사랑을 담을 수 있는 언어들이 있다.”라는 문장도 참 좋았다.

사랑은 반드시 ‘사랑해’라는 말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늦은 밤 잘 들어갔는지 묻는 말,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해 주는 것, 힘든 날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것, 상대가 선택한 길을 믿어주는 것처럼 아주 작은 행동에도 사랑은 담길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의 크기를 말의 크기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이어지는 관계에서는 작은 다정함이 더 깊은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특히 눈길이 머문 부분은 관계에 대한 시선이었다.
🔖“남에게 어떠한 사람이길 바라지 말고, 나부터 내가 그리는 사람이 되자.”

관계 속에서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많다.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고, 배려해주기를 바라고, 진심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정작 나는 상대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주고 있는지 돌아보는 일에는 인색할 때가 있다.

물론 모든 관계에서 내가 먼저 완벽하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해보자는 의미에 가깝게 다가왔다.

내가 존중받고 싶다면 나 역시 상대를 존중하고 있는지,
다정한 관계를 원한다면 나 역시 다정함을 건네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

관계는 내가 어떤 태도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바라보는 데서부터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당신을 애틋하게 생각하는 만큼, 당신을 온 마음 다해 소중히 여기는 이가 지금도 변함없이 곁에 있음을 잊지 말고 살아갈 것.”

힘든 순간에는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관계가 틀어졌거나 기대했던 일이 어긋났을 때는 지금까지 나를 아껴준 사람들의 마음까지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이 문장은 힘든 순간일수록 시야를 조금 넓혀보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관계보다 먼저 나 자신을 소중한 존재로 대하는 것.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을까?’
책을 읽고 나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괜찮아.”
“많이 애썼어.”
“조금 늦어도 괜찮아.”

듣고 싶었던 말은 그저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한마디, 계속 잘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는 허락이었을지도 모른다.


삶은 앞으로도 언제든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변할 수 있고, 열심히 해온 일이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때로는 오래 붙잡고 있던 것을 놓아야 할 수도 있고, 새로운 길을 선택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흔들리는 순간에도 나 자신을 놓지 않는 힘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나를 사랑하는 일’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랑과는 조금 다르다. 내가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기에 다른 사람도 함부로 대하지 않을 수 있고, 내가 나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기에 상대의 마음에도 조금 더 귀 기울일 수 있다.

결국 ‘나’가 건강하게 서야 ‘사랑’도 건강하게 존재할 수 있고,
그런 두 사람이 만나야 비로소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가장 큰 흐름처럼 느껴졌다.

《이런 말을 듣고 싶었나 보다》라는 제목처럼,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가장 먼저 들려주었어야 했던 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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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큼 소중한 것은 있어도
나보다 귀중한 것은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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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드라이버 1 - 슈퍼매드
C. S. 퀼 지음, 차은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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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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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에서 가장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설레는 설정이 있다. 바로 ‘처음에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던 두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상대를 의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캠퍼스 드라이버 1》은 그 익숙한 공식을 캠퍼스와 빈티지 카, 그리고 뜻밖의 동거라는 장치와 결합해 경쾌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처음부터 사랑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로이스에게는 오랜 시간 자신의 삶이라고 믿었던 사랑이 갑작스럽게 무너지는 사건이 먼저 찾아온다. 반면 레인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것 자체를 경계하는 인물이다. 한 사람은 사랑 때문에 상처를 받고, 다른 한 사람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사랑과 거리를 둔다.

그런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게 된다니, 조용하게 시작될 리가 없다.

처음에는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부딪히고, 서로의 행동을 못마땅해하면서도 이상하게 상대의 존재가 신경 쓰인다. 그런데 로맨스에서는 이 지점이 진짜 재미있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좋아한다’고 인정하기 전, 더 많은 감정이 오가는 시간!

책 속 레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모르는 사람인데도 저런 상태로 두고 가려니 마음이 쓰였다. 망할 놈의 성격!”

겉으로는 귀찮아하고 투덜거리면서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
이 짧은 장면만으로도 레인이 차갑고 무심한 남자는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말보다 행동에서 마음이 먼저 드러나는 인물이라서, 이후 로이스와의 관계가 변화하는 과정도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만든다.


로이스의 감정선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갑작스러운 이별 자체보다, 그 이별을 통해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사랑해왔는지를 돌아보게 된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한 사람에게 맞춰 살아온 사람에게 관계의 끝은 함께했던 시간이 사라지는 것뿐 아니라, 그동안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까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실연당하려면 뭔가 잘못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내 삶은 오로지 커크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사랑이 끝났을 때에 사람은 이유를 찾는다.
내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뭔가 잘못한 것은 아닐까 하고.

하지만 모든 이별에 명확한 잘못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한 사람이 떠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 자체가 관계의 끝이 되기도 한다. 로이스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과정은 ‘새로운 남자를 만나는 이야기’보다 조금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은 이전 사랑을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나를 다시 만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니까.

이 작품의 재미는 무엇보다 레인과 로이스 사이의 대화와 분위기에 있다.
둘은 쉽게 가까워지지 않는다. 서로를 자극하고, 무시하고, 도발하면서 관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그런 시간이 반복될수록 두 사람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친밀감이 쌓인다.

🔖“내가 도발하면 로이스는 늘 그렇듯 맞받아쳤고, 나는 끊임없이 그녀를 무시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사이에 묘한 공감대가 생겼다.”

이 문장이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처럼 느껴졌다.
사랑은 어느 순간 갑자기 ‘0에서 100’으로 바뀌는 감정보다, 별것 아닌 일들을 함께 겪으며 어느새 상대가 내 일상 안에 들어와 있는 상태에 더 가까울 때가 있다.

처음에는 귀찮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궁금해지고, 신경 쓰지 않으려 할수록 더 신경 쓰이고,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던 행동 하나에 괜히 마음이 흔들린다.

그렇게 보면 레인과 로이스의 관계는 ‘앙숙에서 연인으로’라는 한 줄보다, 타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으로 읽는 편이 더 재미있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두 사람 사이의 긴장감은 확실히 달라진다.
특히 레인의 마음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장면들은 초반의 까칠한 모습과 대비되어 더 크게 다가온다.

🔖“그녀의 작은 머리가 내 가슴에 닿는 순간, 나는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내 두 팔은 갈 곳을 잃은 채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초반의 레인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허락하지 않던 사람이 오히려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다. 이 장면에서 재미있는 것은 순간의 ‘멈춤’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평소처럼 행동하지 못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할수록 더 어색해지고, 감정을 숨기려 할수록 몸짓과 시선에서 먼저 드러난다. 그래서 이들의 로맨스는 감정이 쌓여가는 과정에서 더 큰 설렘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로이스 역시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는 순간을 맞는다.
🔖“일 초, 이 초가 흘렀고, 내가 눈을 살짝 뜨려는 찰나 그의 입술이 느껴졌다.”

두 사람이 오랫동안 만들어온 긴장감이 한순간에 응축된 듯했다.
서로에게 끌리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인정하지 못했던 두 사람이 결국 한 걸음 가까워지는 순간.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독자가 기다리는 것은 바로 이런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언제 서로의 마음을 인정할까?’ 하는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그 장면의 설렘도 커지기 때문이다.


《캠퍼스 드라이버》 1권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느껴진 부분은 로이스의 변화였다.

처음의 로이스는 이별 때문에 자신의 삶 전체가 흔들린 상태다.
하지만 레인과 함께 지내면서 조금씩 이전과 다른 자신을 발견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한 사람을 중심으로 살아왔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의 감정과 선택을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로맨스는 누군가와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삶이 있어야 하고, 사랑이 끝난 뒤에도 자신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느껴졌다.

레인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마음이 흔들리면서 자신이 세워놓은 벽에도 균열이 생긴다.

두 사람 모두 서로를 만나면서 상대방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변한다.


특히 ‘캠퍼스 드라이버’라는 설정도 이야기에 활력을 더한다.
빈티지 자동차와 대학생이라는 조합 자체가 작품에 젊고 영화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네 명의 친구가 함께 서비스를 운영한다는 설정 덕분에 레인과 로이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까지 궁금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시리즈물임에도 한 커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권의 이야기가 완결되는 구조라는 점이 부담 없이 읽기 좋았다.


책을 읽고 나면 ‘사랑에 빠지는 순간’보다 사랑 때문에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과정이 더 오래 남는다. 특히 로이스에게 이별은 끝이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레인에게도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자신이 오랫동안 지켜온 선을 넘어서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며 사랑이란 상대방을 만나는 일인 동시에, 그 사람을 통해 지금까지 몰랐던 나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불편한 존재였던 두 사람이 어느 순간 서로의 일상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사람이 되고,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게 되는 과정.

그 변화가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는 것은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보다 그 직전의 시간이다.
상대가 신경 쓰이지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고, 가까워지고 싶지만 자존심 때문에 먼저 다가갈 수도 없는 그 애매한 거리.

바로 그 거리를 이 작품은 꽤 즐겁고 유쾌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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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언제 시작되는 걸까.

첫눈에 반하는 순간일까, 아니면 어느새 그 사람의 표정과 말투와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 순간일까.

사랑은 ‘좋아한다’고 깨닫기 훨씬 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레인과 로이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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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해부학 - 완전한 질서 너머 삶의 의미를 찾아서
가브리엘 웨스턴 지음, 김성훈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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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더퀘스트 출판사로부터 [오퀘스트라 4기]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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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해부한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들여다보는 일일까.
뼈와 근육, 장기와 혈관, 피부와 신경을 하나씩 살펴보는 일일까.
아니면 그 몸을 가지고 살아온 한 사람의 시간과 기억, 사랑과 상처까지 들여다보는 일일까.

평소 나 자신의 몸을 너무 당연하게 여겼다. 심장이 뛰고, 폐가 숨을 쉬고, 콩팥이 혈액을 걸러내고, 간이 묵묵히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다.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몸을 바라보았고, 평소에는 ‘나’와 ‘몸’을 거의 하나처럼 생각하지만, 질병이 찾아오는 순간 몸은 낯선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은 바로 그 낯선 몸속으로 들어가며, 그곳에서 장기 하나하나를 해부하는 대신, 그 안에 살아 있는 ‘사람’을 발견한다.

책의 시작부터 인상적이었다. 죽은 몸을 바라보면서 저자는 그 몸을 해부학적 대상이 아니라 한때 분명한 삶을 살아냈던 사람으로 상상한다. 손가락 하나를 보면서 그 손이 어떤 일을 했을지, 누구를 사랑했을지,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를 떠올린다.

그 장면을 읽으며 해부학이라는 학문이 생각보다 훨씬 인간적인 학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통해 한 인간을 다시 조립하는 것.

그래서 책 속의 🔖“죽은 해부학은 거짓 해부학이다.”라는 문장이 오래 남았다.

몸은 죽은 순간에도 그 사람이 살아온 흔적을 품고 있지만, 그 흔적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장기의 위치와 기능만 알아서는 충분하지 않다. 몸을 살아 있는 삶과 연결해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로 읽혔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저자가 질병을 몸의 ‘고장’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현대 의학은 몸의 이상을 발견하고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데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환자에게 질병은 검사 결과에 적힌 수치 하나가 아니다. 투석을 받는 사람에게 질병은 일주일에 몇 번 병원에 가야 하는 일정이 되고, 그 사람의 여행과 직업과 인간관계와 미래의 계획까지 바꾸어놓는다.

그래서 콩팥에 관한 장에서 등장하는 이 문장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

🔖“시간의 자유는 자신의 일정을 마음대로 짤 수 있다는 것 이상의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자신의 이야기 안에서 움직이면서 그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자유다.”

질병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아픈 사람에게 빼앗기는 것은 건강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즉 내 인생의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시간까지 조금씩 빼앗길 수 있다.

그래서 만성질환을 이해한다는 것은 질병의 증상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을 이해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깊이 생각하게 만든 것은 피부에 대한 이야기였다.

🔖“피부는 내가 끝나고 세상이 시작되는 경계다. 피부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나이고, 피부 밖에 있는 모든 것은 내가 아니다.”

피부는 몸을 감싸고 있는 조직이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피부는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는 동시에 외부와 접촉하게 만드는 기관이기도 하다. 완전히 닫힌 경계라면 세상과 접촉할 수 없고, 아무런 경계가 없다면 나라는 존재를 지킬 수도 없다.

저자가 피부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관계와 삶의 방식까지 확장된다.
인간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닫기도 하지만, 완전히 닫아버리면 사랑이나 위로 같은 것도 들어올 수 없다. 나를 보호하면서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몸의 구조를 설명하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 삶의 태도에 대한 질문으로 바뀌는 지점들이 흥미로웠다.

🔖“허파는 인생의 책갈피다. 갓 태어난 아기가 울음을 터트리면 우리는 그 아기를 세상에 맞이한다. 사랑하는 이가 마지막 숨을 내쉬면 우리는 그가 영원히 떠났음을 안다.”

탄생과 죽음을 연결하는 가장 단순한 행위가 ‘숨’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살아 있는 동안 너무 당연하게 숨을 쉬고 있지만, 그 사실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숨이 어려워지는 순간, 비로소 평범했던 호흡이 얼마나 큰 생명의 행위였는지를 깨닫는다.

건강하다는 것은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프지 않고, 숨이 잘 쉬어지고, 걸을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잠들 수 있는 평범한 하루. 그 평범함이 사실은 몸이 매 순간 만들어내고 있는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해부학에 사회적·역사적 관점까지 끌어들인다는 점이었다.

성기와 유방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몸을 배우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객관적이지만은 않았다는 질문을 던진다. 오랫동안 의학의 언어와 시선이 특정한 몸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왔다면, 그 과정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거나 왜곡되어 이해된 몸도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여성을 설명하는 기존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여성이 지금까지 가짜를 강매당했다”고 강하게 표현한다.

이 부분은 해부학적 지식의 수정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아는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무엇을 중심에 놓고 설명하느냐에 따라 같은 몸도 전혀 다른 이야기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심장 이야기도 흥미롭다.
저자는 과거의 해부학적 설명이 새로운 관찰과 발견에 의해 바뀌어온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의학에서도 ‘언어’와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신체에 관한 진실은 해부학의 문제인 것만큼이나 스토리텔링의 문제이기도 하다.”

몸을 설명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그 언어가 달라지면 몸을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질병을 ‘고장’이라고 부르면 환자는 고장 난 사람이 되기 쉽고, 질병을 한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일부로 바라보면 그 사람의 경험과 감정까지 함께 보게 된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몸을 더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 것 같다. 몸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그 몸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에 더 가까워 보인다.


무엇보다 저자가 자신의 몸과 가족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이 책의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외과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자신의 몸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의 몸을 치료하던 의사도 어느 순간 환자가 될 수 있고, 수술을 집도하던 사람도 수술대 위에 누울 수 있다. 그 사실은 의사와 환자 사이의 거리를 아주 인간적인 방식으로 좁힌다.

아픈 사람을 바라보는 의사가 언젠가는 아픈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건강한 몸을 가진 사람이 언젠가는 늙고 병들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누구도 자신의 몸을 영원히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

평소 몸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일정한 시간 동안 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죽음과 장기기증을 삶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과 연결하는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죽은 사람의 심장이나 간, 콩팥이 다른 사람의 몸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죽음과 삶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한 사람에게 끝이 되는 순간이 다른 사람에게는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의학적인 사실을 넘어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고 나는 내 몸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거울을 보면서도 피부밖에 보지 못했고, 몸무게가 늘거나 줄면 숫자를 확인했고, 어디가 아프면 그 부분만 신경 썼다.

하지만 그 몸 안에서는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수많은 장기들이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 심장은 하루 종일 뛰고, 폐는 계속 숨을 쉬고, 콩팥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간은 손상된 상황에서도 회복을 시도한다.

나는 몸을 ‘내가 가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몸은 내가 살아가기 위해 잠시 함께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동반자에 가깝다.

그리고 그 몸은 완벽하지 않다.
늙고, 상처받고, 병들고, 때로는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불완전함을 실패라고만 말하지 않는다.
상처와 질병, 노화와 죽음까지도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 안에 포함시킨다.

그래서 《인생의 해부학》은 해부학 책이면서 동시에 삶에 관한 책이다.

몸을 이해하는 일이 곧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

그리고 아마 이 책을 읽고 나면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숨 한 번’이나 ‘심장 한 번의 박동’조차 조금이나마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몸 안에 살면서도 몸을 잊고 살아간다.
그러다 몸이 아픈 순간에야 비로소 얼마나 몸에 의존해 살아왔는지를 깨닫는다.

몸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삶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언젠가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지금의 몸과 삶이 더욱 소중해지는 것.

언젠가 마지막 숨을 내쉬게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지금의 숨이 더욱 선명해지는 것.


몸을 해부한다는 것은 사람을 해부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읽어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책을 읽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프지 않은 오늘, 숨 쉬는 오늘, 걸을 수 있는 오늘.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하루가 사실은 몸이 온 힘을 다해 나에게 건네고 있는 하나의 삶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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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5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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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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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결국 유전자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인가?’
제목만 보면 인간의 행동과 선택, 사랑과 이타심마저 유전자의 생존 전략에 불과하다는 냉정한 이야기를 하는 책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1976년에 처음 출간된 《이기적 유전자》가 5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지금까지 읽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과학 지식을 전달하는 책을 넘어, 인간이 ‘나’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흔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명체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되는 이 부분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들은 우리를,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들의 보존이야말로 우리 존재의 궁극적인 근본 이유다. […] 지금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며, 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다.”

나는 나 자신을 하나의 독립적인 인간으로 생각하지만, 유전자라는 훨씬 오래된 관점에서 바라보면 나 역시 생명의 역사 속에서 유전 정보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생존 기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 섬뜩하면서도 놀랍다.

그러나 이 책의 매력은 인간을 유전자의 꼭두각시로 결론 내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작동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한다고 해서 인간의 모든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래 기억에 남은 문장이 있다.
🔖“우리는 타고난 이기적 유전자와 필요하다면 주입받은 이기적 밈에도 맞설 힘을 지닌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간에 대한 선언은 더욱 인상적이다.
🔖“우리, 지구에서 우리만이 이기적 복제자의 독재에 반역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유전자의 힘을 이해한 인간이 그 힘을 어떻게 바라보고 선택할 것인가에 관한 책으로 읽혔다.

인간은 본능을 가지고 태어나고, 환경의 영향을 받고, 문화와 사회가 만들어낸 가치관 속에서 살아간다. 때로는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선택조차 사실은 오랜 진화와 사회적 학습의 영향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마 완전히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가 자유인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인식하고, 그 영향에 그대로 끌려갈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지를 고민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인간이 가진 특별한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은 ‘이기적’이라는 단어를 인간의 성격이나 도덕적 판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표현은 유전자가 욕심을 부리거나 의지를 가지고 행동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연선택의 관점에서 유전자의 복제와 보존을 중심에 놓고 생명의 현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설명 방식이다.

오히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타적인 행동도 새롭게 보인다.

왜 부모는 자신의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가.
왜 혈연관계가 가까울수록 서로를 돕는 행동이 나타나는가.
왜 서로 다른 개체들이 협력하는 경우가 존재하는가.

‘모든 생명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인다’고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유전자와 자연선택이라는 관점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책을 읽을수록 ‘이기적’이라는 제목보다 생명은 어떻게 협력과 이타성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가라는 생각이 더 크게 다가왔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생명의 출발점을 냉정하게 바라보면서도 그 결과로 나타난 인간의 행동은 훨씬 복잡하고 다층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인간에게는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아마 의식은 뇌의 세계 시뮬레이션이 자기 자신의 모델까지 포함할 만치 너무나 완벽해질 때 생겨나는 듯하다.”

‘의식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할 뿐 아니라,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할 수 있다.

화를 내면서도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났지?’라고 물을 수 있고,
어떤 욕망이 생겼을 때도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일까?’라고 되물을 수 있다.

그 순간 인간은 자신의 본능이나 욕망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보게 된다.
이것이 《이기적 유전자》가 말하는 인간의 특별함과도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유전자의 영향을 받지만 그 영향을 관찰할 수 있고, 본능에 따라 행동하면서도 그 행동을 반성할 수 있으며, 현재의 욕망을 넘어 미래의 결과를 상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위대함은 유전자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움직이는 힘을 인식할 수 있다는 데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50주년 기념판에서 특히 흥미롭게 와닿은 부분은 AI와 진화에 관한 이야기다.

1976년의 독자라면 ‘유전자 중심으로 생명을 바라본다’는 발상 자체가 상당히 급진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지금 도킨스의 시선은 생물학적 진화에서 문화와 기술, 그리고 인공지능으로까지 확장된다.

특히 인간이 언어와 문화를 통해 정보를 전달한다는 점은 중요하게 느껴졌다.

유전자는 DNA라는 물질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지만 인간은 언어와 지식, 문화와 기술을 통해 정보를 훨씬 빠르게 퍼뜨린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생물학적 유전자만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전 세대가 축적한 지식과 가치관과 기술을 다음 세대가 이어받는다.

그리고 이제는 그 과정에 인공지능까지 들어왔다.
AI는 인간이 축적한 방대한 정보를 학습하고, 다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간과 AI 사이에서 정보와 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복제되고 변형될까.

50주년 기념판에서 이 질문을 만나는 순간 50년 전 던져진 질문이 오늘날 AI라는 새로운 환경을 만나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조금 서늘한 상상도 하게 된다.
만약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정보를 복제하고 변형하며 발전한다면, 미래의 ‘복제자’는 반드시 DNA여야 할까?

도킨스가 던지는 미래에 대한 상상은 이런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


책을 읽은 뒤 떠오른 생각은
'인간은 어디까지 자신의 본능과 환경을 넘어설 수 있는가'이었다.

앞으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책 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지금의 행동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할 수도 있다. 바로 그 능력이 인간에게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기적 유전자》가 50년 동안 살아남은 이유는 하나의 답을 제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생명과 인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계속 뒤집어놓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문장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기적 유전자』, 또는 적어도 세세한 내용을 뺀 그 주요 내용은 생명이 있는 우주의 어느 행성에서든 출판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문장은 곱씹을수록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얼마나 넓은지를 생각하게 됐다.

생명이 존재하고, 복제가 일어나고, 선택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진화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질문은 DNA에만 머물지 않는다. 문화가 되고, 언어가 되고, 기술이 되고, 인공지능이 된다.

1976년에 시작된 하나의 질문이 50년 뒤 AI 시대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우리가 유전자의 생존 기계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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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
김유진 지음 / 북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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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컬처블룸 리뷰단을 통해 북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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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을 아는 것이 반드시 행복한가?


기억을 되살리는 의사와 기억을 지우는 의사.
서로 정반대의 의술을 가진 두 사람이 한 사람의 과거를 사이에 두고 맞붙는다는 설정부터 흥미로웠다. 특히 기억은 과거를 저장하는 기능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관계, 죄책감과 복수심까지 좌우하는 하나의 힘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만약 내가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 사실은 누군가에 의해 잘려 나가고, 덧붙여지고, 조작된 것이라면 어떨까.

내가 믿어온 과거가 무너지는 순간 과연 지금의 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주인공 김수오는 브레인 임상연구센터의 레지던트 4년 차로, 교수들 몰래 엄마 김소희에게 기억 회복술을 시행한다. 그런데 수술을 통해 엄마의 기억을 되돌리는 일이 오히려 새로운 고통을 불러온다. 잊고 있던 남편의 존재가 되살아나면서 엄마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기억이라는 것이 언제나 되찾아야 할 대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기억을 잃는 것을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 사랑했던 순간, 지나온 삶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을 당연히 좋은 일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어떤 기억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잊고 싶은 것도 있다.

그렇다면 기억을 되찾게 해주는 것이 정말 선한 일일까.
반대로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워주는 것이 정말 누군가를 위한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작품은 어느 한쪽에 쉽게 답을 내리지 않는다. 기억 회복과 기억 제거 모두 누군가에게는 구원이 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기술 그 자체보다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판단을 선의라고 믿는 순간이 아닐까 싶었다.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 것은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누군가의 죄를 덮어주는 것이 정말 자비일까.

자비라는 이름으로 죄를 감싸줄 수 있지만, 그 자비를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돈과 권력,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누군가에게는 용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은폐가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순수한 자비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선의를 내세운다고 해서 그 행동까지 반드시 선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타인의 기억과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용한다면, 선의조차 권력이 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주경재라는 인물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자신의 능력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타인의 삶을 통제하려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김수오 역시 복수와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인물은 아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대립은 서로 다른 욕망과 가치관이 충돌하는 두뇌 싸움처럼 느껴졌다.

특히 김수오가 주경재의 의술을 동경하면서도 그에게 복수하고 싶어 하는 감정의 변화가 인상적이었다. 상대를 증오하면서도 동시에 인정하고, 닮고 싶지 않으면서도 그의 능력에 끌리는 감정은 인간관계에서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마음이기도 하다.

피가 섞인 관계라고 해서 반드시 같은 가치관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가족이니까, 오래 알고 지냈으니까,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까 그 사람의 마음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세계까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 하나만 가지고 그 사람의 마음을 단정할 수도 없고, 내가 알고 있는 기억만으로 그 사람의 과거 전체를 판단할 수도 없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기억은 바로 그 '사람을 안다는 것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실제로는 전혀 다른 기억을 품고 있을 수도 있고, 내가 믿었던 관계가 사실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즉, 타인의 기억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을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나 자신은 어떨까.
내가 기억하는 나의 과거 역시 정말 온전한 것일까.
소설을 읽고 난 뒤에는 이런 생각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기억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내는 재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억을 지운다는 것은 특정 장면 하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현재와 미래까지 바꿀 수 있는 일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기억 조작이라는 설정은 인간의 정체성과 존엄에 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라가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제목 자체가 하나의 수수께끼처럼 느껴졌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 의미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실이 뒤집히고, 하나의 단서가 또 다른 의문을 만들어내면서 제목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작품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김수오가 어머니의 잃어버린 기억을 추적하면서 점점 자신이 알고 있던 가족의 모습과 실제 과거 사이에 커다란 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문득 영화 [인셉션]이 떠오르기도 했다.
두 작품은 소재는 다르지만, ‘내가 믿고 있는 기억과 생각이 나를 만든다면 그것이 조작되었을 때 여전히 나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인셉션]이 꿈을 통해 인간의 인식과 현실의 경계를 흔들었다면, 이 작품은 기억을 되살리고 지우는 기술을 통해 과거와 정체성의 경계를 흔든다.

두 작품 모두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이라고 믿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엄마에게 기억을 되찾아주고 싶었던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복수와 욕망, 능력에 대한 집착까지 뒤섞인다.

그래서 김수오 그 역시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복수는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특히 프롤로그에서 마음에 남았던 또 하나의 문장은 이것이다.

🔖“산 자들은 기억이라는 형벌을 안고 눈을 뜬다.”

기억은 행복했던 순간을 붙잡아주는 축복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울 수 없는 고통을 계속해서 되풀이하게 만드는 형벌이기도 하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기억과 기억하고 싶어도 사라져버린 기억.

그 사이에서 인간은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책을 읽으면서 기억이란 진실 그 자체라기보다 내가 누구인지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억을 되찾는 일이 언제나 행복한 결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진실을 아는 것이 더 큰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마주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이 작품은 이 생각이 머무는 지점에서 복수극과 SF라는 장르를 넘어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혈연'에 대한 생각이었다.
피가 섞였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되는 것도 아니다. 같은 혈연 안에서도 서로 다른 욕망과 상처, 가치관이 존재한다.

가족이라는 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그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무엇을 했고, 무엇을 기억하고 있으며, 무엇을 선택했는지가 아닐까.


《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는 기억을 되살리고 지우는 미래 기술을 이야기하지만, 읽고 난 뒤 남는 생각은 의외로 아주 인간적인 것이었다.

내가 가진 기억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정말 얼마나 알고 있을까.

뇌를 다루는 두 의사의 치열한 두뇌싸움과 서로 다른 가치관의 충돌을 따라가는 재미도 분명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아무리 가까워도 완전히 건너갈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인간은 더 행복해질까.
아니면 고통스러운 기억까지도 나를 나답게 만드는 일부이기 때문에,
그것을 잃는 순간 지금의 나 역시 조금씩 사라지는 것일까.


기억은 때로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어쩌면 그 아픔까지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안다는 것, 기억한다는 것, 용서한다는 것.

미래의 기술을 빌려 이 세 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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