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대와 욕조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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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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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낡은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자유와 평등,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
역사에서 혁명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도 대개 그런 단어들이다.

그런데 《단두대와 욕조》는 그 찬란한 단어들 뒤에 숨어 있던 질문을 끄집어낸다.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이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이 사람을 죽이는 순간에도 여전히 정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조나탕 베르베르는 프랑스 혁명기의 낭트를 배경으로 한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미스터리를 엮어 이 질문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주인공 시몽에게 출발점은 거창한 혁명도, 정치적 이념도 아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그가 마주한 것은 사라진 가족과 처형당한 아버지, 그리고 이유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죽음이다.

그래서 시몽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개인적인 복수극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 사람의 죽음을 파고들수록 그 뒤에는 한 시대가 감추고 있던 훨씬 더한 폭력이 모습을 드러낸다.


시몽은 아버지를 죽인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어 한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가족을 잃은 사람이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 부당한 죽음에 대한 분노, 가해자가 그 대가를 치르기를 바라는 마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복수와 정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정의라면, 그 처벌의 방식이 또 다른 폭력이라면 어떨까.
악인을 제거하기 위해 내가 악인이 되어도 되는 것일까.

🔖“처형을 지켜보려고 달려오고, 한 사람의 목이-비록 그가 철천지원수, 고문 기술자, 살인자라 할지라도-떨어진 걸 축하하는 일은, 스스로 또한 괴물로 만드는 게 아닐까?”

누군가가 악인이기 때문에 그가 죽는 것을 기뻐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디까지 그 폭력을 허용하게 될까.

특히 무서운 것은 인간이 폭력을 저지르면서 스스로를 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을 때 폭력은 더욱 잔혹해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섬뜩했던 문장 중 하나는 시몽과 아버지의 대화였다.
🔖“넌 어떤 게 선한 행동인지 생각을 너무 많이 해.” (…) “우린 전쟁 중이야. 도덕이 낄 자리는 없어. 언제나 이긴 쪽이 옳은 법이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도덕적 판단보다 생존과 승리가 우선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이 말이 무서운 이유는 전쟁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평소에는 하지 않았을 행동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우리 편을 위해서’, ‘더 큰 목적을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이런 말들은 때로 인간의 양심을 잠재우는 가장 강력한 명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단두대와 욕조》에서 무서운 것믄 폭력을 옳은 행동이라고 믿게 만드는 논리다.

사람을 죽이는 행위 자체보다도, 그 죽음에 ‘정당한 이유’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이 더 섬뜩하게 다가온다.


프랑스 혁명은 인류 역사에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그러나 그 혁명의 과정에는 공포 정치와 처형, 정치적 숙청과 민간인 희생이라는 어두운 역사도 존재한다.

이 소설은 바로 그 틈을 파고든다.

작품 속 문장처럼,
🔖“혁명이 누군가를 구하기 위한 게 아니라는 걸 자네는 이해하나? 혁명은 유죄를 선고하고, 처벌하고, 탈취하기 위한 거야.”

이 문장은 혁명이라는 이름이 언제든 권력과 폭력의 도구로 변질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과, 새로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는 그 경계가 놀랄 만큼 쉽게 무너진다.
처음에는 억압받던 사람이었지만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정의를 외치던 사람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제거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옳다’고 확신하는 인간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가.
바로 그것이 더 깊은 공포로 남는다.


작품에서 인상적인 또 하나의 대목은 혁명이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까지 바꾸어 놓는다는 부분이다.
🔖“혁명의 힘은 그런 것이었다. 그것은 전제 군주를 몰아냈지만, 그 와중에 평범한 시민들을 짐승의 상태로 내몰았다.”

이 문장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흔히 잔혹한 사람과 선량한 사람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싶어 한다.

‘저런 일을 하는 사람은 원래부터 악한 사람이었을 거야.’

하지만 역사를 보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공포가 일상이 되고, 폭력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집단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생존과 연결되면 평범한 사람도 이전과 전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악한 본성이 있는가 없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어떤 상황이 인간 안에 있는 잔혹함을 끌어내는가'일지도 모른다.


작품에서 또 하나 마음에 오래 남은 문장이 있다.
🔖“감정이 격해진 그는 새로운 체제가 옛 체제의 잿더미 위에서 갓 태어나는 그 광기의 시대에, 이성이 과연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스스로 묻고 있었다.”

혁명은 감정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분노가 있어야 변화가 시작되기도 하고, 부당함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 세상을 움직이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분노가 정의가 되고, 복수가 심판이 되고, 집단의 신념이 진실이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상대방을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우리 편’과 ‘적’으로 나누고, 적에게는 인간에게 적용하던 기준을 적용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폭력은 훨씬 쉬워진다.


🔖“자연이란 원래 그런 것이었다. 자연은 인간사를 개의치 않고, 그들의 결점이나 거짓, 잔인함이나 희망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흐름을 따라가며 상황에 따라 그들의 목을 축여 줄 수도 있고, 혹은 집어삼켜 죽일 수도 있었다.”

인간은 역사에 의미를 부여한다.
누가 옳았는지, 누가 악인이었는지, 누가 희생자였는지 기록하고 기억한다.
하지만 자연은 그런 인간의 판단에 관심이 없다.

강물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주는 물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장소가 될 수 있다.

단두대는 인간이 만든 처형의 도구이고,
욕조 역시 인간이 죽음의 장소로 바꾸어 버린 강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자연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무엇이든 폭력의 도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끔찍한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프랑스 혁명기의 이야기가 먼 과거의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는 것도 흥미로웠다.

역사를 공부할 때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혁명이 일어났고, 왕정이 무너졌고, 새로운 정치 질서가 등장했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역사는 ‘결과가 정해진 과거’가 아니었을 것이다.

매일 어떤 사람이 체포되고, 누군가가 사라지고, 옆집 사람이 적으로 지목되는 상황에서 살아야 했다면 오늘의 선택 하나하나가 생존과 직결됐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소설의 힘은 과거의 사건을 다시 설명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람이 되어 그 공포를 잠시 경험하게 만드는 것.

《단두대와 욕조》는 시몽의 개인적인 복수와 낭트에서 벌어지는 집단적인 비극을 연결하면서 역사를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낸 시간’으로 바라보게 한다.

'누가 악인인가.'
정의를 집행하는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폭력이 또 다른 악이 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나는 늘 정의만을 원해 왔고, 원하고 있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오.”

정의를 원한다는 말은 아름답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장 위험한 말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이 정의의 편이라고 확신하는 순간, 자신의 행동을 의심하지 않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읽고 난 뒤 가장 오래 남은 것은 ‘괴물’이라는 단어였다

책의 첫 문장부터 마지막까지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는 폭력에 동조할 수 있고, 집단의 명령을 따를 수 있으며, 누군가의 죽음을 ‘정당한 처벌’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래서 처음의 질문이 마지막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의 목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환호하는 순간,
어디까지 인간이고 어디서부터 괴물이 되는 것일까.

더 무서운 것은 괴물이 되는 순간에도 자신이 괴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단두대와 욕조》는 잔혹한 사건을 보여주기 위해 역사적 비극을 끌어온 것이 아니라, 그 비극을 통해 인간이 정의·혁명·애국·복수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폭력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를 보여준다.

누군가를 처벌했다고 해서 정의가 완성되는 것도 아니고,
악인을 제거했다고 해서 세상이 선해지는 것도 아니다.

역사는 흘러가고, 강물은 계속 흐른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결국 되돌아오는 질문이 있다.

'나는 정의를 말하면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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