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 내리다 : 피츠제럴드 단편선 인류 천재들의 지혜 시리즈 7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보영 옮김 / 이소노미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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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필히 봐야 할 [무너져내리다]

그런데 저는 사실 그렇게까지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ㅎㅎ 그래서 별 생각없이 작품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피츠제럴드 특유의 향기가 납니다.

약간은 미국 남부의 나른함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제가 미국 남부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으면서 맡을 수 있었던 미국 남부의 햇살의 냄새가 많이 느껴집니다.

또한 개츠비처럼 성공했지만 이어지는 허무로 인한 좌절의 모습을 가진 많은 등장인물들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개츠비의 모습이 바로 피츠제럴드 본인의 모습이었다고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단편선 제일 처음에 실린 자전적 에세이 [무너져 내리다]가 어렵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히는 이유인 듯 합니다.

나는 노력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과 그

래도 싸워봐야 한다는 의식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피츠제럴드의 사고의 결과 탄생한 작품들이 바로 이 책에 수록된 6편의 단편입니다.

[머리와 어깨]

[얼음궁전]

[버니스 단발로 자르다]

[겨울 꿈]

[다시 찾은 바빌론]

[잃어버린 10년]

[머리와 어깨]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작품들이 조금씩 결이 비슷합니다.

각각의 작품들 속에서 [위대한 개츠비]의 등장인물들의 모티프를 찾아내는 것도 작품을 읽어내는데 재미가 쏠쏠합니다.

굳이 위대한 개츠비와 연결시키지 않더라도 그냥 독립된 작품으로서도 재미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머리와 어깨] [버니스 단발로 자르다] 두 편이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피츠제럴들의 작품을 좋아할까요?

아마도 작품들에 담겨있는 위트와 허무함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앞서 제가 재미있다고 말한 두 작품 모두 작품 안에 뻔하지 않음이 담겨 있습니다.

약간 뻔한 듯 전개되다가 결국 결말은 뻔하지 않은 결말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그 전개 과정에서 제가 눈여겨 보게 되는 것은 인간들의 '허풍'적인 모습들입니다.

가식적인 북부 사람들

또한 가식적인 남부 사람들..

어디 하나 가식적이지 않은데가 없는 사람들.

그 가운데서도 덜 가식적인 사람들의 모습..

어떻게 보면 '가식'이라는 것은 인간에게서 뗄려야 뗄 수 없는 모습의 일종이 아닌가 싶습니다.

( 가식 : 말이나 행동 따위를 거짓으로 꾸밈. )

이러한 가식적인 인간들의 모습을 위트있게 풀어낸 피츠제럴드의 소설은 그래서 매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의 삶 자체도 이러한 가식과 진실을 왔다갔다 하는 그런 삶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이소노미아에서 나온 작품치고 생각보다(?) 편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 [무너져내리다] 입니다.

그런데 참 이런 작품들을 찾아내서 단편으로 엮고 하려는 출판사의 노력이 대단한거 같습니다.

지금까지 번역서의 경우는 외국에서 책으로 나온 것을 그냥 번역만 해서 짜잔~ 하고 출판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보니..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피츠제럴드의 164편의 단편들 중에서 딱 6개만 고르고 고른 것이네요.

과연 어떤 작품들이 골라졌을지를 보는 재미도 또한 쏠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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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타리안 : 솔페리노의 회상 인류 천재들의 지혜 시리즈 6
앙리 뒤낭 지음, 이소노미아 편집부 옮김 / 이소노미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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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페리노 전투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북이탈리아 해방을 목적으로 한 사르데냐왕국은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지원을 받아 이탈리아의 가르다호(湖) 남쪽 솔페리노에서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하고, 산마르티노에서도 승리하여 북이탈리아 통일이 실현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 3세가 오스트리아와 빌라프란카에서 단독강화를 체결하자 사르데냐왕국에 의한 북이탈리아 통일은 실패로 돌아갔다.

[네이버 지식백과] 솔페리노전투 [Battle of the Solferino] (두산백과)

지식백과에 겨우 3줄로 기록된 전투인데 이 전투에 흐르는 피의 강물을 보여주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앙리 뒤낭이 자비로 출판한 <솔페리노의 회상> 입니다.

제네바의 경건한 칼뱅주의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난 앙리 뒤낭은 알제리 곡물 사업 중 물의 사용 권리 탄원을 위해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를 만나러 왔다가 '솔페리노' 전투의 참상을 목격합니다.

이때 그가 목격한 전투의 참혹한 현장과 인도주의적 활동을 담은 <솔페르노의 회상>은 당시 유럽을 움직이는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빈다.

이후 제네바협약이라는 인류사의 빛나는 성과가 만들어졌으며 국제적십자위원회의 초석을 쌓게 됩니다.

인류 최초의 노벨상을 받은 앙리 뒤낭

그가 죽으며 남긴 한마디입니다. "인류애는 어디로 갔는가"

이소노미아 편집부에서는 <솔페르노의 회상><제네바 협약> 에 대해서 "인류가 여기까지 진보했음"을 증명해준다고 말합니다.

국제 적십자 운동은 19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생명을 구했습니다.

노벨평화상을 네 번이나 수상한 인도주의 운동입니다.

앙리 뒤낭의 에세이가 무엇을 담고 어떻게 적혀 있길래 그런 국제 적십자운동을 촉발했는지.

그리고 집단지성으로 만들어진 제네바협약에는 어떤 정신과 무슨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전합니다.

앙리 뒤낭이 그린 솔페리노의 모습은 처참합니다.

프랑스 군은 주검을 토해내면서도 또 폭풍처럼 군인들은 진격해나갑니다.

모든 언덕과 고지와 바위 꼭대기, 언덕위 좁은 골짜기에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갑니다.

전투보다 더 처참한 것은 부상자들의 모습입니다.

장기들이 밖으로 돌출된 것은 물론이요

얼굴 한쪽이 함몰되기도 하고 잘려나가기도 하고

읽다보면 오히려 죽은 사체들이 쌓여있는 피웅덩이가 형성된 곳이 더 낫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살아있으니..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책 구석구석 묻어 있습니다.

앙리는 말합니다.

누구든지 전날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저 광대한 전쟁터를 돌아본 사람이라면

그 대혼돈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절망과 비극을 목격했겠지요.

자연스럽게 자원봉사대가 조성되고 특히 카스틸리오네의 부녀자들의 적극적인 모습도 보여집니다.

"모든 사람은 형제다"라고 카스탈리오네의 부인들의 말처럼

이들의 헌신은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눈앞에 있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음에서 비롯된 무력감을 괴로워합니다.

이 무력감에서부터 아마도 인류애를 집단지성으로 조직화시키겠다는 시발점이 시작된 듯 합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는 도덕심

저 많은 불행한 부상자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하는 인간의 희망

용기를 북돋 북돋아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군가는 뭔가를 해야만 합니다.

그런 활동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군사교육 과정 중에 배워야하는 것 중의 하나가 제네바 협약입니다.

특히 제네바 협약 제 3조를 기반으로 '적대 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대우가 문제가 됩니다.

어떤 경우라도 적대 행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인도적으로 대우해야 합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실화를 영화화한 '론 서바이버'가 어찌보면 이러한 제네바 협약을 기반으로 한 '군인들'의 선택을 보여줍니다.

실제 그로 인해 많은 미군들이 죽기는 하지만 그들이 내린 선택은 단순히 '정의'의 차원을 넘어선 '인류애'를 보여줍니다.

(사실 누가 옳았냐 하는 부분은 여기서 논하긴 어려울 듯 합니다.)

이러한 제네바 협약을 체결됨에 있어서 이것이 그냥 쉽게 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던 '휴머니타리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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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윌 : 도덕형이상학의 기초 인류 천재들의 지혜 시리즈 2
임마누엘 칸트 지음, 정미현 외 옮김 / 이소노미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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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여러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학자가 바로 칸트입니다.

제 평생 목표 중의 하나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도덕형이상학>을 제대로 이해하며 읽어보는 것입니다.

칸트는 누구인가?

시계와도 같은 삶으로 유명한 칸트

새벽 5시 기상하여 홍차 두잔을 마시고

오전 강의를 한 후

오후에는 집필을

그리고 친구들과 점심식하를 하며 담소를 나누고

오후 4시가 되면 칼 같이 산책을 나섰다는

일화는

철저한 자기관리의 산증인으로도 알려져있습니다.

이런 그가 주장하는 것은 "도덕"

입니다.

사람들의 취향이나 성향, 개인적 취향에 달라지는 내용이 배제된 '형식'에 관한 도덕

칸트에게 있어 도덕은 일종의 문법입니다.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한다"라는 문장.

어떤 행동이 무조건적인 세상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명령문으로 표현가능할 때

그것만이 도덕의 기준이 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칸트 철학에서는

무엇이 도덕이냐?라고 묻기보다

이것이 도덕이냐?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 훨씬 더 수월합니다.

왜냐하면

그 행동의 정당성이 사람마다 달라지는가?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가?

이렇게 의심해보면 되기 때문입니다.

칸트 철학 이후 종교와 철학이 분리되었다고 합니다.

왜냐면 종교라는 것은 해당 종교 안에서야 절대성을 가질 수 있지만 해당 종교인이 아닐 경우는 기준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도덕적으로 비난함에 있어서도

감정이 배제되기 됩니다.

타인을 비난하는 도구로 '도덕'이라는 것을 말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이해를 했으나

실제 적용을 하려고 하니...

하아...

그렇게 따지면 도덕적인 것이 있기는 한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 더 중요한 개념이 나옵니다.

바로

"목적의 왕국"

편집부에서는 매우 귀중한 표현이라고 극찬을 합니다.

인간은 모두 목적이며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거.

그것만 인정하면 나머지는 형식일 뿐

이라고 말하는 칸트의 철학

칸트에게 있어 개인은 곧 인류인데

이 인류에 대한 생각의 기준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인류를 사랑한 칸트이지만

친절함은 조금 적어서...

문장 하나하나를 이해하고 해석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이소노미아에서 3년에 걸쳐 최대한 대중번역으로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했다고는 하나...

앞서 말한 "목적의 왕국"과 관련된 구절입니다.

(145) 인간, 그리고 모든 이성적인 존재 일반은 스스로 목적으로서 존재합니다.

이런저런 의지에 따라 임의대로 사용되는 수단으로 존재하는게 아닙니다.

또한 자신의 행동이 자신과 관련되든 다른 이성적인 존재와 관련되든 이성적인 존재는 언제나 목적으로 여겨져야 합니다.

개인적인 성향의 모든 대상은 그저 조건부 가치를 지닐 뿐입니다.

...

이해가 되십니까?

만일 이해가 바로 되신다면..

충분히 이 책을 즐기실 수 있을 듯 합니다.

저는 해당 문장을 여러번 읽고 또 읽고..

다시 읽고...

...

아마 책 내용의 10%나 이해했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첫 부분부터 필사를 하면서

다시금 도전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아직 제게는 수준 초과였던

칸트의 [굿윌]

언젠가는 [순수이성비판]으로 가는 단계의 디딤돌이 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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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행복 : 공리주의 인류 천재들의 지혜 시리즈 4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정미화 옮김 / 이소노미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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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교육, 가정교육으로도 유명한 존 스튜어트 밀

제가 밀을 알게 된 것은 이지성 작가의 책에서 "고전교육"이라는 부분입니다.

3살에 그리스어를 배우고

8살에 그리스어와 라틴어 고전을 읽히며

십대 시절에 이미 대부분의 고전을 독파한

"고전이 제일 쉬었어요"

의 산 증인인 '존 스튜어트 밀'

사실 밀은 고전교육보다 "공리주의"의 철학자입니다.

공리 또는 최대행복의 원리를 도덕의 기초로 받아들이는 이 이론은 행복을 증진시킬수록 옳은 행동이고, 행복과 반대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록 잘못된 행동이라고 주장합니다.

행복이란 고통의 부재와 쾌락을 의미하고, 불행은 쾌락의 결핍과 고통을 의미합니다.

사실 우리가 공리주의라고 하면 떠올리는 것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입니다.

이 밀과 비교되는 것이 바로 [굿윌]의 칸트입니다.

도덕을 형식으로만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 칸트와 달리

밀은 도덕은 내용이라고 보았습니다.

감정과 도덕규범이 분리되어야 한다고 본 칸트와 달리

밀은 도덕감정 그 자체가 도덕이라고 보았습니다.

칸트에게 있어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므로 그것이 도덕을 정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행복을 도덕적으로 가치있게 하는 조건으로 선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반면에 밀은 공리주의를 통해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곧 도덕이며 타인의 행복을 포함하여 인류 전체의 행복을 생각해야만 최대한으로 쾌락이 증진되고 고통이 감소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스철학과 연계되어서 칸트는 스토아 학파의 전통을

밀은 '에피쿠로스 학자'를 계승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책 자체를 놓고 본다면 사실 칸트의 <굿윌>보다는 밀의 <타인의 행복>이 이해하기는 좀더 수월합니다.

다만 양이 좀 많습니다.

본문도 많고

주석도 많고

편집여담도 많고

그런만큼 이해하기는 훨씬 수월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두 이론 중 어느 하나가 절대 맞다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둘 다 중요한 이론들이고

인간의 행동을 규정하고 정의함에 있어서

좋은 '기준'들이 되어줄 것입니다.

이러한 철학을 알고 있음에 따라

타인의 행동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내리려는

마음을 붙잡아 둘 수 있을 거라고 기대됩니다.

그나마 이소노미아 시리즈 중에서

수월하게 읽히던 [타인의 행복]

초록색 배면 표지도 그렇고

혼돈의 늪에 빠트렸던 [굿윌]이

보라색 배면이었던 이유가 은연중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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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티네 : 나쓰메 소세키 작품집 인류 천재들의 지혜 시리즈 5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석희 옮김 / 이소노미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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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이렇게 두 작품으로 한 차례 만나본적이 있던 '나스메 소세키'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라고는 하나

why?

문학 작품 자체를 잘 이해도 못할 뿐더러

일본작품들을 특별히 더 좋아하는 편도 아니어서

사실 '나쓰메 소세키'가 위대한 천재 작가인가에 대해 의문이 먼저 생겼습니다.

왜 이소노미아에서는

나쓰메 소세키를 선정하였는가?

그게 사실 제가 이 작품집을 읽으면서 가진 계속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작품집 [소나티네]는 악장이 짧은 소타나를 뜻하는 말답게 분량이 짧고

특별히 연관성이 없는 독립된 작품들 37개의 단편들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1909년의 일본

당시 일제 치하였던 조선

암울했던 그 역사 속에서 막상 일본은

런던 유학까지 보낼 정도의 풍요로움(?)을 보입니다.

도대체 소세키의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요?

편집부에서는 그의 '애국심'을 말합니다.

분별력이 있는 애국심입니다.

제국주의나 국수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애국심입니다.

"일본인으로서 일본 정신으로 일본 문학을 하겠다는 것이고, 그것이 하늘이 내려준 자신의 재능이자 가야 할 길임을 깨달았지만, 무엇이 올바른 사상이며 가치인지에 대한 분별력은 확실햇던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이 일본에 소속되어 있고 일본인임이 자랑스럽기야 했겠지만 내셔널리즘에는 빠지지 않았다는 말씀이죠. 사람들이 한결같이 국가를 외칠 때 그는 그런 무리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입니다. 내셔널리즘에 빠진 사람들을 바보 같다고 생각했겠지요. 그 격동기에 그는 결국 무소속으로 남았고, 그렇게 만든 것이 바로 올바름에 관한 소세키의 분별력이라고 봐요."

아.. 올바름에 관한 분별력

그냥 일개 소설가로 치부하기에는 뚜렷한 색깔을 나타낸 소세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읽고나니

왜 소세키가 일본의 국민작가인지 천재인지 알것 같습니다.

시류에 편승하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한순간 인기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친일작가들의 여러 사례를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구분하지 않고

그저 시류에 편승하여 행동한 결과

자신의 예술적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친일작가라는 낙인을 지울 수 없는 '노천명'작가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나쓰메 소세키는 달랐나봅니다.

(자세하게 연구한 것은 아니라)

나라의 엘리트들이 모인 [가쿠슈인]에서 한 초빙강연에서도 자신의 '신념'

과 분별력을 보여줍니다.

"할말은 하는 사람. 끝까지 자기 이야기를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

이러한 사람이 진짜 작가라고 '편집부는 이야기합니다.

이소노미아 책의 특징은

본문 자체의 깔끔한 번역과 편집도 좋지만

무엇보다 편집 여담이 참 좋습니다.

[소나티네] 이 책도 읽으면서

일본의 문화가 이해가 안되어서

또 연관성 없는 이야기 흐름 때문에..

(편집부에서는 이미지 흐름대로 글을 써서 그렇다고 해석합니다.)

이야기 자체가 이해가 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편집여담 덕분에 많은 부분들을 재해석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소노미아의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편집여담]을 읽을 것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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