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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알러지 ㅣ 10대가 10대에게
황서현 지음 / 이지북 / 2026년 8월
평점 :
🔻이 게시물은 #자음과모음 (@jamobook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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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서현의 《첫사랑 알러지》를 펼치는 순간부터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열일곱의 교실 창가, 몰래 적어 내려간 이름, 함께했던 여름, 쉽게 꺼내지 못했던 마음과 편지…… 책 속에 등장하는 첫사랑의 풍경이 꼭 내 기억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만큼은 어딘가 익숙했다.
나에게도 사랑을 처음 알게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 이렇게 마음을 크게 흔드는 일인지 처음 알았고, 함께 있는 평범한 하루가 특별해지는 경험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잠시 스쳐 지나간 풋풋한 기억으로만 남지 않았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삶의 많은 장면을 지나온 사람으로 내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첫사랑’은 내게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첫사랑은 꼭 가장 오래 사랑한 사람일 필요도, 가장 아름답게 끝난 사랑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온몸으로 알게 된 사람, 그리고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나로 데려온 사람이 첫사랑인지도 모른다.
황서현의 《첫사랑 알러지》는 그런 첫사랑의 시작과 열병, 상처와 이별,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까지 55편의 시를 통해 따라간다.
책을 읽으며 오래전의 한 사람을 떠올렸다.
스무 살의 나와, 그때의 그 사람.
그리고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우리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만들어 갔던 시간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 시집의 사랑이 ‘열일곱의 풋사랑’으로만 읽히지 않았던 이유가.
누군가에게 첫사랑은 교실 창가 맨 뒷자리의 사람이겠지만,
나에게 첫사랑은 어느 순간 인생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오래된 사랑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사랑이 끝났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랑이 내 안에 무엇을 남겼는가일지도 모른다고.
이 책에서 첫사랑은 교실 창가의 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일기장에 반복해서 적어 보는 이름, 함께 마시는 음료, 빌려 읽은 시집, 한쪽씩 나누어 끼었던 이어폰처럼 아주 작은 순간에서 사랑은 자라난다. 그래서 이 시집의 사랑은 평범한 순간 하나하나가 사랑 때문에 특별해지는 모습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마음에 남는다.
처음에는 무엇이든 달콤하게 느껴진다. 아직 삶의 쓴맛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나이에 찾아온 사랑은 그 자체로 세계의 전부가 된다. 그래서 《첫사랑 알러지》 속 사랑에는 서툼과 충동이 함께 있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그 마음을 숨기기보다 일기장에 적고, 편지를 쓰고, 시를 쓴다.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조금 부끄럽거나 지나치게 솔직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서툼이 이 시집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느꼈다.
사랑을 잘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밤새 고민하고, 말 한마디를 수십 번 되뇌고, 전하지 못한 마음을 글로 남긴다. 《첫사랑 알러지》는 바로 그 시절의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일기장]에 담긴 정서는 첫사랑이라는 감정의 본질을 잘 보여 준다. 누군가의 이름을 일기장에 계속 적는다는 것은 말로 고백하기에는 너무 조심스럽고, 그렇다고 마음속에만 담아 두기에는 너무 벅찬 감정을 글자 속에 붙잡아 두는 행위에 가깝다.
이 부분에서 첫사랑의 가장 순수한 형태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첫사랑은 상대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보다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 오래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그 이름만큼은 오래 간직하고 싶고, 그때의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잊고 싶지 않아서 기록한다. 그래서 일기장은 사랑의 증거이면서 동시에 지나가 버릴 시간을 붙잡아 두는 작은 저장소가 된다.
이 시집에서 여름이라는 계절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여름은 모든 것을 크게 만든다. 햇빛도 뜨겁고, 비도 갑작스럽고, 감정도 쉽게 달아오른다. 《첫사랑 알러지》에서 여름은 사랑의 온도를 보여 주는 계절처럼 느껴진다.
[그해 여름]에서는 이미 지나간 시간을 바라보면서도 그 계절의 감각이 여전히 남아 있는 마음을 만날 수 있다. 사랑은 끝났는데 여름은 기억 속에서 계속된다. 그래서 사랑이 끝난 뒤에도 특정한 계절만 되면 문득 한 사람이 떠오르는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우리의 여름은 허구였다]에 이르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완벽해 보였던 사랑의 장면에서 어느 순간 작은 균열을 발견한다. 사랑에 빠져 있을 때는 상대도, 나도, 함께 있는 시간도 모두 특별하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이 거짓이었다는 결론이 아니라,
그때의 사랑이 진짜였더라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는 사실이 아닐까.
누군가를 사랑했던 시간이 끝났다고 해서 그때 느꼈던 감정까지 가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당시에는 정말 행복했고, 정말 간절했고, 정말 오래갈 것이라고 믿었다. 다만 사람의 마음과 관계는 계속 변한다.
그래서 지나간 사랑을 '허구'라고 부르는 마음에는 사랑에 대한 실망과 동시에 그 시간을 놓아주려는 성장이 함께 들어 있다고 느꼈다.
이 지점에서 《첫사랑 알러지》는 풋풋한 첫사랑을 예쁘게 기록한 시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1부에서 사랑이 시작되고, 2부에서 사랑을 앓고,
3부에서 사랑의 흔적을 되짚고, 4부에서 그 사랑을 편지처럼 봉인한다.
목차만 보아도 감정의 방향이 선명하다.
처음에는 마음이 앞으로 달려간다. 그러다 사랑 때문에 아파한다.
이후에는 지나간 시간을 돌아본다.
마지막에는 그 마음을 품은 채 다음 계절로 넘어간다.
이 흐름이 첫사랑의 기억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첫사랑은 끝나는 순간보다 끝난 뒤에 더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실제 관계는 끝났는데 기억 속에서는 계속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 '그때 왜 그랬을까', '그 사람도 나를 좋아했을까', '조금만 달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질문이 뒤늦게 생겨난다. 그래서 첫사랑은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바라보는 방식 속에서도 계속 만들어진다.
특히 [시인]과 [시집을 빌리던 내가]가 오래 남는다.
한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시를 읽게 되고, 결국 자신이 직접 시를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사랑이 사람에게 남기는 흔적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보여 준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와 함께하는 것으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때로는 한 사람을 사랑한 경험이 한 사람의 취향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누군가 때문에 시를 읽기 시작했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면, 그 사랑은 관계가 끝난 뒤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사람은 떠나도 그 사람이 내 안에 남긴 변화까지 함께 떠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오래 남은 부분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첫사랑은 반드시 첫 번째로 사랑한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을 처음 깊이 사랑했던 경험, 처음으로 누군가 때문에 내가 달라졌던 경험, 처음으로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하고 싶었던 경험까지 모두 첫사랑의 일부일 수 있다.
그래서 이 시집의 사랑은 더 이상 '너와 나의 관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성장의 기록이기도 하다.
[다정한 사람]에 담긴 생각도 인상적이다.
사랑을 특별한 사건이나 거창한 고백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따뜻한 말 한마디와 안부를 묻는 행동처럼 작고 일상적인 다정함에서 사랑을 발견한다는 점이 좋았다.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에서 가장 오래 기억되는 것은 의외로 거대한 사건이 아닐 때가 많다. 잘 지내느냐고 물어봐 주었던 순간, 말을 기억해 주었던 순간, 힘들 때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 주었던 순간처럼 아주 작은 친절이 오래 남는다.
그래서 이 시집에서 말하는 사랑은 처음에는 뜨겁지만 마지막에는 조금 따뜻해진다. 처음의 사랑이 심장을 뛰게 하는 감정이었다면, 마지막의 사랑은 한 사람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는 마음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 변화가 이 시집의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첫사랑 알러지》라는 제목도 그래서 재미있다.
알러지는 몸이 특정한 물질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현상인데, 이 책에서 첫사랑 역시 처음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강렬하게 몸과 마음을 흔드는 감정처럼 그려진다.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동시에 아프고, 가까워지고 싶은데 가까워질수록 더 불안해지는 감정.
하지만 알러지가 시간이 지나며 가라앉듯 사랑의 열병도 언젠가는 잦아든다.
그렇다고 흔적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사랑을 '이겨 낸다'는 것은 사랑을 완전하게 잊는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아프지 않은 방식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인의 말에서 드러나는 '조금 덜 아파하겠다'는 마음도 그런 의미로 읽혔다. 사랑을 다시 만나더라도 이전처럼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아픔까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보겠다는 다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사랑 알러지》는 첫사랑에 관한 시집이면서 동시에 처음 사랑한 뒤 조금 달라진 나에 관한 시집이기도 하다. 책을 읽고 나면 누군가의 첫사랑을 훔쳐본 듯한 느낌보다 내 기억 속 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나에게도 한때 유난히 자주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는지,
그 사람의 이름을 몰래 적어 본 적이 있었는지, 함께했던 계절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지, 끝난 관계를 마음속에서 완전히 끝내지 못한 적은 없는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지나간 사랑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이제는 그저 '그때의 나를 만들어 준 한 계절'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까지도.
《첫사랑 알러지》가 남긴 여운은 아마 그 지점에 있다.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같은 얼굴로 찾아오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교실 창가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여름날의 바다였을 것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오래 주고받은 편지 한 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비슷할 것 같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그 사람은 내 인생의 한 장면이 되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한 장면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아마 그것이 첫사랑의 힘일 것이다.
사람은 떠나도 계절은 남고, 계절이 지나도 기억은 남고,
기억이 희미해져도 그때의 나는 내 안에 남는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고 나서 남는 것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그 시절의 내가 얼마나 서툴고, 얼마나 솔직했으며, 그 마음 때문에 얼마나 조금씩 자라났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첫사랑은 끝났지만, 첫사랑을 하던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때의 설렘도, 서툼도, 상처도, 쓰다 만 편지도 지금의 나를 이루는 한 문장이 된다. 그리고 어쩌면 평생 그 문장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 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픈 기억이라서가 아니라, 한때 누군가를 온 마음으로 사랑했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쉽게 지워지지 않는 삶의 기록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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