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리를 짐승이라 말할 때 (선공개 특별판) ㅣ 자음과모음 시집 1
에밀리 정민 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시집의 제목을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내가 우리를 짐승이라 말할 때》에서 ‘짐승’이라는 단어는 인간보다 낮은 존재를 가리킬 때 사용되지만, 이 책에서는 인간을 다른 생명과 같은 자리로 돌려놓는 말처럼 느껴졌다. 인간만이 특별하고 우월한 존재라는 생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우리 역시 하나의 생명체이고 욕망하고 사랑하고 상처 입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바라보게 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시인이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인간의 다정함만을 아름답게 그리지도 않고, 인간의 잔혹함만을 고발하지도 않는다. 사랑하면서 동시에 상처를 주고, 자연을 아끼면서도 자연을 소비하고, 누군가를 기억하면서도 다른 누군가를 배제하는 모순적인 존재로 인간을 바라본다.

그래서 이 시집의 ‘짐승’은 인간의 본질을 비추는 거울에 가깝다.
🔖“우리는 얼마나 소비하는, / 소비된 짐승인가.”라는 문장이 특히 그러했다.

살아가기 위해 수많은 것을 소비한다. 물질뿐 아니라 자연을 소비하고, 다른 생명의 시간을 소비하고, 때로는 타인의 감정과 사랑까지 소비한다. 그런데 동시에 우리 역시 시대와 사회, 자본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소비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소비하는 존재’와 ‘소비되는 존재’가 결국 하나의 인간 안에 겹쳐 있다는 점.

시집을 읽으며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조금씩 흐려지는 느낌도 받았다.
말과 상어와 앵무새와 개, 사슴과 고래가 등장하고, 그들의 생과 죽음이 인간의 삶과 연결된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존재처럼 보이지만 시를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인간과 동물이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말하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모두 살아남으려 하고, 사랑하고, 상실을 경험하고, 자신의 존재를 견디며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또한 짐승이다”라는 생각은 인간을 조금 더 겸손하게 만드는 말처럼 다가왔다.


특히 오래 시선이 머물렀던 문장은 [진화론]에 등장하는 다음 구절이었다.
🔖“욕망’은 틀린 단어 같고
‘사랑’은 너무 평범하고 ‘헌신’은 너무 성스럽다고 느낀다.
이 평생을, 당신을 묘사하는 데 쓰겠다.”

사랑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욕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깊고,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흔하고,
‘헌신’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지나치게 거룩한 마음.
그런데 시인은 결국 그 마음을 설명하기 위해 평생을 쓰겠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어떤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이유는 그것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말로는 완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많은 단어를 알고 있어도 어떤 사람을 향한 마음 하나를 온전히 옮겨놓기란 어렵다. 그래서 계속 쓰고, 또 쓰게 된다.

사랑이란 완벽하게 설명되는 감정이 아니라 끝내 설명하려는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어디]의 문장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내 마음도 자주 다른 어디에 가 있다.”

이 짧은 문장이 이상할 만큼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몸은 지금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지나간 시간에 가 있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가 있을 때가 있다. 삶을 살아가면서도 과거의 누군가를 생각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고, 존재하지 않는 ‘다른 어디’를 상상한다.

특히 이 시에서 죽음과 떠남을 ‘끝’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사랑했던 존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어딘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고 믿고 싶은 마음. 그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라기보다 상실을 견디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내는 아주 다정한 상상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 시집의 슬픔은 절망으로만 남지 않는다.
슬픔을 기억으로 바꾸고, 기억을 사랑으로 바꾸며, 사랑을 다시 살아갈 힘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다.


또 하나 마음에 남은 것은 [Affection]에서 ‘애정’과 ‘병’이라는 두 의미를 가진 단어를 가져온 방식이었다.

🔖“Affection은 ‘애정’이란 뜻, 또 ‘병’이라는 뜻.”

사랑과 병이 하나의 단어 안에 겹쳐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서늘하다.
사랑하기 때문에 보호하고 싶어 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집착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언제나 좋은 결과만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자연을 자신의 방식대로 소비하거나, 동물을 사랑한다면서 그들의 삶을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이용하는 것처럼 사랑이라는 감정 안에도 소유와 통제의 욕망이 숨어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시집에서 사랑은 사랑 안에 포함된 모순과 폭력까지 함께 들여다본다. 그것이 이 시집을 더욱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이었다.

[아시아를 떠나 아시안이 되다]에서는 개인의 정체성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분류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나를 ‘아시안 아메리칸’으로 만들어낸다.”

누군가를 하나의 범주로 규정하는 것은 편리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개인의 경험까지 동일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아시아인’, ‘아시안 아메리칸’이라는 이름 안에도 수많은 역사와 문화와 개인의 경험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 시는 정체성을 내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어떤 범주 안에 놓이는지를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 인간은 하나의 단어로 설명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는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아 하면서 내 인생이 바뀌길 기다린다.”

이 문장은 자연과 환경에 대한 이야기처럼 시작하지만, 곧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변화를 원하면서도 변화의 비용은 치르고 싶지 않은 마음.
지금의 삶이 달라지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내가 먼저 움직이는 일은 미루는 마음.

이 모순은 환경 문제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를 걱정하면서도 누리는 편리함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북극곰이 굶주리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면서도 소비 습관과 생활방식이 그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까지 생각하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이 시집의 자연은 인간의 행동을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다.


🤔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남은 것은 인간에 대한 아주 복잡한 감정이었다.

인간은 잔인하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잔인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끄러워할 수도 있다.

인간은 자연을 파괴한다.
하지만 그 파괴를 슬퍼하고 다시 살리고 싶어 하기도 한다.

인간은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면서도 다시 사랑하고, 기억하고, 애도하고, 곁에 머물기를 선택한다.

아마 이 시집은 바로 그 모순을 포기하지 않는 책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에 놓인 [다음 생]의 문장이 그래서 더욱 깊게 다가온다.
🔖“이 생에서 나는 사람들을 아프게 했다.
매해 더 다정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실패한다.”

완벽하게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를 아프게 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다음에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로 그 실패와 노력 사이에 사랑이 놓여 있는 것 같다.


《내가 우리를 짐승이라 말할 때》는 인간 안에 존재하는 욕망과 폭력, 차별과 무지, 사랑과 연민을 한꺼번에 꺼내 보여준다.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너무 정확해서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그 끝에서 시인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다.
🔖“당신을 사랑하지만 미래는 아찔하다. / 미래는 아찔하지만 당신과 계속 사는 것이 / 기다려져 견딜 수 없다.”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고 세계는 완벽하지 않다.
살아가는 동안 상처와 실패도 계속될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와 계속 살아가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있다.

세상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세계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계속 살아간다.

인간이 모두 완벽하지 않은 생명체라면,
서로의 잔인함만큼 서로의 연약함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서로가 어떤 짐승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
사랑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지 않을까.

🤔
나는 어떤 짐승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상처를 주기도 하고, 욕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잔인해지기도 하는 존재이면서도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기억하고 애도할 수 있는가.
완벽하게 다정한 사람이 되는 데 매번 실패하면서도,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가.

시인이 말하는 ‘나아가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서로가 어떤 짐승인지 단번에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알아가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상처와 연약함까지도 외면하지 않고,
끝내 사랑하는 것.

《내가 우리를 짐승이라 말할 때》를 읽고 난 뒤 남은 것은
완벽하지 않은 우리를, 그래도 서로 이해해보려는 마음이었다.

#내가우리를짐승이라말할때 #에밀리정민윤 #자음과모음
#시 #시집 #시집추천 #신간 #신간소개 #신간도서
#도서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언어화를 위한 소설 사고 - 모호한 아이디어를 독자에게 전달되는 말로 바꾸는 힘
오가와 사토시 지음, 박대겸 옮김 / 황금가지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게시물은 #뱅만부 님 (@100manbu ) 서평단 모집에 선정되어
황금가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소설을 읽을 때 대부분은 문장이 아름다운지, 이야기가 흥미로운지, 인물이 매력적인지부터 살핀다. 반대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면 좋은 문장을 만들 수 있을지, 어떻게 복선을 깔고 이야기를 구성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오가와 사토시의 《언어화를 위한 소설 사고》는 이런 익숙한 질문의 방향을 조금 비튼다.

처음부터 “만인을 위한 ‘소설 쓰는 방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태도로 출발하는 이 책은, 소설가가 무언가를 쓰기 전에 머릿속에서 어떤 사고를 거치는지를 해부하는 책에 가깝다. 그래서 읽는 동안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지?’라는 질문보다 ‘지금 무엇을 보고 있고, 그것을 왜 이렇게 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더 자주 떠올리게 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소설을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이다.

📌“소설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책띠지 문장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처럼 느껴졌다. 작가가 아무리 좋은 것을 표현했다고 생각해도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작품은 작가의 머릿속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소설은 혼자 하는 독백인 동시에 타인에게 건네는 언어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정보의 순서’도 무척 흥미로웠다.
🔖“정보의 순서는 소설이라는 공간을 구축하는 방법을 규정한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글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느끼는 긴장감이나 몰입 역시 문장력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정보라도 언제, 어떤 순서로 제시하느냐에 따라 독자가 받아들이는 감정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사실을 처음부터 모두 알려주는 것과 필요한 순간까지 감춰 두는 것, 인물의 감정을 먼저 보여주는 것과 행동을 먼저 보여준 뒤 그 감정을 짐작하게 하는 것은 같은 이야기를 전혀 다른 경험으로 만든다.

그래서 좋은 글을 쓰는 일이란 아름다운 문장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독자가 어떤 정보를 어떤 순간에 만나게 할 것인지 설계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생각하게 만든 부분은 소설가가 ‘잘 모르는 세계’를 써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소설가는 잘 모르는 세계에 살고 있는, 잘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처음에는 조금 역설적으로 들린다.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인데, 왜 굳이 잘 모르는 사람과 세계를 써야 할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소설의 세계는 바로 여기에서 넓어지는 것 같다.
자기 경험만 반복해서 이야기한다면 글은 안전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세계가 좁아질 수 있다. 반면 내가 직접 살아보지 않은 삶을 상상하고,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순간 인간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진다.

소설을 쓰는 일은 나라는 하나의 경험에서 출발해 수많은 인간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은 소설가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상에서도 자신이 경험한 것만으로 타인을 판단하기 쉽다. ‘나는 이랬으니까 너도 이럴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타인의 세계는 사라진다. 내가 모르는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타인을 이해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책에서 날카롭게 다가온 부분은 ‘자신의 가치관을 버리라’는 도발적인 제안이었다. 물론 저자는 정말 자신의 가치관을 모두 버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에서 잠시 벗어나야 새로운 소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특히 이런 질문이 오래 남았다.
🔖“독자보다 나자신을 중요하게 하지는 않았는가?”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꽤 아픈 질문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나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쓰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독자도 당연히 중요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질문은 소설뿐 아니라 서평을 쓰는 나 자신에게도 그대로 돌아왔다.
책을 읽고 느낀 것을 글로 옮길 때도 나의 감상만 늘어놓으면 그것은 ‘나를 위한 기록’에 머물 수 있다. 내가 왜 이 문장을 인상 깊게 읽었는지, 그 감정이 읽는 이에게도 닿을 수 있도록 어떤 맥락으로 풀어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작법서이면서 동시에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을 담은 책처럼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개념은 ‘오독’이었다.
🔖“소설이 종종 ‘오독’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소설의 ‘오독’은 실패가 아니라 또 다른 탄생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고 세상에 내놓지만, 그 순간부터 작품은 더 이상 작가만의 것이 아니다. 독자는 자신의 기억과 경험, 상처와 기쁨을 가지고 작품을 읽는다. 그러니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좋은 소설은 독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끼워 넣을 공간을 남겨 놓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의미를 작가가 친절하게 설명해 버리면 작품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삶과 연결할 여지는 줄어든다. 반대로 조금의 빈틈이 있는 이야기는 독자가 자신의 경험으로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작품을 읽고 나서 ‘작가가 이런 뜻으로 썼을까?’보다 ‘나는 왜 이 장면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될 때가 있다.

작가가 건넨 이야기가 독자의 삶을 통과하면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되는 순간.
그것이 문학이 가진 놀라운 힘일지도 모르겠다.


목차에서부터 눈길을 끄는 제목이 있다.
📌‘복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한 문장부터 이 책이 얼마나 기존의 작법 상식을 뒤집으려 하는지 느껴졌다.
이야기를 잘 만든 작품에는 치밀한 복선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복선을 얼마나 많이 심었는가’가 아니라, 독자가 작품 전체를 경험한 뒤 앞선 정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구조 자체일 것이다.

작가가 처음부터 ‘여기에 복선을 심어야지’라고 계산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정보가 독자의 인식 속에서 어떻게 다시 연결되는가일지도 모른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지점에 있다. 익숙하게 알고 있던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 번 뒤집어 보게 한다. 그리고 그 뒤집힌 자리에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AI가 소설과 글쓰기까지 빠르게 영역을 넓혀 가고 있는 지금, 이 책의 문제의식은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저자는 소설을 인간의 인지를 언어로 압축하는 활동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독자는 그 압축된 언어를 자신의 인지와 경험을 통해 다시 풀어낸다.

🔖“소설의 재미는, 애초에 표현하고자 했던 ‘어떤 인간의 인지’의 깊이와, 그것을 압축하는 기술이 더해져 결정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문장을 잘 만들어내는 기술이 아니라 그 문장 뒤에 어떤 인간의 인식과 경험이 존재하는가라는 점이다. AI가 인간처럼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될수록 오히려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나는 무엇을 경험했는가’, ‘그 경험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가’가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창작에서 가장 쉽게 복제하기 어려운 것은 문장을 만들어낸 삶과 인식의 깊이일 테니까.

책을 읽은 뒤 특히 ‘나를 위한 문장’이라는 표현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글을 쓸 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하는 데 익숙하지만, 정작 독자가 무엇을 받아들일지는 충분히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과 상대가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같지 않다.

그리고 어쩌면 그 차이 때문에 문학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하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으면 독자는 자신의 삶으로 그것을 다시 읽는다. 그 과정에서 원래 작가가 생각하지 않았던 의미가 생겨난다. 그러므로 완벽하게 통제된 작품보다 독자가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불러올 수 있는 작품이 더 오래 살아남는 것은 아닐까.


《언어화를 위한 소설 사고》를 읽으며 느낀 것은 글쓰기가 ‘생각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문장을 잘 쓰는 기술은 연습할 수 있다. 구조도 공부할 수 있고, 다양한 작품을 읽으며 표현법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왜 그것을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소설가 지망생에게만 필요한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서평을 쓰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말로 잘 표현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누군가와 제대로 소통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꽤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내가 가진 생각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그것을 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압축하고, 그 언어가 다시 타인의 경험 속에서 새로운 의미로 살아나도록 만드는 것.

그렇다면 소설은 한 인간의 인지를 다른 인간에게 건네는 아주 정교한 커뮤니케이션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지막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진심으로 소설을 찾으려고 하는가?”

읽고 난 뒤 남은 것은 언어를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야겠다는 조심스러움,
그리고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생각을 끝까지 들여다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무언가를 표현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내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을 한 번 더 의심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 읽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생각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언어화’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을 정말 제대로 말하고 있는가."
이 책이 내게 남겨 준 물음표다.

_

#황금가지 #언어화를위한소설사고 #오가와사토시
#소설 #창작론 #글쓰기 #작법 #커뮤니케이션 #A시대
#책추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서평 #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첫사랑 알러지 ㅣ 10대가 10대에게
황서현 지음 / 이지북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게시물은 #자음과모음 (@jamobook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황서현의 《첫사랑 알러지》를 펼치는 순간부터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열일곱의 교실 창가, 몰래 적어 내려간 이름, 함께했던 여름, 쉽게 꺼내지 못했던 마음과 편지…… 책 속에 등장하는 첫사랑의 풍경이 꼭 내 기억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만큼은 어딘가 익숙했다.

나에게도 사랑을 처음 알게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 이렇게 마음을 크게 흔드는 일인지 처음 알았고, 함께 있는 평범한 하루가 특별해지는 경험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잠시 스쳐 지나간 풋풋한 기억으로만 남지 않았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삶의 많은 장면을 지나온 사람으로 내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첫사랑’은 내게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첫사랑은 꼭 가장 오래 사랑한 사람일 필요도, 가장 아름답게 끝난 사랑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온몸으로 알게 된 사람, 그리고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나로 데려온 사람이 첫사랑인지도 모른다.

황서현의 《첫사랑 알러지》는 그런 첫사랑의 시작과 열병, 상처와 이별,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까지 55편의 시를 통해 따라간다.

책을 읽으며 오래전의 한 사람을 떠올렸다.
스무 살의 나와, 그때의 그 사람.
그리고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우리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만들어 갔던 시간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 시집의 사랑이 ‘열일곱의 풋사랑’으로만 읽히지 않았던 이유가.

누군가에게 첫사랑은 교실 창가 맨 뒷자리의 사람이겠지만,
나에게 첫사랑은 어느 순간 인생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오래된 사랑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사랑이 끝났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랑이 내 안에 무엇을 남겼는가일지도 모른다고.

이 책에서 첫사랑은 교실 창가의 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일기장에 반복해서 적어 보는 이름, 함께 마시는 음료, 빌려 읽은 시집, 한쪽씩 나누어 끼었던 이어폰처럼 아주 작은 순간에서 사랑은 자라난다. 그래서 이 시집의 사랑은 평범한 순간 하나하나가 사랑 때문에 특별해지는 모습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마음에 남는다.


처음에는 무엇이든 달콤하게 느껴진다. 아직 삶의 쓴맛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나이에 찾아온 사랑은 그 자체로 세계의 전부가 된다. 그래서 《첫사랑 알러지》 속 사랑에는 서툼과 충동이 함께 있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그 마음을 숨기기보다 일기장에 적고, 편지를 쓰고, 시를 쓴다.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조금 부끄럽거나 지나치게 솔직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서툼이 이 시집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느꼈다.

사랑을 잘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밤새 고민하고, 말 한마디를 수십 번 되뇌고, 전하지 못한 마음을 글로 남긴다. 《첫사랑 알러지》는 바로 그 시절의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일기장]에 담긴 정서는 첫사랑이라는 감정의 본질을 잘 보여 준다. 누군가의 이름을 일기장에 계속 적는다는 것은 말로 고백하기에는 너무 조심스럽고, 그렇다고 마음속에만 담아 두기에는 너무 벅찬 감정을 글자 속에 붙잡아 두는 행위에 가깝다.

이 부분에서 첫사랑의 가장 순수한 형태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첫사랑은 상대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보다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 오래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그 이름만큼은 오래 간직하고 싶고, 그때의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잊고 싶지 않아서 기록한다. 그래서 일기장은 사랑의 증거이면서 동시에 지나가 버릴 시간을 붙잡아 두는 작은 저장소가 된다.

이 시집에서 여름이라는 계절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여름은 모든 것을 크게 만든다. 햇빛도 뜨겁고, 비도 갑작스럽고, 감정도 쉽게 달아오른다. 《첫사랑 알러지》에서 여름은 사랑의 온도를 보여 주는 계절처럼 느껴진다.

[그해 여름]에서는 이미 지나간 시간을 바라보면서도 그 계절의 감각이 여전히 남아 있는 마음을 만날 수 있다. 사랑은 끝났는데 여름은 기억 속에서 계속된다. 그래서 사랑이 끝난 뒤에도 특정한 계절만 되면 문득 한 사람이 떠오르는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우리의 여름은 허구였다]에 이르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완벽해 보였던 사랑의 장면에서 어느 순간 작은 균열을 발견한다. 사랑에 빠져 있을 때는 상대도, 나도, 함께 있는 시간도 모두 특별하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이 거짓이었다는 결론이 아니라,
그때의 사랑이 진짜였더라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는 사실이 아닐까.

누군가를 사랑했던 시간이 끝났다고 해서 그때 느꼈던 감정까지 가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당시에는 정말 행복했고, 정말 간절했고, 정말 오래갈 것이라고 믿었다. 다만 사람의 마음과 관계는 계속 변한다.

그래서 지나간 사랑을 '허구'라고 부르는 마음에는 사랑에 대한 실망과 동시에 그 시간을 놓아주려는 성장이 함께 들어 있다고 느꼈다.

이 지점에서 《첫사랑 알러지》는 풋풋한 첫사랑을 예쁘게 기록한 시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1부에서 사랑이 시작되고, 2부에서 사랑을 앓고,
3부에서 사랑의 흔적을 되짚고, 4부에서 그 사랑을 편지처럼 봉인한다.

목차만 보아도 감정의 방향이 선명하다.
처음에는 마음이 앞으로 달려간다. 그러다 사랑 때문에 아파한다.
이후에는 지나간 시간을 돌아본다.
마지막에는 그 마음을 품은 채 다음 계절로 넘어간다.

이 흐름이 첫사랑의 기억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첫사랑은 끝나는 순간보다 끝난 뒤에 더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실제 관계는 끝났는데 기억 속에서는 계속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 '그때 왜 그랬을까', '그 사람도 나를 좋아했을까', '조금만 달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질문이 뒤늦게 생겨난다. 그래서 첫사랑은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바라보는 방식 속에서도 계속 만들어진다.

특히 [시인]과 [시집을 빌리던 내가]가 오래 남는다.

한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시를 읽게 되고, 결국 자신이 직접 시를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사랑이 사람에게 남기는 흔적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보여 준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와 함께하는 것으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때로는 한 사람을 사랑한 경험이 한 사람의 취향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누군가 때문에 시를 읽기 시작했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면, 그 사랑은 관계가 끝난 뒤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사람은 떠나도 그 사람이 내 안에 남긴 변화까지 함께 떠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오래 남은 부분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첫사랑은 반드시 첫 번째로 사랑한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을 처음 깊이 사랑했던 경험, 처음으로 누군가 때문에 내가 달라졌던 경험, 처음으로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하고 싶었던 경험까지 모두 첫사랑의 일부일 수 있다.

그래서 이 시집의 사랑은 더 이상 '너와 나의 관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성장의 기록이기도 하다.

[다정한 사람]에 담긴 생각도 인상적이다.
사랑을 특별한 사건이나 거창한 고백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따뜻한 말 한마디와 안부를 묻는 행동처럼 작고 일상적인 다정함에서 사랑을 발견한다는 점이 좋았다.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에서 가장 오래 기억되는 것은 의외로 거대한 사건이 아닐 때가 많다. 잘 지내느냐고 물어봐 주었던 순간, 말을 기억해 주었던 순간, 힘들 때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 주었던 순간처럼 아주 작은 친절이 오래 남는다.

그래서 이 시집에서 말하는 사랑은 처음에는 뜨겁지만 마지막에는 조금 따뜻해진다. 처음의 사랑이 심장을 뛰게 하는 감정이었다면, 마지막의 사랑은 한 사람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는 마음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 변화가 이 시집의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첫사랑 알러지》라는 제목도 그래서 재미있다.

알러지는 몸이 특정한 물질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현상인데, 이 책에서 첫사랑 역시 처음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강렬하게 몸과 마음을 흔드는 감정처럼 그려진다.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동시에 아프고, 가까워지고 싶은데 가까워질수록 더 불안해지는 감정.

하지만 알러지가 시간이 지나며 가라앉듯 사랑의 열병도 언젠가는 잦아든다.
그렇다고 흔적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사랑을 '이겨 낸다'는 것은 사랑을 완전하게 잊는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아프지 않은 방식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인의 말에서 드러나는 '조금 덜 아파하겠다'는 마음도 그런 의미로 읽혔다. 사랑을 다시 만나더라도 이전처럼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아픔까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보겠다는 다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사랑 알러지》는 첫사랑에 관한 시집이면서 동시에 처음 사랑한 뒤 조금 달라진 나에 관한 시집이기도 하다. 책을 읽고 나면 누군가의 첫사랑을 훔쳐본 듯한 느낌보다 내 기억 속 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나에게도 한때 유난히 자주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는지,
그 사람의 이름을 몰래 적어 본 적이 있었는지, 함께했던 계절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지, 끝난 관계를 마음속에서 완전히 끝내지 못한 적은 없는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지나간 사랑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이제는 그저 '그때의 나를 만들어 준 한 계절'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까지도.

《첫사랑 알러지》가 남긴 여운은 아마 그 지점에 있다.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같은 얼굴로 찾아오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교실 창가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여름날의 바다였을 것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오래 주고받은 편지 한 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비슷할 것 같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그 사람은 내 인생의 한 장면이 되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한 장면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아마 그것이 첫사랑의 힘일 것이다.

사람은 떠나도 계절은 남고, 계절이 지나도 기억은 남고,
기억이 희미해져도 그때의 나는 내 안에 남는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고 나서 남는 것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그 시절의 내가 얼마나 서툴고, 얼마나 솔직했으며, 그 마음 때문에 얼마나 조금씩 자라났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첫사랑은 끝났지만, 첫사랑을 하던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때의 설렘도, 서툼도, 상처도, 쓰다 만 편지도 지금의 나를 이루는 한 문장이 된다. 그리고 어쩌면 평생 그 문장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 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픈 기억이라서가 아니라, 한때 누군가를 온 마음으로 사랑했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쉽게 지워지지 않는 삶의 기록이기 때문에.

_

#첫사랑알러지 #황서현 #이지북
#첫사랑 #사랑시집 #시 #시집 #시집추천
#비밀일기장 #러브레터 #10대가10대에게 #서평단
#신간 #신간추천 #도서추천 #추천책 #도서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돈의 미술사 - 자본은 어떻게 예술의 가격을 만들어왔는가
심상용 지음 / 구텐베르크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 가격이 사라진 뒤에도 내가 여전히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스스로 발견한 예술의 가치가 아닐까.


미술관에 걸린 작품을 바라볼 때 대개 작품의 색과 형태, 작가의 의도와 시대적 배경을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작품 옆에 붙어 있는 작가명과 작품명, 제작 연도와 재료를 읽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궁금할 법한 숫자, ‘이 작품은 얼마인가’는 미술관의 벽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심상용 작가는 바로 그 빠져 있던 질문에서 이야기를 출발한다.

“자본은 어떻게 예술의 가격을 만들어왔는가.”

처음에는 미술시장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읽고 나면 대체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작품이 비싸질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게 만드는가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2019년 소더비에서 모네의 〈건초더미〉가 약 1억 1,070만 달러에 낙찰되고, 2024년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바나나 작품이 약 624만 달러에 거래된 사례를 통해 책은 누가 그 가격을 만들었고, 왜 그 가격을 예술적 가치와 연결해서 받아들이는가를 파고든다.

예술의 가격은 작품 안에 원래부터 들어 있던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낸 것일까.

그동안 배워온 미술사는 예술가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인상주의의 혁신을 이야기할 때 모네와 르누아르, 피사로와 드가를 떠올리고, 현대미술을 이야기하면 뒤샹과 워홀, 바스키아와 쿤스 같은 이름을 떠올린다. 작품을 만든 사람과 작품의 혁신이 미술사의 중심에 놓인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이름들 뒤에 있던 사람들을 앞으로 불러낸다.

화상, 컬렉터, 경매사, 미술관, 비평가, 미디어, 금융기관, 국가.
그리고 이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하나의 작품을 ‘사야 할 가치가 있는 작품’,
더 나아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폴 뒤랑-뤼엘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오늘날 세계 미술사의 중심에 자리 잡은 것은 그들의 작품이 혁신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작품을 지속적으로 매입하고 전시하고 해외로 가져가며 새로운 구매자에게 소개하고, ‘인상주의’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어 시장에 유통시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예술가의 천재성과 시장의 조직력이 서로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자본은 예술을 억압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생존의 기반을 제공하기도 했다. 동시에 시장이 원하는 작품과 작가를 만들어내는 힘이 되기도 했다. .

예술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리고 자본 없이 예술의 지속과 확산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책에서 특히 오래 생각하게 만든 부분은 가격과 가치가 뒤바뀌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원래라면 작품이 중요하기 때문에 높은 가격을 받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미술시장에서는 때때로 반대의 현상이 발생한다.

비싸게 거래되기 때문에 중요한 작품이라고 인식되고, 중요한 작품이라고 인식되기 때문에 다시 가격이 상승한다. 이렇게 가격과 가치가 서로를 밀어 올리는 순환이 만들어진다.

🔖“작품이 비싸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기 위해 비싸야 하는 것이다.”

이 문장은 이 책 전체의 문제의식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듯했다.
가격을 결과라고 생각한다. 어떤 작품이 훌륭하니까 높은 가격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 가격이 다시 작품의 의미와 중요성을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일상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비싼 음식은 더 맛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비싼 호텔은 더 좋은 곳일 것이라고 믿으며, 유명 브랜드의 제품에는 가격 자체가 품질의 신호처럼 작동한다.

그렇다면 미술도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미술은 객관적인 품질을 숫자로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격이 더욱 강력한 신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샹의 레디메이드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난해함은 소수에게만 허락된 안목의 표지가 되고, 이해 불가능성은 고급 취향의 증거로 바뀐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미술관에서 현대미술 작품 앞에 서서 ‘이게 대체 무슨 뜻이지?’ 하고 멈춰 섰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혹시 나의 무지 때문일까 싶어 작품 앞에서 괜히 작아지는 순간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감정마저 시장과 취향의 구조 안에서 바라보게 한다.

어려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곧 특별한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는 증거가 되고, 남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작품을 소유하는 것이 자신의 문화적 지위를 드러내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와 작품을 소유하는 행위는 언제부터 달라졌을까. 더 나아가 작품을 좋아해서 사는 것일까, 아니면 좋아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는 것일까.

취향이라는 것은 정말 개인적인 것일까,
아니면 사회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기준 속에서 형성되는 것일까.


앤디 워홀을 다룬 부분에서
🔖“작품은 물리적 지지대일 뿐, 작가의 브랜드가 가치의 근거가 된다.”

이 문장은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관점에 꽤 큰 충격을 준다.
작품을 볼 때 작품 자체를 먼저 생각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작가의 이름을 알고 난 뒤 작품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무명 작가의 그림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그림이 같은 공간에 놓여 있다면 과연 아무런 정보 없이 동일한 기준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명성은 이미 작품을 보기 전에 시선을 특정 방향으로 이끈다.
그래서 예술에서 브랜드는 작품을 해석하는 하나의 렌즈가 된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예술품이 감상의 대상인 동시에 자산으로 취급되고, 고가 작품이 금융과 자산관리의 네트워크 안에서 움직이는 현실이다.

🔖“현대미술은 점차 ‘예술처럼 보이는 금융’에 가까워졌다.”

예술의 언어가 금융의 논리를 포장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
예술의 희소성, 작가의 브랜드, 시장의 기대, 경매 기록, 컬렉터의 소유욕 등이 결합하면 작품은 감상의 대상인 동시에 투자 대상으로 변한다.
그 순간 작품을 바라보는 질문도 달라진다.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서 ‘이 작품은 앞으로 얼마가 될까?’로.

그렇게 질문이 바뀌는 순간 예술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가격이 아니라 ‘편집 권력’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남은 문제의식은 돈 그 자체보다 누가 역사를 편집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누가 편집자인가?”

그리고 현대미술의 역사에서 갤러리, 딜러, 경매사, 컬렉터 같은 시장 행위자들이 무엇이 중요한 예술로 기억될 것인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부분을 읽고 나니 미술사라는 것이 완성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작가가 존재했지만 기억되고 있는 이름은 극히 일부다.
또한 수많은 작품이 만들어졌지만 미술관에 들어가고 교과서에 실리고 경매에서 반복적으로 거래되는 작품 역시 극히 일부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사는 ‘모든 예술의 역사’라기보다 누군가의 선택과 평가를 거쳐 남겨진 역사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이 곧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가치 없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가치가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과정까지 함께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적 성취와 시장의 성공은 동일하지 않다.
하지만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도 않다.
그 복잡한 관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감상의 방식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고 나면 미술관의 흰 벽도 이전과 다르게 보일 것 같다.

작품 하나를 바라보면서 이 작품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누가 이 작가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을까. 왜 이 작품은 미술관에 들어왔을까.
누가 이 작품을 중요한 작품이라고 판단했을까.
그 판단은 어떤 제도와 자본을 거쳤을까.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이 작품을 ‘명작’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어떤 힘들이 작동하고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생각날 것 같다.

작품의 가격을 만들어낸 구조를 알고 나면 가격과 예술적 가치를 조금 더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다. 비싸다고 위대한 것은 아니고, 싸다고 덜 중요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당연한 사실을 생각보다 자주 잊고 살아간다.


가격표를 떼어낸 뒤에도 남는 것이 있는가?

누군가의 거대한 자본이 뒤에서 밀어준 작품이라 해도 그 작품 자체가 가진 미적 경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반대로 수백억 원의 가격표가 붙었다고 해서 그 작품을 반드시 좋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예술은 가격보다 오래 남을 수도 있고, 가격 때문에 오히려 제대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이 작품은 얼마인가?’가 아니라, ‘왜 이 작품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돈의 미술사》가 건네는 가장 중요한 감상법인지도 모르겠다.
자본을 몰아내고 예술만 바라보자는 것이 아니다.
예술 뒤에 존재하는 자본과 제도, 권력과 욕망까지 함께 바라보자는 것.

그렇게 모든 구조를 한 번 들여다본 뒤에도 작품 앞에서 마음이 움직인다면, 그때의 감동은 조금 더 온전한 것이 아닐까.

《돈의 미술사》는 미술시장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가치란 무엇인가’를 묻는 책이었다.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말하고, 중요하다고 말하고, 오래 기억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순간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기준들이 작동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때때로 돈과 제도, 권력과 취향의 영향을 받는다.

책을 덮은 뒤에도 모네의 그림이나 워홀의 작품, 뒤샹의 레디메이드가 이전과 똑같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이제 작품을 바라보면서 작품만 보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 뒤에서 움직이는 사람들과 제도, 자본과 욕망까지 함께 보게 될 테니까.


하지만 결국 다시 작품 앞으로 돌아오고 싶다.
모든 가격과 명성, 권위와 평가를 잠시 내려놓고 내가 그 작품을 바라보며
무엇을 느끼는지 들여다보고 싶다.

가격이 사라진 뒤에도 내가 여전히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그것이야말로 누군가가 정해준 가격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발견한 예술의 가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돈의 미술사》가 남긴 가장 깊은 여운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가격을 만든 주체와 그것을 승인한 제도의 구조까지 모두 확인한 뒤, 우리는 작품 앞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가격도, 작가의 이름도, 미술관의 권위도 잠시 내려놓고
그 작품 자체를 바라보는 것.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그 작품이 오늘 이곳에 존재하게 된
수많은 관계와 권력의 흔적까지 함께 바라보는 것.

예술의 가격을 이해하는 일은
무엇을 가치 있다고 믿어왔는지를 다시 묻는 일이었다.

_

#돈의미술사 #구텐베르크 #심상용
#교양미술 #인문교양 #미술 #미술사
#신간 #신간도서 #신간소개 #새로나온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지금 알아두면 좋은 교양인문학 49가지 - 소크라테스부터 BTS까지, 나와 세계를 이해하는 인문학 ㅣ AcornLoft
김레나 지음 / 에이콘온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인문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렵고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철학자들의 사상이나 역사적 사건, 예술 작품과 종교, 심리학과 언어·문화까지 한꺼번에 떠올리면 어디서부터 공부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다. 그런데 김레나 작가의 《지금 알아두면 좋은 교양인문학 49가지》는 인문학을 ‘많이 알아야 하는 지식’으로 접근하기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질문의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49개의 주제가 대부분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소크라테스는 왜 죽어야 했는가?’, ‘플라톤의 동굴, 우리는 무엇을 보고 사는가?’, ‘르네상스는 정말 재탄생이었는가?’, ‘현대미술은 왜 이해하기 어려운가?’처럼 지식을 설명하기 위한 제목이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을 앞세운다.

아마 이것이 이 책이 말하려 하는 ‘생각하는 힘’의 출발점일 것이다. 이미 정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에 답하는 것은 지식을 습득하는 일에 가깝지만, 질문 자체를 의심하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전제를 들여다보는 것은 조금 다른 차원의 사고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처럼 검색하면 거의 모든 정보를 바로 얻을 수 있고, 알고리즘이 내가 무엇을 볼지 선택해 주는 시대에는 ‘무엇을 아는가’ 못지않게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느낀다. 정보가 부족해서 판단하지 못하는 시대에서 정보가 너무 많아서 무엇을 믿고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운 시대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49가지 질문은 과거의 철학자나 역사적 사건을 공부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현재의 나에게 돌아오는 질문처럼 느껴진다.


첫 번째 영역인 철학에서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니체, 공자, 아리스토텔레스, 장자, 사르트르, 푸코 등을 통해 인간이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중에서도 소크라테스와 사르트르를 함께 떠올려 보면 흥미롭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적 원칙과 삶의 방식을 저버리는 대신 죽음을 받아들였고, 사르트르는 인간이 끊임없이 선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보았다. 시대도 사상도 다르지만 두 사람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선택하고 있는 것인지, 주변의 기대와 사회의 기준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좋은 직업, 안정적인 삶, 성공의 기준, 행복의 모습까지도 이미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플라톤의 동굴 이야기도 여전히 현재적이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진짜 세계의 전부라고 믿고 살아가지만, 그것은 내가 익숙해진 하나의 관점에 불과할 수도 있다. 뉴스와 SNS, 짧은 영상,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정보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반복적으로 많이 보고 있다는 사실이 곧 세상을 제대로 보고 있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역사 부분에서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프랑스혁명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자유는 정말 모든 시민의 권리였는가, 아니면 새로운 권력의 또 다른 이름이었는가?”
🔖“평등은 법전 속 문장에만 머물렀는가, 아니면 구체적인 삶의 조건으로 실현되었는가?”

이 질문들이 오래 남는 이유는 ‘좋은 가치’라고 생각했던 단어들도 현실에서는 누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단어 자체에는 이견이 거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사회에서 누가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 누가 제도적으로 배제되어 있는지, 법적으로 평등하더라도 경제적·사회적 조건에서 얼마나 다른 출발선에 서 있는지를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즉,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연도와 사건을 외우는 일 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그 생각이 누구에게 이익이 되었는지,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무엇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한국 현대사는 왜 다르게 기억되는가?’라는 질문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의미가 크다. 동일한 사건도 누군가에게는 영광스러운 역사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러운 기억일 수 있다. 역사를 하나의 정답으로만 받아들이기보다 기억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까지 바라보는 것이 성숙한 역사 읽기일 것이다.


문학 파트에서는 셰익스피어, 도스토옙스키, 카프카, 김수영, 한강의 작품을 통해 인간을 바라본다.

문학이 가진 힘은 철학처럼 직접적으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한 인물의 선택을 따라가고, 그가 느끼는 두려움이나 욕망을 바라보면서 독자 스스로 인간을 이해하게 만든다.

특히 카프카의 [변신]처럼 인간을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된 존재로 그려낸 작품은 인간의 가치가 무엇으로 결정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내가 가족과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인정받는 것이라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같은 사람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오래된 문학 작품에서 출발하지만 오늘날에도 전혀 낡지 않았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통해 욕망과 인간의 몸을 바라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선택을 얼마나 쉽게 판단하는가. 상대의 삶을 이해하기 전에 내가 가진 정상성의 기준부터 들이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삶을 잠시 살아보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 영역에서는 〈모나리자〉와 반 고흐, 피카소, 한국화, 현대미술 등을 다룬다.

🔖“반 고흐의 그림은 고통의 부산물이 아니라,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강한 의지의 산물이었다.”

‘고통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에 위대한 예술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예술가의 삶을 낭만화하기 쉽다. 하지만 고통을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에는 관찰과 선택, 구성과 표현이라는 의식적인 작업이 존재한다.
그래서 예술은 감정을 바라보고 그것에 형태를 부여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미술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작품을 보는 순간 ‘이게 대체 무슨 뜻이지?’라는 정답부터 찾으려 하면 당연히 어렵다. 하지만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와 작가가 던진 문제, 기존의 예술 규칙을 어떻게 깨뜨렸는지를 살펴보면 작품을 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진다.
예술은 보는 것뿐 아니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배우는 경험이기도 하다.


종교에 관한 일곱 가지 질문도 인상적이다. 인간은 왜 신을 만들어왔는가, 불교는 정말 삶을 부정하는가, 종교는 어떻게 사회와 문명을 바꾸었는가 등의 질문은 특정 종교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를 넘어선다.

인간은 불확실한 세계에서 살아간다. 죽음, 고통, 질병, 상실, 자연재해처럼 인간의 힘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것들이 존재한다. 그런 세계에서 인간이 의미를 찾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삶의 질서를 만들어온 과정에서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인간 자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다른 종교를 이해하는 과정에서는 이해는 동의와 다르기 때문에 ‘내가 믿는 것이 옳다’는 관점만큼이나 ‘저 사람들은 왜 그렇게 믿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현실적인 인문학은 심리학일지도 모른다.
심리 영역은 책의 49가지 주제 가운데 특히 일상과 가까운 부분이다.
우리는 왜 스스로를 합리화하는가. 왜 미루는가.
왜 군중 속에서 더 잔인해질 수 있는가. 인간은 정말 이타적인가.

이런 질문은 철학책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 화를 낸 이유, 실수를 인정하기 싫었던 이유, 해야 할 일을 미루면서 스스로에게 했던 변명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중 군중심리를 다룬 부분에서
🔖“군중은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느낀다” 라는 문장도 눈에 들어온다.

다만 이 문장을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해 ‘군중은 언제나 비이성적이다’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집단 안에서 감정의 영향을 더 강하게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하는 것이다.

특히 SNS에서는 분노와 공포, 조롱처럼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가 빠르게 확산되기 쉽다. 누군가를 충분히 알아보기도 전에 수많은 사람이 비난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전에 공유하고, 집단의 분위기에 휩쓸려 판단하는 일도 생긴다.

그럴수록 필요한 것은 ‘나는 지금 정말 내 스스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라는 한 번의 멈춤인지도 모른다.


언어와 문화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만든다.
그래서 마지막 영역인 언어와 문화는 오늘날 더욱 중요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언어 없이 생각하기 어렵고, 언어를 통해 타인의 의도를 해석한다.
같은 사건도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줄 수 있다.

‘정치적 올바름’, ‘문화상대주의’, ‘밈’, ‘해리 포터’, BTS, 유튜브까지 함께 다룬 구성도 흥미롭다. 인문학을 오래된 철학과 고전문학만의 영역으로 가두지 않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대중문화와 디지털 환경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튜브와 알고리즘의 시대에는 ‘원해서 보는 것’과 ‘계속 추천받아서 보는 것’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 내가 가진 관심사가 실제로 나의 자유로운 선택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반복적으로 노출된 결과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책의 첫머리에서 말하는 ‘생각하는 힘’과 마지막 장의 ‘인문학은 왜 필요한가?’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인문학은 ‘정답’을 주는 공부가 아니다.
책을 읽고 남는 것은 49개의 지식 자체라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습관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에서 인간의 신념을 생각하고, 프랑스혁명에서 자유와 평등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고, 카프카와 한강의 문학에서 인간과 정상성의 문제를 바라보고, 반 고흐의 그림에서 고통과 창조의 관계를 생각하고, 군중심리를 통해 나 자신의 판단을 의심해 보는 것.

이렇게 보면 인문학은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세상의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무엇을 옳다고 믿을 것인지 결정하는 순간마다 작동하는 사고의 도구다.


🔖“인문학은 지식을 축적하는 학문이 아니라, 관계를 해석하는 태도다.”

나는 이 문장이 이 책 전체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느꼈다.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더 많은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내가 가진 생각을 다시 검토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생각하는 힘이란 모든 것에 의심을 품는 능력이 아니라,
내가 믿고 있는 것조차 한 번 더 바라볼 수 있는 힘에 가깝지 않을까.

《지금 알아두면 좋은 교양인문학 49가지》는 일곱 개의 영역을 통해 그 연습을 시작하게 한다.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전문서라기보다는 인문학이라는 넓은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것에 가깝다. 그리고 각 주제 뒤에 참고 문헌과 추천 읽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깊이 들어가고 싶은 독자에게 다음 길까지 열어준다.

49개의 렌즈를 지나온 뒤 남는 것은 ‘나’와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질문이다.

‘세상을 예전과 똑같이 바라봐도 되는 걸까?’

이 질문이 이 책이 의도한 가장 좋은 독서의 결과는 아닐까.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가 문득 이 질문을 다시 떠올리는 것.

인문학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_

#지금알아두면좋은교양인문학49가지 #김레나 #에이콘출판사
#교양인문학49가지 #교양인문학 #교양 #인문학 #신간도서
#소크라테스 #철학 #역사 #심리학 #문학 #도서리뷰 #신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