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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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열린책들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영상 접근성이 쉬워진 시대, 숏폼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가 나누는 거의 모든 이야기는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숏폼이 뇌를 망가뜨린다고 다시 책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은 잡음 앞에서 흩어지고, 텍스트힙의 물결이 일렁여도 출판업계는 쉽게 안도하고 기뻐하지 못한다. 이러한 흐름을 한낱 소비자 입장에서 지켜보며 책에 굿즈를 끼워 팔거나 웃기는 소리를 곁들이더라도 독서율의 지표를 유의미하게 끌어올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힘을 영상에 전부 위탁해버리게 되어서는 아닌지 생각하곤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는 그대의 책이다』를 좋은 기회로 받게 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예술 작품 같은 한 권의 책에 쉽사리 첫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책장을 빠르게 넘기거나,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각 장마다 다른 종이의 색, 폰트, 디자인, 그리고…….


/

저는 한 권의 책이며

그것도 살아 있는 책입니다.

당신이 원하신다면,

저는 가장 가뿐하고 은근하고 간편한 여행으로

당신을 안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뭐랄까요……

어떤 강렬한 것을

함께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P.9, 인사말


이 책의 원제는 「LE LIVRE DU VOYAGE」로 한국어로 직역하면 「여행의 책」이나 「여행에 관한 책」이 된다. 책은 시작하기에 앞서 인사말로 독자가 온전히 이 책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고, 공기의 세계, 흙의 세계, 불의 세계, 물의 세계의 순서로 여행을 떠난다. 세상[공기]과 자아[흙]와 두려움[불]을 자극하고 독자의 내면을 과감하게 헤집는 텍스트들, 물의 세계에서는 선조를 거슬러 올라가고 단세포 생물을 지나 태초의 빅뱅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을 거치며 이 거대한 세상을 느끼게 한다. 외국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는 책이지만, 그보다 뭔가 조금 다른 카테고리에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마치 명상이나 상상을 하는 것 같다. 내가 다른 책을 읽었을 때처럼, 어쩌면 보다 쉽게 문자만으로도 상상력이 자극받는다.


한국에는 1998년 7월에 초판이 나왔을 정도로 꽤 역사가 있는 책이었다. 오래전 출간된 책을 새로운 시도와 함께 다시 낸 출판사의 결의는 어쩌면 이 책이 가지는 상상하게 만드는 힘을 믿었던 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는 그대의 책이다』는 텍스트로 책과 함께 독자가 이런저런 여행을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 크게는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상상하고 느끼는 방법을 알려준다. 영상 매체가 끝없이 공급되는 세상. 책 읽기가 어려워진 시대에 글을 읽고 이미지를 그리는 힘을 기르고 싶은 이에게 이 책으로 시작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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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사란 무엇인가?
디르크 회르더 외 지음, 이용일 옮김 / 교유서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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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교유당 서포터즈로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최근 대구의 성서공단에서 태국의 이주노동자 뚜안 씨가 법무부의 단속을 피하려다 공장에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우연히 클릭한 뉴스 기사는 인권과 보호의 언어로 이주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감싸며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한 누리꾼의 댓글 ─ 거의 모든 뉴스 기사의 댓글이 상당히 공격적이지만 ─ 은 법적 질서의 언어로 그녀의 죽음은 당연한 결과라는 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상반된 논조를 가진 두 글을 보며,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몰라서 도망치듯 그 페이지를 빠져나온 기억이 있다. 그때를 떠올리면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에 아직도 얼굴이 화끈해진다. '왜 그런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을까'와 '왜 댓글은 한 이주노동자와 그 주변인들의 고통을 납작하게 만들며, 나는 왜 그 댓글을 보며 혼란스러웠을까'라는 질문은 내 안에서 점점 더 커졌고, '우리는 '이주[移住]' 나 '이주민[移住民]' 그리고 '이주사[移住史]'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가 되었다.


이주사 연구에서 '젠더'라는 분석 범주를 도입하여 학제 간 접근을 선도한 크리스티아네 하르치히 교수와 이주사를 기존의 국가 중심 서사에서 탈피해 다양한 언어권 하층민의 시각에서 주력해온 디르크 회르더 교수, 그리고 이탈리아계 이주민의 주거 환경과 가족 구조에 주목해 이주를 계급, 젠더, 가사노동의 관점에 새롭게 해석한 바가 있는 도나 가바치아 교수가 이주 역사를 깊이 있고, 넓게 조망하는 연구서 『이주사란 무엇인가?』가 교유서가를 통해 출간되었다.


책은 (1) 서문에서 잘 알려진 관점들을 재개념화하고, (2) 장기적 관점에서의 인류 역사 속 이주를 들여다보며, (3) 이주와 문화적 상호작용에 대한 이론들을 배운다. 이어 (4) 이주 경로들에 대한 시스템 접근법으로 출발지–이동 과정–수용 사회–글로벌 상호작용으로 이어지는 상호 연결된 과정을 보고, (5) 학문적 도전으로서의 이주 일상들과 (6) 이주에 대한 21세기 초의 전망들을 확인하며 마무리된다.


/

이주는 복잡하고, 대체로 글로벌한 현상이다.

이주민들은 특정한 장소에서 출발하여 많은 문화권들 가운데서

그들의 목적지를 선택한다.

들어오는 이주와 나가는 이주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은

이러한 이주의 복합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


이동은 다방향이며 복잡하고, 일시적이거나 장기적이고,

자발적이거나 강제적이다.

다양한 선택 조건들을 가지고 이주민 여성들과 남성들은 어떠한 결정을 내린다.

이주사는 인간의 "흐름"이나 이주의 "물결"을 다루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능력 안에서 사회적 선택들과 제약들을 교섭하며

인생 계획을 추구해나가는 행위 주체로서의 남성들과 여성들을 연구한다.

이주사는 이동성의 양쪽 끝 모두를 본다.


가족, 도시 거주지와 마을,  또는 사회 전체에서 구성원을 잃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목적지 사회들에서 "인적 자본"을 얻는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 P.30, 「1장. 서문: 잘 알려진 관점들 ─ 학술적 재개념화」


나 개인은 '이주'라는 개념과는 거의 연관이 없었기에, 이주에 관한 복잡한 선택들과 그에 대한 영향을 처음 이 책으로 배우게 되었다. 기존 개념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도 이주사를 넘어 인간 자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대표적으로 3장에서 다뤄지는 '푸시-풀 모델'에 대한 설명이 그러했다. 학계에서 사람은 밀어내는 요인과 끌어당기는 요인 사이에서 이동·선택한다는 '푸시-풀 모델'은 설명만 들으면 꽤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소득 중심의 모델이 생활비와 주거비, 식비를 소홀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비판받았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저자는 다시 한번 이주민은 이런 단순한 선택이 아닌, 보다 거시적이며 여러 합리성을 고려하며 이주를 선택한다고 주장한다.

거시적 차원으로 세계 체제론을 다룬 부분 역시 공부가 되었는데, 세계 각국이 개별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자본 체제 안에서 구조적으로 연결되었음을 확실히 정리해 주고, 보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국가가 발전 단계나 그 나라의 문제가 아닌 가난해지도록 기능하는 불평등한 위치였음을 알게 해준다.


얇은 책 한 권에 담긴 지식이 너무나도 방대해 솔직히 말하면 읽는 데 애를 먹었다. 내가 이주민이 아니기도 하고, 이주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이전에 '이주'라는 단어를 듣고 떠올리던 얄팍한 이미지는 책을 읽으며 더욱 풍성해지고, 생소했던 개념이나 모델에 대해 배우는 순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트이기도 했다. 돌아가신 뚜안 씨를 포함해 수많은 이주민과 함께하는 우리들이 이주민을 차별과 혐오가 아닌 이해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 번은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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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관하여 - 시몬 베유와의 대화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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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김영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인류 역사에는 한 시대에 커다란 획을 그은 무수히 많은 철학자가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배운다. 니체나 하이데거로 철학 공부는 끝일 줄 알았던 뭘 모르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사유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뒤를 이어 푸코, 데리다, 들뢰즈, 하버마스를 지나 지젝과 아감벤 등의 새로운 사상이나 시선이 등장한다. 철학이란 결국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현시대를 돌아보는 철학을 배운다는 건 이런 거라고 한병철의 책을 통해서 느꼈다. 한병철의 『고통 없는 사회』로 그의 저서를 자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서사의 위기』를 통해서도 정보와 이야기의 차이나 서사가 가지는 힘 등을 알았으니까. 얼마 전 아스투리아스 공주상을 수상한 철학자 한병철의 신간이 나왔다. 시몬 베유의 철학을 한병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신에 관하여』다.

시몬 베유를 접하지 못한 독자인 나는 제목만 보았을 때에는 종교에 관한 내용일까 추측했었다. 더 정확히는 과거의 그 결핍과 고통이 있는 종교가 아닌 지금 현재 돈에 침식당한 종교에 대한 비판일까 하며. 책은 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종교적 신이 아닌 수행에 가까운 신을 이야기한다. 시몬 베유의 철학을 바탕으로 쓰인 책은 지금 시대의 사회 현상, 우리 주위의 이야기이며 때론 나에게도 해당이 되는 글이었다. 처음 내 마음을 사로잡은 문장은 불과 12쪽부터 있었다.


/

지각은 정보 쓰레기와 소통 쓰레기, 소리 쓰레기와 광경 쓰레기를 먹고 살쪄 거의 비대해진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비 가축으로 변화시킨다.

지각은 점점 더 자극과 중독에 휘둘린다.

이제 지각은 먹는 일에만 몰두하므로 더는 바라보지 않는다.


─ P.12, 「주의」


​사실은 나도 이 흐름에 어느 정도 몸을 싣고 있지 않나. 거의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 어쩌면 이 흐름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그냥 보이지 않는 것뿐일 텐데 ─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그나마 한병철의 팩트 폭격에 반발심보다는 공감하게 되는 건, 적극적으로 좋아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왜 사회적 재난 앞에 자신의 계정에 발 빠르게 정보를 업로드하고, 그걸로 자신의 자아가 삽입된 추모보다 과한 무언가를 생산하고 내보이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한병철의 책은 SNS가 일상에 자리 잡으며 손 놓고 바라보게 되는 과도한 자아 표출의 행렬에 느낀 회의감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돕는다.


/

시몬 베유는 문턱 위에서 기다리며 굳건히 머무르기를 겸손이라고 부른다.


​─ P.36


​슬픈 건 바라보고, 생각하고,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됨을 잃어버리는 사회적 흐름이 더욱 거세진다는 것이다. 예술가만이 가능했던 창작은 죽고, 이제 모두가 AI로 쓰레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온 국민이 사용하는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카카오톡에서도 숏폼 콘텐츠를 제공하기 시작한다. 흔히 우스갯소리로 인류는 거대한 조별 과제를 떠안고 있다고 표현한다. 정말 많은 부분에서 그러지 않을까. 이해관계가 만드는 온갖 갈등 사이에 옳은 방향은 대체로 길을 잃고 떠돈다.

내게 이 책은 삶의 태도에 대한 철학 책에 그치지 않았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될 때의 부작용이 어렴풋하게나마 보이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개개인이 관조하는 법을 망각하고 온갖 것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 애를 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저마다 카메라로 짧은 동영상을 찍고, 단 몇 초의 즐거움을 위해 수많은 쓰레기가 생성된다. 익명의 누군가가 키보드를 놀려 만들어진 납작한 문장은 타인의 고통을 압축한다. 모두가 파멸로 향하지만 그 과정은 쾌락적이라 아무도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요즘은 리뷰 쓸 때마다 완곡한 표현을 자꾸 쓰게 된다. '반드시 읽어라!'가 아닌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라고. '책 한 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하는 어떤 망설임 또는 방어기제. 그럼에도 한병철의 『신에 관하여』는 숏폼의 시대에 모두에게 읽혀야 할 책인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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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생각한다 - 인간은 동물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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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열린책들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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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하는 연구는 결국 모두 자기 자신에 관한 연구일 뿐이다.

하늘과 땅, 산과 강, 해와 달, 그리고 별까지

전부 자기 자신을 의미하는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 그 누구도 자기 자신 외에 달리 연구해야 할 사항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작년에는 스켑틱 37호와 비건에 대한 책을 읽으며, 동물의 권리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변명이겠지만 내가 고등학생 때에는 비건이나 동물권에 대해 가르치는 수업이 없었으니, 다소 늦은 감은 없잖아 있는 것 같다. 어차피 고기가 별로 맛있는 편은 아니었으니 스스로를 '리듀스테리언[reduceterian]'으로 정의하며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에 종종 노출되는 번드르르한 고기들과 파충류 사육장을 보며 뭐라 말하기 어려운 모호한 생각들이 들었다.


(1) 스스로 표현할 길 없는 무대, 당신의 언어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해 구하러 갈 수 없었습니다

(2) 누가 책 한 권을 주며 예전 책에는 없는 부분이고 상위 개념의 문제라 한다


지난 12월 읽었던 리산 시인의 시구절이다. 그때는 이 문장들이 여성인권에 대해서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이 문장은 동물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현대 독일 철학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철학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신간 『동물은 생각한다』는 우리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인식하고 관계해야 하는지 철학적으로 성찰하게 돕는다.

프레히트는 자신이 동물을 얼마나 사랑했고, 또 동물원에 대한 어린 시절 추억을 고백하며 책을 시작한다. 동물원장까지 될 뻔했으나 다행스럽게도 꿈이 깨졌고, 그 덕분에 동물에 대한 사랑과 양심의 가책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고. 저자는 인간이 동물을 지배하는 게 거의 모두에게 내면화된 세상, 지배하는 쪽은 이성적이고 도덕적이고, 지배당하는 쪽은 비이성적이고 야만적인 생명체로 취급해 무한으로 착취하는 점을 지적하며 본론으로 들어간다.


책은 총 4부로, (1)동물에 대한 인간 사상이 어떻게 지금으로 다듬어져왔는지 긴 역사와 (2)인간과 동물의 문화사를 다룬 다음, (3)저자의 윤리학을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4)지금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동물 착취를 조목조목 짚으며 살펴보도록 돕는다.

프레히트의 방대한 지식에 좋았던 부분을 전부 이야기하기 힘든 게 아쉽다. 철학과 사상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조목조목 비판하는 부분은 철학사로 벽돌 책 3권을 쓴 경력 다운 글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최근에 한 AI로 새소리 분석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었는데, 프레히트의 비판적 텍스트를 읽으며 이미 동물은 저마다의 언어로 세밀하게 소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물 각자로써 적절한 행동을 생각하고 수행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며 기존에 가진 묵은 생각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동물에 무자비하게 폭력적인 현시대를 직간접적으로 마주하며 내가 죽고 다음 생에 동물로 태어나면 X되겠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주디스 버틀러는 '인간의 상호작용이란 합리와 모순, 붕괴와 구축 사이의 끊임없는 변증법'이라고 말했다. 우리 인간은 붕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붕괴의 대상이 인간이 아닌 동물일지라도.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비판적 텍스트로 많은 사람이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을 깬다면, 자기 자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우리는 동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세상은 조금 더 좋아지지 않을까?


처음 프레히트의 책을 읽었을 때, 현재와 맞물려서 전개되는 논리와 날카로운 통찰력에 단숨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틈틈이 저서를 찾아보며 공감하고 있었고, 좋은 기회로 읽게 된 이번 저서 역시 너무 좋았다. 동물에 대한 생각의 틀을 바꿔주는 것은 물론, 아무리 고전 철학 사상이라도 묵은 관념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무기도 얻는 책. 모두가 함께 읽고 인간 중심적 사회에서 인간 동물학적 사회로 사고를 전환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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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을유사상고전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사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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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을유문화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짧게 돌아다니는 니체의 글들을 참 좋아했다. 니체의 글에서 파생된 책들, 일력과 필사 책, 그리고 온라인에 떠다니는 명언들. 그럼에도 원전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아직까지도 읽기를 미루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좋은 것은 가장 마지막에' 취하고 싶어 하다 보니 어느새 지금까지 안 읽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실은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하며 가장 처음으로 산 책이 을유사상고전의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이었지만, 이 역시 아직도 새 책인 상태로 책장에 꽂혀있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외에도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 등의 훌륭한 고전을 꾸준히 내고 있는 을유문화사의 브랜드 「을유사상고전」에서 드디어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나왔다. '너무 늦은 감이 있지 않나'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책 뒤표지에 강조한 문구들을 보니 그만큼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던 걸까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특히, '원전의 문체와 운율감을 살린'이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그동안 파편적으로 읽었던 니체의 문장을 한 번도 산문시라고 여겼던 적이 없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 니체의 의도에 맞춘 읽기와 사유에 집중한 번역과 편집
* 저자의 사유에 다가가도록 돕는 해제와 옮긴이의 말
* 니체 철학 연구자의 '원전의 문체와 운율감을 살린' 완역본


/

차라투스트라는 삼십 세가 되었을 때,

자신의 고향과 그곳의 호수를 떠나 산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정신과 고독을 즐겼으며,

그렇게 십 년을 지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마침내 변화했다.

─ 그리고 어느 날 아침 그는 아침놀과 함께 일어나

태양 앞으로 나아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보라! 나는 마치 꿀을 너무 많이 모은 꿀벌과도 같이 나의 지혜에 물려 있다.

내게는 내밀고 있는 손들이 필요하다.
나는 선사하고 싶고 나누어 주고 싶다.

그리하여 사람들 가운데 지혜로운 자들은 또 한 번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가난한 사람들은 또 한 번 자신들의 부유함을 기뻐할 때까지.
그러기 위해 나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태양 그대가 저녁마다 그리하듯이 바다 너머로 가서,

심지어 하계에도 빛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대 너무나도 넘쳐 나는 천체여!
내가 내려가 다가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표현하듯,

나도 그대와 마찬가지로 몰락해야 하는 것이다. (…) "

​─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P.17, 「차라투스트라의 서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몰락한 차라투스트라가 군중을 향해 위버멘쉬를 가르치는 여러 편의 철학적 산문시로 이루어져 있다. 원전이 되는 책을 읽으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진리 ─어쩌면, 진리가 아니라 찰나의 순간에만 유효하는 그런 말이겠지만─에 최근에 접한 추상 예술들이 떠오른다. 추상화 그림을 보고 잠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가 다시 보았을 때에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프리스타일 연주를 들으며 멜로디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처럼, 니체의 철학도 허공에 떠있다. 신은 죽었고, 차라투스트라의 말은 때론 절대적 진리처럼 다가오다가도, 어느 순간 반박하고 싶어지기도, 그리고 지금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언젠가 먼 미래에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어렴풋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철학'이나 '사상'이란 키워드에 여전히 겁이 많은 편이지만, 번역가의 노력 덕분에 물 흐르듯 읽힌 책. 더 나아가 처음으로 원전을 읽으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시간이 흐르면 꼭 다시 펼쳐보고 싶은 고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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