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처럼 노래하라 - 물속 생명을 조율하는 소리,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아모리나 킹던 지음, 김지원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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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문학수첩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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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랫동안 바다를 침묵의 공간으로 오해해 왔다.
프랑스의 해양 탐험가 쟈크 쿠스토가 바다를 ‘침묵의 세계(The Silent World)’라 칭했던 것처럼, 인간의 감각은 파도 밑에서 펼쳐지는 음향의 다채로움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모리나 킹던의 《물고기처럼 노래하라》는 이러한 육지 중심적 통념을 깨부수며, 바다가 실상은 온갖 생명의 목소리로 가득 찬 거대한 교향곡의 현장임을 일깨워 준다.

인간의 귀는 스쿠버다이빙을 하거나 물속에 머리를 감았을 때 들려오는 것은 그저 먹먹한 이명(耳鳴)과 자신의 숨소리뿐인 것처럼 공기라는 매질 안에서 진동을 받아들이도록 진화했기에 물속에 들어서면 침묵을 경험한다.

하지만 물은 공기보다 입자가 조밀하여 소리를 약 4.5배나 더 빠르게, 그리고 멀리 전달하는 훌륭한 도구이다. 이 책을 접하며 가장 놀라웠던 대목은 소리가 해양 생물들의 생존과 진화 그 자체를 결정지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인간은 귀로 세상을 듣지만, 바닷속 생물들은 온몸으로 세상을 파동으로 감지한다. 물고기는 측선과 부레를 이용해 진동을 느끼고, 귀가 없는 산호초 유충이나 가재조차도 소리의 결을 따라 집을 찾거나 위협을 피한다.

특히 새벽과 황혼녘 바닷속에서 펼쳐지는 물고기들의 집단 합창이나, 산호초가 자라나며 내는 소리가 어린 유충들을 안전한 서식지로 이끌어당긴다는 사실은 생명의 이색적이고도 치밀한 생존 전략을 보여준다.


현장 연구자인 콕스가 저자에게 전한 🔖“새가 물고기처럼 노래하는 겁니다”라는 말은 진화의 역사와 관점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육상 동물의 조상이 물속에서 먼저 소리로 소통하는 법을 익혔음을 떠올려 보면, 오늘날 우리가 들는 자연의 소리 역시 까마득한 수중 생태계에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책은 인간이 바다에 가하고 있는 음향적 침범을 냉철하게 고찰한다. 거대한 화물선의 엔진 소리, 지진파 탐사 에어건, 모터보트의 진동은 해양 생물들의 ‘청취 공간’과 ‘소통 공간’을 급격히 축소시키고 있다. 소리로 세상을 인지하고 먹이를 찾으며 짝을 만나는 존재들에게 인간의 소음은 시각 장애를 일으키는 짙은 안개이자, 일상을 무너뜨리는 폭력과 다름없다.

책 속에서 저자가 베스강을 따라 내려가며 묘사한 장면은 소음과 생명이 위태롭게 교차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모터 소리 사이로 들리는 🔖“첨치 특유의 두드리는 소리”와 🔖“두꺼비고기의 부드러운 ‘붑붑’ 하는 코러스”는 배들로 통로가 막힌 수로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려는 생명체들의 눈물겨운 발버둥처럼 느껴진다.

또한 52헤르츠 고래의 이야기를 다룬 대목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자금을 댄 다큐멘터리... BTS의 노래 〈Whalien 52〉”등을 언급하며 대중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한편, 소음으로 가득 찬 대양에서 고래들이 하루 24시간 내내 🔖“먼 엔진의 그르렁거리는 소리 속에서 헤엄을 친다”는 묘사는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또한 코로나19 펜데믹 당시 글레이셔만 국립공원에서 배가 사라지자 🔖“어미와 새끼 혹등고래가 서로 거리를 유지하고자 조그맣게 속삭이는 소리까지도 잡아낼 만큼 조용해졌다”는 대목은 씁쓸한 깨달음을 준다. 우리가 잠시 멈추었을 때 비로소 바다의 생명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인간의 소음이 그들의 친밀한 대화마저 얼마나 거칠게 짓밟아 왔는지 증명한다.

《물고기처럼 노래하라》를 읽고 난 뒤 파도를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진다. 수면 아래에는 우리가 미처 듣지 못했을 뿐, 수많은 생명이 각자의 주파수로 삶을 노래하고 있었다. 저자의 지적처럼 인간은 기묘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고래와 바다로부터 분리해 왔다.

거대한 엔진 소음은 🔖“어부, 보트 타는 사람들, 다른 바다 여행자들이 파도 위에서나 선체를 통해 들었을 고래의 소리를 모조리 집어삼켰다”는 구절처럼, 소음은 바다 생물뿐만 아니라 인간 스스로도 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격리해 버렸다.


지구라는 행성은 인간만의 무대가 아니다. 이제는 선박의 감속 운항이나 저소음 엔진 개발처럼, 바다의 진정한 주인들에게 조용한 터전을 돌려주기 위한 사려 깊은 노력이 필요하다. 푸른 파도 너머에서 들려오는 물속 생명체들의 조용한 속삭임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지구 생태계의 참된 이웃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한동안 물결 아래의 음향 세계가 귓가에 잔향처럼 남았다. 바닷가에 서서 파도를 바라볼 때, 이제 우리는 수면 위로 부서지는 하얀 거품만을 보지 않을 것이다. 그 수평선 너머,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 속에서 수억 년 동안 이어져 온 나지막한 고래의 휘파람과 물고기들의 노래, 그리고 그 거대한 울림의 세계를 가만히 떠올려보게 될 것이다.

바다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가 들으려 하지 않았던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부터 시작된다는 깊은 깨달음을 전해주는 책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 해양생물에 관심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은 독자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잊고 살았던 '듣는 법'을 다시 배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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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종말 - 우리 세대는 어떻게 노력의 의미를 잃게 되었는가
올리비에 바보 지음, 이나래 옮김 / 더웨이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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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락'이 빼앗아간 인간다움
- 편리함이라는 안락사, 인간은 왜 다시 '노력'을 구해야 하는가.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원하는 물건이 집 앞에 도착하고, 궁금한 것은 검색 한 번이면 답을 얻는다. 이제는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람 대신 생각하는 시대까지 찾아왔다. 분명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편리한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더 쉽게 지치고, 작은 어려움 앞에서도 금세 자신감을 잃곤 한다. 편리함은 늘어났는데 삶을 버텨내는 힘은 오히려 약해진 것은 아닐까.


우리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가.
그리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힘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오랫동안 문명의 목적이 '인간을 고통과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라 믿어왔다. 실제로 현대 기술과 복지 시스템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적은 신체적·정신적 에너지를 쓰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달콤한 편리함 뒤에 숨겨진 잔혹한 대가를 직시하게 만든다.

​저자는 과거 인류사를 지탱해온 세 가지 핵심 기둥으로 '생존, 소속, 자기완성'을 꼽는다.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위험에 맞서 먹고살기 위해,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 그리고 신이나 모범적인 처신을 통해 스스로를 완성하고자 막대한 노력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기술과 사회 시스템의 고도화는 이 세 가지 기둥을 뿌리째 흔들어놓았다.

🔖​"나의 논지는 이 세 기둥이 모두 처참하게 무너졌다는 것이다. 산산이 부서져 땅바닥에 나자빠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 이제 우리를 부르는 소명은 사라졌고, 우리를 강제하던 의무 또한 자취를 감췄다."

​현대인이 겪는 무기력의 원인을 정확히 짚어낸다. 고통과 결핍이 사라진 자리에 찾아온 것은 자유가 아니라 '실존적 공허'였다. 도파민을 자극하는 수많은 숏폼 영상과 알고리즘, 클릭 한 번으로 완결되는 배달과 서비스 속에서 우리는 저자가 말한 '호모 콤포르(Homo Comfort,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인간)'로 퇴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애물이 사라진 평평한 삶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서 삶을 밀고 나갈 '의지의 근육'을 빼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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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 중 특히 눈길을 사로잡았던 부분은 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인들의 노동과 삶에 대한 통계 수치였다. 저자는 한국인이 일에서 의미를 찾기보다 물질적 안락함과 안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조사를 인용한다.

🔖​"가령 한국인의 경우, 일이 삶에 의미를 준다고 답한 비율은 고작 6%에 불과했다. ... 그 대신 한국인은 프랑스인보다 물질적 안락함, 안정감, 삶의 질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긴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세대 갈등과 사회적 피로도를 그대로 반사한다. 윗세대가 피와 땀으로 일구어낸 고속 성장의 열매를 맛본 현대 한국 사회는, 아이러니하게도 노동 자체의 가치나 보람보다는 '빠른 경제적 자유'와 '안락한 삶'만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경향이 강해졌다.

​하지만 수단이어야 할 '안락함'이 목적이 되어버린 순간, 과정에서 오는 보람과 끈기, 즉 '노력의 즐거움'은 설 자리를 잃는다. 과정을 견디는 힘을 잃어버린 사회는 조급해지고, 조금의 불편함이나 타인과의 마찰도 견디지 못하는 신경과민 상태에 빠지게 된다.

- ​'노력이 사라진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AI가 시와 그림을 그리고 보고서를 대신 써주는 2020년대 오늘날,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더욱 시의적절하다. 만약 AI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완전히 대체하여 노력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온다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마틴 셀리그먼 교수의 '플로리시' 개념이나 줄리아 데루오 안름가의 말처럼, 인간의 진정한 행복과 자아실현은 고통과 난관을 스스로의 힘으로 통과하며 얻는 '성취감'과 '회복탄력성'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세대는 무엇이든 당장 손에 넣고 싶어 하죠. 고통을 감내하는 인내, 강인한 의지, 온전한 헌신을 모르죠. 괴로움을 극복하는 힘과 뜨거운 열정, 포기를 모르는 끈질김을 알지 못해요."

​기술이 주는 쉽고 빠른 결과물은 잠시 동안의 쾌락을 줄지는 몰라도, 내면의 깊은 자존감을 만들어주지 못한다. 진짜 내 것이 되기 위해 들어가는 온전한 시간과 땀, 즉 '노력의 과정' 자체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보루인 것이다.

​책의 구절들 중 유독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메아리치는 문장이 있다.
🔖​"우리 세상은 쉽다는 점에서 오히려 혹독하다. 이 세상이 요구하는 무노력은 교묘한 함정이다. 우리는 편리하게 해준다는 서비스 때문에 사실은 엄청나게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문득 손에서 놓지 못하던 스마트폰과 습관적으로 틀어놓던 짧은 영상들이 떠올랐다. 세상은 우리에게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 우리가 다 해줄게"라며 끊임없이 편안함을 권유한다. 하지만 그 공짜처럼 보이는 편리함의 대가로 우리가 치르고 있는 '엄청나게 비싼 값'은 다름 아닌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 '깊이 몰입하는 주의력', 그리고 '어려움을 견뎌내는 강인한 마음'이었다.

편리함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함정에 빠져, 내 삶의 주도권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알고리즘에 넘겨주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섬뜩한 깨달음을 준다.
​또한 책을 다 읽고 난 뒤 가장 길게 여운으로 남은 생각은 "앞으로의 시대에 '노력'이란 내 영혼의 생존을 위한 최고의 저항"이라는 점이었다.

​모든 것이 속전속결로 이루어지고 쉬운 길만을 권하는 세상에서, 굳이 책을 깊이 읽고,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며, 단기간에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일에 진득하게 시간을 쏟는 행위. 그것이야말로 기술이 인간을 대체해 가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내 고유한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가장 강렬한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의 편리함을 얻는 대신,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조금씩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쉽고 안락한 길 대신, 기꺼이 불편함을 무릅쓰고 한 걸음 더 내딛는 힘.
"한 번 더, 노력을!"이라는 책의 마지막 외침은 잃어버린 내 삶의 야성과 주도권을 되찾으라고 울리는 명징한 깨움의 종소리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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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종말 - 우리 세대는 어떻게 노력의 의미를 잃게 되었는가
올리비에 바보 지음, 이나래 옮김 / 더웨이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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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아니라, 왜 인간에게 노력이 필요한지를 사회와 기술, AI 시대의 변화 속에서 차분히 짚어주는 책이라는 점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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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세우는 고전 12권 - 고전이 가르쳐준 리더의 자기 경영 법칙, 나의 존엄 ㅣ 리더의 서재 1
노진화 지음 / 진성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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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진성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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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점점 더 많은 일을 대신하고, 세상은 사람을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평가한다. 어느새 스스로를 직함으로 소개해야만 호고, 성과로 증명하며, 쓸모를 잃는 순간 존재마저 흔들릴까 두려워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펼치기 전부터 마음속에 한 가지 질문이 맴돌았다.

만약 내가 더 이상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도 나는 여전히 존엄한 사람일까.!
《나를 세우는 고전 12권》은 그 불안에 수백 년을 살아남은
고전의 문장으로 불안으로 가득한 손을 잡아 준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작품의 줄거리를 길게 설명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질문을 현재 우리의 삶과 연결한다. 그래서 고전을 많이 읽지 않은 사람도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고, 이미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전혀 다른 시선으로 다시 생각해 볼 계기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프카의 <변신>부터 <분노의 포도>까지 열두 편의 작품을 통해 지금 우리의 삶을 비춰 보게 만든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의 작품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낸다. 각 작품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결국 하나의 공통된 질문으로 이어진다.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흔들리는 시대에 끝까지 지켜야 하는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특히 첫 장 <변신>을 통해 "쓸모가 사라질 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부분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벌레가 된 그레고르가 자신의 몸보다 출근을 먼저 걱정한다는 설정은, 어쩌면 현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과 쓸모를 자신의 존재보다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일을 잃으면 나까지 잃어버린 것 같은 감정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직함과 성과, 경제적 가치가 곧 자신의 존재 가치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겹쳐졌기 때문이다. AI가 점점 더 많은 일을 대신하는 지금,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대목을 읽으며 AI 시대가 두려운 이유도 지금까지 나를 설명해 온 '쓸모'가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존엄'이라는 단어는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삶의 기준처럼 다가왔다.

문득 떠오른 옛 기억은 내가 예전에 서점 홈페이지를 통해 시즌 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하던 일을 그만두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에는 서점 운영 외에 시간이 많이 할애된다는 점에서 홈페이지 기획이 반대되었고, 그 능력이 더 이상 필요 없는 기술이 된 것 같아 허무함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책을 읽고 기록하며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같은 경험을 이어가고 있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본질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끝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사람을 만드는 것은 직함이나 역할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태도와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 문장 가운데 특히 깊이 공감했던 문장은 🔖"타인의 시선 속에 갇힌 나는 점점 고유한 나의 모습을 잊어버리고."였다. 타인의 평가와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어느 순간 내가 원하는 삶보다 남들이 인정하는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또 다른 문장 🔖"AI에게 판단은 위임할 수 있어도 책임은 위임할 수 없다."는 이 책이 전달하려는 핵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문장이라고 느꼈다.

AI는 점점 더 정확한 답을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답을 선택하는 사람은 결국 인간이다. 잘된 결과도, 실패한 결과도 마지막에는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 중요한 능력은 AI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리더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에게도 필요한 자세라는 점에서 공감이 갔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양심과 책임까지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침묵은 끝이 아니라, 아직 배우지 못한 또 다른 언어일지도 모른다."

조용히 견디는 시간이나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침묵조차 삶의 일부이며, 그것 또한 성장의 과정일 수 있다는 위로처럼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이 움직인 문장은 🔖"완벽한 계획을 세우려 하지 말고 일단 시작하라."와 🔖"실행력이야말로 리더의 진정한 실력이다."였다.

우리는 실패보다 준비 부족을 더 두려워하며 시작을 미루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계획도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고, 작은 행동 하나가 결국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사실을 조르바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된다.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계획보다 몸으로 움직이는 용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하는 문장이었다.

<분노의 포도>를 통해 연대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분노는 위험한 것이 아니다, 침묵이 오히려 위험하다."라는 문장은 공동체가 무너지는 시대일수록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침묵하는 것이 언제나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만, 부당함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침묵은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조직에서도, 사회에서도 변화를 만드는 힘은 무조건적인 순응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 목소리를 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잃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속도와 효율, 성과만을 강조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존엄을 붙잡는 일이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경쟁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세우는 고전 12권》은 고전을 통해 리더십을 배우는 책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잃지 않는 삶이 무엇인지 묻는 인문 에세이처럼 읽혔다.
조직을 이끄는 사람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리더라는 관점은 충분히 공감이 갈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책 속 질문들은 관리자뿐 아니라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 새로운 도전을 앞둔 사람, 인생의 전환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도 의미 있게 다가올 것 같다.


고전은 시대가 바뀌어도 반복되는 인간의 질문을 담고 있다.
그래서 AI 시대라는 가장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수백 년 전의 작품들이 여전히 유효한 답을 건넬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쓸모로 나를 증명하며 살아왔는가,
아니면 쓸모를 넘어 나 자신으로 서 있는가.'


성과와 효율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책임을 선택하는 사람, 존엄을 잃지 않는 사람, 끝까지 인간다움을 지키려는 사람의 가치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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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장성주 옮김 / 복복서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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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복복서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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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를 아는 것이 아니라, 끝내 말하지 못했던 침묵을 상상해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은 바로 그 침묵을 더듬어가는 소설처럼 느껴졌다.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서도 얼마나 서로를 모르고 살아가는지, 그리고 한 사람의 삶은 유년과 상처, 사랑과 예술이 어떻게 겹겹이 쌓여 만들어지는지를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것은 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가족들이 남긴 침묵이었다. 《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은 이민자의 삶이나 성장소설이라는 말만으로는 다 설명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한 사람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나는 누구에게서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존재가 때로는 가장 먼 타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거리를 이해하기 위해 한 사람이 평생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었다. 처음에는 과묵하고 무심한 사람처럼만 보였던 아버지가 시간이 흐를수록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화자는 아버지를 두고 🔖"아버지는 '말을 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오래도록 굳어 있던 한 사람의 삶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종종 침묵하는 사람을 무관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 침묵은 아무도 자신의 언어를 들어주지 않았던 세월의 결과일 수도 있다.

화자는 아버지를 다시 이해하려 애쓰고, 독자는 그 과정을 따라가며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늦고도 아픈 일인지 깨닫게 된다. 이해는 늘 늦게 찾아온다는 사실이 너무도 애잔했다.

이어지는 🔖"아버지가 우리에게 동떨어져 보였던 만큼 우리 또한 아버지에게 동떨어진 존재로 비쳤을 것이다."라는 문장은 가족을 바라보는 내 시선까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왜 저 사람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을까'를 먼저 생각하지만, 정작 상대 역시 같은 외로움을 품고 있었을 가능성은 쉽게 잊는다. 이 한 문장에는 이민자라는 정체성, 언어의 단절, 문화의 차이, 그리고 부모와 자식 사이의 오랜 오해가 모두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머니를 그려내는 방식도 인상 깊었다. 화자는 어머니를 미화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상처 입은 사람의 삶이 또 다른 상처를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을 담담히 바라본다. 그래서 인물들은 선하거나 악한 존재가 아니라, 각자의 시대와 역사 속에서 버텨낸 사람들로 남는다.

어머니 크리스타의 이야기는 또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전쟁과 이민, 가난과 상실 속에서 살아온 사람은 사랑하는 방식마저 상처를 닮게 된다는 사실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화목한 가정을 꿈꾸면서도 끝내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누군가를 미워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떤 시간을 견디며 살아왔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했다. 부모 역시 한 사람의 삶을 살아온 인간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이 소설은 일깨워주었다.

발레를 만나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특히🔖"나에게 발레는 마침내 중요한 존재로 여겨진다는 것을 의미했고..... 훼손당한다고 느꼈던 존엄을 일부나마 되찾아주는 것이기도 했다."라는 문장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발레는 무너진 자존감을 다시 세우는 공간이었고 상처 입은 아이가 세상과 자신을 다시 믿게 만드는 예술이었다. 예술이 사람을 살린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문장이 가장 잘 보여준다고 느꼈다. 누군가에게는 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글쓰기나 음악이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이 문장을 읽으며 사람은 결국 자신을 살게 하는 무언가를 만나야만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반부에서는 이 부분이 화자의 삶의 목표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생각했다.🔖"방 한 칸. 의자, 책상, 침대. 뜰이 내다보이는 창문. 음악. 책. 혼자서도 품위 있게 사는 법을 가르쳐줄 고양이 한 마리."

처음에는 소박한 바람처럼 보였지만, 곱씹을수록 이 꿈은 평범한 행복이 아니라 치열하게 상처를 지나온 사람이 겨우 찾아낸 평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목한 대가족보다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작은 방 하나를 꿈꾸게 된 이유를 알고 나니 문장이 더욱 먹먹하게 다가왔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방식 또한 인상적이었다.
🔖"사랑과 괴로움은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언어에서 같은 말이다."라는 문장은 사랑이 언제나 아름답기만 한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인정한다.

상처를 안고 자란 사람이 사랑을 통해 구원을 꿈꾸면서도 동시에 더 깊은 상처를 향해 뛰어드는 모습은 안타깝지만 매우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도, 가족을 이해하려는 마음도, 자신의 과거를 받아들이는 일도 모두 아픔을 동반한다. 그래서 이 작품이 말하는 사랑은 달콤한 감정보다는 끝내 이해하려는 의지에 더 가까워 보였다.


이 소설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자전적 요소가 짙음에도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절제된 문장들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화자는 자신의 삶을 설명하기보다 천천히 기억을 펼쳐 보이고, 그 빈칸은 독자가 자신의 가족과 유년을 떠올리며 채우게 된다. 그래서 읽는 내내 '작가의 이야기'를 읽는 동시에 '나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책을 덮고 나니 문득 부모님의 젊은 시절이 궁금해졌다.
우리는 부모를 부모로만 기억하지만, 그들도 한때는 불안하고 외롭고 사랑받고 싶었던 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가족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전의 잘못을 용서하는 일이 아니라, 미처 알지 못했던 그들의 시간을 상상해 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을 읽으며 크게 느낀 것은 사람은 부모를 닮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시간을 품고 살아간다는 사실이었다. 화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해하려는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이 소설은 가족소설이면서 성장소설이고, 이민자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누구나 자신의 뿌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보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을 덮고 나니 '나를 만든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오래 남았다.
내가 기억하는 유년은 얼마나 정확한 것이며,
부모 역시 누군가의 자식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을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작은 깃털 하나가 떠다니는 듯한 여운이 이어졌다.
좋은 소설은 이야기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읽는 이의 삶으로 이어지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 작품이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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