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결핍 - 욕망의 뇌가 만들어 낸 여전히 부족하다는 착각
마이클 이스터 지음, 김재경 옮김 / 부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협찬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_

《가짜 결핍》은 《편안함의 습격》의 연장선에서, 이번엔 ‘결핍감의 심리적 구조’를 해부합니다. 읽으며 느낀 가장 큰 통찰은, 결핍은 결코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뇌의 진화적 산물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결핍을 채우려는 충동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스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채우는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특히 “덜어냄”의 메시지가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SNS 시간을 줄이며, 숫자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빼기’를 통해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 방식 말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결핍을 줄이는 방법은 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용기였습니다.


《가짜 결핍》은 풍요의 시대에 우리가 왜 더 불행해졌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결핍의 뇌가 불러온 중독과 과잉,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사회적 설계를 폭로하면서, 동시에 ‘덜어내기’와 ‘의미 있는 경험’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책을 덮으며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더 가지려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덜어낼 수 있는가?”
그 답을 찾는 과정이, 아마도 결핍의 고리를 끊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족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먹을 것, 정보, 물건, 연결망이 넘쳐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여전히 허전하고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마이클 이스터는 이 기묘한 현상을 “결핍의 뇌”라는 진화적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자원이 부족하던 시절 생존을 위해 최적화된 뇌가 여전히 “더 많이, 더 자주, 더 빠르게”를 갈구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풍요로운 지금도 그 본능이 멈추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중독, 과소비, 정보 과잉, 비교와 불안의 악순환에 갇힙니다.

저자 마이클 이스터(Michael Easter)는
《편안함의 습격》으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탐사 저널리스트입니다. 알래스카 사냥 탐험으로 인간 본연의 ‘불편함’을 조명했던 그는 이번 책에서 ‘결핍의 뇌’라는 또 다른 본능을 탐구합니다.

이스터는 2년 동안 6,400km를 탐험하며 뇌과학자, 심리학자, 경제학자, 수도사와 부족민을 인터뷰하고, 현대 사회의 중독적 설계가 어떻게 우리의 만족을 빼앗아가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했습니다.


인류는 역사적으로 결핍을 전제로 진화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자원은 넘쳐납니다. 음식은 언제든 구할 수 있고, 정보는 손바닥 안에서 쏟아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허기와 공허를 느낍니다. 저자는 이것이 📌“과거 결핍의 환경에서 최적화된 뇌가 풍요의 시대에도 여전히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결핍의 본능은 과거에는 생존을 도왔지만, 오늘날에는 과잉 소비·중독·번아웃을 부추기는 함정이 된 것입니다.


이스터는 우리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하도록 설계된 ‘결핍의 뇌’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충만함은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고, 절제하고, 경험을 깊게 하는 것”에서 온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우리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느끼는 이유를 진화적 뇌의 설계 오류에서 찾습니다. 인류가 자원 부족의 시대를 살아남기 위해 발달시킨 ‘결핍의 뇌’가 자원이 넘쳐나는 오늘에도 여전히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풍요 속에서 결핍을 느끼는 뇌, 그 원초적 착각에 대하여”

이 문제를 개인의 의지박약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진화적 유산’으로 설명하는 관점은 신선했습니다. 풍요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우리의 뇌가 아직 구석기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저자는 카지노·소셜미디어·정크푸드까지 인간의 욕망을 설계하는 시스템을 “결핍의 고리”라 정의합니다.

📌“인간은 보상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을 때 그 보상을 무한정 더 원하는 경향이 있다.”

예측 불가능성이 도파민을 최고조로 자극한다는 설명은 SNS 알림, 게임 뽑기 시스템, 도박 중독의 공통 원리를 이해하게 해주었습니다. ‘불확실성’은 불안이 아니라 쾌락의 본질임을 깨달았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빼기’를 무시하는 우리의 사고 습관입니다.

📌“사람들은 빼는 행위를 구조적으로 외면합니다.”

더하고, 더 가지려는 선택만이 좋은 것처럼 인식되는 사회 속에서, 저자는 “덜 하는 용기”가 오히려 충만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합니다. 미니멀리즘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뇌의 편향을 교정하는 전략이라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현대인은 숫자에 집착합니다. 몸무게, 칼로리, SNS 팔로워, 주가.

📌“우리가 숫자를 만들자 다시 숫자가 우리를 만들었다.”

이 구절을 읽으며 저는 무심코 휴대폰의 걸음 수, 카카오톡의 ‘읽음’ 숫자에 집착하는 제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수치가 경험의 질을 압도하고, 결국 의미를 빼앗아가는 아이러니. 저자가 지적했듯 “숫자는 진실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렌즈”라는 사실을 자주 상기해야겠습니다.


책은 인간의 본능적 욕망 중 ‘지위 추구’를 날카롭게 짚습니다.

📌“인간의 행복과 자존감, 신체 및 정신 건강은 다른 사람들이 부여한 지위가 얼마나 높은가에 달려 있다.”

팔로워 수, 좋아요 수, 조회수는 곧 지위의 지표이자, 중독의 미끼입니다. 문제는,
이 지위 경쟁이 끝이 없다는 점입니다. 더 높은 영향력을 얻어도 다시 더 큰 무대를 갈망하게 됩니다.

저자는 이것을 마약에 비유하며, 지위 경쟁이 행복을 마비시킨다고 말합니다.
제 삶에서 ‘타인의 인정’이 얼마나 강력한 결핍의 고리였는지 돌아보게 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본능이지만, 그것이 행복의 전부가 될 때,
결국 우리는 지위의 노예가 되는 셈입니다.


정크푸드와 초가공 식품은 결핍의 뇌를 정밀하게 자극합니다.

📌“한 번 초가공 식품을 먹기 시작하면 다시는 소박한 현미, 브로콜리, 생선을 먹고 싶지 않을 겁니다. 마치 중독과 비슷하죠.”

그러나 저자는 동시에 이렇게 강조합니다.

📌“사실 우리는 역사상 누구보다 더 나은 음식을 누리고 있다.”

풍요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그 풍요를 다루는 ‘절제의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 문제임을 깨닫게 합니다.


소유가 늘수록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합니다.
뇌에는 ‘과잉 구매를 멈추게 하는 제동장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정보에도 중독됩니다. 저자는 인간을 “정보 탐식가”라고 부릅니다. 끝없는 정보 탐색은 호기심을 충족시키지만, 결국 더 큰 결핍을 만듭니다. 저 역시 SNS 뉴스 피드를 무심코 넘기며 충만보다 피로를 더 많이 느낀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행복의 정의를 다시 묻습니다.

📌“행복이 모든 행동의 바탕을 이루는 궁극의 목표다. 그렇다고 삶의 비극이 행복의 부재는 아니다. 행복을 엉뚱한 곳에서 찾는 게 비극이다.”

행복은 더 많은 소유, 더 높은 지위, 더 큰 숫자가 아니라,
‘평균값’ 같은 일상의 균형과 절제 속에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가치를 찾는 것. 수도사들의 단조로운 삶, 자연 속의 고요, 노동과 절제에서
오는 충만함은 우리가 잊고 있던 행복의 모습입니다.


《가짜 결핍》은 진화심리학, 뇌과학, 행동경제학을 종합해
⁉️“왜 우리는 만족하지 못하는가”라는 인류 보편적 질문에 답합니다.

책을 덮고 나니, 제가 결핍을 채우려 했던 방식이 오히려 결핍을 강화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다가왔습니다. 이제는 더 채우기보다 “덜어내기, 절제, 경험의 가치”를 우선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_

#가짜결핍
#마이클이스터
#부키 #부키출판사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책소개
#독서 #독서습관 #도서추천 #추천도서
#책리뷰 #북리뷰 #도서리뷰
#책추천 #도서서평 #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편안함의 습격 - 편리와 효율, 멸균과 풍족의 시대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들에 관하여
마이클 이스터 지음, 김원진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협찬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_

《편안함의 습격》은 뇌과학, 진화심리학, 운동생리학, 인류학까지 다양한 학문적 근거를 통해 '불편함의 과학’을 설득력 있게 제시합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른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오늘 스스로에게 어떤 불편함을 허락했는가?”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올랐는가? 하루쯤은 스마트폰을 멀리했는가?
때때로 배고픔을 느끼며 몸의 신호를 관찰했는가?
답이 ‘아니오’라면, 편안함의 침식 속에 서서히 약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특히 마음에 남은 것은 저자의 고백입니다. 📌“나는 나의 현대 사회의 문제들이 사실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 나는 역설적으로 ‘더 쉽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극한의 불편함을 체험하고 나니, 오히려 일상의 문제들이 하찮게 느껴졌다는 그의 깨달음은, 우리가 불편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저자 마이클 이스터(Michael Easter)는
행동 변화 전문가이자 건강 전문 저널리스트입니다. 알코올중독을 극복한 뒤, 인간을 더 강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기 위해 북극 알래스카, 부탄, 볼리비아 정글 등 세계 곳곳을 탐험하며 수천 명의 전문가와 인터뷰했습니다.

그는 직접 33일간 알래스카 오지에서 순록 사냥에 도전하며 ‘불편함의 효용’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그의 저술은 자기계발, 뇌과학, 인류학을 넘나들며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아마존 200주 연속 베스트셀러를 기록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역사상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누립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편안함을 얻은 대가로 무엇을 잃었는가?”

실제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한 환경에 살고 있지만, 비만·우울·불안·중독은 늘고 있습니다. 편리한 교통수단, 초가공식품, 디지털 기기는 삶을 단순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인간을 가장 나약한 존재로 바꿔버렸습니다.

책 속 사례처럼 📌“계단 대신 에스컬레이터를 택하는 사람이 98%”라는 실험 결과는 불편을 회피하려는 본능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보여줍니다.

이 대목에서 ‘나 역시 얼마나 쉽게 불편을 피해왔는가’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작은 불편조차 불필요한 고통으로 여기며 피하려 했던 습관이 결국 나를 더 취약하게 만들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자는 불편함이 생존과 성장의 필수 요소라고 주장합니다.
알래스카 사냥에서 그는 극한의 추위, 배고픔, 외로움 속에서 📌“살아 있구나”라는 강렬한 실존적 기쁨을 경험합니다. 그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불편함을 선택하라. 그것이야말로 진짜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는 길이다.”


책은 현대인의 편안함 추구가 어떻게 건강, 행복, 심리적 안정을 오히려 위협하는지 추적합니다. 저자는 알래스카 오지에서 33일간 순록 사냥에 나서고, 부탄과 전쟁 지역, 볼리비아 정글을 탐험하며 직접 ‘불편함’을 체험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편안함이 우리 삶을 잠식하는 메커니즘과, 불편함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활력을 되살리는 힘임을 보여줍니다.


마이클 이스터의 《편안함의 습격》은 인류학·진화심리학·신경과학·운동생리학까지 아우르며
⁉️“왜 우리는 점점 약해지고 불행해지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이었습니다.

오늘날 인류는 역사상 가장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
냉난방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집, 언제든 배달되는 음식,
의학의 발달로 늘어난 기대수명.

책을 읽으면서 저는 ‘편안함=행복’이라는 믿음이 얼마나 허약한지 새삼 느꼈습니다. 수명은 늘었지만, ‘건강하게 사는 시간’은 오히려 짧아졌다는 저자의 지적은 특히 섬뜩했습니다.


저자는 알래스카 오지에서 33일간 순록 사냥을 하며, 일부러 극도의 불편을 몸소 체험한다. 추위, 배고픔, 외로움 속에서 그는 오히려 해방감을 느낍니다.

📌“그것은 분명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종류가 달랐다. 그것은 해방시키는 스트레스였다.”

이 대목에서 저는 ‘스트레스’가 무조건 해로운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죽지 않을 정도의 고생은 오히려 인간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50 대 50, 죽지 않을 정도의 고생은 인간을 더 강하게 만든다.”


현대인은 하루 평균 11시간 이상을 디지털 기기에 씁니다.
저자는 이를 📌“뇌를 혹사하는 집중 상태”라 표현합니다.

📌“휴대전화, 티브이, 컴퓨터 등등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때는 뇌에서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소비된다. 결국 주의력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지친다.”

책을 읽으며, ‘따분함을 견디는 능력’이야말로 현대 사회에서 점점 더 필요한 자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음과 자극에 길든 뇌는 불편 속에서만 제 기능을 회복한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면서도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가장 큰 건강의 적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입니다.

📌“초가공식품은 어디서나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값싼 항불안제와도 같다.”

저자는 감자의 변형 사례를 듭니다. 삶은 감자에 버터와 크림을 넣고, 기름에 튀기고, 치즈와 고기를 얹습니다. 더 이상 감자가 아닌 ‘폭식 그릇’이 되어버립니다.

배고픔은 회피해야 할 감각이 아니라, 우리 몸이 본래 기능을 되찾는 신호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6시간 단식이 몸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연구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저자가 부탄에서 만난 수행자들은 죽음을 매일 성찰하는 문화가 있다고 합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저절로 더 낫고 더 행복한 길을 따르게 된다.”

죽음을 떠올리는 것이 삶을 더 고요하고 충만하게 한다는 점은 역설적이지만 강력합니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은 명예, 부, SNS의 ‘좋아요’를 더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저는 제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문하게 되었습니다.


마이클 이스터는 말합니다.

📌“인생의 진짜 도전은 내면을 향해야 합니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더 쉽게 포기할 수 있죠. 하지만 ‘내가’ 보고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이 구절이 특히 마음에 남았습니다. 결국 진짜 불편함은 타인 앞에서가 아니라 ‘나 자신 앞에서’ 극복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불편함 속에서만 진짜 성장과 자존감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편안함의 습격》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불편함은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
✔️고요와 따분함 속에서 창의성이 자란다.
✔️배고픔은 몸을 치유한다.
✔️죽음을 기억해야 지금을 살 수 있다.
✔️진짜 도전은 스스로에게 지지 않는 것이다.


《편안함의 습격》은 편안함에 잠식된 현대인의 문제를 진단하고, 불편함이야말로 건강·행복·의미를 되찾는 열쇠임을 보여줍니다. 📌“불편함을 일부러라도 선택하라”는 메시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자극입니다.

책을 덮으며 결심했습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자.
계단을 오르고,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때로는 배고픔을 느끼자.
불편함은 나를 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강하게,
인간답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_

#편안함의습격 #수오서재
#마이클이스터 #인문 #교양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책소개
#독서 #독서습관 #도서추천 #추천도서
#책리뷰 #북리뷰 #도서리뷰
#책추천 #도서서평 #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 - 세계 최고의 투자 수업
워런 버핏.찰리 멍거 지음, 임경은 옮김, 알렉스 모리스 편저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협찬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_

🎈내 삶의 자본을 어떻게 배분해야 할까 - 버핏과 멍거가 가장 값진 유산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투자와 인생은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손실을 피하고, 기회를 기다리며, 무엇보다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행동하라는 조언은 삶의 모든 결정에도 통합니다.

버핏과 멍거의 투자 방식은 화려한 비법이 아니었습니다.
경쟁사의 연차보고서까지 꼼꼼히 읽는 집요함,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습관, 안전마진이 보일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 이 단순한 태도가 세월을 이기고 복리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저는 책을 통해 ‘돈을 벌기 위한 투자서’라기보다, 생각을 훈련하는 교과서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버핏과 멍거가 수십 년간 지켜온 철학은 변동성이 큰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이 났습니다.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 세계 최고의 투자 수업》은 생각하는 방법, 배움의 자세, 원칙을 지키는 힘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버핏과 멍거는 은퇴했지만, 그들의 가르침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책장을 덮고 나면, ‘오늘 조금 더 현명해졌는가?’라는 질문이 오래 남습니다.


이 책은 전문 투자자 알렉스 모리스가 버핏과 멍거의 주주총회 발언을 직접 청취하고, 그중에서도 가장 본질적이고 실용적인 조언을 선별해 정리한 결과물입니다.

버핏은 ‘가치투자’의 아이콘으로, 1964년 몰락하던 섬유기업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해 60년간 연평균 20% 수익률, 누적 수익률 5,500,000%라는 전무후무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멍거는 그의 동업자이자 스승이었으며, 단기 차익에 집중하던 버핏을 ‘훌륭한 기업에 장기 투자하는 철학’으로 바꿔놓았습니다. 두 사람은 기업 경영과 인생의 지혜를 동시에 설파한 현대 자본주의의 사상가라 할 수 있습니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는 흔히 ‘자본주의의 우드스톡’이라 불립니다. 매년 오마하에 수만 명이 몰려와, 콘서트처럼 열광하며 버핏과 멍거의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2018년 이전까지는 이 총회가 녹화되지 않았기에 직접 현장을 찾은 사람만이 두 전설의 생생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 장벽을 허물고, 지난 30년간의 기록을 한 권으로 정리해, 버핏과 멍거의 말 속에서 ‘투자의 원리’와 ‘삶의 태도’를 동시에 배우게 하는 도서입니다.


책은 단순하게 버핏과 멍거의 발언을 나열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유효한 조언’, 즉 시간을 초월하는 투자 원칙을 뽑아내어 주제별로 정리했습니다.
가치투자, 기업 분석, 자본 배분, 시장 변동성, 투자자의 태도 등으로 나누어 독자들이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이는 버핏과 멍거의 지혜를 후대에 전달하려는 의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2023년 찰리 멍거의 별세와 2025년 워런 버핏의 은퇴 선언은, 투자 세계에서 하나의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우리는 직접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지난 30년간의 주주총회 기록을 집대성한 이 책은 그 자체로 투자의 보물 창고이자 시대를 초월한 교과서입니다.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버핏과 멍거의 지혜가 투자 기법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말은 ‘돈’이라는 매개를 빌려 인생, 선택, 배움, 신뢰라는 본질적인 주제로 이어집니다.


버핏은 이렇게 말합니다.

📌“가치 투자가 아닌 투자는 뭐란 말인가?”

이는 ‘가치 투자’라는 학파적 용어를 넘어, 투자의 본질은 결국 돈보다 큰 가치를 얻는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성장주냐 가치주냐 하는 구분은 무의미합니다. 중요한 건 지금의 지출이 미래의 수익으로 이어지느냐는 단순한 진실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투자뿐 아니라 우리의 시간 사용을 떠올렸습니다.
‘이 만남, 이 공부, 이 습관이 미래에 어떤 수익을 가져올까?’
결국 투자 철학은 곧 삶의 태도였습니다.


버핏은 주식 선택 기준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주식을 선택하는 기준은 곧 기업을 보는 기준입니다. 5년, 10년, 15년 후에도 자본 상태와 수익력이 좋을 가능성이 있는가, 그 기업의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유형인가.”

이 말은 곧 관계와 동행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투자에서 기업을 고르듯, 인생에서 사람을 고릅니다. 단기적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 신뢰, 변하지 않는 품질을 봐야 합니다.

멍거의 말처럼, 📌“세상은 아직 자격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상을 줄 만큼 미친 곳이 아니다.”
결국 좋은 사람과 좋은 기업만이 장기적으로 복리의 힘을 누릴 수 있습니다.


버핏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실제로 연필과 종이를 꺼내야 할 지경이라는 건 이미 안전마진이 아슬아슬하다는 증거입니다. 안전마진은 크게 한눈에 보여야 합니다.”

안전마진은 투자에서만이 아니라, 인생에서도 필수적입니다. 충분한 여유, 완충 장치가 없는 결정은 이미 위험합니다. 이 원칙은 커리어, 인간관계, 건강 관리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계산기를 두드려야 간신히 성립되는 계획’은 위험한 도박일 뿐이라는 교훈을 다시금 새겼습니다.


버핏은 늘 ‘조기 시작’을 강조했습니다.

📌“저축은 습관 들이기 나름입니다. 좋은 습관이죠.”
📌“복리는 눈덩이와 같습니다. 요령은 긴 언덕을 마련하는 겁니다. 아주 어릴 때 시작하거나 오래 살아야겠죠.”

복리는 금융 개념만이 아니라, 습관과 학습이 쌓이는 방식을 말합니다.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습관, 꾸준히 배우는 자세, 작은 돈을 아끼는 습관이 결국 삶 전체를 바꿉니다.

멍거는 말합니다.
📌“매일 밤에는 아침보다 현명해진 상태로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이 철학이야말로 두 전설을 만든 원동력입니다.


버핏은 ‘정보의 속도’보다 ‘양질의 정보와 신속한 결정’을 중시했습니다.
외딴곳에 살며 우편으로 3주 걸려 자료를 받아도 지장이 없었다는 말은, 본질에 집중하는 태도의 상징입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시장 소문’이 아니라, 기업의 본질이었습니다. 이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똑같습니다. SNS, 뉴스, 트렌드에 흔들리기보다 본질과 장기적 가치에 집중해야 합니다.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는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는가?
✔️당신의 ‘안전마진’은 충분한가?
✔️당신은 매일 조금 더 현명해지고 있는가?

⁉️또한 투자라는 행위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습니다.
두 전설의 답변은 한결같습니다.

✔️본질을 보라.
✔️꾸준히 배워라.
✔️감정을 절제하라.
✔️기회가 올 때 크게 베팅하라.

버핏과 멍거의 답변은 투자에 관한 것이지만, 동시에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입니다. 주식이 아니라 사람을, 기업이 아니라 인생을 바라봐도 그들의 철학은 변함없이 적용됩니다.

책을 덮으며,
투자법을 배운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_

#워런버핏과찰리멍거
#북다 #교보문고
#워런버핏 #찰리멍거
#경제 #경영 #경제경영도서
#재테크 #주식 #가치투자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도서서평 #서평 #서평단 #독서 ​#책소개
#도서리뷰 #북리뷰 #책리뷰 #책추천 #도서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몬스터 킬러
윤자영 지음 / 네오픽션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협찬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_

💭‘괴물을 죽이는 자는 과연 괴물이 아닐 수 있을까?’

《몬스터 킬러》는
⁉️“괴물은 어디서 태어나고, 우리는 누구를 괴물이라 부르는가”라는
질문을 남깁니다.

작품 속 김하준, 전조협, 이순근은 모두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며, 동시에 사회가 만든 괴물의 얼굴입니다. 이 작품이 추리소설의 틀을 빌려 사회파 미스터리로 읽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괴물이란 멀리 있지 않다는 섬뜩한 진실과 마주했습니다. 어쩌면 괴물은 우리 곁에도, 그리고 우리 안에도 존재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윤자영은 ‘추리소설 쓰는 과학 선생님’이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한국추리작가협회 신인상과 한국추리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으며, 교직 경험에서 비롯된 생생한 관찰을 추리적 상상력과 결합해 한국형 사회파 미스터리를 선보여왔습니다. 신작 《몬스터 킬러》는 ‘괴물 선생님 살인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소재로, 학교라는 공간의 어두운 단면을 정면으로 파헤친 작품입니다.


학교는 흔히 “아이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공간”으로 정의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폭력, 차별, 배제, 권력관계가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합니다. 《몬스터 킬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교사가 학생을 죽였다는 전대미문의 사건은 ‘괴물’을 만들어내는 사회 구조와 맞닿아 있습니다.


작가는 겉으로는 살인사건의 추리극을 펼치지만, 실제로는 학교와 사회가 만들어내는 괴물의 탄생 과정을 보여줍니다. 누가 진짜 괴물인지, 괴물을 죽일 자격은 누구에게 있는지를 묻는 이 소설은, 독자 스스로 자신 안의 괴물을 마주하게 만듭니다.


첫 장면부터 소설은 독자의 정서적 안전망을 끊어냅니다.
교사 전조협은 자신의 범행을 ‘지도’라 부르고, 심지어 학교를 구하기 위한 정당방위처럼 말합니다.

📌“전 학교를 구하기 위해 악마들을 지도한 거예요.”

이 한 문장은 작품의 윤리적 난제를 압축합니다.
‘괴물’을 자처하는 어른, ‘악마’라 불린 학생,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실체 없는 그림자처럼 흔들리는 제3의 인물 김하준. 윤자영은 이 셋을 중심으로 ‘국선변호인/열혈 교사/시클리드’라는 세 갈래의 서사를 교차 편집해 ‘한 사건의 세 개의 기억’을 직조합니다. 끝까지 읽고 나면 제목의 ‘몬스터 킬러’가 가리키는 대상과 주체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장 편 전체는 국선변호인 박근태의 조사기, 전조협의 과거 행적,
그리고 중학생 이순근(시클리드)의 변신 서사가 번갈아 진행되는 구조입니다. 표면적으론 각각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각 파트의 말과 행동, 결여가 서로의 빈칸을 채우며 ‘누가 무엇을 조작했는가’를 드러냅니다.

변호인 파트는 사실 확인과 인터뷰의 리듬으로 추리의 골격을 제공하고, 교사 파트는 교권과 처벌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권력의 심리를, 시클리드 파트는 학교폭력의 미시적 감각과 세뇌·변신의 메커니즘을 체화시킵니다. 이 분절적 레이어가 마지막에 한 지점으로 맞물릴 때, 독자는 시점 그 자체가 왜곡의 도구임을 깨닫습니다.


전조협은 학생부장으로서 “지도”를 반복합니다. 그가 보기에 민주영은 ‘악의 씨앗’이고, 김하준은 ‘진짜 악마’입니다.

📌“주영이는 평소에도 수많은 학생을 괴롭혔어요. 저는 학생부장으로서 정당하게 지도한 겁니다.”

하지만 변호인이 지적하듯, 그의 ‘지도’는 신체적 폭력과 통제의 언어를 닮았습니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판단을 끊임없이 확증하는 방향으로만 사실을 해석합니다.

📌“웃기지 마! 김하준이 나쁜 놈이 맞다고! 다들 나랑 다른 김하준을 만난 거야, 뭐야!”

작가는 전조협을 악마화하지 않는다. 대신 ‘의욕적 교사’가 시스템의 허점, 여론의 압박, ‘학폭과의 전쟁’ 레토릭 속에서 어떻게 신념의 폭력으로 기울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독자는 그가 미덥지 않으면서도, 그를 통해 교사의 균열 난 현실을 보게 됩니다.


김하준은 정체가 비어 있는 학생으로 설정됩니다.
그는 사건 직후 전학 가며 자취를 감추고, SNS 흔적도 없습니다.

📌“그 새끼는 아무것도 안 했네요. 인스타도, 틱톡도, 페북도.”

교사들은 그를 “착한 아이”라 평하고, 동년배 일진은 그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고 증언합니다. 작가는 ‘착함/악함’의 라벨을 차단하고 김하준이라는 공백을 남깁니다. 독자는 그 공백에 타인의 시선과 자신의 편견을 채워 넣습니다. 그리고 그 공백이 설계된 것일 수 있다는 의심이 싹튼 순간, 작품은 본격적인 심리 스릴러로 전환합니다.


세 번째 축인 ‘시클리드’ 파트는 단독으로도 강력합니다. 중학생 이순근이 길에서 만난 노숙자와 나누는 대화는 이 소설의 핵심 은유를 숨깁니다.

📌“시클리드의 일종인 하플로크로미스 부르토니라는 물고기는 계기가 있으면 강력하게 변신하지.”

열대어 생태에서 차용한 ‘두 개의 수컷 전략(화려한 T형/회색 NT형)’은 사회적 변신의 모델이 됩니다. 순근은 모멸과 공포, 모형 폭력의 리허설을 거쳐 자기 강화의 폭력으로 이행합니다.

📌“‘졌다.’” 라는 자기 패배의 순간 뒤에 찾아오는 급격한 변화는 작품 후반 ‘정체’의 반전과 무섭게 응답합니다. 이 축이 없었다면 《몬스터 킬러》는 ‘학교 살인사건의 비밀’로 끝났을 것입니다. 시클리드는 ‘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현하고, 그것이 얼마든지 학습 가능하다는 소름을 남깁니다.


작품의 대사 곳곳엔 학교 폭력의 일상성이 스며 있습니다.
희생자를 조롱하는 아버지의 윙크, 왕따를 알아채는 노숙자의 냉정,
‘착한 아이’라는 말의 공허함.
이 조각들이 모여 드러내는 것은 세뇌의 주체가 꼭 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집단, 시스템, 여론, 언론, 심지어 ‘정의감’ 또한 사람을 가공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질문은 단순합니다.
⁉️“우리에겐 괴물을 죽일 자격이 있는가?”
누군가를 ‘몬스터’로 호명하는 순간,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작품은 그 질문을 독자에게 되돌려 줍니다.


또한 범인을 숨기기보다 동기의 구조를 숨깁니다.
박근태의 인터뷰와 기록 열람은 독자를 ‘사실-확인’의 길로 이끌지만,
전조협의 독백과 시클리드의 체험은 그 사실을 의미-수정의 길로 비틉니다.
주요 반전의 열쇠는 ‘누가 누구를 알아보지 못했는가’라는 인식의 단절에 있습니다. 중1·중3 시기의 사진을 보여줘도 📌“누구예요?”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이유를 독자가 이해하는 순간, 제목의 ‘킬러’가 지시하는 범위도 재정의됩니다.
(여기서 더 말하면 스포일러입니다🤨)


문장은 직설적이고 빠릅니다. 조사-대질-회상-폭주 액션이 번갈며 리듬을 만듭니다. 한편 민주영·김태수의 악행은 필요 충분 조건일 만큼만 배치되어 혐오 소비로 흐르지 않습니다. 약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전조협의 어떤 장면은 다소 과잉으로 보이고, 몇몇 ‘설명 대사’는 작가의 메시지가 앞서 말하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결말에서 드러나는 관계의 지도와 그 뒤에 남는 도덕적 현기증이 이 모든 미세한 단점을 무력화합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학교가 아이들이 웃고 배우는 곳(작가의 말)이라는 믿음과, 그 믿음을 아슬아슬하게 위협하는 현실이 동시에 남습니다. 이 간극의 공포가 작품의 진짜 여운이었습니다.

⁉️“정말 학교는 안전한가?”라는 질문이 작품을 덮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_

#몬스터킬러
#윤자영
#네오픽션 #자음과모음
#소설 #소설추천 #추리 #스릴러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서평 #서평단
#책리뷰 #북리뷰 #도서리뷰 #도서서평
#독서 #독서스타그램 #도서 #책소개 #책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펜타랜드
양기연 지음 / 열림원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협찬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_

환상의 껍데기 아래, 노동·몸·돌봄의 맨얼굴을 들춰 보이는 연작.
유희의 가면을 쓴 노동의 얼굴, 축제의 조명 아래 반짝이는 파편—양기연은 20대 여성 청년들의 ‘살아낸 하루’를 가장 정확한 언어로 기록합니다.

《펜타랜드》는 “너희는 왜 이 세계를 이렇게 만들었니?” 대신 반복해서, 낮고 단단하게 되묻습니다. ⁉️“그럼, 나는 내 몸과 시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사과를 거부하는 입술, 하루를 요구하는 메시지, ‘펜지타’ 영상 앞에서 휴대폰을 내리는 손. 이 작은 행위들이야말로 엔딩의 사이렌 이후에도 계속 울릴 현실의 신호입니다. 테마파크는 문을 닫아도, 우리는 돌아가야 합니다. 각자의 현장으로.

《펜타랜드》는 화려한 조명 아래 가려진 청춘의 그림자를 드러내는 소설입니다.
읽고 나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하게 됩니다.
⁉️“나는 지금, 어떤 얼굴로 펜타랜드의 탈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가?”


양기연 작가는 202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작품에서 “남루하고 구차한 삶을 살아 내야 하는 사람들의 애잔한 하루를 절제된 감정과 소품의 배치로 잘 담아냈다"라고 평했습니다. 《펜타랜드》는 등단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연작소설집으로, 현실보다 잔혹한 테마파크라는 공간을 무대로,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20대 여성들의 내밀한 목소리를 다룹니다.


‘펜타랜드’는 게임 '펜타월드 : 구원받은 세계'의 세계관을 구현한 테마파크입니다. 겉으로는 꿈과 유희의 공간이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일터이기도 합니다.

현실의 테마파크가 ‘환상의 세계’를 표방하면서도 노동자에게는 고된 육체노동과 불안정한 삶의 현장인 것처럼, 작품은 “환상과 현실, 놀이와 노동, 주체성과 객체성”이 충돌하는 아이러니한 공간을 정교하게 구축합니다.

작가는 테마파크라는 상징적 무대를 통해 젊은 여성들이 겪는 사회적 불안과 몸의 문제, 관계의 위계, 그리고 생존의 고단함을 조명합니다. ‘펜지타’ 사건처럼 놀이가 폭력으로 전도되는 장면은, 즐거움과 소비 뒤편에서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누군가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결국 《펜타랜드》는 독자에게 묻습니다.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고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테마파크는 원래 탈것과 불꽃, 음악과 셀카의 세계입니다.
양기연의 《펜타랜드》는 이 ‘유희의 공장’을 뒤집어 내부 배선을 보여줍니다. 번개를 다루는 요정의 나라부터 증기기관의 반도, 사막의 사이버 오아시스까지 화려하게 세계관을 확장하지만, 이 소설들이 끝내 내보이는 것은 세계관이 아니라 월간 근무표, 냄새 밴 탈, 뜨거운 인형 옷의 체온입니다.

작가는 누구의 어린 시절을 구원했던 게임 〈펜타월드: 구원받은 세계〉의 테마송 위에, 구원받지 못한 20대 여성 청년들의 ‘생존 소음’을 덧입힙니다.


펜타랜드는 “놀이”가 아니라 “일”입니다. 땅위에서 꿈을 굴리는 사람들은 인형 탈을 쓰고, 튤립 미로에서 끝없이 길을 설명하고, 매표창구에서 신분증을 확인하고, 워터 파크에서 익사 사고를 막습니다. 화자는 늘 ‘나’이되 매번 다른 ‘나’—인형 탈 알바, 매표소 직원, 라이프가드, 돌봄과 생계 사이를 오가는 딸—로 전환됩니다.

그들의 시간은 이벤트 일정표와 관객 동선에 맞춰 쪼개집니다. 익명성(탈)은 놀이의 조건이면서 동시에 폭력의 방패입니다. 코스튬의 익명성을 빌린 관람객이 NPC 아르바이트생을 때리고 달아나는 ‘펜지타’ 밈이 폭발하듯 유통되는 순간, 우리는 플랫폼 시대의 잔혹한 메커니즘을 봅니다—폭력이 유희가 될 때, 피해는 곧 콘텐츠가 됩니다.

작품은 이 폭력의 배후에 “믿고 싶은 사실만 고르는 심리”를 놓습니다. 천진우에 대한 ‘펜지타 범인설’이 번질 때, 화자는 다음 문장을 떠올립니다.
📌“천진우의 이야기는 단순하고 명확했다. 그러나 그건 그들이 원하는 사실이 아니었다.”
사실보다 ‘서사’가 빠르게 유통되는 시대, 진실은 타인의 욕망과 접속될 때만 힘을 얻는다. 이 가장 단단한 통찰은 테마파크라는 장치 위에서 놀랍도록 선명해집니다.


《펜타랜드》는 사과의 언어를 집요하게 묻습니다.
📌“고객은 항상 옳다”는 규율이 일상인 현장에서, 사과는 종종 생존의 문장입니다. 하지만 사과가 만성화될수록 자기 존중감은 침식됩니다. 동료 재상의 말은 소설의 축을 비트는 선언처럼 들립니다.

📌“죄송하지 않은데 왜 죄송하다고 말해야 해? 난 그런 취급 받을 사람 아냐.”화자는 그 말을 불편함과 부끄러움으로 받아 적습니다—
“그럼 나는 어떤 사람이기에?” 사과의 자동응답이 노동의 에티켓을 넘어 존엄의 경계를 무너뜨릴 때, 우리는 어디서 다시 선을 그을 수 있을까.
작가는 답을 서둘러 제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경계에서 주저하는 몸의 감각을, 아주 세밀한 문장으로 오래 붙잡습니다.


연작의 중반부는 명료하게 여성의 몸과 결정권으로 이동합니다. 라이프가드 화자는 자궁 경부 손상 진단 직후에도 파트너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합니다. 불꽃놀이의 절정에서, 그녀는 난데없이 튄 📌“먼지라기엔 크고 딱딱한” 파편을 본다—보았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의 돌출. 이후 문장은 묵직해집니다.

나는 누구에게, 어떤 권리로, 어떤 언어로 “아니오”를 말할 수 있는가.
폭죽이 하늘에서 터질수록, 화자는 ‘자기 몸의 서사’를 되찾기 시작합니다.
그 깨달음은 선언이 아니라, 아주 작은 감각에서 시작되는 자기 결정을 향한 회귀입니다.


이 책의 가장 잔잔하고도 아픈 악장은 모녀의 이야기입니다. 보육원-재혼-이부동생—생애의 조건들은 화자들을 계속해서 ‘가장 약한 연결 고리’ 쪽으로 밀어 넣습니다. 그럼에도 화자는, 성장하며 엄마의 말수가 줄어드는 이유를 이해해 버립니다.

📌“언제나 대답과 함께 한숨이 섞여 나왔고…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내려놓는 소리에 스스로 움찔할 만큼.”

돌봄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지만, 생계의 언어 위에 얹히면 쉽게 죄책과 눈치로 변질됩니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제안하는 여행지는 ‘펜타랜드’입니다. 그곳은 과거에 모녀를 이어 주던 게임의 실물 세계. 그러나 이 ‘순례’가 되돌려주는 것은 눈부신 구원이 아니라, 끝내 각자 감당해야 할 현실의 무게입니다. 그래서 더 설득력 있습니다. 구원은 없지만, 서로에게 마지막으로 건네는 정직한 정이 남습니다.


심사평이 지적했듯, 이 책의 미덕은 “화자의 절제된 감정, 삽화와 소품의 적절한 배치”입니다. 인형 탈의 열, 미로의 동선, 목공방의 유약, 매표창구의 이름표, 워터 파크의 사이렌—소품은 서사의 도구가 아니라 감정의 증거로 재배치됩니다.

연작 구조는 ‘다른 직군·다른 여성·다른 자리’의 시선을 겹겹이 포개며, 테마파크라는 단일 공간을 노동의 단면들로 쪼갭니다. 장면 전환은 빠르지만 감정은 절제되어 남습니다. 바로 그 절제가, ‘남루하고 구차한 삶’의 애잔함을 과장 없이 설득합니다.


작품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전기·번개·불꽃의 모티프(감전사, 요정의 번개, 폭죽 파편)는 의미심장합니다. 누군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빛은, 그 빛을 켜는 이들의 몸을 언제든 태울 수 있습니다. 《펜타랜드》의 빛은 그래서 아름답고 위험합니다.


결국 소설은 독자에게 되묻습니다.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펜타랜드》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보이지 않던 파편의 존재를 잊지 않는 것—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을 피해 걷거나, 가리키거나, 치우거나, 최소한 ‘맞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독자에게는 “당연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이 소설의 장점은 그 ‘당연함’을 삶의 실감으로 복구한다는 데 있습니다.

유희의 최전선에서, 여성의 몸·시간·존엄이 어떻게 가격표를 붙인 상품이 되는지 보여주는 소설. 절제된 문장과 정교한 설정으로, 당신의 ‘놀이’가 누구의 ‘노동’ 위에 서 있는지 끝까지 묻게 합니다.

_

#펜타랜드
#양기연 #열림원
#소설 #소설추천 #연작소설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서평
#독서 #독서습관 #책소개 #도서추천
#추천도서 #책리뷰 #북리뷰
#도서리뷰 #도서서평 #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