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 브레인 - 우리 안의 극단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레오르 즈미그로드 지음, 김아림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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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어크로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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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를 둘러싼 싸움은 언어 게임과 비슷하다. 단어와 수사적 장치가 상대방에게 던져지고 아슬아슬하게 비켜간다. 반동주의자, 혁명론자, 보수, 진보, 음모론자, 우월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급진주의자, 광신자 같은 단어들. 우리는 이러한 꼬리표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는 실제로 누구를 지칭하는지 아는 경우가 거의 없다. … 우리는 사람이나 생각을 무 자르듯이 깔끔하게 각각의 범주로 나누어 명확성을 높이고 어떤 정체성을 씌우려고 한다. 이웃에 광신도가 있다! 10대 아이들은 바보다! 이런 분류법은 유쾌하거나 충격을 안긴다. 하지만 이것은 언어학적인 양동이와 같아서 사람들의 삶 속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의 실제 모습을 덮어 씌운다. 삶 속의 이데올로기는 지저분하고, 위선적이고, 오만하고, 자기파괴적이다. 거기에는 상실과 기쁨, 유머, 후회, 두려움, 좌절, 주저, 반추, 친밀함, 슬픔이 있다. 그리고 눈물과 한탄, 환한 미소, 혼란스러워하는 곁눈질도 있다.

─ P.22, 「1,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 中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화자의 아버지는 오랜 기간 '빨갱이'였다. 이 사람은 이렇고요, 저 사람은 저렇대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오늘날 우리는 신념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언어의 집이 여기저기 세워지면서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일상에 더욱 깊게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면서 극단적인 사람도 마주하게 된다. 아, 말이 안 통할 것 같다는 예감. 그냥 대화를 애초에 안 하면 서로서로 편하다. 딱 그 정도로만 살고 있었다.


나는 어째서 사람이 극단적인 생각에 빠지게 되는지 여기에 대해서는 한 번도 고민하거나 의심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레오르 즈미그로드의 『이데올로기 브레인』은 이데올로기와 우리가 이데올로기에 빠지게 되는 이유를 철학, 심리학, 신경과학, 역사와 종교 등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본 책이다.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감옥에서 태어난 이데올로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며 어떻게 변질되었고, 사람들은 어떻게 극단적인 생각에 치우치게 되는가.


동그란 원에 기다란 막대가 두 개 달려있다. 동그란 원 안에는 점이 찍혀있다. 이것은 오리인가, 토끼인가. 하나의 그림에서 어떤 사람은 오리를 보았고, 어떤 사람은 토끼를 보았다. 그것은 오리이며 토끼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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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대상, 같은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이 우리를 양극으로 분열시킨다.

우리는 단순한 착시와 모호성을 받아들이는 대신 각자의 해석을 상대에게 설교하며 전쟁을 벌인다.


─ P.236, 「14, 정치적 착시」


서로 조율할 수 없다면 극단주의는 큰 골칫거리가 된다. 문제가 생겼기에 연구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신경과학자들은 아이들을 인터뷰를 하고, 뇌를 들여다보고, 환경과 삶을 분석한다. 아몬드처럼 생긴 편도체는 두려움, 분노, 혐오 등 부정적 감정을 맡는다. 보수주의자는 이 편도체가 더 큰 경향이 있다. 집, 이웃, 도시, 국가, 기후로 인해 극단주의로 빠지는 경우도 있다. 따돌림당한 뇌 역시 극단주의에 빠지기 쉽다.


저마다의 뇌는 들여다볼 수 없어도, 또 뇌구조나 환경이 애초에 그러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우리의 내면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이분법적이고 극단적인 사고방식이 있을 수 있음을 인지하는 순간 우리의 행동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의 신념은 옳을까?


이 책은 읽는 동안, 나 자신을 계속해서 의심하게 만든 책이었다. 편견으로 가득한 말을 들어오고, 때로는 특정 부류의 사람인 양 변명도 못해보고 낙인찍혀봤기에 내가 타인을 대할 때에는 유연한 사고로 대하고자 다짐했지만, 얼마 전에도 다른 책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경직된 사고를 확인했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적 사고에 대한 이 책은 극단주의에 빠지기 쉬운 뇌를 가진 사람들의 사례들과 나의 공통분모는 없었는지, 내 생각의 오류를 발견했을 때 오류에서 빠져나올 때 더디거나 머뭇거리지는 않았는지, 나는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또 다른 극단주의적 생각에 빠져있는 건 아닌지 검토해 보게 된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경직된 사고를 인지하고 고치기 위해 노력할까? 지금 내가 타인에 대해 일말의 기대조차 없는 것도 경직되고 편향된 사고일 수도. 이 책을 읽고 다 같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유연하게 생각해 봐요! 대립하고 싸우지 말고, 서로 타협안을 찾아가요! …라고 어딘가에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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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만의 책장 - 여성의 삶을 바꾼 책 50
데버라 펠더 지음, 박희원 옮김 / 신사책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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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우주님이 모집하신 #우주서평단 과

신사책방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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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사실상 어떤 법적 지위도 누릴 수 없었고

지적 능력도 없다고 여겨졌으며

남성에게 복종하고 기분을 맞춰주라는 요구만이

여성의 역할이자 정체성이던 시대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은 가축보다 조금 나은 존재가 아니라

이성을 갖춘 인간이라고 주장했다.

─ 「4. 여권의 옹호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中


책을 읽을 때면 ─ 특히, 고전 문학을 읽을 때면 ─ 여성이 이상하게 그려지는 모습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감정적이고, 수동적이며, 간사하고, 남성보다 열등하다. 때로는 주인공이 진정한 '남자'로 거듭나기 위해 창녀로 등장한다. 책에서 그려지는 여성의 특성을 아무 의심도 품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기엔 마음 한구석이 걸린다. 여성 독자는 그런 상황들을 그저 참고 견디거나, 불편한 손님이 되어서 읽는 도중에 쫓겨나야만 하는 운명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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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버라 펠더의 『여자만의 책장』은 그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목소리를 내는, 여성을 옹호하거나 맞서 싸우는, 강인하게 그려지는 등의 책 50권을 선정했다. 일본의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이야기』부터, 여성이 집안에서 느끼는 분노를 여러 여성 작가에게 글을 청탁해 하나의 책으로 엮은 캐시 하나워의 『그래, 난 못된 여자다』까지. 남성 작가에 의해 쓰였지만 위대한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도 있다. 소개되는 책마다 여성의 시선으로 책을 읽어내고 쓴 대여섯 장 정도의 짧은 글이 달려있다. 안나 카레니나를 단순히 불륜을 저지른 감정적인 여성 캐릭터로 봐야 할까?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쓸 당시에는 어떤 사회였을까? 아름다움의 신화는 여성의 진보를 어떻게 가로막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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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부르는 책


​책을 부르는 책은 많다. 서평집, 독서 에세이, 작가와 작품에 대한 책들, 때론 문학잡지에서도. 읽다 보면 읽고 싶어지는 책이 자꾸만 쏟아져 나오는데 찾는데 애를 먹거나 출간이 아예 되지 않았다면 곤란하지 않을까? 이런 점을 책을 만들며 인지를 했는지, 신사책방의 『여자만의 책장』은 소개된 책의 한국판 표지와 함께 옮긴이, 출판사, 출간 연도 등의 정보를 함께 실었다. 50권의 책 중에서 국내에서 출간되지 않은 8권의 책을 제외하고 모든 책에 있다. 한 번역 잡지에 실렸던 '에세이 쓰기와 관련된 추천하는 책 리스트'는 절반 넘게, 아니 한 두 권을 제외한 모든 책이 한국에 없었던 기억이 있기에, 이 책에서 더욱 좋았던 점으로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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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에세이는 책 소개가 아니라 관점의 항해다.

책에 대한 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은

같은 책을 두고 조금씩 다른 시선을 발견하는 데에 있다.

또는, 독서 목록에서 내가 몰랐던 책을 접할 때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나와 다른 독서의 길을 거친 누군가의 생각이 궁금하다.

타인은 어떤 책을 읽는가.

타인의 생각에는 얼마나 많은 갈림길이 있을까.



가장 지루한 독서 에세이는 누구나 아는 책을 새로운 관점 없이 소개하는 글이다.

제도권에서 정해준 목록과 기존 해석에서 벗어나지 않는 독서로

새로운 생각이 솟아날 가능성은 없다.

특히 남성 저자의 책으로 독서 목록을 채우면서도

아무 의구심을 품지 않는 독서가들이 실로 많다.



세상이 정해준 책장을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도권의 책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 「해제: 당신의 책장은 누구의 목소리로 가득한가」, 이라영(예술사회학자)


​여성 독자라면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읽기를 피할 수 없다. 책 읽기를 시작했다면 이러한 점은 숙명과도 같으리라. 데버라 펠더의 책장이 여성, 아니 모두의 책장에도 한 권이라는 형태로 존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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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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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열린책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새가 부러웠던 적이 있다.

비올라도 그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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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Pietà]

경외, 연민, 공경심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 ─ 미모, 석공의 아들로 태어나 조각에 천재적 재능을 보인 그의 삶은 어릴 때부터 다사다난했다. 연골 형성 저하증을 가진 탓에 키가 작았고, 모두가 그의 모든 것을 낮잡아 봤기 때문이다.


​여성으로 태어난 탓에 가진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고, 항상 의지가 좌절되는 비올라도 있다.


무덤에서 만나 새롭게 싹트는 우정, 미모와 비올라는 서로를 영혼의 쌍둥이라고 말하지만 둘의 삶은 너무도 달랐다.


​그로부터 수년 뒤, 1986년, 임종을 앞둔 미모는 사크라 수도원에 있었다. 수도원에는 미모가 지키고 싶어 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가 만든 《피에타》였다.


비탈리아니의 《피에타》를 본 사람들은 야릇한 꿈들이 잠을 어지럽힌다고 고해하고, 더워지고 뭔가 느껴지기 시작한다고 털어놓는다. 6백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거의 모두 동일한 증세를 보고한다. 처음에 느끼는 강렬한 감정, 그다음에 짓누르는 일종의 심리적 압박감, 심장 고동의 이상 급증, 현기증 등. 우울감에 가까운 깊은 슬픔도 느꼈다고 한다.


미모와 비올라의 삶, 그들의 삶은 어떻게 '비탈리아니의 《피에타》'로 빚어졌을까?

'비탈리아니의 《피에타》'는 무슨 비밀이 있는 걸까?

2023년, 프랑스의 문학상이자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공쿠르상 수상작 『그녀를 지키다』는 630페이지라는 꽤 방대한 분량을 가진 한 권의 장편 소설이다. 두께에 쉽게 손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한때 서양의 장편소설은 쓸데없이 길기만 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만큼 읽었는데, 분량에 비해 남는 게 별로 없었다는 감상을 남긴 소설도 여전히 있지만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그녀를 지키다』는 그 페이지만큼 감동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소설은 미모의 삶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의 탄생부터, 여기저기 내던져지고, 수치와 모멸을 겪기도 하다가 천재성으로 끝내 성공하는 조각가 미모의 삶을. 하지만 비탈리아니의 피에타가 가진 비밀이 종장에 이르러 드러나는 순간, 독자는 미모가 아닌 비올라의 모든 순간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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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잃는 것보다 더 고약한 게 있었으니,

바로 자유에 대한 의욕을 잃는 거였다.

─ P.553


​우리에겐 이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피에타》가 있다. 라슬로 토스의 반달리즘에 의해 한번 파괴된 그 조각상 말이다. 개인적으로 그 조각상을 참 좋아하는 탓에, 부오나로티의 《피에타》를 넘어서는 가공의 《피에타》를 이야기한다는 것에 처음에는 내심 반감이 들기도 했다.

당신도 부오나로티의 《피에타》를 좋아하는가? 그렇다면 끝까지 읽어보기를. 마지막까지 읽은 나를 포함한 모든 독자는 비탈리아니의 《피에타》가 책 속에만 존재할 뿐 현실엔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에 큰 상실감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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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별한 실패 - 글쓰기의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힘
클라로 지음, 이세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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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을유문화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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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실패하도록 부름을 받은 인간이더라도

아무렇게나 실패하지는 말라.

─ 『기사도』, 헨리 미쇼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에 대한 욕구를 느낀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가끔은 작가가 되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읽었던 책 ─ 잘 만들어진 작품, 또는 상품 ─ 과 내가 쓰는 글 ─ 이걸 돈 받고 판다고? ─ 에서 느껴지는 차이에 삭제하거나, 비공개로 돌리거나, 나만이 아는 어느 은밀한 폴더에 처박아 놓는다.


글과 관련된 우리의 실패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작가는 어쩌면 신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만 하는 일은 아닌지.


관련 업계에서 일하지 않고서야 우리가 글쓴이의 실패를 어떻게 알 수 있으랴. 작가이자 번역가, 서점원, 출판 교정자로 일해온 클라로의 책, 『각별한 실패』는 글쓰기, 번역 그리고 읽기의 실패를 이야기한다. 그는 '독자'에만 머물렀던 사람이라면 발견하기 어려울 '책에 대한 거의 모든 실패'를 다룬다.


실패에 대한 은유들

실패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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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하나의 문장, 그다음 한 문장, 그리고 또다시 이어지는 한 문장이다.

그 문장의 마침표가 점점 더 두려워진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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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실패의 명문 학교다.

프루스트 말마따나 질투가 사랑의 진실인 것처럼, 번역이 문학의 진실일 수도 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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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잠들기가 두려운 때마다 꾸는 꿈이다.

─ P.38


나에게 '실패'는 그냥 '실패'였다, 클라로를 알기 전까지.


클라로가 '실패'를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 '실패'는 온갖 것으로 변신한다. 실패는 문장이 되고, 발명이 되고, 짐승이 되고, 사다리가 되고, 오늘이 되고, 꿈이 된다. 다른 이미지로 변모하는 순간 우리는 실패에서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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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중에서 작업하던 원고를 파기하거나 중단해 보지 않은 자가 과연 있는가?


클라로가 던진 이 질문은 비단 독자에게만 적용되는 질문은 아니다. 카프카는 실패의 귀재요, 그르치기의 흑태자이고, 페소아는 킹이다. 콕토는 모든 것에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책은 작가들의 실패 역시 소개한다. 클라로는 이들의 실패 사례를 이야기하며 그 실패가 불러오는 더 커다란 힘을 보여준다.


실패를 했기에 성공했다고?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하지만 실패는 그러하다.


당신이 만약 글을 쓰지 않는다 해도, 책은 읽는 독자라면 이 책의 9장, 「대천사의 회초리, 고르차코프의 촛불」만큼은 꼭 읽었으면 한다. '읽기의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탓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량이 줄어든 건 아닌지. 책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책의 가격만큼 가져야 하며, 한 번에 깨닫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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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읽고 있는가?

아니, 나는 무엇을 읽고 있지 않은가?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의 도입부를 마주하고 있는가,

아니면 재앙의 이면을 보고 있는가?

나는 읽을 줄 모른다.

이 사실은 끊임없이 나를 겁주기도 하고 기쁘게 하기도 할 의무가 있다.

읽을 줄 모른다는 실패의 한복판에서, 나는 읽는다.

─ 「9. 대천사의 회초리, 고르차코프의 촛불」 中


클라로는 읽을 줄 안다는 것은 완벽을 추구하지만 허상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나는 읽을 줄  알아." 그렇다면 누가 감히 자크 뒤팽의 시구절, "얼어붙은 심장 너머, 약간씩 간격을 두고 엇갈려 쓴 글."을 해독할 수 있을까? 우리를 비틀거리게 만드는 읽기, 시를 읽을 줄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깨닫는 순간, 우리는 다시 한번 텍스트에 부딪히는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있다고 클라로는 말한다. 클라로가 읽기의 실패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 오독은 더 이상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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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쓰면서 실패하기 때문에,

혹은 글을 쓰면서 실패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삭제하고 다시 쓸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비단 글 쓰는 사람만이 아니라 다시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P.71


읽고 나면 글과 관련된 모든 실패에서 한층 자유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실패가 나를 그저 좌절시키는 것이 아닌 나를 텍스트에 부딪히게 만드는 각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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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의 생성 : 중동태와 당사자연구 - 심문과 자책의 언어에서 인책과 책임의 언어로
고쿠분 고이치로.구마가야 신이치로 지음, 박영대 옮김 / 에디토리얼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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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에디토리얼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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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은 종종 심히 괴롭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의무라는 어감을 가지고 있다.

─ P.13, 「들어가는 글」


그래서일까? 모두가 책임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는 시대가 왔다. 또 책임을 오로지 남의 것으로 지우려는 이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당사자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손해배상'만을 정답처럼 외치는 누군가의 모습도 쉽게 그려진다.


'같은 환경에서도 그러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나라면 안 그랬을 것이다.'

이런 말들은 어쩌면 평균 범위에서 살고 있는 운 좋은 사람의 속 편한 소리는 아닌지...


철학자 고쿠분 고이치로와 도쿄 대학교에서 당사자 연구를 수행하는 구마가야 신이치로의 강의 대담록, 『책임의 생성 : 중동태와 당사자 연구』가 에디토리얼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두 학자는 아사히 문화센터에서 진행한 강의를 통해 이 시대의 '책임'을 다시 묻는다.


책임을 발생시키는 마법의 주문,

'이 행위는 당신의 것이네요.'


책임지는 상황이라 하면 대개 일방적 가해의 상황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그런 상황 말고도 우리 사회에서 안타깝게 책임지는 상황은 보인다. 아이가 굶고 있어 슈퍼마켓에서 분유를 훔칠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있었고, 다수가 환경 오염의 심각성에 응답하지 않아 미술관에서 과격한 시위를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행위를 오롯이 그들만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은 행위의 책임을 개인에게 귀속시켜 죄를 짊어지게 한다는 인식의 틀을 서서히 깨준다. 당사자는 어떤 곤란함을 안고 있는지, 함께 연구하고 해명해 나가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에서 초래되는 다양한 결과를 개인의 것이 아닌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운명이고, 이는 나 역시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면 보다 더 나은 연대가 가능하리라.


얼마 전,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으로 진행하는 온라인 독서모임에 참가했었다. 두 청소년 가해자가 나오는 이야미스. 가해자 중 한 명의 서사가 드러나는데, 많은 사람이 가해자의 서사가 공개되는 부분에 난색을 표했던 기억이 난다.


고쿠분과 구마가야, 두 사람의 주장은 정답인 것 같고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현실에서 과연 얼마나 적용될지 누군가가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어떤 사실 또는 현상에 대한 설명들 가운데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원칙을 뜻하는 '오컴의 면도날'처럼 모든 것을 쳐내고 한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오늘날, 긍정적인 대격변이 일어나기를 바라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에서 다뤄지는 가해자의 서사처럼 문학이나 창작물에서부터 적용하고, 점차 확대 적용하게 되는 희망 정도는 품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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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과거가 있어서 거기서 영향을 받고 있으며,

외부 세계로부터도 완전히 단절되는 일은 있을 수 없기에

항상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순수한 원천인 무에서 창조된 의지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롭고, 모든 것에 선행하는 의지란 있을 수 없습니다.

─ P.91


사회과학 책 중에서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은 많다. 이 책도 그중 하나가 될 것이다.


+

저자 중 한 명인 고쿠분 고이치로의 책, 『중동태의 세계』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진행한 '21세기 최고의 책'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책은 고쿠분 고이치로의 유명한 두 저서, 『중동태의 세계』와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도 조금씩 언급하고 있다. 만약 고쿠분의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다.


자신을 향한 행위나 자신이 마주한 사건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할 때 사람은 괴로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응답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채로 있다는 건 인간의 복수성이라는 조건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복수성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응답하는 ‘상대‘로 여겨지지 않게 된다. 상대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건 주위 사람들로부터 응답해야 할 상대방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것, 자기들과 비슷한 동등한 사람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 P13

그런데 세상에는 정신장애, 자폐스펙트럼 장애와 같은 발달장애 등 겉으로 보기에 대다수 사람과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장애가 그 외에도 많이 있지요. 그러한 분들은 말없이 사회에 뛰어들기만 하면 길이 개척되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적 모델이라고 해도 사회 환경의 어디를, 어떻게 바꾸어야 살기 편해지는지 모른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주위에서 알아채기 힘든 비가시적 장애의 경우는 본인이 봐도 어디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알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 P31

우리에게는 과거가 있어서 거기서 영향을 받고 있으며, 외부 세계로부터도 완전히 단절되는 일은 있을 수 없기에 항상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순수한 원천인 무에서 창조된 의지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롭고, 모든 것에 선행하는 의지란 있을 수 없습니다. - P91

상처를 입는 게 우리의 운명이라면 그 상처로 초래되는 다양한 결과와 효과는 보편적인 것이 됩니다. 즉 인간이 상처를 입는 존재인 것에 예외가 없는 셈입니다. 그러면 상처가 초래하는 결과나 효과가 마치 인간의 본성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것들을 혼동해버리면 인간에게 나중에 부여되는 성질이 원래 거기에 내재하고 있던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 자연인과 같은 허구를 내세워 인간의 본성을 생각함과 동시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의 인간적인 삶의 모습을 ‘인간의 운명‘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상처 없이 매끈한 휴먼 네이처를 상정하고 나서 거친 상처투성이의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 곧 휴먼 페이트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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