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지식인 - 아카데미 시대의 미국 문화
러셀 저코비 지음, 유나영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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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교유당 서포터즈로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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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문제'에 대한 진실을

'그 문제에 대해 뭔가 해낼 수 있는 대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이다.

─ 『지식인의 책무』, 노엄 촘스키

1987년, 한 작가가 미국 공공 지식인의 소멸을 지적하고 젊은 지식인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낱낱이 해부한 책을 공개한다. 이 문제작은 적어도 많은 교수들을 자극한 것은 분명하다. 지식인과 구별되는 학자와 전문가, 책의 어떤 부분이 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을까?

그 문제작은 러셀 저코비의 『마지막 지식인』이다.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지식인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주로 똑똑하거나 많이 아는 사람 정도를 많이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지식을 가지고만 있는 것은 중요치 않다. 노엄 촘스키가 말한 바와 같이 그 지식을 대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까지 지식인이 갖춰야 할 소양이다.

러셀 저코비가 책에서 이야기하는 사라진 '지식인'도 대중에게 말을 거는 지식인을 말한다. 대중적 언어로 교양 있는 독자들을 상대하고, 공공의 삶을 살찌우는, 도시의 거리와 카페에서 성장한 그런 지식인 말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실의 문제를 젠트리피케이션과 교외화, 학계의 출세주의 등의 각도에서 분석한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도시 보헤미아의 임대료가 오르며 기존 지식인들은 교외로 밀려나며 쇠퇴하게 된다. 교외로 밀려난 이들의 이동 수단은 자동차가 되고, 점점 서로 간의 접점이 사라지며 공적 담론이나 토론, 충돌, 비판의 기회는 줄어든다는 설명도 함께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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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편지를 대신하고 카페가 학회로 대체되면,

이 변화는 사고 자체에도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보헤미아가 퇴조하면 단지 도시 지식인과 그 독자들뿐만이 아니라

도시의 지성도 따라서 퇴조한다.

카페 사회는 아포리즘과 에세이를 생산하고,

대학 캠퍼스는 논문과 강의를 생산한다.

─ P.062

대학을 반드시 가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이미 형성되었을 때 나고 자란 나에게 대학에 대한 저자의 의견은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이었고 또 깊게 와닿기도 했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대학이라는 틀 바깥에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나 프리랜서 작가가 경제적인 타격을 받기 쉬운 사실을 체념하듯 서술하는 것처럼 많은 지식인들이 대학으로 간 까닭에 경제적인 부분도 없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어빙 하우는 안정적인 집필 환경을 제공해 주는 대가로 대학이 지식인을 흡수하자, 그들은 전통적인 저항 정신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지식인으로서의 기능 역시 중단했음을 지적했다. 그 결과 오늘날 지식인은 전문적이고 배타적이게 되었고 점점 그들끼리 고여버린다.

책은 미국의 지식인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대화나 논의가 아닌 타이틀과 출세를 중요시하던 한국의 사회상과도 겹쳐 보이지 않는가? 대학 바깥에서 지적 생활을 영위한다는 생각이 부재하는 사회에서 독서율이 하락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처럼 느껴진다. 뒷날개에 광고로 실린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가 눈에 들어왔다. 저자는 책의 2000년판 서문에서 일부 평자들이 그의 의견을 반지성주의적 요구로 취급했음을 언급하지만, 책을 읽으며 지식의 공공성을 잃어버리는 것 역시 반지성주의로 가는 길이기도 하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반지성주의의 부작용을 생각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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