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리를 짐승이라 말할 때 (선공개 특별판) ㅣ 자음과모음 시집 1
에밀리 정민 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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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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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제목을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내가 우리를 짐승이라 말할 때》에서 ‘짐승’이라는 단어는 인간보다 낮은 존재를 가리킬 때 사용되지만, 이 책에서는 인간을 다른 생명과 같은 자리로 돌려놓는 말처럼 느껴졌다. 인간만이 특별하고 우월한 존재라는 생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우리 역시 하나의 생명체이고 욕망하고 사랑하고 상처 입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바라보게 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시인이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인간의 다정함만을 아름답게 그리지도 않고, 인간의 잔혹함만을 고발하지도 않는다. 사랑하면서 동시에 상처를 주고, 자연을 아끼면서도 자연을 소비하고, 누군가를 기억하면서도 다른 누군가를 배제하는 모순적인 존재로 인간을 바라본다.

그래서 이 시집의 ‘짐승’은 인간의 본질을 비추는 거울에 가깝다.
🔖“우리는 얼마나 소비하는, / 소비된 짐승인가.”라는 문장이 특히 그러했다.

살아가기 위해 수많은 것을 소비한다. 물질뿐 아니라 자연을 소비하고, 다른 생명의 시간을 소비하고, 때로는 타인의 감정과 사랑까지 소비한다. 그런데 동시에 우리 역시 시대와 사회, 자본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소비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소비하는 존재’와 ‘소비되는 존재’가 결국 하나의 인간 안에 겹쳐 있다는 점.

시집을 읽으며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조금씩 흐려지는 느낌도 받았다.
말과 상어와 앵무새와 개, 사슴과 고래가 등장하고, 그들의 생과 죽음이 인간의 삶과 연결된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존재처럼 보이지만 시를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인간과 동물이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말하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모두 살아남으려 하고, 사랑하고, 상실을 경험하고, 자신의 존재를 견디며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또한 짐승이다”라는 생각은 인간을 조금 더 겸손하게 만드는 말처럼 다가왔다.


특히 오래 시선이 머물렀던 문장은 [진화론]에 등장하는 다음 구절이었다.
🔖“욕망’은 틀린 단어 같고
‘사랑’은 너무 평범하고 ‘헌신’은 너무 성스럽다고 느낀다.
이 평생을, 당신을 묘사하는 데 쓰겠다.”

사랑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욕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깊고,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흔하고,
‘헌신’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지나치게 거룩한 마음.
그런데 시인은 결국 그 마음을 설명하기 위해 평생을 쓰겠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어떤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이유는 그것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말로는 완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많은 단어를 알고 있어도 어떤 사람을 향한 마음 하나를 온전히 옮겨놓기란 어렵다. 그래서 계속 쓰고, 또 쓰게 된다.

사랑이란 완벽하게 설명되는 감정이 아니라 끝내 설명하려는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어디]의 문장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내 마음도 자주 다른 어디에 가 있다.”

이 짧은 문장이 이상할 만큼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몸은 지금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지나간 시간에 가 있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가 있을 때가 있다. 삶을 살아가면서도 과거의 누군가를 생각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고, 존재하지 않는 ‘다른 어디’를 상상한다.

특히 이 시에서 죽음과 떠남을 ‘끝’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사랑했던 존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어딘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고 믿고 싶은 마음. 그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라기보다 상실을 견디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내는 아주 다정한 상상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 시집의 슬픔은 절망으로만 남지 않는다.
슬픔을 기억으로 바꾸고, 기억을 사랑으로 바꾸며, 사랑을 다시 살아갈 힘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다.


또 하나 마음에 남은 것은 [Affection]에서 ‘애정’과 ‘병’이라는 두 의미를 가진 단어를 가져온 방식이었다.

🔖“Affection은 ‘애정’이란 뜻, 또 ‘병’이라는 뜻.”

사랑과 병이 하나의 단어 안에 겹쳐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서늘하다.
사랑하기 때문에 보호하고 싶어 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집착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언제나 좋은 결과만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자연을 자신의 방식대로 소비하거나, 동물을 사랑한다면서 그들의 삶을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이용하는 것처럼 사랑이라는 감정 안에도 소유와 통제의 욕망이 숨어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시집에서 사랑은 사랑 안에 포함된 모순과 폭력까지 함께 들여다본다. 그것이 이 시집을 더욱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이었다.

[아시아를 떠나 아시안이 되다]에서는 개인의 정체성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분류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나를 ‘아시안 아메리칸’으로 만들어낸다.”

누군가를 하나의 범주로 규정하는 것은 편리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개인의 경험까지 동일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아시아인’, ‘아시안 아메리칸’이라는 이름 안에도 수많은 역사와 문화와 개인의 경험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 시는 정체성을 내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어떤 범주 안에 놓이는지를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 인간은 하나의 단어로 설명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는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아 하면서 내 인생이 바뀌길 기다린다.”

이 문장은 자연과 환경에 대한 이야기처럼 시작하지만, 곧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변화를 원하면서도 변화의 비용은 치르고 싶지 않은 마음.
지금의 삶이 달라지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내가 먼저 움직이는 일은 미루는 마음.

이 모순은 환경 문제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를 걱정하면서도 누리는 편리함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북극곰이 굶주리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면서도 소비 습관과 생활방식이 그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까지 생각하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이 시집의 자연은 인간의 행동을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다.


🤔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남은 것은 인간에 대한 아주 복잡한 감정이었다.

인간은 잔인하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잔인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끄러워할 수도 있다.

인간은 자연을 파괴한다.
하지만 그 파괴를 슬퍼하고 다시 살리고 싶어 하기도 한다.

인간은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면서도 다시 사랑하고, 기억하고, 애도하고, 곁에 머물기를 선택한다.

아마 이 시집은 바로 그 모순을 포기하지 않는 책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에 놓인 [다음 생]의 문장이 그래서 더욱 깊게 다가온다.
🔖“이 생에서 나는 사람들을 아프게 했다.
매해 더 다정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실패한다.”

완벽하게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를 아프게 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다음에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로 그 실패와 노력 사이에 사랑이 놓여 있는 것 같다.


《내가 우리를 짐승이라 말할 때》는 인간 안에 존재하는 욕망과 폭력, 차별과 무지, 사랑과 연민을 한꺼번에 꺼내 보여준다.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너무 정확해서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그 끝에서 시인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다.
🔖“당신을 사랑하지만 미래는 아찔하다. / 미래는 아찔하지만 당신과 계속 사는 것이 / 기다려져 견딜 수 없다.”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고 세계는 완벽하지 않다.
살아가는 동안 상처와 실패도 계속될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와 계속 살아가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있다.

세상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세계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계속 살아간다.

인간이 모두 완벽하지 않은 생명체라면,
서로의 잔인함만큼 서로의 연약함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서로가 어떤 짐승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
사랑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지 않을까.

🤔
나는 어떤 짐승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상처를 주기도 하고, 욕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잔인해지기도 하는 존재이면서도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기억하고 애도할 수 있는가.
완벽하게 다정한 사람이 되는 데 매번 실패하면서도,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가.

시인이 말하는 ‘나아가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서로가 어떤 짐승인지 단번에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알아가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상처와 연약함까지도 외면하지 않고,
끝내 사랑하는 것.

《내가 우리를 짐승이라 말할 때》를 읽고 난 뒤 남은 것은
완벽하지 않은 우리를, 그래도 서로 이해해보려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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