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대와 욕조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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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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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낡은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자유와 평등,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
역사에서 혁명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도 대개 그런 단어들이다.

그런데 《단두대와 욕조》는 그 찬란한 단어들 뒤에 숨어 있던 질문을 끄집어낸다.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이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이 사람을 죽이는 순간에도 여전히 정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조나탕 베르베르는 프랑스 혁명기의 낭트를 배경으로 한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미스터리를 엮어 이 질문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주인공 시몽에게 출발점은 거창한 혁명도, 정치적 이념도 아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그가 마주한 것은 사라진 가족과 처형당한 아버지, 그리고 이유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죽음이다.

그래서 시몽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개인적인 복수극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 사람의 죽음을 파고들수록 그 뒤에는 한 시대가 감추고 있던 훨씬 더한 폭력이 모습을 드러낸다.


시몽은 아버지를 죽인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어 한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가족을 잃은 사람이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 부당한 죽음에 대한 분노, 가해자가 그 대가를 치르기를 바라는 마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복수와 정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정의라면, 그 처벌의 방식이 또 다른 폭력이라면 어떨까.
악인을 제거하기 위해 내가 악인이 되어도 되는 것일까.

🔖“처형을 지켜보려고 달려오고, 한 사람의 목이-비록 그가 철천지원수, 고문 기술자, 살인자라 할지라도-떨어진 걸 축하하는 일은, 스스로 또한 괴물로 만드는 게 아닐까?”

누군가가 악인이기 때문에 그가 죽는 것을 기뻐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디까지 그 폭력을 허용하게 될까.

특히 무서운 것은 인간이 폭력을 저지르면서 스스로를 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을 때 폭력은 더욱 잔혹해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섬뜩했던 문장 중 하나는 시몽과 아버지의 대화였다.
🔖“넌 어떤 게 선한 행동인지 생각을 너무 많이 해.” (…) “우린 전쟁 중이야. 도덕이 낄 자리는 없어. 언제나 이긴 쪽이 옳은 법이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도덕적 판단보다 생존과 승리가 우선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이 말이 무서운 이유는 전쟁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평소에는 하지 않았을 행동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우리 편을 위해서’, ‘더 큰 목적을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이런 말들은 때로 인간의 양심을 잠재우는 가장 강력한 명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단두대와 욕조》에서 무서운 것믄 폭력을 옳은 행동이라고 믿게 만드는 논리다.

사람을 죽이는 행위 자체보다도, 그 죽음에 ‘정당한 이유’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이 더 섬뜩하게 다가온다.


프랑스 혁명은 인류 역사에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그러나 그 혁명의 과정에는 공포 정치와 처형, 정치적 숙청과 민간인 희생이라는 어두운 역사도 존재한다.

이 소설은 바로 그 틈을 파고든다.

작품 속 문장처럼,
🔖“혁명이 누군가를 구하기 위한 게 아니라는 걸 자네는 이해하나? 혁명은 유죄를 선고하고, 처벌하고, 탈취하기 위한 거야.”

이 문장은 혁명이라는 이름이 언제든 권력과 폭력의 도구로 변질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과, 새로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는 그 경계가 놀랄 만큼 쉽게 무너진다.
처음에는 억압받던 사람이었지만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정의를 외치던 사람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제거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옳다’고 확신하는 인간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가.
바로 그것이 더 깊은 공포로 남는다.


작품에서 인상적인 또 하나의 대목은 혁명이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까지 바꾸어 놓는다는 부분이다.
🔖“혁명의 힘은 그런 것이었다. 그것은 전제 군주를 몰아냈지만, 그 와중에 평범한 시민들을 짐승의 상태로 내몰았다.”

이 문장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흔히 잔혹한 사람과 선량한 사람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싶어 한다.

‘저런 일을 하는 사람은 원래부터 악한 사람이었을 거야.’

하지만 역사를 보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공포가 일상이 되고, 폭력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집단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생존과 연결되면 평범한 사람도 이전과 전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악한 본성이 있는가 없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어떤 상황이 인간 안에 있는 잔혹함을 끌어내는가'일지도 모른다.


작품에서 또 하나 마음에 오래 남은 문장이 있다.
🔖“감정이 격해진 그는 새로운 체제가 옛 체제의 잿더미 위에서 갓 태어나는 그 광기의 시대에, 이성이 과연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스스로 묻고 있었다.”

혁명은 감정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분노가 있어야 변화가 시작되기도 하고, 부당함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 세상을 움직이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분노가 정의가 되고, 복수가 심판이 되고, 집단의 신념이 진실이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상대방을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우리 편’과 ‘적’으로 나누고, 적에게는 인간에게 적용하던 기준을 적용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폭력은 훨씬 쉬워진다.


🔖“자연이란 원래 그런 것이었다. 자연은 인간사를 개의치 않고, 그들의 결점이나 거짓, 잔인함이나 희망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흐름을 따라가며 상황에 따라 그들의 목을 축여 줄 수도 있고, 혹은 집어삼켜 죽일 수도 있었다.”

인간은 역사에 의미를 부여한다.
누가 옳았는지, 누가 악인이었는지, 누가 희생자였는지 기록하고 기억한다.
하지만 자연은 그런 인간의 판단에 관심이 없다.

강물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주는 물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장소가 될 수 있다.

단두대는 인간이 만든 처형의 도구이고,
욕조 역시 인간이 죽음의 장소로 바꾸어 버린 강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자연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무엇이든 폭력의 도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끔찍한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프랑스 혁명기의 이야기가 먼 과거의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는 것도 흥미로웠다.

역사를 공부할 때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혁명이 일어났고, 왕정이 무너졌고, 새로운 정치 질서가 등장했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역사는 ‘결과가 정해진 과거’가 아니었을 것이다.

매일 어떤 사람이 체포되고, 누군가가 사라지고, 옆집 사람이 적으로 지목되는 상황에서 살아야 했다면 오늘의 선택 하나하나가 생존과 직결됐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소설의 힘은 과거의 사건을 다시 설명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람이 되어 그 공포를 잠시 경험하게 만드는 것.

《단두대와 욕조》는 시몽의 개인적인 복수와 낭트에서 벌어지는 집단적인 비극을 연결하면서 역사를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낸 시간’으로 바라보게 한다.

'누가 악인인가.'
정의를 집행하는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폭력이 또 다른 악이 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나는 늘 정의만을 원해 왔고, 원하고 있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오.”

정의를 원한다는 말은 아름답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장 위험한 말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이 정의의 편이라고 확신하는 순간, 자신의 행동을 의심하지 않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읽고 난 뒤 가장 오래 남은 것은 ‘괴물’이라는 단어였다

책의 첫 문장부터 마지막까지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는 폭력에 동조할 수 있고, 집단의 명령을 따를 수 있으며, 누군가의 죽음을 ‘정당한 처벌’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래서 처음의 질문이 마지막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의 목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환호하는 순간,
어디까지 인간이고 어디서부터 괴물이 되는 것일까.

더 무서운 것은 괴물이 되는 순간에도 자신이 괴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단두대와 욕조》는 잔혹한 사건을 보여주기 위해 역사적 비극을 끌어온 것이 아니라, 그 비극을 통해 인간이 정의·혁명·애국·복수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폭력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를 보여준다.

누군가를 처벌했다고 해서 정의가 완성되는 것도 아니고,
악인을 제거했다고 해서 세상이 선해지는 것도 아니다.

역사는 흘러가고, 강물은 계속 흐른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결국 되돌아오는 질문이 있다.

'나는 정의를 말하면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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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동의보감 - 몸, 마음, 인생을 다스리는 최고의 건강 고전 ㅣ 오십에 읽는 동양 고전
김형찬 지음 / 유노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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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이라는 나이는 참 묘한 것 같다.
아직 마음은 젊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몸은 더 이상 예전처럼 따라와 주지 않는다. 예전에는 며칠 잠을 설쳐도 금방 회복했고, 조금 무리해도 다음 날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같은 일을 해도 피로가 오래 남고,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먹던 음식이 속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십에 읽는 동의보감》은 바로 그 변화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 “예전의 나로 돌아가려 하지 말고, 지금의 내 몸을 제대로 읽어보라”고 말하는 책처럼 느껴졌다.

특히 마음에 오래 남았던 것은 몸을 하나의 독립된 부품처럼 바라보지 않는 시선이었다. 아프면 아픈 부위만 고치려고 하고, 피곤하면 좋은 음식을 먹거나 영양제를 찾고, 불안하면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몸과 마음, 음식과 수면, 움직임과 호흡, 감정과 생활습관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연결을 가장 간결하게 보여주는 문장이 있다.
🔖“통하면 아프지 않고, 막히면 통증이 발생한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막힌다’는 말이 혈액이나 기의 흐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도 그렇지만 감정도, 관계도, 삶도 너무 오래 막아두면 다른 형태로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유난히 반가웠던 부분은 걷기, 호흡, 몰입을 통해 자신을 다루는 방법이었다.

사실 나 역시 불안이 올라올 때 걷거나 호흡에 집중하고, 무언가에 깊이 몰입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방법을 자주 사용해왔다. 그래서 책에서 이 세 가지를 만났을 때 건강관리법이라기보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몸을 통해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불안은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사소한 놀람이나 긴장, 걱정이 반복되고 그것을 제대로 흘려보내지 못하면 몸은 점점 긴장 상태에 익숙해질 수 있다.

그래서 책에서 이야기하는 ‘흐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게 다가왔다.

몸을 움직이고, 호흡을 고르고, 마음속에 쌓인 감정을 적절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 불안을 완전히 없애려고 애쓰기보다는 불안이 머물러 굳어버리지 않도록 흘려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깊게 생각하게 된 부분은 ‘체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평소에 자주 체하는 편이다. 심할 때는 소화가 조금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속이 꽉 막힌 것처럼 너무 아파서 한의원에 가 침을 맞거나 약을 먹어야 할 정도다.

그럴 때마다 음식이 문제였다고만 생각하기 쉬웠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상하게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나 마음속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던 시기에 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혹시 음식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왔다.

《오십에 읽는 동의보감》이 말하는 기의 흐름과 막힘이라는 관점에서 이 부분을 다시 바라보니 내 몸의 신호를 조금 다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실제 체증이나 소화기 증상의 원인을 모두 ‘기가 막혀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상황에서 자주 체하는지, 그때 내 몸과 마음은 어떤 상태였는지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을 계속 눌러두고, 스트레스를 참고, 마음속에서만 반복해서 생각하다 보면 그것 역시 나에게는 하나의 ‘막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체했을 때 “무엇을 잘못 먹었지?”만 생각하지 않고, “최근에 내가 무엇을 참고 있었지?” “내가 너무 긴장하고 있었나?” 하고 내 마음의 상태도 함께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인가를 더 채우는 것보다 먼저 내 생활을 돌아보라는 태도였다.

몸이 힘들면 쉽게 무언가를 추가하려 한다. 영양제를 먹고, 보약을 찾고, 몸에 좋다는 음식을 챙긴다. 나 역시 건강이 걱정될수록 ‘무엇을 더 먹어야 할까’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보다 먼저 밥상과 생활을 돌아보게 한다.

잘 먹는다는 것은 많이 먹는 것도 아니고, 비싼 것을 먹는 것도 아니다.
내 몸에 필요한 것을 적당히 먹고, 제철 음식과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과하게 채우지 않는 것.

책 속의 📌“입이 좋아하는 맛 말고 몸이 좋아하는 맛을 먹어라”라는 목차의 문장도 이런 의미로 다가왔다.

건강은 특별한 무언가를 하나 추가한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아주 평범한 선택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약보다 먼저 밥상’이라는 생각이 오래 남았다.


또 하나 마음에 걸렸던 것은 휴식이었다.

번아웃을 경험한 사람에게 “쉬어”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정작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몸이 지쳤다고 하루 종일 누워 있는 것이 반드시 좋은 휴식은 아닐 수도 있다. 반대로 계속 움직이는 것 역시 회복을 방해할 수 있다.

책은 움직임과 멈춤 사이의 균형을 이야기한다.
🔖“오십부터는 많이보다 고르게 움직여라.”

건강을 위해 무조건 많이 걷고, 많이 운동하고,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금 벗어나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꾸준히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읽혔다.

오십 이후의 건강은 얼마나 나에게 맞는 속도로 살아가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오십 전후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숫자가 하나 바뀌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쉽게 잠들었는데 잠이 깨고, 몸이 갑자기 더워졌다가 추워지고, 이유 없이 피곤하거나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이런 변화가 생기면 자꾸 예전의 나를 기준으로 지금의 나를 판단한다.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필요한 것은 예전의 몸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몸에 맞는 삶을 새롭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오십 년 동안 바깥세상을 읽으며 살아왔다면 이제는 내 안을 읽을 때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타인의 기준과 사회의 속도에 맞춰 살아왔다. 해야 할 일을 하고, 책임을 다하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다 오십쯤 되어 몸이 예전과 다르게 반응하기 시작하면 그제야 질문하게 된다.

“나는 지금 정말 나에게 맞게 살고 있는 걸까?”


몸은 먹는 것, 자는 것, 움직이는 것, 숨 쉬는 것, 감정을 느끼는 것, 사람을 만나는 것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세계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흐름’이라는 개념이 마음에 남는다.

🔖“오십 이후의 건강은 더 많이 알고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삶의 주인으로 서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건강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 어떤 영양제가 좋은지 매일 새로운 정보가 쏟아진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관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을 덮은 뒤에도 계속 생각난 문장이 있다.
🔖“이제 속도를 줄이고, 스스로를 돌보며, 세상의 속도가 아닌 자신의 리듬을 찾아야 할 때”

오십 이후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것을 해내는 능력이 아닐지도 모른다.
조금 늦게 걷고, 제대로 숨 쉬고, 잘 먹고, 충분히 쉬고, 마음속에 쌓인 것을 흘려보내는 것.

그리고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은 조금씩 내려놓는 것.

지난 오십 년 동안 세상을 읽으며 살아왔다면, 이제는 내 몸과 마음을 읽어볼 시간.

내 몸의 리듬을 다시 찾는다면, 삶도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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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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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의 아이들
알렉산더 와인스타인 지음, 임현정 옮김 / 에이유앤씨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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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영화사 #찬란 (@challanfilm )서평단 모집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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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를 읽다 보면 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지 상상하게 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하고, 기억을 저장하거나 이식하고,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세계. 우리는 이미 그 미래의 일부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SF 속 이야기가 그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알렉산더 와인스타인의 《신세계의 아이들》에는 영화 애프터양의 원작 포함 13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AI 휴머노이드, 가상현실, 기억, 기후 위기, 새로운 형태의 가족과 사회 등 미래를 연상시키는 소재가 등장하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받아들인 인간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기술이 발전하면 인간은 더 편리하고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세계에서 인간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지우는 것이 행복일까. 사랑하는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면 그 사랑은 덜 진실한 것일까. 가상세계에서 느끼는 감정은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과 무엇이 다를까.


특히 [양과의 작별]은 이 책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처럼 느껴졌다.

양은 완벽하게 프로그래밍된 AI 휴머노이드다. 가족에게 필요한 지식도 갖추고 있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함께 생활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양은 기계나 편리한 도구로만 보기 어려운 존재가 된다.

책 속에서 양을 설명하는 장면 중 이런 문장이 나온다.
🔖“그럼에도 양은 우리 삶에 중요한 존재였다.”


‘중요한 존재’라는 말은 굉장히 단순하지만,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반드시 인간이라는 조건을 갖춘 존재일까.
함께 시간을 보내고, 기억을 공유하고, 누군가의 삶에 자리를 차지한다면 그 존재를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양이 인간처럼 완벽하게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 이미 양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는 점이다. 즉, 상실은 대상이 인간인지 기계인지와 상관없이 찾아온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으며 ‘인간다움’이 생물학적인 조건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다움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기억하고, 그 존재의 부재를 슬퍼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억을 사고팔 수 있는 세계에서 기억은 여전히 나의 것일까.
그래서 [지도 제작자] 역시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에서 기억은 더 이상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기억을 사고팔고, 다른 사람의 기억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갖지 못했던 과거까지 경험할 수 있다.

책 속 인물들은 기억을 지도처럼 그린다.
🔖“여기에는 우리가 결코 갖지 못한 유년 시절의 기억과 우리 것보다 훨씬 더 나은 부모의 기억이 있었다.”

기억이 현재의 나를 만들어가는 재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갖지 못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다른 사람의 기억으로 경험할 수 있다면 어떨까.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기억으로 가질 수 있다면 지금의 나 역시 달라질까.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다른 사람의 기억을 내 기억처럼 받아들이는 순간, 여전히 같은 사람일까?

사진과 영상, SNS를 통해 과거를 저장한다. 인공지능은 이미 사진을 복원하고, 목소리를 재현하고, 과거의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다. 언젠가는 기억이라는 것 역시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연한 형태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기억이 조작될 수 있는 시대에 ‘나’라는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표제작 [신세계의 아이들]에서는 가상세계가 현실보다 더 만족스러운 삶을 제공한다.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고, 현실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행복과 욕망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처음에는 놀라울 만큼 매력적인 세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세계에 오류가 발생하면서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아이들도 삭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 아이들을 지울 순 없어요!”

라는 외침은 이 책에서 기술과 인간의 관계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가상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면 삭제해도 되는 것일까.
그 존재와 함께한 시간이 실제였고, 그 존재를 사랑했던 감정이 실제였다면 그 관계 역시 실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기술이 인간의 감정을 가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술은 인간이 이미 가지고 있던 사랑과 욕망, 소유욕과 두려움을 훨씬 더 강력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이 책에서 무서운 것은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욕망이다.


흔히 상상하는 디스토피아에는 거대한 정부나 전쟁, 폭동, 통제 사회 같은 극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신세계의 아이들》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와인스타인의 이야기 속 미래는 훨씬 일상적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가족을 걱정하고, 아이를 키우고, 학교에 가고,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다만 그 일상을 둘러싼 환경이 조금씩 달라져 있다.

[이주]에서 아이가 과거의 쇼핑 공간을 바라보며 묻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정말요? 재미있었어요?”

예전에는 당연했던 공간과 생활방식이 미래의 아이에게는 낯선 것이 되어버린다.

이 짧은 문장이 묘하게 서늘했다.
너무 익숙해서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는 가족의 형태, 학교, 직업, 소비 방식, 인간관계, 심지어 사랑의 방식까지도 미래의 누군가에게는 낯선 풍경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래를 상상한다는 것은 새로운 기술을 상상하는 것 뿐 아니라, 지금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이 사라진 뒤에도 무엇이 남아 있을지를 생각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난 뒤 남는 것은 인간에 대한 묘한 연민이었다.
와인스타인이 그려낸 인물들은 변화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애쓰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야기 속 상실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기술이 인간의 결핍을 없애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핍이 완전히 사라진 인간은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과 같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금 부족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소중히 여기며, 다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과거를 기억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인간에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남겨 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을 저장할 수 있고, 죽은 사람의 모습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고, 현실보다 편안한 가상세계를 만들 수 있고,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AI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시대.

그때 인간은 지금보다 행복할까.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행복의 조건이 부족함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무엇만큼은 대체할 수 없어야 할까?'

《신세계의 아이들》의 이야기들은 지금 우리의 모습을 조금 확대해서 비춰보는 거울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은 첨단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이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인간은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기억하고, 잃는 존재라는 것.

그 사실이야말로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마지막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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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면 - 오래된 상처를 알아차리고 다정하게 회복하기
멜라니 피그니터 지음, 김희상 옮김 / 서교책방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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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단맘 (@gbb_mom ) 님의 #르온서평단 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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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지금의 나를 설명하기 위해 현재의 경험을 돌아본다.
그런데 가끔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감정과 행동이 있다.
별것 아닌 말에 지나치게 상처받거나, 거절당할까 봐 하고 싶은 말을 삼키거나, 인정받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애쓰기도 한다.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고, 다른 사람의 표정 하나에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다.

그럴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반응할까?’

멜라니 피그니터의 《내 안의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면》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하는 책처럼 느껴졌다. 지금의 나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의 어린 나를 만나보는 것. 그리고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된 내가 그때의 나에게 필요한 보호와 위로를 건네는 것.

내면 아이를 다룬 책이라고 해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찾아내고 부모나 환경을 탓하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조금 다르다.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과거를 다시 바꾸는 일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고 그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에 가깝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린 시절의 행동을 ‘문제 행동’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선이었다.

어린아이는 스스로를 보호할 방법이 많지 않다. 사랑받고 싶고 버림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에 눈치를 보거나, 지나치게 착한 아이가 되거나, 모든 일을 잘하려고 애쓰거나, 반대로 먼저 공격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

어린 시절에는 그것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뒤에도 그 방법을 계속 사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제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고, 스스로 선택하고 관계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겼는데도 과거에 익숙했던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고 상황에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내면 아이’는 현재의 나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감정과 관계의 패턴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언어처럼 다가왔다.


책에서는 내면 아이의 상처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매달리는 행동, 도망가기, 공격하기, 지나친 완벽주의, 통제하려는 마음, 타인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행동, 감정을 억누르는 것,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는 것까지.

목록을 읽다 보면 어느 한 가지쯤은 자신과 닮은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특히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던지는 사람에게 이 책의 이야기는 꽤 깊게 다가올 것 같다.

성과를 내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어야 자신의 가치가 있다고 느끼며, 실수 하나에도 ‘역시 나는 부족해’라고 결론 내리는 사람이라면 현재의 나만 바라봐서는 그 이유를 찾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나를 바라보면 조금 다른 해석이 가능해진다.

‘나는 잘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배웠던 것은 아닐까?’

‘착한 아이여야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누군가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믿었던 것은 아닐까?’

이 질문들은 현재의 나를 조금 덜 미워하기 위한 질문처럼 느껴졌다.


책 속에서 마음에 오래 남은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이미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어. 하리만 우리를 괴롭히는 고정관념은 바꿀 수 있지”

과거는 수정할 수 없다.
그때 하지 못했던 말을 다시 할 수도 없고, 이미 지나간 순간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없다.

하지만 과거의 사건을 바라보는 현재의 나는 달라질 수 있다.
그때는 내가 부족해서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일을, 지금의 나는 ‘그것이 반드시 내 잘못은 아니었다’고 다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때는 견디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어린 나에게 이제는 어른인 내가 다른 선택지를 알려줄 수도 있다.

그래서 내면 아이를 돌본다는 말이 과거의 상처를 반복해서 떠올리는 것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내가 다시 보호하는 과정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소중한 존재야.누구도 나에게 상처줄 수 없어.”

너무 흔하게 들어온 말처럼 보이지만, 막상 자신에게 적용하려고 하면 쉽지 않은 문장이다.

어린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더 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너는 괜찮다’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문장은 어린 시절의 나뿐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도 건넬 수 있는 말처럼 느껴졌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부모 탓으로 단순하게 결론짓지 않는 태도였다.

🔖“내면 아이 돌보기는 잘잘못을 따지는 재판이 아니다.”

이 문장이 중요한 이유는 상처의 원인을 이해하는 것과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내가 받았던 영향을 인정하는 것과 부모의 모든 행동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은 같은 의미도 아니다.

어떤 경험이 상처가 되었다면 그것을 상처라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부모 역시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으며 그들 또한 자신이 가진 한계와 상처 속에서 살아왔을 가능성을 바라볼 수도 있다.

그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이 현재의 나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이해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면 아이를 만나는 과정이 과거의 누군가를 심판하는 여행이 아니라, 지금까지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나 자신을 이해하는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과거의 나에게 너무 가혹했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만큼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
어른들의 행동을 해석할 능력도 부족했고, 관계에서 무엇이 건강한 것인지 판단하기도 어려웠다. 사랑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고, 혼나지 않기 위해 눈치를 봤으며, 버림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숨겼을 수도 있다.

그런 나를 지금의 내가 바라보면서
‘그때 너는 정말 최선을 다했구나.'라고 말해준다면 어떨까.

책에서 소개하는 명상과 대화, 신체 활동 등의 도구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상처를 발견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가진 나에게 실제로 말을 걸고 돌보는 과정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접근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효과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감정이 지나치게 격해진다면 혼자 무리해서 과거를 파고들기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더 안전할 수 있다.

그 점까지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이 책의 실천적인 부분은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생각은 이것이었다.
내면 아이를 만나는 목적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현재의 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과거의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 보면 지금까지 ‘성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가운데 상당 부분이 사실은 오래전부터 익숙해진 생존 방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방식이라면,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방식은 내려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된다.

잘못한 일이 없어도 혼났던 날,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했던 순간,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썼던 기억,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삼켰던 감정들.

그때의 나는 이런 감정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남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더 알고 있다.

그때의 나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때의 나를 바라보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수없이 많은 시간을 살아내고 견뎌왔다.
그러니 이제는 무언가를 더 증명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오래전부터 마음 한구석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작은 나에게 한 번쯤 이렇게 말해주어도 좋겠다.

“그때의 너는 잘못한 게 아니야.
이제는 내가 너의 편이 되어줄게.”

《내 안의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면》은 과거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지금의 나에게 조금 더 다정해지는 방법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치유의 시작은 상처를 가진 나 자신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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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의 짧은 체류
스티븐 L. 펙 지음, 김항나 옮김 / 자음과모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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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책읽는쥬리님의 서평단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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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지옥은 고통이 아니라,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스티븐 L. 펙의 《지옥에서의 짧은 체류》를 읽기 전에는 ‘지옥’이라는 단어에서 으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뜨거운 불길, 끔찍한 형벌, 악마, 고통, 그리고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는 절망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이 보여주는 지옥은 오히려 너무 편안하다.

먹고 싶은 음식은 주문하면 눈앞에 나타나고, 잠을 잘 곳도 있으며, 죽더라도 다음 날 다시 살아난다. 무엇보다 탈출할 가능성까지 존재한다.

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이 소설의 공포가 시작된다.

만약 탈출할 방법이 아예 없다면 인간은 언젠가 포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딘가에 반드시 내가 살아온 기록이 담긴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찾을 가능성이 단 0.000001%라도 있다면 계속 찾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잔인한 형벌일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먼저 떠오른 질문은 ‘지옥이 실제로 존재하는가’가 아니었다.

‘내가 지금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세계가 정말 현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사람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다른 사람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이것을 현실이라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꿈속에서도 그것을 현실이라고 믿는다. 가끔 너무 생생한 꿈을 꾸고 깨어난 뒤에야 ‘아, 그건 꿈이었구나’라고 깨닫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깨어 있다고 믿는 이 순간조차 누군가에게는 만들어진 세계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을까.

작품 속에서 이런 생각이 등장한다.
🔖“자꾸 생각나요. 우리의 정신은 어딘가의 유리병 속에 담겨 있고 이 모든 현실은 누군가가 만들어낸 투영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요.”

철학에서도 오래전부터 현실과 인식의 문제는 중요한 질문이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부터 데카르트의 회의, 현대의 시뮬레이션 가설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끊임없이 ‘내가 경험하는 세계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를 고민해왔다.

그래서 이 소설의 지옥은 인간의 인식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거대한 실험실처럼 느껴졌다.

지옥에서조차 인간은 살아가는 방식을 만들어낸다
흥미로운 것은 이곳에 도착한 인간들이 처음부터 절망에만 빠져 있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책을 찾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공부하고, 대학을 만들고, 문화를 만들어낸다. 시간이 지나면 사회가 형성되고 종교와 권력, 갈등까지 생겨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질긴지를 생각하게 됐다.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작품 속 인간들은 죽음이 사라진 공간에서도 무언가를 만들고 관계를 맺는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은 ‘죽음이 있기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의미를 만들고 싶어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그 세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무서운 모습을 드러낸다.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는 세계.
무한히 이어지는 시간.

그리고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는 감각.

그 순간 ‘영원히 산다는 것이 정말 축복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누구나 죽지 않는 삶을 꿈꾸지만, 끝이 있다는 사실이 현재의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기 때문에 오늘의 사랑이 소중하고,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기 때문에 지금의 선택이 중요해지는 것처럼.

가장 무서운 것은 고통보다 상실이었다.
특히 다음 문장은 한동안 생각을 멈추게 했다.

🔖“나를 조금이라도 사랑했다면,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을 겪게 할 수 있을까?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사랑을 기억하면서도 다시는 그것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아는 일보다?”

이 문장을 읽으며 사랑의 반대편에 있는 감정이 반드시 증오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사랑의 반대편에는 상실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사라진 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았다면 잃을 것도 없겠지만, 사랑했기 때문에 상실의 고통이 생긴다.

그래서 사랑은 행복인 동시에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고통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서 사랑은 무한한 시간 속에서 한 인간이 다른 인간과 함께했던 시간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에 가깝다.

영원에 가까운 시간 속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했던 순간일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이상하게 따뜻하면서도 슬펐다.

‘희망’은 정말 좋은 것일까.

책을 읽고 오래 곱씹게 된 단어는 ‘희망’이었다.
보통 희망을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희망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고 믿는다. 그런데 작품에서는 희망이 사람을 계속 살아 있게 만드는 동시에 계속해서 고통받게 한다.

탈출구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탈출구가 너무 희박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좌절한다.
그렇다면 희망은 언제나 인간을 구원하는 것일까.

작품 속 문장이 이 역설을 정확하게 표현한다.
🔖“기대는 선물과도 같다. 어쩌면 그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희망을 잃을 때 찾아오는 것은 가장 깊은 절망이다.”

희망이 클수록 실망도 커질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이 이곳에서는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현실의 희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조금의 가능성’을 붙잡는다.

언젠가는 좋아질 거라는 생각.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는 기대.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

그런데 그 작은 가능성이 사람을 버티게 만드는 동시에 우리를 계속 기다리게 한다. 인간은 확실한 행복보다 불확실한 가능성 때문에 더 오래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믿어왔던 것을 지탱하던 모든 구조가 허구였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그 믿음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이 질문은 지옥에 떨어진 주인공만의 질문이 아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비슷한 경험을 한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믿었던 사람이 나를 배신했을 때.
열심히 하면 반드시 보상받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을 때.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지만 현실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않은 결과를 마주했을 때.

그때 하나의 사실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놓았던 세계관 전체가 흔들린다.
그래서 이 책에서 지옥은 육체적인 형벌보다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보여주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일까.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영원’이라는 개념은 점점 무섭게 변한다.

유한한 인간에게 수백 년도 상상하기 어려운데, 수천 년, 수백만 년, 수십억 년의 시간이 이어진다면 그 시간은 과연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작품 속 문장이 그 감각을 정확하게 짚는다.

🔖“유한이라 해도 그것이 무한과 아무런 현실적 차이를 느낄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문장을 읽으며 문득 삶을 생각했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사실 너무 짧다.
그래서 돈을 벌고, 관계를 맺고, 여행을 하고, 책을 읽고, 사랑하고, 무언가를 남기려고 한다.

하지만 만약 시간이 무한하다면?
‘언젠가 하면 되지’라는 말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오늘이라는 시간의 가치가 사라진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가치를 만들어주는 경계선인지도 모른다.


《지옥에서의 짧은 체류》는 분량만 놓고 보면 부담스럽지 않은 소설이다.
하지만 책을 덮은 뒤에도 이야기가 끝났다는 느낌이 쉽게 들지 않는다.

내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은 정말 현실일까.
죽음이 없다면 삶은 여전히 의미가 있을까.
영원히 살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원할까.
희망은 축복일까, 형벌일까.
사랑은 왜 우리를 행복하게 하면서 동시에 가장 깊은 상실을 가능하게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 유한한 시간이 정말 그렇게 당연한 것일까.

이 생각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문득문득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주인공이 찾는 것이
자신의 삶이 기록된 단 한 권의 책이라는 점이다.

그 책을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누구였는지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한한 세계 속에서 인간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으려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뒤 이런 생각도 들었다.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지금, 나는 무엇을 내 삶의 의미로 남기고 있는가.'

이처럼 《지옥에서의 짧은 체류》는 짧은 이야기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몇 시간 만에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책을 덮은 뒤에도 현실과 삶, 사랑과 죽음, 희망과 절망에 대한 생각이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가장 무서운 지옥인지도 모르겠다.

끝난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에서 반복되는 것.

📖책의 분량은 짧았지만, 여운은 이상할 만큼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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