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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
김유진 지음 / 북다 / 2026년 8월
평점 :
※본 게시물은 컬처블룸 리뷰단을 통해 북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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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을 아는 것이 반드시 행복한가?
기억을 되살리는 의사와 기억을 지우는 의사.
서로 정반대의 의술을 가진 두 사람이 한 사람의 과거를 사이에 두고 맞붙는다는 설정부터 흥미로웠다. 특히 기억은 과거를 저장하는 기능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관계, 죄책감과 복수심까지 좌우하는 하나의 힘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만약 내가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 사실은 누군가에 의해 잘려 나가고, 덧붙여지고, 조작된 것이라면 어떨까.
내가 믿어온 과거가 무너지는 순간 과연 지금의 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주인공 김수오는 브레인 임상연구센터의 레지던트 4년 차로, 교수들 몰래 엄마 김소희에게 기억 회복술을 시행한다. 그런데 수술을 통해 엄마의 기억을 되돌리는 일이 오히려 새로운 고통을 불러온다. 잊고 있던 남편의 존재가 되살아나면서 엄마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기억이라는 것이 언제나 되찾아야 할 대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기억을 잃는 것을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 사랑했던 순간, 지나온 삶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을 당연히 좋은 일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어떤 기억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잊고 싶은 것도 있다.
그렇다면 기억을 되찾게 해주는 것이 정말 선한 일일까.
반대로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워주는 것이 정말 누군가를 위한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작품은 어느 한쪽에 쉽게 답을 내리지 않는다. 기억 회복과 기억 제거 모두 누군가에게는 구원이 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기술 그 자체보다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판단을 선의라고 믿는 순간이 아닐까 싶었다.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 것은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누군가의 죄를 덮어주는 것이 정말 자비일까.
자비라는 이름으로 죄를 감싸줄 수 있지만, 그 자비를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돈과 권력,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누군가에게는 용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은폐가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순수한 자비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선의를 내세운다고 해서 그 행동까지 반드시 선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타인의 기억과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용한다면, 선의조차 권력이 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주경재라는 인물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자신의 능력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타인의 삶을 통제하려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김수오 역시 복수와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인물은 아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대립은 서로 다른 욕망과 가치관이 충돌하는 두뇌 싸움처럼 느껴졌다.
특히 김수오가 주경재의 의술을 동경하면서도 그에게 복수하고 싶어 하는 감정의 변화가 인상적이었다. 상대를 증오하면서도 동시에 인정하고, 닮고 싶지 않으면서도 그의 능력에 끌리는 감정은 인간관계에서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마음이기도 하다.
피가 섞인 관계라고 해서 반드시 같은 가치관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가족이니까, 오래 알고 지냈으니까,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까 그 사람의 마음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세계까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 하나만 가지고 그 사람의 마음을 단정할 수도 없고, 내가 알고 있는 기억만으로 그 사람의 과거 전체를 판단할 수도 없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기억은 바로 그 '사람을 안다는 것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실제로는 전혀 다른 기억을 품고 있을 수도 있고, 내가 믿었던 관계가 사실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즉, 타인의 기억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을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나 자신은 어떨까.
내가 기억하는 나의 과거 역시 정말 온전한 것일까.
소설을 읽고 난 뒤에는 이런 생각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기억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내는 재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억을 지운다는 것은 특정 장면 하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현재와 미래까지 바꿀 수 있는 일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기억 조작이라는 설정은 인간의 정체성과 존엄에 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라가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제목 자체가 하나의 수수께끼처럼 느껴졌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 의미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실이 뒤집히고, 하나의 단서가 또 다른 의문을 만들어내면서 제목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작품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김수오가 어머니의 잃어버린 기억을 추적하면서 점점 자신이 알고 있던 가족의 모습과 실제 과거 사이에 커다란 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문득 영화 [인셉션]이 떠오르기도 했다.
두 작품은 소재는 다르지만, ‘내가 믿고 있는 기억과 생각이 나를 만든다면 그것이 조작되었을 때 여전히 나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인셉션]이 꿈을 통해 인간의 인식과 현실의 경계를 흔들었다면, 이 작품은 기억을 되살리고 지우는 기술을 통해 과거와 정체성의 경계를 흔든다.
두 작품 모두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이라고 믿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엄마에게 기억을 되찾아주고 싶었던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복수와 욕망, 능력에 대한 집착까지 뒤섞인다.
그래서 김수오 그 역시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복수는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특히 프롤로그에서 마음에 남았던 또 하나의 문장은 이것이다.
🔖“산 자들은 기억이라는 형벌을 안고 눈을 뜬다.”
기억은 행복했던 순간을 붙잡아주는 축복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울 수 없는 고통을 계속해서 되풀이하게 만드는 형벌이기도 하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기억과 기억하고 싶어도 사라져버린 기억.
그 사이에서 인간은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책을 읽으면서 기억이란 진실 그 자체라기보다 내가 누구인지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억을 되찾는 일이 언제나 행복한 결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진실을 아는 것이 더 큰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마주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이 작품은 이 생각이 머무는 지점에서 복수극과 SF라는 장르를 넘어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혈연'에 대한 생각이었다.
피가 섞였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되는 것도 아니다. 같은 혈연 안에서도 서로 다른 욕망과 상처, 가치관이 존재한다.
가족이라는 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그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무엇을 했고, 무엇을 기억하고 있으며, 무엇을 선택했는지가 아닐까.
《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는 기억을 되살리고 지우는 미래 기술을 이야기하지만, 읽고 난 뒤 남는 생각은 의외로 아주 인간적인 것이었다.
내가 가진 기억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정말 얼마나 알고 있을까.
뇌를 다루는 두 의사의 치열한 두뇌싸움과 서로 다른 가치관의 충돌을 따라가는 재미도 분명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아무리 가까워도 완전히 건너갈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인간은 더 행복해질까.
아니면 고통스러운 기억까지도 나를 나답게 만드는 일부이기 때문에,
그것을 잃는 순간 지금의 나 역시 조금씩 사라지는 것일까.
기억은 때로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어쩌면 그 아픔까지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안다는 것, 기억한다는 것, 용서한다는 것.
미래의 기술을 빌려 이 세 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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