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버 2 : 셀 모어 - 위대하고 엄청난 성공에 이르는 5가지 법칙 기버 2
밥 버그.존 데이비드 만 지음, 안진환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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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버 1]을 정말 쉽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지난 기버 1 서평 때도 이야기했지만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래 '가치 창조' '베풀기' 중요하지~

라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는데..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 개념은 알겠는데..

뭔가 실제로 해보라고 하면 어렵다는 느낌.

막연하게 '하면 좋을 거 같아'라고 생각은 되지만

막상 나에게 하라고 하면 못할 거 같은 느낌

그런데 이 생각을 저만 한게 아닌가 봅니다.

저자들은 기버 1에서 이야기한 조언들을 실천하고 직접 변화를 체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버2를 썼노라 이야기합니다.

현실에서 어떻게 이 '기버'의 법칙을 적용시킬 것인가에 대한 해설서? 안내서?

바로 [기버2] 입니다.

[기버 1]만 읽었다면 그냥 겉핥기로만 끝나버렸을 가치의 중요성이

[기버 2]를 통해서 '세일즈'라는 직접적 경제활동과 연계되어 표면화됩니다.

실질적 행동 목록도 심플합니다.

보상의 법칙에 있어서는

1) 타인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켜라

2) 사람 앞에 어떤 수식어도 달지 마라

3) 라포르(공감)을 형성하라

4) 전문기술이 아닌 인간 기술을 펼쳐라

5) 당신의 손전등을 상대방에게 비춰라

6) 감정적으로 성숙해져라.

하나 하나 읽어보면 다 맞는 말이고 세일즈라는 '표면 활동'에 자칫

잊어버리기 쉬운 본질적 내용들입니다.

특히나 제가 집중했던 부분은 내가 줄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가? 입니다.

이는 [기버 1]에서도 고민했던 부분입니다.

여기서 베푸는 삶에 대해서도 이것이 단순 '희생적' 삶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베푸는 삶을 살기 위해 순교자적인 희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순교자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와 다른 사람을 돕는 행위가 상충된다는 이분론을 따른다.

하지만 솔직히 그런 자세를 진정한 의미의 베풂의 정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진정으로 베푸는 사람은 그러한 갈등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베푸는 행위를 통해 쌍방이 동시에 이익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더 기버 2] p.49 중에서

몇 가지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책을 읽으면서 깨닫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전 순교자의 희생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내 이익을 도모하면 그건 상대를 돕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었고

역으로 상대를 돕는 것이 내 이익이 된다라는 생각 또한 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의 전환만 가져와도 [더 기버]의 책의 가치는 충분할 지도 모릅니다.

두번째 제가 '앗' 하고 깨달은 것은 사람 이름 외우기 입니다.

전 습관적으로 '전 사람 이름을 몰라요~ 사람 얼굴 기억을 잘 못해요!'

라고 말을 하곤 했습니다.

그게 마치 조금 쿨한 것인냥 말이죠..

그런데.. 이는 주변에 대한 관심의 부족이라고 책은 말합니다.

이러한 관심을 집중하는 연습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호기심의 존재다. 이는 본성이다. 우리는 태어날때부터 호기심을 보인다.

(...)

우선 의식적으로 주변에 관심을 집중하는 연습을 계속해야 한다.

그것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훈련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고도의 관심은 훌륭한 세일즈맨이 갖춰야 할 절대 조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

상대방에 관해 알고 싶은 마음이 발동하면 당신은 어떤 사람과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더 기버 2] p.99 중에서

제가 그동안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없던 것이 자랑이 아니었다는 것.

지금이라도 의식적으로 주변에 관심을 두어야겠다 생각해봅니다.

마지막으로 전문성에 대한 통찰입니다.

저자는 전문성에 대해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 조차 자신의 임무를 완벽하게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앞서 상대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그렇게 하고 싶은 감정이 동하지 않을 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도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분명 읽기 싫은 날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때 전문가라면~~

내키지 않더라도 해야 할 행동을 하는 것!

이것이 전문가라는 것입니다.

행동은 종종 감정에 선행한다.

마음이 가지 않는데도 정성을 쏟으며 일한 뒤,

뒤늦게 마음이 생기는 경험을 당신 역시 여러 번 겪었을 것이다.

"떄로는 바보가 된 것 같고 심지어 남들에게 그렇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지."

[더 기버 2] p.105 중에서

이번 [기버 2]를 통해서 [기버 1]에서 느꼈고 생각해봤던 문제들을

정말 실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지에 대한 꿀 tip들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제대로 읽고 싶은 분이라면 [기버 1]을 읽고 바로 이어서 [기버 2]를 읽어본다면

제대로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다시 [기버 1]을 읽고,

실제 법칙 하나씩을 자신의 생활에 대조시켜 본다면...

아마 '조'의 성공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될 거라고 생각됩니다.

우선 저부터.. 실행에 옮겨 보겠습니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서평단에서 선정되어 출판사 지원도서로 함께 읽은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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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생리학 인간 생리학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류재화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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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을 때만 해도 19세기 프랑스를 빗대어서 작금의 공무원 만능주의를 논하고자 하는 책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자가 오노레 드 발자크

바로 [고리오 영감]을 지은 그 작가입니다.

19세기 프랑스 공무원의 사회를 치밀하게 꿰뚫는 르포르타주 라고 책띠지에 쓰여 있습니다.

르포르타주라 함음 어떤 사회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단편 보도가 아닌 자신의 식견을 배경으로 심층 취재하고 관련 에피소드 등을 포함시킴으로써 종합적인 기사로 완성하는 것인데.. 약간 이걸 르포로 읽어야 할지 풍자소설로 읽어야 할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그만큼 발자크식 유머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철철 넘쳐 흐르기 때문입니다.

청원자가 자신의 청원을 위해 관청을 찾아가는 과정은 진짜 위트가 넘칩니다.

(69)사소한 잘못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거나 미약한 것이나마 청원하기 위해 관공서를 찾아 배회하다 보면 우선 들어가는 복도는 어둡고 사람이 나오는 출구도 조명이 별로 안좋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극장의 무대 뒤 분장실로 들어간느 문처럼 생긴 출입문에는 눈을 닮은 타원형 유리창이 달려 있고 그 창을 통해 호프만 작품에서나 볼 법한 환상적인 장면을 보게 될 것이다. 청원자는 이제 뭐가 뭔지 도통 알 수 없는 표시를 읽어가며 따라가야 한다. 당신은 우선 해당 부서를 찾아가야 한다. 그러면 안내 사환이 있는 첫 번째 칸에 오게 된다.

정말 200년이 넘게 지났음에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거 같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19세기 프랑스 문학이 두 유파로 나누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빅토르 위고로 대표되는 '서정적이고 낭만적이며 명상적이고 관조적인 일종의 관념 문학'의 한 파와

발자크, 에밀졸라로 대표되는 '만가 조차 읊조릴 여유가 없어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간명하고 행동적이며 공상이나 망상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 리얼 문학'을 이야기하는 한 파입니다.

발자크만으로는 이해가 안되었는데 요새 에밀졸라의 [제르미날]을 읽고 있어서인지 두 유파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정말 신랄하게 뼈 하나하나 까지도 드러내보이는 발자크와 에밀졸라.

이러한 리얼 문학을 이야기한 발자크가 바라본 공무원의 세계는 한마디로 이상한 나라입니다.

효율성이라고는 없이 1830년대의 격동의 시기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혼돈의 카오스입니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1830년대 프랑스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역자의 말에 나온 것처럼 오노레 드 발자크가 [공무원 생리학]을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830년 7월 혁명으로 들어선 루이-필리프의 7월 왕조를 묵도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나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등이 노래하고 있는 것이 바로 1830년 혁명입니다.

1830년은 한번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말해 한번 좌절했다가 다시 호흡을 가다듬어 가속도를 밟은 2차 혁명입니다.

발자크는 루이-필리프의 입헌 군주제를 "공화정과 군주정이 짝짓기를 하는" 형상이라고 요약하기도 합니다.

"영광의 3일"을 통해 부르봉 왕가에서 '루이-필리프 오를레앙'을 내세운 '자유주의적 입헌 군주제'가 시작되고 1848년 2월 혁명때까지 산업혁명과 함께 대大부르주아 체제가 시작됩니다.

책 자체는 220페이지도 안되는 짧은 책입니다.

거기다 페이지마다 삽화가 엄청 있어서 실제 본문 글자수만 본다면 150페이지도 안될 듯 합니다.

그런나 책 내용 자체는 무겁습니다.

그냥 농담을 하는 듯 툭 던지는 한마디 속에 당시 프랑스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여인들의 모습, 공무원의 모습, 그리고 일개 사환의 모습에서도 격동하는 프랑스 사회 속에서 요동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19세기 프랑스 문학 작품을 읽을 때면 그 당시 사회 풍경이 이러했겠구나 하는 점을 그려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생리학이란 말을 사용해서 뭔가 특별한 장치가 있나 싶었는데

당시의 유행했던 19세기 프랑스 사회전반을 풍미한 장르였다고 합니다. 삽화가 들어간 문고본이 아예 대 유행을 했던 것입니다.

(11) 이 책은 사회적 직업 및 계층, 계급을 통해 여러 인물상을 묘사하고 풍자함으로써 다양한 사회현상을 통찰했다. (...) 이 생리학 시리즈는 발자크뿐만 아니라 여러 작가가 시도했는데, 가볍고 쉽게 쓸수록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발자크 생리학 시리즈는 특유의 풍자와 다소 과장된 수사법으로 재미를 유발하긴 했으나, 사회를 보다 심도 있게 분석했기에 일반 독자가 재미로만 읽기에는 어려웠다.

딱 이 설명처럼 내용 자체는 짧고, 삽화도 들어가 있고, 현대의 공무원과도 비슷해 이해하기 쉬울 듯 하지만.. 어렵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본 것이 이 [공무원 생리학]은 오노레 드 발자크의 다른 작품들 그리고 에밀 졸라의 작품들을 통해 프랑스 사회의 공기를 어느정도 흡입한 상태에서 읽어야 제대로 읽었다는 느낌이 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또한 출판사에서 혹시 다른 생리학 시리즈도 출간할 계획이 있는 것일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1) 발자크나 에밀졸라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

2)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분위기를 읽고 싶으신 분

3) 살짝 비꼬는 듯한 위트를 좋아하시는 분

4) 000권 독서 읽기 목표가 있어서 권 수를 채우고 싶으신 분

?????? 이런 분들에게 비추합니다.

1) 정말 위트만 있을 거라고 기대하시는 분

2) 공무원 까는 속 시원한 내용일거라 생각하시는 분..(머리가 아프실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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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스페이스 | 미래 도시 채석장 시리즈
렘 콜하스.프레드릭 제임슨 지음, 임경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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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장 시리즈에 임하는 저의 자세는

겸손함입니다.

저는 이 시리즈의 내용의 50%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눈이 활자를 읽어나갈 뿐입니다.

이 지식인들의 사고 체계를 따라가기에는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는 ....

감히 책의 '좋고 나쁨' 책의 유용성등을 평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에 대해서 내릴 수 있는 저의 평가는 나와 같은 초보자가 읽기에도 수월하느냐의 관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채석장 시리즈]는 조금 ... 불친절합니다.

어렵습니다.

당신은 거기에서 파편들을 찾을 수 있지만,

또한 찾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런 발굴 작업을 통해 우리는

파편들과 보물들 그 자체보다

우리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채석장] 시리즈의 이 말이 무색하지 않게 사실 이 [정크 스페이스]를 통해 찾게 되는 것은 '나'입니다.

특히 건축 분야(?)의 일을 어느정도 하고 있는 저에게 스페이스(공간)이라는 개념은 친숙 한 듯 하면서도 친숙하지 않은 그런 느낌입니다.

20세기에 건축은 실종되었다.

우리는 현미경 아래에 놓인 각주를 읽고 있다.

혹여 그것이 소설로 변할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말이다.

대중을 향한 우리의 관심은 오히려 우리를

민중의 건축에 눈감게 만들었다.

정크스페이스는 돌연변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이며 본체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이러한 말들에 대해 번역가는 아래와 같이 해석을 해줍니다.

(다행히 번역자의 해설 덕분에 내용을 50% 이해합니다)

건축가의 임무는 건축 속에 역사와 공간의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 아니다.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웅장하고 세련되며 항국적이고 기념비적인 구조물을 디자인하고 생산하는 것도 아니다. 대신 건축가가 참조해야 할 단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쇼핑'이다.

모든 건축과 도시 계획은 쇼핑을 담아낼 수 있는 비닐봉지를 만들어내는 것과 관계를 맺는다.

건물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정크 스페이스의 상부구조는 건축이 아니라 쇼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콜하스는 주장한다.

"정크스페이스는 거미없는 거미집이다."

정크 스페이스에서 갑자기 쇼핑?

이 연결고리는 프레드릭 제임스의 글을 통해 더 명확하게 그 상관관계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정크스페이 글을 콜하스가 쓰고 그 다음에 프레드릭 제임스가 논평을 쓴 줄 알았는데

콜하그가 '정크 스페이스'를 쓰기 전에 이미 '위대한 도약' '쇼핑 안내서'를 썼고, 그 책에 대한 논평을 보여주는 글이 [미래 도시] 입니다. 오히려 [미래 도시]에서 먼저 정크 스페이스의 개념이 이야기됩니다.

통제공간이나 정크스페이스라 칭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공간이 탄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이런 새로운 유형의 공간 탄생은 인간의 심리와 인간의 현실 그 자체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임스의 이 논평에 영향을 받아 콜하스가 [정크 스페이스]를 쓴 것 같다라는 생각을 많이 받았습니다.

번역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며 쇼핑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을 바꾸어줍니다. 이 쇼핑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지를 정크스페이스가 그대로 보여준다는 개념인데.. 사실 이 부분 연결은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21세기 도시 공간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게 될 것인가? 이 정치적이고 실존적인 문제에 대해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는 간명하게 답변한다.

쇼핑이다.

그는 주장한다. "쇼핑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공적 활동의 마지막 형식이다." 이는 쇼핑이 21세기의 사회적 관계를 구성하고 우리의 삶을 조직화하는 궁극의 원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너무나 당연한 활동인 쇼핑.

이 쇼핑이 과연 우리의 사회적 공간적 경험마저도 조직화한다는 이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온라인쇼핑에 특화되어 있는 지금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 말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어느순간부터 철저한 소비주체가 되어버린 것은 사실입니다.

어떻게 소비주체로 살아가야 할지를 조금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책 [정크스페이스 / 미래도시]

잘 보았습니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 지원으로 읽은 도서에 대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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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에 대한 노트 채석장 시리즈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알렉산더 클루게 저자, 김수환.유운성 역자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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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완독해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부록 포함 6권의 책을 구입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읽어나가는데..

이게 수학책인지

사회책인지

역사책인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 중도 포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노동'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 관념들

이 하나 하나를 따라가기가 벅찬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한번 읽었으니 이해는 조금 더 쉽겠지라는 생각으로

[자본]에 대한 노트를 펼쳤습니다.

 

아 자본론 + 영화 시나리오!!

안그래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 영화인데..

어려운 자본론과 영화가 합쳐지니 대략 난감이었습니다.

 

이번 책은 소련의 영화감독이자 영화이론가인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이

마르크스의 '자본'을 영화로 만드는 계획을 세우며 작성한 노트입니다.

프로젝트 기획안이라고 해야할까요?

 

그러다보니 내용 중에 영화 제작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영화 제작의 기본 원칙으로 간주할 것은 다음과 같다.

사물을 구축하는 기법으로서 가장 작은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관통하는 것,

그리고 공통된 형식의 순전히 기술적인 요소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는 것

출처 입력

아... 분명 한글인데.. 외국어의 느낌입니다.

완전 생소한 영화제작의 세계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책 자체는 재미있습니다.

글 자체가 어려운 단어들, 생소한 단어들이 나와서 그렇지

저자의 생각의 단편들이기 때문에 형식이 파괴된 상태로 글들이 이어집니다.

약간 일기장을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비교해도 잘 드러나지 않는) 이러한 차이는 아트락치온( 즉 몽타주 요소)들이 단일한 효과를 내야 하는 영역들에서 발견된다.

감각적인 아트락치온들은 동일한 감정을 자극한다는 원칙에 따라 구성된다.

거기엔 나름의 "유사성"이 있다.

출처 입력

생소한 영화 제작의 세계

예술에서 통용되는 언어들

책을 읽는 내내 당혹감을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책 내용을 얼마나 이해하셨어요? 한다면 ..

음... 10%요?

라고 답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서문에서 모스크바 태생의 영화학자인 옥사나 불가코바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자신을 매혹했던 [율리시스]의 내적 독백을 사용해 영화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

출처 입력

근데 재미있는 사실은 '에이젠슈타인'이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은 적이 없다는 것

불가코바는 그가하고자 했던 것은 '영화의 가능한 미래를 제시하는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결과는 실제 영화가 아닌 다른 곳에서 나타납니다.

이 에이젠슈타인의 <자본>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인 두명의 현대 예술가

영국 감독 피터 그리너웨이가 1964년 전시 <겨울 궁전의 에이젠슈테인>을

알렉산더 클루게가 9시간 반짜리 비디오콜라주 <이데올로기적 고대로부터 온 소식 : 마르크스 - 에이젠슈테인 - 자본>을

제작한 것입니다.

'에이젠슈테인'의 영화 [10월]과 <자본> 프로젝트는 '이차원적 책'으로는 구현될 수 없다고 말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책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예술의 세계는 정말 넓고도 깊고도 어렵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책

[자본]을 읽지 않고 영화를 만들고자 한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자본]에 대한 노트

 

한번 읽고는 그냥 겉만 핥은 느낌이어서 다시 한번 꼭 읽어보리라 다짐을 합니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 지원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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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극우주의의 양상 채석장 시리즈
테오도어 W. 아도르노 지음, 이경진 옮김, 폴커 바이스 해제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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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이후 독일 사상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비판이론]을 이끈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중심인물인 "테오도어 W. 아도르노"

그가 1967년 4월 6일 오스트리아 사회주의 학생 연합의 초청을 받아 빈 대학에서 강연한 "신극우주의의 양상"

그는 이 강연에서

'극우주의에 대한 의식하지 못하는 여러가지 지점들'을 이야기합니다.

극우주의라는 것 자체가 생소했던 저로서는

당연히 옮긴이의 해설에 주목하게 됩니다.

옮긴이는 극우주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독일에서 극우주의는 주로 나치즘의 이데올로기를 추종하는 운동으로 이해된다.

이를테면 나치즘이 표방한 반유대주의와 인종주의,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외국인 혐오, 배타적 애국주의를 주장하는 운동들은 극우로 분류된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극우주의? 글쎄 나랑 크게 관련이 없는데..'

'에이 이건 .. 뭐 세계대전때 이야기잖아'

'이념 전쟁이 한창일때의 이야기지'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일어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절대 '극우주의와 멀지 않구나' 하는 것을

책을 다 읽고 나니 생각이 듭니다.

다시 한번 옮긴이가 말합니다.

이른바 일베나 '애국보수'로 몸살을 앓는 최근 한국의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것이지요.

극우주의가 어떤 위기 의식에서 발생한다는 것

또 극우주의자들이 자신을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나 희생자와 동일시한다는 것

그래서 보통은 사회의 소수자라고 간주되어야 할 여성이나 이민자들에게 오히려 피해를 입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잇는 파시즘이 얼마나 위험한지...

단순히 '일베' '애국보수'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자유롭게 현 정권에 대한 비판과 토의가 이루어져야하는데 아예 토의자체를 묵살시켜 버리는 또다른 '극우세력들'

자신들은 민중의 편이라고 이야기하며 막상 실체는 그렇지 못한 '운동권 세력들'

극우주의라는 것이 단순 이념을 넘어서는 어떠한 똥고집들의 집합체는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아도르노의 말처럼

"극우주의는 오히려 서구 민주주의가 아직 온전히 달성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민주주의의 상처라는 것"

그 방향성이 좌파냐 우파냐의 문제가 아닌

민주적이냐 아니냐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난 노동자의 편이니 '민주적이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난 소수자의 편이니 '민주적이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민주주의는 형식과 절차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타인의 의견들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수용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맹목적 비판'만이 난무하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도르노가 강조했던 '프로파간다'

그는 이러한 거짓 선동을 이야기하는데...

이러한 거짓 선동에 대해 제대로 깨어 있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산더미 같은 자료들, 특히 보통은 도무지 반박할 수 없는 숫자들을 동원하는 트릭"

이러한 것들이 모두 구체주의에 호소하는 '권위를 부여하는 지식들로' 벌이는 허풍인 것을..

우리는 모두 깨어있어야 합니다.

아무래도 깨어 있긴 위해선 어렵지만 이러한 책들을 끊임없이 읽어야 하고

또 이 책에 대해서도 과감히 '논리적 비판'을 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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