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필사책 - 흔들리는 삶의 지침이 되어 줄 다산의 문장들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 유노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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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유노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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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유난히 오래 눈길이 머무는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그 문장이 이상하게도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정확히 건드릴 때가 있다. 《다산의 필사책》은 그런 문장을 읽고 지나가는 대신, 직접 손으로 옮겨 적으며 마음에 새겨 보도록 만든 책이다.

다산 정약용 하면 흔히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 수많은 저술을 남긴 학자, 오랜 유배 생활을 견뎌 낸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만나는 다산은 삶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던 사람이었다.

18년에 이르는 유배 생활은 평범한 시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좌절하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다산은 책을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고,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래서 다산의 문장을 읽으면 ‘좋은 말’ 이상의 무게가 느껴진다.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놓지 않았던 사람이 건네는 말이기 때문이다.


책의 첫 번째 주제는 ‘마음’이다.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환경을 탓하고, 누군가 때문에 힘들면 상대방의 잘못부터 생각한다. 하지만 다산의 문장은 자꾸 시선을 나 자신에게로 돌려놓는다.

특히 마음에 남았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뜻 속에서 자라나지만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그만둔다.
비록 꼭 필요하더라도
남이 알지 못하게 하고 싶은 것이라면
그 역시 그만둔다.”

이 문장을 읽으며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과 욕망을 행동으로 옮길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사람의 마음에는 수많은 생각이 지나간다. 욕심도 생기고, 화도 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중요한 것은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일 것이다.

다산에게 자기 수양은 감정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감정과 욕망을 스스로 살피고 절제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부분은 부끄러움에 관한 문장이었다.

🔖“사대부의 마음가짐이란
마땅히 맑은 바람과 환한 달 같아서
털끝만큼도 가린 곳이 없어야 한다.
무릇 하늘이나 사람에게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자연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안정되어
호연지기가 저절로 우러나온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바꾸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

삶의 평온함은 스스로에게 떳떳한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분노에 관한 문장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사람의 일곱 가지 감정 가운데
겉으로 드러내기는 쉬워도 제어하기는 어려운 것이 분노다.
답답하고 우울한 사람은 마음이 화평하지 못하고,
분노와 원한이 있는 사람은 마음이 풀리지 않는 법이다.”

화를 내는 것은 순간적으로 쉽다.
하지만 화가 난 상태에서 한 말을 되돌리는 것은 어렵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감정이 격해졌을 때 던진 한마디가 오래 남기도 하고, 순간의 분노가 관계 전체를 흔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 문장은 내 마음이 왜 화가 났는지, 무엇 때문에 풀리지 않는지를 먼저 들여다보라는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분노는 상대에게 향하는 감정처럼 보이지만 가장 오래 품고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일 수도 있다.


다산의 사상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반성’을 후회에서 끝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책에는 다산이 반성을 일회성 감정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이어지는 실천으로 바라보았다는 설명이 나온다. 회갑 때의 다짐이 이후 15년 동안 실제로 글을 고치고 삶을 바로잡는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상당히 의미 있게 느껴졌다.

반성이라는 말을 입으로 하는 것과 실제로 자신을 바꾸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잘못을 깨닫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행동을 바꾸는 것이다. 다산에게 반성은 자신의 부족함을 확인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신을 고쳐 가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다산의 문장은 자기계발서에서 보편적으로 만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식의 말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잘못했다면 인정하고, 부족했다면 고치고, 오늘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하라는 것.

이것이 가장 오래된 동시에 가장 본질적인 자기 수양의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태도’라는 장에서 만나는 다산의 생각 역시 오늘날의 삶과 맞닿아 있다.

🔖“언어는 마땅히 과묵해야 하니,
말이 길다면 곧바로 그쳐야 한다.

동작은 마땅히 중후해야 하니,
움직임이 가볍다면 천천히 가다듬어야 한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말과 행동에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너무 빨리 말하고, 빨리 판단하고, 반응한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생각할 틈도 없이 감정을 표현하기 쉽다.
하지만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지혜가 되고,
바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 자신과 타인을 지키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이어지는 습관에 관한 문장은 더욱 직접적이었다.
🔖“사람의 겉모습은 매일의 습관으로 변하고,
그 사람이 이루는 삶의 결은
그 모습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땅의 기운이 어떠니,
올해 운수가 어떠니 하며
삶이 정해져 있다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거짓이다.”

오늘의 작은 행동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는 뜻으로 읽혀졌다.
독서도 그렇고, 글쓰기도 그렇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다. 하루 한 번의 행동은 작아 보이지만 그것이 쌓이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필사’라는 형식 자체가 다산의 생각과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좋은 문장을 읽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직접 손으로 쓰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그 문장을 삶 속에 남기는 것. 읽기에서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넘어가는 과정인 셈이다.

‘배움’에 관한 장에서는 다산이 왜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기록했는지를 조금 더 생각하게 된다.

많이 아는 것이 곧 많이 배운 것은 아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하루에도 수많은 글과 영상과 지식을 접하지만, 정작 그것이 내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다산에게 공부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이었다.

🔖“세상 모든 사물에는 법칙이 있는데,
사람이 배움에 뜻을 두지 않는다면
인간으로서 따라야 할 마땅한 법칙을 저버리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문장을 읽으며 배움에는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게 되었다면 행동해야 하고, 이해했다면 삶에 적용해야 한다. 그래서 다산의 공부는 책상 위에서 끝나는 학문이 아니라 현실로 돌아와야 완성되는 공부였을 것이다.


🔖“가문이 몰락한 상황에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책을 읽는 것밖에 없다.
독서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에서도 책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것이었다. 현실에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다면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 기록을 멈추지 않는 것,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책은 때때로 현실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힘든 시기에 책 한 권을 펼치는 일이 당장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막아 주고,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줄 수 있다.

다산의 삶을 보면 그 힘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게 된다.


다산은 자신을 수양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배운 것을 세상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중요하게 여겼다..

다산의 사상이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의 글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공동체 속에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묻는다는 것이다.

공부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지식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고,
위치와 역할이 있다면 그만큼 책임도 따라야 한다.

🔖“즐거움은 괴로움에서 나오니,
괴로움은 즐거움의 뿌리다.
괴로움은 즐거움에서 나오니,
즐거움은 괴로움의 씨앗이다.”

삶에서 괴로움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좋은 일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것처럼 힘든 일 역시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 기쁨과 슬픔, 얻음과 잃음, 만남과 헤어짐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이어져 있다.

그래서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다산의 문장은 꽤 단단하다.

괜찮다고 쉽게 위로하지 않으며,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약속하지도 않는다.
대신 지금의 상황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 배우는 것,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다.


《다산의 필사책》에서 유용하게 느껴진 부분은 바로 ‘필사’라는 형식이다.
손으로 쓰는 순간, 문장은 조금 다른 의미가 된다.
요즘은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저장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사진으로 찍어 두거나 메모장에 저장해 놓고 나중에 다시 읽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다시 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반면 한 문장을 직접 손으로 옮겨 적으면 한 글자씩 따라가야 하고, 문장의 호흡을 느껴야 한다. 자연스럽게 한 번 더 읽게 되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다산이 중요하게 여겼던 초서의 공부법과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필요한 문장을 골라 적고, 그 의미를 자신의 공부와 삶 속에서 다시 생각하는 과정 자체가 공부였기 때문이다.

오늘은 ‘마음’을 쓰고, 내일은 ‘태도’를 쓰고, 어느 날에는 ‘관계’에 관한 문장을 써보는 식으로 곁에 두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다산의 삶을 생각하면 이 문장들이 그저 교훈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유배라는 극심한 삶의 굴곡 속에서도 책을 읽고, 제자와 자식들에게 글을 보내고, 자신의 생각을 기록했던 사람이 남긴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문장은 ‘나는 이렇게 살아내려고 했다’는 한 사람의 오랜 실천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책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삶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흔들릴 때 다시 돌아갈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다산이 남긴 수많은 글 가운데 엄선된 74개의 문장.
그 74개의 문장을 모두 기억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단 한 문장이라도 마음에 남아 삶의 어느 순간 다시 떠오른다면,
그 문장은 이미 충분히 제 역할을 한 것이니까.


다산의 문장을 따라 천천히 붓을 움직이는 시간은 나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 줄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수행일지도 모르겠다.

빠르게 읽고 지나가는 시대에, 천천히 읽고 직접 써보는 것.

그 느린 시간이 오히려 지금의 현대인에게 필요한 공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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