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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의 생성 : 중동태와 당사자연구 - 심문과 자책의 언어에서 인책과 책임의 언어로
고쿠분 고이치로.구마가야 신이치로 지음, 박영대 옮김 / 에디토리얼 / 2025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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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에디토리얼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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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은 종종 심히 괴롭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의무라는 어감을 가지고 있다.
─ P.13, 「들어가는 글」
그래서일까? 모두가 책임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는 시대가 왔다. 또 책임을 오로지 남의 것으로 지우려는 이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당사자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손해배상'만을 정답처럼 외치는 누군가의 모습도 쉽게 그려진다.
'같은 환경에서도 그러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나라면 안 그랬을 것이다.'
이런 말들은 어쩌면 평균 범위에서 살고 있는 운 좋은 사람의 속 편한 소리는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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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고쿠분 고이치로와 도쿄 대학교에서 당사자 연구를 수행하는 구마가야 신이치로의 강의 대담록, 『책임의 생성 : 중동태와 당사자 연구』가 에디토리얼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두 학자는 아사히 문화센터에서 진행한 강의를 통해 이 시대의 '책임'을 다시 묻는다.
책임을 발생시키는 마법의 주문,
'이 행위는 당신의 것이네요.'
책임지는 상황이라 하면 대개 일방적 가해의 상황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그런 상황 말고도 우리 사회에서 안타깝게 책임지는 상황은 보인다. 아이가 굶고 있어 슈퍼마켓에서 분유를 훔칠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있었고, 다수가 환경 오염의 심각성에 응답하지 않아 미술관에서 과격한 시위를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행위를 오롯이 그들만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은 행위의 책임을 개인에게 귀속시켜 죄를 짊어지게 한다는 인식의 틀을 서서히 깨준다. 당사자는 어떤 곤란함을 안고 있는지, 함께 연구하고 해명해 나가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에서 초래되는 다양한 결과를 개인의 것이 아닌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운명이고, 이는 나 역시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면 보다 더 나은 연대가 가능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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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으로 진행하는 온라인 독서모임에 참가했었다. 두 청소년 가해자가 나오는 이야미스. 가해자 중 한 명의 서사가 드러나는데, 많은 사람이 가해자의 서사가 공개되는 부분에 난색을 표했던 기억이 난다.
고쿠분과 구마가야, 두 사람의 주장은 정답인 것 같고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현실에서 과연 얼마나 적용될지 누군가가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어떤 사실 또는 현상에 대한 설명들 가운데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원칙을 뜻하는 '오컴의 면도날'처럼 모든 것을 쳐내고 한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오늘날, 긍정적인 대격변이 일어나기를 바라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에서 다뤄지는 가해자의 서사처럼 문학이나 창작물에서부터 적용하고, 점차 확대 적용하게 되는 희망 정도는 품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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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과거가 있어서 거기서 영향을 받고 있으며,
외부 세계로부터도 완전히 단절되는 일은 있을 수 없기에
항상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순수한 원천인 무에서 창조된 의지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롭고, 모든 것에 선행하는 의지란 있을 수 없습니다.
─ P.91
사회과학 책 중에서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은 많다. 이 책도 그중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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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중 한 명인 고쿠분 고이치로의 책, 『중동태의 세계』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진행한 '21세기 최고의 책'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책은 고쿠분 고이치로의 유명한 두 저서, 『중동태의 세계』와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도 조금씩 언급하고 있다. 만약 고쿠분의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다.
자신을 향한 행위나 자신이 마주한 사건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할 때 사람은 괴로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응답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채로 있다는 건 인간의 복수성이라는 조건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복수성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응답하는 ‘상대‘로 여겨지지 않게 된다. 상대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건 주위 사람들로부터 응답해야 할 상대방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것, 자기들과 비슷한 동등한 사람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 P13
그런데 세상에는 정신장애, 자폐스펙트럼 장애와 같은 발달장애 등 겉으로 보기에 대다수 사람과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장애가 그 외에도 많이 있지요. 그러한 분들은 말없이 사회에 뛰어들기만 하면 길이 개척되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적 모델이라고 해도 사회 환경의 어디를, 어떻게 바꾸어야 살기 편해지는지 모른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주위에서 알아채기 힘든 비가시적 장애의 경우는 본인이 봐도 어디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알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 P31
우리에게는 과거가 있어서 거기서 영향을 받고 있으며, 외부 세계로부터도 완전히 단절되는 일은 있을 수 없기에 항상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순수한 원천인 무에서 창조된 의지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롭고, 모든 것에 선행하는 의지란 있을 수 없습니다. - P91
상처를 입는 게 우리의 운명이라면 그 상처로 초래되는 다양한 결과와 효과는 보편적인 것이 됩니다. 즉 인간이 상처를 입는 존재인 것에 예외가 없는 셈입니다. 그러면 상처가 초래하는 결과나 효과가 마치 인간의 본성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것들을 혼동해버리면 인간에게 나중에 부여되는 성질이 원래 거기에 내재하고 있던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 자연인과 같은 허구를 내세워 인간의 본성을 생각함과 동시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의 인간적인 삶의 모습을 ‘인간의 운명‘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상처 없이 매끈한 휴먼 네이처를 상정하고 나서 거친 상처투성이의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 곧 휴먼 페이트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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