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다! 7일 실무 엑셀 - AI 시대에도 여전히 엑셀이 어려운 바쁜 직장인들을 위한 올바른 입문서, 전면 개정판 ㅣ 된다! 업무 능력 향상 200%
한정희 지음 / 이지스퍼블리싱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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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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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은 참 이상한 프로그램이다.
분명 한 번쯤은 사용해 봤고, 표를 만들고 숫자를 입력하는 정도는 할 수 있는데 막상 업무에서 조금 복잡한 상황을 만나면 갑자기 자신감이 사라진다.

어떤 함수를 써야 하는지, 왜 계산 결과가 이상한지, 데이터가 많아졌을 때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몰라 검색창을 열고 하나씩 찾아보게 된다.

특히 요즘처럼 AI에게 “엑셀 수식 만들어 줘”라고 물어볼 수 있는 시대에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굳이 엑셀을 처음부터 공부해야 할까?

하지만 AI가 만들어 준 수식이나 VBA 코드가 정말 내 업무에 맞는 것인지 판단하려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AI는 엑셀을 대신해 줄 수 있지만, 엑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판단까지 대신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AI에게 “이 자료에서 부서별 매출 합계를 구하는 엑셀 수식을 만들어 줘”라고 요청할 수는 있다. 하지만 데이터의 구조가 잘못되어 있다면? 숫자가 텍스트로 저장되어 있다면? 날짜 형식이 뒤섞여 있다면? 필터가 적용된 데이터만 계산해야 한다면? 만들어진 수식의 결과가 이상할 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낼 수 없다면?

AI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도 결국에는 엑셀의 기본 원리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방향은 ‘AI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엑셀을 알아야 하는 시대’로 관점을 바꿔 놓았다는 점이다.


엑셀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의외로 함수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디를 클릭해야 하는지, 무엇을 먼저 선택해야 하는지, 왜 이 메뉴를 눌러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 더 큰 장벽이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처음부터 독자가 엑셀 화면 앞에서 헤매지 않도록 구성되어 있다.

셀 주소를 읽는 방법부터 시작해 숫자와 날짜 입력, 자동 채우기, 셀 서식, 테두리와 배경, 행과 열 관리, 선택하여 붙여넣기까지 차근차근 올라간다. 그리고 기능을 설명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견적서 양식 만들기 같은 실제 상황으로 연결한다.

☆이런 구성은 꽤 중요하다.
엑셀은 기능을 하나씩 외우는 것보다 “이 상황에서 이 기능을 왜 사용하는가”를 이해해야 오래 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VLOOKUP", "XLOOKUP", "SUMIFS", "COUNTIF", "FILTER", "SUBTOTAL" 같은 함수 이름을 아무리 많이 외워도 실제 업무에서 언제 어떤 함수를 써야 하는지 모르면 소용이 없다.

반대로 거래처 데이터를 정리하다가 “조건에 맞는 값만 찾아오려면 어떤 기능이 필요하지?”라는 질문이 생겼을 때 적절한 함수를 선택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이 책의 실습 중심 구성은 초보자를 위한 친절함을 넘어서 실제 업무에 적용하기 위한 학습법에 가깝게 느껴진다.


목차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특히 눈에 들어온 부분은 2장과 3장이었다.
많은 엑셀 입문서라면 함수부터 빠르게 들어갈 것 같지만, 이 책은 그전에 데이터를 제대로 입력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룬다.

병합된 셀을 해제하고 빈 셀을 정리하거나, 수식을 값으로 붙여넣고 불필요한 행을 삭제하는 방법, 정렬과 필터, 표 만들기, 데이터 형식 오류를 해결하는 방법 등이 이어진다. 이 부분을 보면서 엑셀에서 정말 중요한 능력은 ‘수식을 많이 아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데이터가 있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
숫자가 숫자로 저장되어 있지 않고, 날짜가 날짜로 인식되지 않고, 셀 안에 불필요한 공백이나 유령 문자가 숨어 있다면 아무리 정확한 수식을 입력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책에서 다루는 ‘계산 오류를 만드는 데이터 유형과 해결 방법’이라는 내용은 그래서 초보자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엑셀을 사용하면서 “분명 숫자인데 왜 계산이 안 되지?”, “같은 날짜처럼 보이는데 왜 정렬이 이상하지?”라는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이 문제의 중요성을 바로 이해할 것이다.

엑셀 실력은 함수를 외우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읽어내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책 제목은 《된다! 7일 실무 엑셀》이다.
처음에는 ‘7일 만에 엑셀을 정복한다’는 의미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목차를 살펴보면 책에서 말하는 7일은 모든 엑셀 기능을 완벽하게 마스터한다는 의미보다는 짧은 기간 동안 핵심 기능을 집중적으로 익힐 수 있도록 학습의 방향을 잡아주는 장치에 가깝다.

특히 책에서 ‘7일/16일 맞춤형 계획표’를 제공한다는 점은 공부를 시작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다.

엑셀 책을 사놓고 처음 몇 장을 읽다가 덮어버린 경험이 있다면,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몰라서 포기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두꺼운 설명서가 아니라 “오늘은 여기까지 하면 된다”라고 알려주는 구체적인 기준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7일’이라는 숫자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시작을 쉽게 만들어 준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내용은 확실히 실무 쪽으로 깊어진다.
수식과 함수에서는 상대 참조, 절대 참조, 혼합 참조부터 시작해 IF, AND, OR, IFS, IFERROR, SUMIF, SUMIFS, COUNTIF, VLOOKUP, XLOOKUP, SUBTOTAL, 텍스트 함수, 날짜 함수, FILTER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6장에서는 피벗 테이블과 조건부 서식, 피벗 차트, 슬라이서와 시간 표시 막대를 활용해 보고서를 만드는 방법을 다룬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7장에서는 파워 쿼리와 VBA, 그리고 AI를 활용한 VBA 코드 생성까지 연결한다.

이 흐름이 흥미롭다.

기초 → 데이터 관리 → 함수 → 분석 → 시각화 → 자동화 → AI 활용

실제 업무가 발전해 가는 순서와 상당히 닮아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데이터를 입력하고 표를 만들지만, 데이터가 쌓이면 정리가 필요하고, 정리된 데이터에서 원하는 값을 계산해야 하며, 이후에는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업무량이 많아지면 반복 작업을 자동화하고 싶어지고, 여기에서 파워 쿼리나 VBA 같은 기능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이제는 그 자동화 과정에 AI까지 들어온다.
그래서 이 책은 제목만 보면 입문서처럼 보이지만, 실제 목차를 보면 기초부터 실무 자동화까지 단계적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설계된 책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특히 AI와 VBA의 만남이 흥미롭다.
VBA는 엑셀을 조금 사용해 본 사람에게도 진입장벽이 높은 영역이다. 코드가 등장하는 순간 갑자기 엑셀이 프로그래밍 언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AI에게 VBA 코드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고, 그 코드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면서 접근한다면 예전보다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

책에는 “AI로 VBA 코드 만들기”라는 장이 별도로 구성되어 있고, 열 너비 자동 맞춤이나 확인란을 활용한 체크리스트 등을 예제로 제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에게 원하는 결과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능력을 익히게 한다는 점이다.

AI 시대에는 내가 원하는 결과를 정확히 정의하고 AI가 만든 결과물을 검증하고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엑셀과 AI를 연결한 이 책의 방향은 지금의 업무 환경과 잘 맞는다.

읽고 난 뒤 마음에 남는 것은 ‘엑셀을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아니었다.
“내가 도구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나?”라는 생각이었다.

엑셀을 조금 깊게 들여다보면 데이터를 구조화하고, 반복 작업을 줄이고, 조건에 따라 정보를 추출하고, 수많은 데이터를 요약하고, 보고서로 시각화하고, 나아가 작업 자체를 자동화할 수 있는 도구라는 것을 알게 된다.

AI가 등장하면서 이런 도구의 가치는 더 선명해진 것 같다.
AI가 수식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 수식이 맞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AI가 VBA 코드를 작성해 준다면 그 코드가 무엇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된다! 7일 실무 엑셀》은 “엑셀을 몰라서 업무 앞에서 당황했던 사람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책”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엑셀 화면만 켜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 왕초보에게는 클릭 순서와 실습 중심의 설명이 도움이 될 것이고, 자격증은 있지만 실제 업무에서 활용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데이터 관리와 실무 함수, 피벗 테이블, 파워 쿼리 등의 내용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발판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AI에게 수식을 물어보면서도 그 답이 맞는지 몰라 불안했던 사람에게는 AI에게 의존하는 법이 아니라 AI를 활용하면서도 스스로 판단하는 법을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이 의미 있다.

엑셀은 어쩌면 같은 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업무 언어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매번 같은 자료를 복사하고 붙여넣느라 시간을 보내고, 숫자 하나를 수정하기 위해 여러 셀을 다시 확인하고, 보고서 하나를 만들기 위해 몇 시간을 소비했다면 이제는 조금 다른 방법을 배워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셀 하나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엑셀의 ‘ㅇ’도 모르던 사람이 어느 순간 수식을 직접 만들고, 데이터를 정리하고, 피벗 테이블로 보고서를 만들고, AI에게 VBA 코드까지 요청할 수 있게 되는 과정.

그 변화가 바로 이 책이 말하는 ‘실무 엑셀’의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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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필사책 - 흔들리는 삶의 지침이 되어 줄 다산의 문장들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 유노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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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유노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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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유난히 오래 눈길이 머무는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그 문장이 이상하게도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정확히 건드릴 때가 있다. 《다산의 필사책》은 그런 문장을 읽고 지나가는 대신, 직접 손으로 옮겨 적으며 마음에 새겨 보도록 만든 책이다.

다산 정약용 하면 흔히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 수많은 저술을 남긴 학자, 오랜 유배 생활을 견뎌 낸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만나는 다산은 삶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던 사람이었다.

18년에 이르는 유배 생활은 평범한 시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좌절하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다산은 책을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고,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래서 다산의 문장을 읽으면 ‘좋은 말’ 이상의 무게가 느껴진다.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놓지 않았던 사람이 건네는 말이기 때문이다.


책의 첫 번째 주제는 ‘마음’이다.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환경을 탓하고, 누군가 때문에 힘들면 상대방의 잘못부터 생각한다. 하지만 다산의 문장은 자꾸 시선을 나 자신에게로 돌려놓는다.

특히 마음에 남았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뜻 속에서 자라나지만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그만둔다.
비록 꼭 필요하더라도
남이 알지 못하게 하고 싶은 것이라면
그 역시 그만둔다.”

이 문장을 읽으며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과 욕망을 행동으로 옮길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사람의 마음에는 수많은 생각이 지나간다. 욕심도 생기고, 화도 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중요한 것은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일 것이다.

다산에게 자기 수양은 감정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감정과 욕망을 스스로 살피고 절제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부분은 부끄러움에 관한 문장이었다.

🔖“사대부의 마음가짐이란
마땅히 맑은 바람과 환한 달 같아서
털끝만큼도 가린 곳이 없어야 한다.
무릇 하늘이나 사람에게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자연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안정되어
호연지기가 저절로 우러나온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바꾸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

삶의 평온함은 스스로에게 떳떳한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분노에 관한 문장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사람의 일곱 가지 감정 가운데
겉으로 드러내기는 쉬워도 제어하기는 어려운 것이 분노다.
답답하고 우울한 사람은 마음이 화평하지 못하고,
분노와 원한이 있는 사람은 마음이 풀리지 않는 법이다.”

화를 내는 것은 순간적으로 쉽다.
하지만 화가 난 상태에서 한 말을 되돌리는 것은 어렵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감정이 격해졌을 때 던진 한마디가 오래 남기도 하고, 순간의 분노가 관계 전체를 흔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 문장은 내 마음이 왜 화가 났는지, 무엇 때문에 풀리지 않는지를 먼저 들여다보라는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분노는 상대에게 향하는 감정처럼 보이지만 가장 오래 품고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일 수도 있다.


다산의 사상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반성’을 후회에서 끝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책에는 다산이 반성을 일회성 감정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이어지는 실천으로 바라보았다는 설명이 나온다. 회갑 때의 다짐이 이후 15년 동안 실제로 글을 고치고 삶을 바로잡는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상당히 의미 있게 느껴졌다.

반성이라는 말을 입으로 하는 것과 실제로 자신을 바꾸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잘못을 깨닫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행동을 바꾸는 것이다. 다산에게 반성은 자신의 부족함을 확인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신을 고쳐 가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다산의 문장은 자기계발서에서 보편적으로 만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식의 말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잘못했다면 인정하고, 부족했다면 고치고, 오늘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하라는 것.

이것이 가장 오래된 동시에 가장 본질적인 자기 수양의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태도’라는 장에서 만나는 다산의 생각 역시 오늘날의 삶과 맞닿아 있다.

🔖“언어는 마땅히 과묵해야 하니,
말이 길다면 곧바로 그쳐야 한다.

동작은 마땅히 중후해야 하니,
움직임이 가볍다면 천천히 가다듬어야 한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말과 행동에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너무 빨리 말하고, 빨리 판단하고, 반응한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생각할 틈도 없이 감정을 표현하기 쉽다.
하지만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지혜가 되고,
바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 자신과 타인을 지키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이어지는 습관에 관한 문장은 더욱 직접적이었다.
🔖“사람의 겉모습은 매일의 습관으로 변하고,
그 사람이 이루는 삶의 결은
그 모습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땅의 기운이 어떠니,
올해 운수가 어떠니 하며
삶이 정해져 있다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거짓이다.”

오늘의 작은 행동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는 뜻으로 읽혀졌다.
독서도 그렇고, 글쓰기도 그렇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다. 하루 한 번의 행동은 작아 보이지만 그것이 쌓이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필사’라는 형식 자체가 다산의 생각과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좋은 문장을 읽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직접 손으로 쓰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그 문장을 삶 속에 남기는 것. 읽기에서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넘어가는 과정인 셈이다.

‘배움’에 관한 장에서는 다산이 왜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기록했는지를 조금 더 생각하게 된다.

많이 아는 것이 곧 많이 배운 것은 아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하루에도 수많은 글과 영상과 지식을 접하지만, 정작 그것이 내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다산에게 공부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이었다.

🔖“세상 모든 사물에는 법칙이 있는데,
사람이 배움에 뜻을 두지 않는다면
인간으로서 따라야 할 마땅한 법칙을 저버리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문장을 읽으며 배움에는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게 되었다면 행동해야 하고, 이해했다면 삶에 적용해야 한다. 그래서 다산의 공부는 책상 위에서 끝나는 학문이 아니라 현실로 돌아와야 완성되는 공부였을 것이다.


🔖“가문이 몰락한 상황에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책을 읽는 것밖에 없다.
독서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에서도 책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것이었다. 현실에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다면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 기록을 멈추지 않는 것,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책은 때때로 현실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힘든 시기에 책 한 권을 펼치는 일이 당장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막아 주고,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줄 수 있다.

다산의 삶을 보면 그 힘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게 된다.


다산은 자신을 수양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배운 것을 세상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중요하게 여겼다..

다산의 사상이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의 글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공동체 속에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묻는다는 것이다.

공부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지식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고,
위치와 역할이 있다면 그만큼 책임도 따라야 한다.

🔖“즐거움은 괴로움에서 나오니,
괴로움은 즐거움의 뿌리다.
괴로움은 즐거움에서 나오니,
즐거움은 괴로움의 씨앗이다.”

삶에서 괴로움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좋은 일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것처럼 힘든 일 역시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 기쁨과 슬픔, 얻음과 잃음, 만남과 헤어짐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이어져 있다.

그래서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다산의 문장은 꽤 단단하다.

괜찮다고 쉽게 위로하지 않으며,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약속하지도 않는다.
대신 지금의 상황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 배우는 것,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다.


《다산의 필사책》에서 유용하게 느껴진 부분은 바로 ‘필사’라는 형식이다.
손으로 쓰는 순간, 문장은 조금 다른 의미가 된다.
요즘은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저장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사진으로 찍어 두거나 메모장에 저장해 놓고 나중에 다시 읽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다시 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반면 한 문장을 직접 손으로 옮겨 적으면 한 글자씩 따라가야 하고, 문장의 호흡을 느껴야 한다. 자연스럽게 한 번 더 읽게 되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다산이 중요하게 여겼던 초서의 공부법과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필요한 문장을 골라 적고, 그 의미를 자신의 공부와 삶 속에서 다시 생각하는 과정 자체가 공부였기 때문이다.

오늘은 ‘마음’을 쓰고, 내일은 ‘태도’를 쓰고, 어느 날에는 ‘관계’에 관한 문장을 써보는 식으로 곁에 두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다산의 삶을 생각하면 이 문장들이 그저 교훈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유배라는 극심한 삶의 굴곡 속에서도 책을 읽고, 제자와 자식들에게 글을 보내고, 자신의 생각을 기록했던 사람이 남긴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문장은 ‘나는 이렇게 살아내려고 했다’는 한 사람의 오랜 실천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책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삶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흔들릴 때 다시 돌아갈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다산이 남긴 수많은 글 가운데 엄선된 74개의 문장.
그 74개의 문장을 모두 기억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단 한 문장이라도 마음에 남아 삶의 어느 순간 다시 떠오른다면,
그 문장은 이미 충분히 제 역할을 한 것이니까.


다산의 문장을 따라 천천히 붓을 움직이는 시간은 나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 줄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수행일지도 모르겠다.

빠르게 읽고 지나가는 시대에, 천천히 읽고 직접 써보는 것.

그 느린 시간이 오히려 지금의 현대인에게 필요한 공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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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줄게 - 심장을 이식받은 기상캐스터의 햇살 찬란 투병기
오수진 지음 / 소소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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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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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심장이 뛰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웃고, 걷고, 때로는 아무 의미 없이 하루를 흘려보낸다. 심장은 그 모든 순간에 묵묵히 뛰고 있지만, 그것을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 당연해서 기적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있는 것.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살아 있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KBS 기상캐스터로 많은 사람에게 날씨를 전하던 저자는 서른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암을 마주하고, 이후 심장병까지 겪게 된다. 그리고 심부전이 급격히 악화된 끝에 중환자실에서 심장이식을 기다리는 상황에 놓인다.

그 순간부터 ‘내일’이라는 단어는 이전과 전혀 다른 의미가 되었을 것이다.

평소에는 너무 쉽게 말하던 내일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되고, 평범하게 누리던 한 끼의 식사와 가족의 목소리, 따뜻한 햇빛과 걸음을 옮기는 일조차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소중한 순간이 된다.

특히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저자가 중환자실에서 희망을 놓았을 때 자신의 몸까지 함께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다는 대목이다.

🔖“희망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걸.”

죽음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 사람에게 희망은 낙관적인 생각이나 예쁜 말이 아니라, 오늘을 버티게 하는 실제적인 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먼저 포기하면 몸도 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반대로 아주 작은 가능성 하나라도 붙잡고 있다면 그것이 다시 살아갈 힘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희망은 생존과 연결된 어떤 힘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침내 저자에게 심장이 온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장기이식이라는 것이 ‘병든 장기를 새로운 장기로 교체하는 의료행위’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사람에게는 삶의 끝이었던 순간이, 다른 사람에게는 삶의 시작이 된다.
누군가의 심장이 멈추었고, 그 심장이 저자의 가슴 안에서 다시 뛰기 시작한다.

그 사실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마음을 무겁게 한다.
‘나는 살아났다’는 기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있었고 그 사람의 삶이 끝난 뒤 남겨진 생명의 일부가 자신의 삶을 이어주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심장이식은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동시에 삶과 죽음이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여주는 사건처럼 느껴진다.

특히 수술 후 아버지가 찾아와 손을 잡아주는 장면은 책의 여러 장면 가운데서도 오래 남을 것 같다.

🔖“아버지는 내 손이 따듯하다며 활짝 웃었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는 것.
따뜻한 손을 확인하는 것.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는 것.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을 일이지만, 죽음의 문턱을 다녀온 사람에게는 그것이 다시 살아났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가 된다.

그래서 이 장면을 읽으며 ‘삶의 기적은 거대한 사건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손이 따뜻하다는 것.
그 손을 잡아줄 가족이 있다는 것.
그리고 다시 눈을 뜰 수 있다는 것.

그 모든 것이 너무 익숙해서 잊고 있던 기적이었다.


장기기증이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바라보면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깊은 의미가 생긴다.

기증받는 사람은 기증자를 알지 못한다.
기증자 역시 자신의 심장이 누구에게 가게 될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한 사람의 생명이 다른 한 사람의 삶으로 이어진다.
그 연결에는 이름도 얼굴도 없는 사랑이 존재한다.

저자가 ‘내 심장은 어디에서 왔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도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나에게 생명을 준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은 어쩌면 평생 마음 한구석에 남는 질문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질문에는 답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더 큰 감사가 남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받은 생명이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하루를 대하는 태도 역시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

알 수 없기에 더 조심스럽게 살아야 하는 삶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적적으로 심장을 이식받았다고 해서 이후의 삶이 완벽하게 평온해지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 절망이 찾아온다.

삶은 계속해서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던진다.
‘왜 또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질문 앞에서 저자는 다시 삶을 선택해 나간다.
그래서 이 책은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끈질긴 과정인지 보여주는 기록에 가깝게 느껴진다.

한 번 살아났다고 해서 다시는 무너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다시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웃고, 하루를 살아간다.

삶이란 이처럼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고, 두려워하면서도 한 걸음 내딛고, 오늘을 견디면서 또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책 속에서 특히 오래 남은 문장은 이것이다.
🔖“아주 작은 행동이 삼삼오오 모여 삶의 방향을 정하기도 한다. 예쁜 옷 한 벌, 뜨거운 호떡 하나, 웃으며 만나는 사람 한 명. 그 정도면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에 충분하다.”

하루하루 살아가게 하는 것은 훨씬 사소한 것일 때가 많다.
따뜻한 음식 한 끼. 마음에 드는 옷을 입는 일.
좋아하는 사람과 웃으며 대화하는 시간. 산책하며 바라본 하늘.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사실은 삶을 붙잡아주는 작은 손잡이일지도 모른다.

특히 심장이식을 경험한 사람이 삶을 지탱하는 힘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호떡 하나’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오늘 먹을 수 있는 것, 만날 수 있는 사람, 오늘만 느낄 수 있는 온기.
그런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고 나면 평범한 하루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오늘 아침 눈을 뜬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것.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은 것.
걸어서 어딘가에 도착한 것.

이 모든 일이 사실은 ‘살아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죽음을 생각하게 된 이후로 나는 삶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죽음을 생각하면 삶이 더 선명해진다는 말이 있다.
평소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라질 가능성을 생각하는 순간, 그것들이 얼마나 귀한지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오히려 삶을 더 사랑하게 만드는 역설이
이 책 안에 존재한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책을 읽고 난 뒤 마음에 남는 것은 한 사람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가능하게 만드는 수많은 사람과 순간들이었다.

저자를 살린 것은 기증자의 심장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치료한 의료진, 곁을 지킨 가족, 다시 걸음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 사람들, 그리고 힘든 순간마다 삶을 선택했던 저자 자신까지.

삶은 혼자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수많은 사람의 마음과 손길이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연결의 가장 극적인 형태가 장기기증일 것이다.

한 사람의 마지막이 다른 사람의 내일이 되는 일.
그 사실을 생각하면 ‘나의 삶은 온전히 나만의 것인가’라는 사유까지 이어진다.

저자가 두 번째 삶을 받아 살아가면서 느꼈을 감사와 책임감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닐 것이다.

오늘을 살아내는 것.
그리고 오늘의 작은 행복을 알아보는 것.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평범했던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죽도록 바라던 내일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하루가 사실은 수많은 기적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

책을 읽고 나면 내 심장도 괜히 의식하게 된다.
가슴에 손을 얹어본다.

두근, 두근.

평소에는 들리지도 않던 심장 소리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도 지금 살아 있구나.

_


#내심장을줄게 #오수진 #소소사 #서평 #서평단
#에세이 #에세이추천 #신간에세이 #신간 #신간도서
#도서리뷰 #책리뷰 #책소개 #추천도서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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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쿠 - 망자의 터
기타자와 도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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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오팬하우스 (@ofanhouse.official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공포소설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눈앞에 나타나는 괴물일까.
피로 물든 시체일까.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일까.

《온고쿠 : 망자의 터》를 읽고 나면 조금 다른 답을 생각하게 된다.
가장 무서운 것은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인지도 모른다고.

《온고쿠》는 1923년 간토 대지진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배경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한 남자의 그리움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후루세 소이치로에게 아내 시즈코의 죽음은 이미 지나간 사건이 아니다. 그녀를 잃은 순간부터 그의 시간은 멈춰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는 죽은 아내를 다시 만나기 위해 무녀에게 강령 의식을 부탁한다.

여기까지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의 절절한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온고쿠》는 그리움을 위로의 감정으로만 다루지 않으며 죽은 이를 붙잡으려는 마음이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끈질기게 파고든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집 안의 공기가 달라진다.
익숙했던 향기가 불길한 징조가 되고, 사랑했던 사람의 목소리가 공포의 신호가 된다. 가장 그리운 사람이 가장 두려운 존재로 변해간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포가 ‘무서운 존재가 나타난다’는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해칠 수도 있다.’
이 한 가지 설정만으로도 감정에 상당히 잔인한 균열이 생긴다.

보통 귀신이 나타나면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귀신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서워하면서도 쉽게 외면할 수 없고, 도망치면서도 한편으로는 붙잡고 싶어진다.

바로 그 모순이 이 작품의 공포를 더욱 서늘하게 만든다.


🔖“뒤뒤뒤, 뒤에, 뒤, 뒤, 뒤, 뒤에-”

묘하게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공포는 때때로 무언가를 직접 상상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훨씬 강해진다.
‘뒤에 있다’는 말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뒤를 의식하게 만든다.
지금 누군가 서 있는 것은 아닌지, 방금 지나친 공간에 무언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읽는 순간조차 주변을 확인하고 싶게 만든다.

《온고쿠》의 공포가 흥미로운 이유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간의 상상력은 어떤 괴물보다 훨씬 잔인하다.

무녀가 말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부러워서 그러지. 불러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나도 말할래, 나도 말하고 싶어, 하고 술렁술렁 성가시게 떠들어 대면서 샘내고 조르는 게야.”

이 문장을 읽으며 처음에는 기이하고 섬뜩하다는 느낌이 먼저 들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 말에는 작품의 핵심적인 정서가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불리지 못한 망자들. 떠나지 못한 존재들. 기억되고 싶어 하는 죽은 자들.

죽음 이후에도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욕망이 존재한다면,
죽음과 삶의 경계는 생각보다 훨씬 모호해질 것이다.

그래서 《온고쿠》의 귀신은 살아 있을 때의 욕망과 미련을 품은 채 경계에 남겨진 존재들이다. 이 작품에서 귀신을 만들어내는 것은 죽음 뒤에도 사라지지 않은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후루세에게 시즈코는 잊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정반대다.
잊을 수 없어서 문제다.

아내를 잃은 슬픔과 죄책감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은 이를 다시 불러내는 선택까지 한다.

그런데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나는 일이 과연 행복일까.

이 작품은 그 질문에 아주 잔혹한 방식으로 답한다.

🔖“열면… 열면 안 돼요.”

여기에서 가장 무서운 말은 다음 문장일지도 모른다.
🔖“저건 아씨가 아니에요.”

죽은 사람이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존재가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 완전히 같은 존재가 아니라면?

목소리도 같고 향기도 같고 모습도 익숙한데, 어딘가에서 분명히 다른 존재라면?

그것은 귀신보다 훨씬 끔찍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익숙한 것에서 안전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랑했던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 순간 기억과 현실 사이의 경계가 무너진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존재가 바로 에리마키다.
망령을 먹는 얼굴 없는 괴이.

처음에는 그저 기괴하고 잔혹한 괴물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악한 존재’라고 규정하기에는 묘한 구석이 있다.

🔖“나는 네 아내를 먹고 싶다.”

사랑하는 아내를 되찾고 싶은 사람 앞에서 그 아내를 먹겠다고 말하는 존재라니. 그 자체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런데 망령을 먹는 행위가 살육이나 포식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승을 떠돌던 존재를 마침내 다른 곳으로 보내는 행위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에리마키는 괴물인 동시에 일종의 인도자처럼 보인다.
무섭고 잔혹하지만, 누구보다 죽은 자의 고통을 끝내주는 존재일 수도 있다.

괴물은 정말 괴물인가?
죽은 자를 붙잡고 있는 인간이 오히려 더 잔인한 것은 아닐까?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부채와 ‘사북’이라는 설정도 인상적이다.

작품 속에서 사북을 떼지 않은 부채는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경계를 뒤틀어버리는 매개가 된다. 이것을 생각하면 부채라는 소재 자체가 상징적으로 느껴진다.

죽음과 삶, 기억과 망각, 사랑과 집착.

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맞물려 돌아간다. 그리고 그 축이 어긋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저주’는 오랜 세월 이어져온 욕망과 집착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결과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죽어도 욕망은 쉽게 죽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욕망은 세대를 넘어 살아남는다.


책장을 넘길수록 내게 더 오래 남은 것은 공포보다 미련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에도 계속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그 사람이 한 번만이라도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마음.
그때는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다시 하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그렇기에 후루세의 선택을 어리석다고 말하기 어렵다.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말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쉬울 수 있지만,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에게는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사랑한다는 것은 붙잡는 것일까. 아니면 놓아주는 것일까.
가장 어려운 종류의 구원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랑하기 때문에 놓아주는 것.
그것이 남겨진 사람에게는 가장 잔인한 선택일 수도 있다.


책 속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은 부분은 망자를 먹는 존재가 자신이 무엇을 먹는지 설명하는 장면이다.

🔖“내가 먹는 건 죽었는데도 여전히 자기가 살아 있다고 믿는 놈들이다.”

죽었는데도 자신이 살아 있다고 믿는 존재.
그것은 과연 망령만을 뜻하는 것일까.
살아 있는 사람 역시 과거에 붙잡힌 채 현재를 살아가지 못할 수 있다.
죽은 사람을 보내지 못하는 사람도 어떤 의미에서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온고쿠》의 진짜 공포는
죽은 자를 보내지 못한 산 자 역시 삶과 죽음의 경계에 갇힐 수 있다는 것.


《온고쿠》는 고딕 호러 미스터리라는 장르적 재미가 분명한 작품이다.
강령 의식, 망령, 괴이, 가문의 비밀, 오래된 인습, 연이어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이 촘촘하게 이어지면서 독자를 불안한 세계로 끌고 간다.
하지만 그 안쪽에는 아주 오래되고 익숙한 인간의 감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온고쿠(遠國)’가 직역하면 ‘먼 나라’라는 뜻이라는 점도 이 작품을 읽고 난 뒤에는 묘하게 다가온다.

먼 나라.
살아 있는 우리가 갈 수 없는 곳.
그러나 언젠가는 누구나 향하게 될 곳.

그곳으로 먼저 떠난 사람을 억지로 되돌려 세우는 대신,
그 사람이 편히 갈 수 있도록 보내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온고쿠》는 공포로 시작해 미련을 지나, ‘떠나보냄’이라는 감정에 도착하는 작품이었다.

무서움과 슬픔이 공존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슬픔마저 편안하게 느껴진다.

아주 먼 곳에서 누군가가 이제는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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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워진 세계
아사쿠라 히로카게 지음, 이구름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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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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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것들의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주워 올리는가."
― 상처 입은 마음들이 서로를 발견하는 순간.

살아가면서 참 많은 것을 버린다.
더 이상 입지 않는 옷, 오래된 물건, 필요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관계, 지나간 기억, 실패했던 경험, 그리고 때로는 다시 꺼내 보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까지.

무언가를 버리는 일은 삶을 가볍게 만드는 방법처럼 보인다.
필요 없는 것을 정리하고, 쓸모없는 것을 덜어내고, 과거와 거리를 두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모든 것을 깨끗하게 비워내려는 사람과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는 사람이 만난다. 한 사람에게는 버림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간직하는 일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남는 것.

이 소설에서 ‘쓰레기’는 버려진 물건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쓸모없다고 판단된 것, 사회의 기준에서 밀려난 것,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진 것, 그리고 스스로도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게 된 존재까지 아우르는 상징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쓰레기’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린다.

정말 쓰레기인 것은 무엇일까.
물건의 쓸모를 결정하는 것은 누구이며,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또 누구일까.


아사히와 도모에는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아사히는 깨끗하게 비우고 정리한다.
도모에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쌓아 간다.

한쪽은 비움이고 한쪽은 축적이다.
하지만 두 행동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둘 다 결핍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사히에게 ‘버리는 것’은 불필요한 것을 없애고 자신의 공간을 통제함으로써 불안과 상처를 차단하려는 행동에 가깝다.

반대로 도모에가 물건을 모으는 행동 역시 욕심이나 게으름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자신에게서 떠나간 것들을 붙잡고, 사라지는 것들을 곁에 남겨두려는 마음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보면 두 사람 모두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 이상함은 사면으로 바뀐다.

이 지점이 이 소설의 따뜻한 부분이라고 느꼈다.

누군가의 행동을 사람들은 너무 쉽게 판단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내리는 판단은 얼마나 쉽게 폭력이 될 수 있는가.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물건 하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삶을 붙잡아주는 마지막 끈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버리는 일이 아무렇지 않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버림받는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책 속에서 특히 오래 머물렀던 문장이 있다.
🔖“우리 모녀는 쓰레기처럼 버려졌어. 남자랑 사회에 쓸모없는 존재였던 거지.”

이 문장은 ‘쓰레기’라는 단어가 사람에게 적용될 때 얼마나 잔인한지를 보여준다.

사람이 정말 쓸모가 있어서 살아가는 것일까.
경제적 가치가 있어야 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며, 사회가 원하는 역할을 수행해야만 존재할 가치가 생기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이가 들고,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병이 들고, 관계가 끊어지고, 사회의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특히 인상적인 것은 버려진 사람을 밝은 말로 애써 위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힘내면 돼.”
“다시 시작하면 돼.”
“포기하지 마.”

이런 말들은 분명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고통을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 점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문장이 있다.
🔖“몇 번이고 재활용되는 자원처럼 사람도 실패하고 버려졌다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은 조금씩 닳고 깎여 나간다.”

사람에게도 회복력이 있다는 말은 맞지만, 사람은 무한히 재활용되는 존재가 아니다. 상처를 입고 다시 일어날 때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실패할 때마다 조금씩 닳고, 이별할 때마다 마음 한쪽이 비고, 버림받을 때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응원이 아니라 때로는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래 버텨왔는지를 알아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서 쓰레기는 재미있는 역설을 품고 있다.
쓰레기는 이미 가치가 없어진 것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의미가 있는 것이다.

도모에가 모아둔 물건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물건 속에 자신의 시간을 저장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된 컵 하나.
고장 난 전기포트 하나.
언젠가 쓰려고 사두었던 물건.
누군가에게 받은 물건.

이처럼 이미 기능을 잃었지만 차마 버리지 못하는 물건.

객관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지만, 그 안에는 특정한 순간과 사람이 들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물건을 버리는 일은 때때로 그 물건과 연결된 기억을 떠나보내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도모에는 물건을 모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모아온 것은 아닐까.
그녀가 쌓아 올린 것은 쓰레기 더미인 동시에 자신이 살아왔다는 증거였을지도 모른다.


또 하나 마음에 오래 남은 문장은 이것이다.
🔖“난 그냥……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이 문장은 존재의 가치를 성과에서 떼어낸다.
그저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라지지 않는 가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현실에서 이 말 하나만으로 삶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이 문장이 좋았다.

쉽게 희망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포기하지 않도록 조용히 곁에 서주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모에의 어머니가 만든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마음이 아프면서도 인상적이다.
🔖“우리랑 마찬가지로 버려진 쓸모없는 쓰레기를 모아 그걸 성벽 삼아 우리만의 왕국을 만들었어.”

이 문장을 읽고 나면 ‘쓰레기 저택’은 비정상적인 공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곳은 한 사람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성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세상과 연결되는 것보다 세상과 단절하는 것이 더 안전할 때가 있다.

누군가를 믿었다가 상처받았다면 혼자 있는 것이 편해진다.
무언가를 잃어본 사람은 새로운 것을 얻는 것보다 가진 것을 놓치지 않는 데 집착할 수 있다.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시 버려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주변을 무언가로 가득 채울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왕국’이라는 표현이 묘하게 슬프다.
성벽은 자신을 보호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가둔다.
안전한 공간이면서 외로운 공간이다.

이 소설은 그 모순을 아주 섬세하게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정말 주워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처음에는 ‘주워진'이라는 표현이 조금 낯설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제목의 의미가 점점 깊어진다.

사람은 모두 혼자 힘으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어떤 순간에는 누군가가 내미는 손에 의해 다시 일어선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때문에 포기하지 않기도 하고,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준 경험 하나 때문에 다시 사람을 믿기도 한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이 아닐까.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상대가 가진 이상함의 이유를 조금 궁금해해주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스스로 다시 세상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이런 작은 행동들이 한 사람을 ‘주워 올리는’ 일이 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의 세계를 바라보게 되면서 자신이 갇혀 있던 세계의 크기를 깨닫게 되는 과정일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동행은 사랑이나 우정이라는 단어 하나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에 잠시 들어가 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모두 태워져 유골만 남겠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꼭 주워줄 거예요. 언젠가 나도 그렇게 누군가 주워줄 거고.”

생각해보면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주고받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내가 남고, 내가 누군가를 기억하고, 누군가가 남긴 것을 또 다른 누군가가 이어받는다. 그래서 ‘주워준다’는 말이 이 소설에서는 돌봄과 기억, 애도의 의미까지 품게 된다.

버려진 것들을 하나씩 주워 담는다는 것은 ‘당신은 버려진 존재가 아니었다’고 말해주는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가치 없다고 판단한 것에 다시 손을 내미는 일.
사람들이 외면한 사람을 다시 바라보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가치 없다고 생각해버린 자기 자신을 다시 주워 올리는 일.

그래서 제목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버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반드시 모두에게 사랑받았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것,
그리고 누군가가 나의 흔적을 소중하게 다루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나면
그 행동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음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외면했던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닫혀 있던 세계에 다른 사람을 들여놓는 것.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길 때까지 곁에 누군가 있어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아사히와 도모에가 그랬던 것처럼.

서로의 상처를 없애주지는 못하더라도, 그 상처가 있는 채로 함께 걸어갈 수는 있을테니.

버려진 것들 사이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서툰 동행은 무엇을 끝까지 소중하게 주워 올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지금 무엇을 버리며 살아가고 있고,
무엇을 끝까지 주워 담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언젠가 나 역시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버려진 사람’이 아니라 다시 발견된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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