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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관하여 - 시몬 베유와의 대화 ㅣ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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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김영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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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는 한 시대에 커다란 획을 그은 무수히 많은 철학자가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배운다. 니체나 하이데거로 철학 공부는 끝일 줄 알았던 뭘 모르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사유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뒤를 이어 푸코, 데리다, 들뢰즈, 하버마스를 지나 지젝과 아감벤 등의 새로운 사상이나 시선이 등장한다. 철학이란 결국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현시대를 돌아보는 철학을 배운다는 건 이런 거라고 한병철의 책을 통해서 느꼈다. 한병철의 『고통 없는 사회』로 그의 저서를 자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서사의 위기』를 통해서도 정보와 이야기의 차이나 서사가 가지는 힘 등을 알았으니까. 얼마 전 아스투리아스 공주상을 수상한 철학자 한병철의 신간이 나왔다. 시몬 베유의 철학을 한병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신에 관하여』다.
시몬 베유를 접하지 못한 독자인 나는 제목만 보았을 때에는 종교에 관한 내용일까 추측했었다. 더 정확히는 과거의 그 결핍과 고통이 있는 종교가 아닌 지금 현재 돈에 침식당한 종교에 대한 비판일까 하며. 책은 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종교적 신이 아닌 수행에 가까운 신을 이야기한다. 시몬 베유의 철학을 바탕으로 쓰인 책은 지금 시대의 사회 현상, 우리 주위의 이야기이며 때론 나에게도 해당이 되는 글이었다. 처음 내 마음을 사로잡은 문장은 불과 12쪽부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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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은 정보 쓰레기와 소통 쓰레기, 소리 쓰레기와 광경 쓰레기를 먹고 살쪄 거의 비대해진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비 가축으로 변화시킨다.
지각은 점점 더 자극과 중독에 휘둘린다.
이제 지각은 먹는 일에만 몰두하므로 더는 바라보지 않는다.
─ P.12, 「주의」
사실은 나도 이 흐름에 어느 정도 몸을 싣고 있지 않나. 거의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 어쩌면 이 흐름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그냥 보이지 않는 것뿐일 텐데 ─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그나마 한병철의 팩트 폭격에 반발심보다는 공감하게 되는 건, 적극적으로 좋아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왜 사회적 재난 앞에 자신의 계정에 발 빠르게 정보를 업로드하고, 그걸로 자신의 자아가 삽입된 추모보다 과한 무언가를 생산하고 내보이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한병철의 책은 SNS가 일상에 자리 잡으며 손 놓고 바라보게 되는 과도한 자아 표출의 행렬에 느낀 회의감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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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베유는 문턱 위에서 기다리며 굳건히 머무르기를 겸손이라고 부른다.
─ P.36
슬픈 건 바라보고, 생각하고,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됨을 잃어버리는 사회적 흐름이 더욱 거세진다는 것이다. 예술가만이 가능했던 창작은 죽고, 이제 모두가 AI로 쓰레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온 국민이 사용하는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카카오톡에서도 숏폼 콘텐츠를 제공하기 시작한다. 흔히 우스갯소리로 인류는 거대한 조별 과제를 떠안고 있다고 표현한다. 정말 많은 부분에서 그러지 않을까. 이해관계가 만드는 온갖 갈등 사이에 옳은 방향은 대체로 길을 잃고 떠돈다.
내게 이 책은 삶의 태도에 대한 철학 책에 그치지 않았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될 때의 부작용이 어렴풋하게나마 보이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개개인이 관조하는 법을 망각하고 온갖 것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 애를 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저마다 카메라로 짧은 동영상을 찍고, 단 몇 초의 즐거움을 위해 수많은 쓰레기가 생성된다. 익명의 누군가가 키보드를 놀려 만들어진 납작한 문장은 타인의 고통을 압축한다. 모두가 파멸로 향하지만 그 과정은 쾌락적이라 아무도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요즘은 리뷰 쓸 때마다 완곡한 표현을 자꾸 쓰게 된다. '반드시 읽어라!'가 아닌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라고. '책 한 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하는 어떤 망설임 또는 방어기제. 그럼에도 한병철의 『신에 관하여』는 숏폼의 시대에 모두에게 읽혀야 할 책인 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