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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화를 위한 소설 사고 - 모호한 아이디어를 독자에게 전달되는 말로 바꾸는 힘
오가와 사토시 지음, 박대겸 옮김 / 황금가지 / 2026년 7월
평점 :
🔻이 게시물은 #뱅만부 님 (@100manbu ) 서평단 모집에 선정되어
황금가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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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을 때 대부분은 문장이 아름다운지, 이야기가 흥미로운지, 인물이 매력적인지부터 살핀다. 반대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면 좋은 문장을 만들 수 있을지, 어떻게 복선을 깔고 이야기를 구성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오가와 사토시의 《언어화를 위한 소설 사고》는 이런 익숙한 질문의 방향을 조금 비튼다.
처음부터 “만인을 위한 ‘소설 쓰는 방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태도로 출발하는 이 책은, 소설가가 무언가를 쓰기 전에 머릿속에서 어떤 사고를 거치는지를 해부하는 책에 가깝다. 그래서 읽는 동안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지?’라는 질문보다 ‘지금 무엇을 보고 있고, 그것을 왜 이렇게 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더 자주 떠올리게 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소설을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이다.
📌“소설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책띠지 문장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처럼 느껴졌다. 작가가 아무리 좋은 것을 표현했다고 생각해도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작품은 작가의 머릿속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소설은 혼자 하는 독백인 동시에 타인에게 건네는 언어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정보의 순서’도 무척 흥미로웠다.
🔖“정보의 순서는 소설이라는 공간을 구축하는 방법을 규정한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글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느끼는 긴장감이나 몰입 역시 문장력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정보라도 언제, 어떤 순서로 제시하느냐에 따라 독자가 받아들이는 감정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사실을 처음부터 모두 알려주는 것과 필요한 순간까지 감춰 두는 것, 인물의 감정을 먼저 보여주는 것과 행동을 먼저 보여준 뒤 그 감정을 짐작하게 하는 것은 같은 이야기를 전혀 다른 경험으로 만든다.
그래서 좋은 글을 쓰는 일이란 아름다운 문장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독자가 어떤 정보를 어떤 순간에 만나게 할 것인지 설계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생각하게 만든 부분은 소설가가 ‘잘 모르는 세계’를 써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소설가는 잘 모르는 세계에 살고 있는, 잘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처음에는 조금 역설적으로 들린다.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인데, 왜 굳이 잘 모르는 사람과 세계를 써야 할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소설의 세계는 바로 여기에서 넓어지는 것 같다.
자기 경험만 반복해서 이야기한다면 글은 안전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세계가 좁아질 수 있다. 반면 내가 직접 살아보지 않은 삶을 상상하고,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순간 인간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진다.
소설을 쓰는 일은 나라는 하나의 경험에서 출발해 수많은 인간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은 소설가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상에서도 자신이 경험한 것만으로 타인을 판단하기 쉽다. ‘나는 이랬으니까 너도 이럴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타인의 세계는 사라진다. 내가 모르는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타인을 이해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책에서 날카롭게 다가온 부분은 ‘자신의 가치관을 버리라’는 도발적인 제안이었다. 물론 저자는 정말 자신의 가치관을 모두 버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에서 잠시 벗어나야 새로운 소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특히 이런 질문이 오래 남았다.
🔖“독자보다 나자신을 중요하게 하지는 않았는가?”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꽤 아픈 질문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나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쓰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독자도 당연히 중요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질문은 소설뿐 아니라 서평을 쓰는 나 자신에게도 그대로 돌아왔다.
책을 읽고 느낀 것을 글로 옮길 때도 나의 감상만 늘어놓으면 그것은 ‘나를 위한 기록’에 머물 수 있다. 내가 왜 이 문장을 인상 깊게 읽었는지, 그 감정이 읽는 이에게도 닿을 수 있도록 어떤 맥락으로 풀어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작법서이면서 동시에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을 담은 책처럼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개념은 ‘오독’이었다.
🔖“소설이 종종 ‘오독’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소설의 ‘오독’은 실패가 아니라 또 다른 탄생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고 세상에 내놓지만, 그 순간부터 작품은 더 이상 작가만의 것이 아니다. 독자는 자신의 기억과 경험, 상처와 기쁨을 가지고 작품을 읽는다. 그러니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좋은 소설은 독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끼워 넣을 공간을 남겨 놓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의미를 작가가 친절하게 설명해 버리면 작품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삶과 연결할 여지는 줄어든다. 반대로 조금의 빈틈이 있는 이야기는 독자가 자신의 경험으로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작품을 읽고 나서 ‘작가가 이런 뜻으로 썼을까?’보다 ‘나는 왜 이 장면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될 때가 있다.
작가가 건넨 이야기가 독자의 삶을 통과하면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되는 순간.
그것이 문학이 가진 놀라운 힘일지도 모르겠다.
목차에서부터 눈길을 끄는 제목이 있다.
📌‘복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한 문장부터 이 책이 얼마나 기존의 작법 상식을 뒤집으려 하는지 느껴졌다.
이야기를 잘 만든 작품에는 치밀한 복선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복선을 얼마나 많이 심었는가’가 아니라, 독자가 작품 전체를 경험한 뒤 앞선 정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구조 자체일 것이다.
작가가 처음부터 ‘여기에 복선을 심어야지’라고 계산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정보가 독자의 인식 속에서 어떻게 다시 연결되는가일지도 모른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지점에 있다. 익숙하게 알고 있던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 번 뒤집어 보게 한다. 그리고 그 뒤집힌 자리에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AI가 소설과 글쓰기까지 빠르게 영역을 넓혀 가고 있는 지금, 이 책의 문제의식은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저자는 소설을 인간의 인지를 언어로 압축하는 활동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독자는 그 압축된 언어를 자신의 인지와 경험을 통해 다시 풀어낸다.
🔖“소설의 재미는, 애초에 표현하고자 했던 ‘어떤 인간의 인지’의 깊이와, 그것을 압축하는 기술이 더해져 결정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문장을 잘 만들어내는 기술이 아니라 그 문장 뒤에 어떤 인간의 인식과 경험이 존재하는가라는 점이다. AI가 인간처럼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될수록 오히려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나는 무엇을 경험했는가’, ‘그 경험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가’가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창작에서 가장 쉽게 복제하기 어려운 것은 문장을 만들어낸 삶과 인식의 깊이일 테니까.
책을 읽은 뒤 특히 ‘나를 위한 문장’이라는 표현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글을 쓸 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하는 데 익숙하지만, 정작 독자가 무엇을 받아들일지는 충분히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과 상대가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같지 않다.
그리고 어쩌면 그 차이 때문에 문학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하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으면 독자는 자신의 삶으로 그것을 다시 읽는다. 그 과정에서 원래 작가가 생각하지 않았던 의미가 생겨난다. 그러므로 완벽하게 통제된 작품보다 독자가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불러올 수 있는 작품이 더 오래 살아남는 것은 아닐까.
《언어화를 위한 소설 사고》를 읽으며 느낀 것은 글쓰기가 ‘생각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문장을 잘 쓰는 기술은 연습할 수 있다. 구조도 공부할 수 있고, 다양한 작품을 읽으며 표현법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왜 그것을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소설가 지망생에게만 필요한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서평을 쓰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말로 잘 표현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누군가와 제대로 소통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꽤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내가 가진 생각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그것을 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압축하고, 그 언어가 다시 타인의 경험 속에서 새로운 의미로 살아나도록 만드는 것.
그렇다면 소설은 한 인간의 인지를 다른 인간에게 건네는 아주 정교한 커뮤니케이션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지막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진심으로 소설을 찾으려고 하는가?”
읽고 난 뒤 남은 것은 언어를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야겠다는 조심스러움,
그리고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생각을 끝까지 들여다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무언가를 표현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내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을 한 번 더 의심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 읽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생각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언어화’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을 정말 제대로 말하고 있는가."
이 책이 내게 남겨 준 물음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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