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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장성주 옮김 / 복복서가 / 2026년 7월
평점 :
🔻이 게시물은 복복서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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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를 아는 것이 아니라, 끝내 말하지 못했던 침묵을 상상해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은 바로 그 침묵을 더듬어가는 소설처럼 느껴졌다.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서도 얼마나 서로를 모르고 살아가는지, 그리고 한 사람의 삶은 유년과 상처, 사랑과 예술이 어떻게 겹겹이 쌓여 만들어지는지를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것은 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가족들이 남긴 침묵이었다. 《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은 이민자의 삶이나 성장소설이라는 말만으로는 다 설명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한 사람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나는 누구에게서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존재가 때로는 가장 먼 타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거리를 이해하기 위해 한 사람이 평생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었다. 처음에는 과묵하고 무심한 사람처럼만 보였던 아버지가 시간이 흐를수록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화자는 아버지를 두고 🔖"아버지는 '말을 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오래도록 굳어 있던 한 사람의 삶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종종 침묵하는 사람을 무관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 침묵은 아무도 자신의 언어를 들어주지 않았던 세월의 결과일 수도 있다.
화자는 아버지를 다시 이해하려 애쓰고, 독자는 그 과정을 따라가며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늦고도 아픈 일인지 깨닫게 된다. 이해는 늘 늦게 찾아온다는 사실이 너무도 애잔했다.
이어지는 🔖"아버지가 우리에게 동떨어져 보였던 만큼 우리 또한 아버지에게 동떨어진 존재로 비쳤을 것이다."라는 문장은 가족을 바라보는 내 시선까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왜 저 사람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을까'를 먼저 생각하지만, 정작 상대 역시 같은 외로움을 품고 있었을 가능성은 쉽게 잊는다. 이 한 문장에는 이민자라는 정체성, 언어의 단절, 문화의 차이, 그리고 부모와 자식 사이의 오랜 오해가 모두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머니를 그려내는 방식도 인상 깊었다. 화자는 어머니를 미화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상처 입은 사람의 삶이 또 다른 상처를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을 담담히 바라본다. 그래서 인물들은 선하거나 악한 존재가 아니라, 각자의 시대와 역사 속에서 버텨낸 사람들로 남는다.
어머니 크리스타의 이야기는 또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전쟁과 이민, 가난과 상실 속에서 살아온 사람은 사랑하는 방식마저 상처를 닮게 된다는 사실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화목한 가정을 꿈꾸면서도 끝내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누군가를 미워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떤 시간을 견디며 살아왔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했다. 부모 역시 한 사람의 삶을 살아온 인간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이 소설은 일깨워주었다.
발레를 만나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특히🔖"나에게 발레는 마침내 중요한 존재로 여겨진다는 것을 의미했고..... 훼손당한다고 느꼈던 존엄을 일부나마 되찾아주는 것이기도 했다."라는 문장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발레는 무너진 자존감을 다시 세우는 공간이었고 상처 입은 아이가 세상과 자신을 다시 믿게 만드는 예술이었다. 예술이 사람을 살린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문장이 가장 잘 보여준다고 느꼈다. 누군가에게는 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글쓰기나 음악이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이 문장을 읽으며 사람은 결국 자신을 살게 하는 무언가를 만나야만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반부에서는 이 부분이 화자의 삶의 목표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생각했다.🔖"방 한 칸. 의자, 책상, 침대. 뜰이 내다보이는 창문. 음악. 책. 혼자서도 품위 있게 사는 법을 가르쳐줄 고양이 한 마리."
처음에는 소박한 바람처럼 보였지만, 곱씹을수록 이 꿈은 평범한 행복이 아니라 치열하게 상처를 지나온 사람이 겨우 찾아낸 평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목한 대가족보다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작은 방 하나를 꿈꾸게 된 이유를 알고 나니 문장이 더욱 먹먹하게 다가왔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방식 또한 인상적이었다.
🔖"사랑과 괴로움은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언어에서 같은 말이다."라는 문장은 사랑이 언제나 아름답기만 한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인정한다.
상처를 안고 자란 사람이 사랑을 통해 구원을 꿈꾸면서도 동시에 더 깊은 상처를 향해 뛰어드는 모습은 안타깝지만 매우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도, 가족을 이해하려는 마음도, 자신의 과거를 받아들이는 일도 모두 아픔을 동반한다. 그래서 이 작품이 말하는 사랑은 달콤한 감정보다는 끝내 이해하려는 의지에 더 가까워 보였다.
이 소설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자전적 요소가 짙음에도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절제된 문장들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화자는 자신의 삶을 설명하기보다 천천히 기억을 펼쳐 보이고, 그 빈칸은 독자가 자신의 가족과 유년을 떠올리며 채우게 된다. 그래서 읽는 내내 '작가의 이야기'를 읽는 동시에 '나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책을 덮고 나니 문득 부모님의 젊은 시절이 궁금해졌다.
우리는 부모를 부모로만 기억하지만, 그들도 한때는 불안하고 외롭고 사랑받고 싶었던 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가족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전의 잘못을 용서하는 일이 아니라, 미처 알지 못했던 그들의 시간을 상상해 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을 읽으며 크게 느낀 것은 사람은 부모를 닮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시간을 품고 살아간다는 사실이었다. 화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해하려는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이 소설은 가족소설이면서 성장소설이고, 이민자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누구나 자신의 뿌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보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을 덮고 나니 '나를 만든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오래 남았다.
내가 기억하는 유년은 얼마나 정확한 것이며,
부모 역시 누군가의 자식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을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작은 깃털 하나가 떠다니는 듯한 여운이 이어졌다.
좋은 소설은 이야기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읽는 이의 삶으로 이어지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 작품이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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