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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워진 세계
아사쿠라 히로카게 지음, 이구름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9월
평점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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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것들의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주워 올리는가."
― 상처 입은 마음들이 서로를 발견하는 순간.
살아가면서 참 많은 것을 버린다.
더 이상 입지 않는 옷, 오래된 물건, 필요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관계, 지나간 기억, 실패했던 경험, 그리고 때로는 다시 꺼내 보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까지.
무언가를 버리는 일은 삶을 가볍게 만드는 방법처럼 보인다.
필요 없는 것을 정리하고, 쓸모없는 것을 덜어내고, 과거와 거리를 두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모든 것을 깨끗하게 비워내려는 사람과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는 사람이 만난다. 한 사람에게는 버림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간직하는 일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남는 것.
이 소설에서 ‘쓰레기’는 버려진 물건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쓸모없다고 판단된 것, 사회의 기준에서 밀려난 것,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진 것, 그리고 스스로도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게 된 존재까지 아우르는 상징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쓰레기’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린다.
정말 쓰레기인 것은 무엇일까.
물건의 쓸모를 결정하는 것은 누구이며,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또 누구일까.
아사히와 도모에는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아사히는 깨끗하게 비우고 정리한다.
도모에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쌓아 간다.
한쪽은 비움이고 한쪽은 축적이다.
하지만 두 행동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둘 다 결핍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사히에게 ‘버리는 것’은 불필요한 것을 없애고 자신의 공간을 통제함으로써 불안과 상처를 차단하려는 행동에 가깝다.
반대로 도모에가 물건을 모으는 행동 역시 욕심이나 게으름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자신에게서 떠나간 것들을 붙잡고, 사라지는 것들을 곁에 남겨두려는 마음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보면 두 사람 모두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 이상함은 사면으로 바뀐다.
이 지점이 이 소설의 따뜻한 부분이라고 느꼈다.
누군가의 행동을 사람들은 너무 쉽게 판단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내리는 판단은 얼마나 쉽게 폭력이 될 수 있는가.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물건 하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삶을 붙잡아주는 마지막 끈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버리는 일이 아무렇지 않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버림받는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책 속에서 특히 오래 머물렀던 문장이 있다.
🔖“우리 모녀는 쓰레기처럼 버려졌어. 남자랑 사회에 쓸모없는 존재였던 거지.”
이 문장은 ‘쓰레기’라는 단어가 사람에게 적용될 때 얼마나 잔인한지를 보여준다.
사람이 정말 쓸모가 있어서 살아가는 것일까.
경제적 가치가 있어야 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며, 사회가 원하는 역할을 수행해야만 존재할 가치가 생기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이가 들고,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병이 들고, 관계가 끊어지고, 사회의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특히 인상적인 것은 버려진 사람을 밝은 말로 애써 위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힘내면 돼.”
“다시 시작하면 돼.”
“포기하지 마.”
이런 말들은 분명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고통을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 점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문장이 있다.
🔖“몇 번이고 재활용되는 자원처럼 사람도 실패하고 버려졌다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은 조금씩 닳고 깎여 나간다.”
사람에게도 회복력이 있다는 말은 맞지만, 사람은 무한히 재활용되는 존재가 아니다. 상처를 입고 다시 일어날 때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실패할 때마다 조금씩 닳고, 이별할 때마다 마음 한쪽이 비고, 버림받을 때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응원이 아니라 때로는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래 버텨왔는지를 알아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서 쓰레기는 재미있는 역설을 품고 있다.
쓰레기는 이미 가치가 없어진 것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의미가 있는 것이다.
도모에가 모아둔 물건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물건 속에 자신의 시간을 저장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된 컵 하나.
고장 난 전기포트 하나.
언젠가 쓰려고 사두었던 물건.
누군가에게 받은 물건.
이처럼 이미 기능을 잃었지만 차마 버리지 못하는 물건.
객관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지만, 그 안에는 특정한 순간과 사람이 들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물건을 버리는 일은 때때로 그 물건과 연결된 기억을 떠나보내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도모에는 물건을 모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모아온 것은 아닐까.
그녀가 쌓아 올린 것은 쓰레기 더미인 동시에 자신이 살아왔다는 증거였을지도 모른다.
또 하나 마음에 오래 남은 문장은 이것이다.
🔖“난 그냥……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이 문장은 존재의 가치를 성과에서 떼어낸다.
그저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라지지 않는 가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현실에서 이 말 하나만으로 삶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이 문장이 좋았다.
쉽게 희망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포기하지 않도록 조용히 곁에 서주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모에의 어머니가 만든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마음이 아프면서도 인상적이다.
🔖“우리랑 마찬가지로 버려진 쓸모없는 쓰레기를 모아 그걸 성벽 삼아 우리만의 왕국을 만들었어.”
이 문장을 읽고 나면 ‘쓰레기 저택’은 비정상적인 공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곳은 한 사람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성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세상과 연결되는 것보다 세상과 단절하는 것이 더 안전할 때가 있다.
누군가를 믿었다가 상처받았다면 혼자 있는 것이 편해진다.
무언가를 잃어본 사람은 새로운 것을 얻는 것보다 가진 것을 놓치지 않는 데 집착할 수 있다.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시 버려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주변을 무언가로 가득 채울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왕국’이라는 표현이 묘하게 슬프다.
성벽은 자신을 보호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가둔다.
안전한 공간이면서 외로운 공간이다.
이 소설은 그 모순을 아주 섬세하게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정말 주워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처음에는 ‘주워진'이라는 표현이 조금 낯설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제목의 의미가 점점 깊어진다.
사람은 모두 혼자 힘으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어떤 순간에는 누군가가 내미는 손에 의해 다시 일어선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때문에 포기하지 않기도 하고,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준 경험 하나 때문에 다시 사람을 믿기도 한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이 아닐까.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상대가 가진 이상함의 이유를 조금 궁금해해주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스스로 다시 세상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이런 작은 행동들이 한 사람을 ‘주워 올리는’ 일이 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의 세계를 바라보게 되면서 자신이 갇혀 있던 세계의 크기를 깨닫게 되는 과정일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동행은 사랑이나 우정이라는 단어 하나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에 잠시 들어가 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모두 태워져 유골만 남겠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꼭 주워줄 거예요. 언젠가 나도 그렇게 누군가 주워줄 거고.”
생각해보면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주고받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내가 남고, 내가 누군가를 기억하고, 누군가가 남긴 것을 또 다른 누군가가 이어받는다. 그래서 ‘주워준다’는 말이 이 소설에서는 돌봄과 기억, 애도의 의미까지 품게 된다.
버려진 것들을 하나씩 주워 담는다는 것은 ‘당신은 버려진 존재가 아니었다’고 말해주는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가치 없다고 판단한 것에 다시 손을 내미는 일.
사람들이 외면한 사람을 다시 바라보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가치 없다고 생각해버린 자기 자신을 다시 주워 올리는 일.
그래서 제목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버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반드시 모두에게 사랑받았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것,
그리고 누군가가 나의 흔적을 소중하게 다루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나면
그 행동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음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외면했던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닫혀 있던 세계에 다른 사람을 들여놓는 것.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길 때까지 곁에 누군가 있어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아사히와 도모에가 그랬던 것처럼.
서로의 상처를 없애주지는 못하더라도, 그 상처가 있는 채로 함께 걸어갈 수는 있을테니.
버려진 것들 사이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서툰 동행은 무엇을 끝까지 소중하게 주워 올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지금 무엇을 버리며 살아가고 있고,
무엇을 끝까지 주워 담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언젠가 나 역시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버려진 사람’이 아니라 다시 발견된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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