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의 아이들
알렉산더 와인스타인 지음, 임현정 옮김 / 에이유앤씨 / 202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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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영화사 #찬란 (@challanfilm )서평단 모집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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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를 읽다 보면 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지 상상하게 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하고, 기억을 저장하거나 이식하고,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세계. 우리는 이미 그 미래의 일부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SF 속 이야기가 그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알렉산더 와인스타인의 《신세계의 아이들》에는 영화 애프터양의 원작 포함 13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AI 휴머노이드, 가상현실, 기억, 기후 위기, 새로운 형태의 가족과 사회 등 미래를 연상시키는 소재가 등장하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받아들인 인간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기술이 발전하면 인간은 더 편리하고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세계에서 인간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지우는 것이 행복일까. 사랑하는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면 그 사랑은 덜 진실한 것일까. 가상세계에서 느끼는 감정은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과 무엇이 다를까.


특히 [양과의 작별]은 이 책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처럼 느껴졌다.

양은 완벽하게 프로그래밍된 AI 휴머노이드다. 가족에게 필요한 지식도 갖추고 있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함께 생활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양은 기계나 편리한 도구로만 보기 어려운 존재가 된다.

책 속에서 양을 설명하는 장면 중 이런 문장이 나온다.
🔖“그럼에도 양은 우리 삶에 중요한 존재였다.”


‘중요한 존재’라는 말은 굉장히 단순하지만,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반드시 인간이라는 조건을 갖춘 존재일까.
함께 시간을 보내고, 기억을 공유하고, 누군가의 삶에 자리를 차지한다면 그 존재를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양이 인간처럼 완벽하게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 이미 양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는 점이다. 즉, 상실은 대상이 인간인지 기계인지와 상관없이 찾아온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으며 ‘인간다움’이 생물학적인 조건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다움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기억하고, 그 존재의 부재를 슬퍼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억을 사고팔 수 있는 세계에서 기억은 여전히 나의 것일까.
그래서 [지도 제작자] 역시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에서 기억은 더 이상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기억을 사고팔고, 다른 사람의 기억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갖지 못했던 과거까지 경험할 수 있다.

책 속 인물들은 기억을 지도처럼 그린다.
🔖“여기에는 우리가 결코 갖지 못한 유년 시절의 기억과 우리 것보다 훨씬 더 나은 부모의 기억이 있었다.”

기억이 현재의 나를 만들어가는 재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갖지 못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다른 사람의 기억으로 경험할 수 있다면 어떨까.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기억으로 가질 수 있다면 지금의 나 역시 달라질까.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다른 사람의 기억을 내 기억처럼 받아들이는 순간, 여전히 같은 사람일까?

사진과 영상, SNS를 통해 과거를 저장한다. 인공지능은 이미 사진을 복원하고, 목소리를 재현하고, 과거의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다. 언젠가는 기억이라는 것 역시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연한 형태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기억이 조작될 수 있는 시대에 ‘나’라는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표제작 [신세계의 아이들]에서는 가상세계가 현실보다 더 만족스러운 삶을 제공한다.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고, 현실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행복과 욕망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처음에는 놀라울 만큼 매력적인 세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세계에 오류가 발생하면서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아이들도 삭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 아이들을 지울 순 없어요!”

라는 외침은 이 책에서 기술과 인간의 관계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가상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면 삭제해도 되는 것일까.
그 존재와 함께한 시간이 실제였고, 그 존재를 사랑했던 감정이 실제였다면 그 관계 역시 실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기술이 인간의 감정을 가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술은 인간이 이미 가지고 있던 사랑과 욕망, 소유욕과 두려움을 훨씬 더 강력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이 책에서 무서운 것은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욕망이다.


흔히 상상하는 디스토피아에는 거대한 정부나 전쟁, 폭동, 통제 사회 같은 극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신세계의 아이들》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와인스타인의 이야기 속 미래는 훨씬 일상적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가족을 걱정하고, 아이를 키우고, 학교에 가고,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다만 그 일상을 둘러싼 환경이 조금씩 달라져 있다.

[이주]에서 아이가 과거의 쇼핑 공간을 바라보며 묻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정말요? 재미있었어요?”

예전에는 당연했던 공간과 생활방식이 미래의 아이에게는 낯선 것이 되어버린다.

이 짧은 문장이 묘하게 서늘했다.
너무 익숙해서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는 가족의 형태, 학교, 직업, 소비 방식, 인간관계, 심지어 사랑의 방식까지도 미래의 누군가에게는 낯선 풍경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래를 상상한다는 것은 새로운 기술을 상상하는 것 뿐 아니라, 지금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이 사라진 뒤에도 무엇이 남아 있을지를 생각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난 뒤 남는 것은 인간에 대한 묘한 연민이었다.
와인스타인이 그려낸 인물들은 변화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애쓰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야기 속 상실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기술이 인간의 결핍을 없애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핍이 완전히 사라진 인간은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과 같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금 부족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소중히 여기며, 다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과거를 기억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인간에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남겨 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을 저장할 수 있고, 죽은 사람의 모습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고, 현실보다 편안한 가상세계를 만들 수 있고,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AI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시대.

그때 인간은 지금보다 행복할까.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행복의 조건이 부족함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무엇만큼은 대체할 수 없어야 할까?'

《신세계의 아이들》의 이야기들은 지금 우리의 모습을 조금 확대해서 비춰보는 거울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은 첨단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이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인간은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기억하고, 잃는 존재라는 것.

그 사실이야말로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마지막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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