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 1명 신청합니다. 1강 들었는데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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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강 신청합니다. 안그래도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인데 마침 강의가 개설되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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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날 그후 - SF거장 14인이 그린 핵전쟁 그 이후의 세상
노먼 스핀래드 외 지음, 마틴 H. 그린버그 외 엮음, 김상온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핵전쟁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인류.

그 인류의 핵전쟁 이후의 삶을 다룬 SF단편선으로써,

글이 실린 작가 14인은 로저 젤라즈니, 아서. C. 클라크, 마이클 스완익 등

SF를 조금만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익히 알만한 면면이다.

그리고 그만큼 풍부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전쟁 이후의 아메리카에서 원래의 부족 시스템을 유지했던 인디언이 대륙을 제패한다던가.

(추장의 이름이 '수소폭탄 세개'다;;)

사회재건을 위해 애쓰지만 이후의 세대는 모두 돌연변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되는 상황이라던가.

(내가 이전까지 접해온 이야기들은 핵전쟁 이후에도 인류라는 종 자체는 유지되며

변화한 환경과 핵으로 인해 생겨난 괴물들과 싸워나간다는 내용이 주종이었다.

인류 전체가 거의 개별적이라고 보아도 좋을

돌연변이들의 집합체가 된다는 것은 정말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한편, 다채롭게 펼쳐지는 멸망의 시나리오 반대편에는

'바로 그런 상황에서도 인류가 소중히 해야할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공유되고 있다.

 

그리고 작품들 속에서 등장하는

자신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한 개를 돌보는 소년이나

손자의 바퀴 발명을 감싸는 할아버지 등의 모습은

우정, 애정, 진리 등의 고전적인 가치를 다시 한 번 발견하게 해준다.

우리가 그 중요성을 익히 알면서도 항상 모자란 듯 느끼게 되는 그 가치들 말이다.

 

SF가 숱하게 인류와 문명의 미래를 예측하고 적중시켰다는 것은

단지 어떤 종류의 기술이나 발명품 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변화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궤멸한 세계 속에서도 위와 같은 가치들이 노래되어진다는 것은

우리가 정말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뭐,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이 책은 실내에서 한 번에 죽 읽고 밖으로 나오면

하늘과 사람이 맑아보이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미 훌륭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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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사이버 팀의 마쉬와 동료들 앞에 새로운 사건이 나타난다.

살인 장면을 실시간으로 넷에 올리고 접속자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더 빨리 희생자를 죽이는 살인자.

추적은 쉽지 않고,

넷에 접속하여 낄낄대며 영상을 보는 사람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간다.

 

메세지가 명확하다.

살인자보다도 사이트에 접속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살인을 지속시키는 공범들이다.

넷의 익명성을 뒤집어 쓰고 사람들의 잔혹한 면이 비어져 나오는 모습.

 

기술에 대해 맹목적으로 예찬할 필요도, 두려워만 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넷의 안좋은 면은 이미 현실아닌가?

현실을 기반으로 충분히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영화가 별 다른 잔기술 필요없이 스릴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1984 등의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완벽한 통제에 의한 억압/고통을 볼 수 있었다.

반면 영화를 보고 넷+디스토피아를 머릿 속에서 돌려보니

통제불능으로부터 오는 공포/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조직이나 개인에 의한 테러로 입을 수 있는 피해가 점점 심각해지는 오늘날

익명성/통제불능의 세계야말로 우리에게 닥칠 가능성이 더 큰 것 아닐까?

 

성선설이나 성악설, 이 상황에는 무의미하다.

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미 사회인들 아닌가.

이미 타고난 성품과는 거리가 있는 상태에서 넷은 시작된다.

사람들의 도덕성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으니 넘어가고.

그렇다고 통제를 강화한다면 파시즘의 디스토피아가 되기 위한 계단을

착실히 오르는 것일테고.

 

와, 딜레마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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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삼국지 용의 부활은,

역사적 고증이나 복식이나 스토리나 캐릭터나 영 별로지만

세 가지 키워드로 만족할 수 있다면 보아도 좋다.

삼국지, 대규모 전쟁씬, 유덕화.

이 키워드만으로도 좋다면 즐길 수 있다.

 

연의 황후는 좀 더 힘들다.

예전에 읽었던 스타워즈 1의 리뷰 중에

아나킨과 아미달라 공주가 꽃밭에서 뒹구는 장면이 너무 구식인 느낌이 난다는 리뷰가 있었는데,

연의 황후의 로맨스 부분에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더구나 이 로맨스가 국가/전쟁과 긴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면서

영화 자체의 흐름이 흐트러졌다.

 

그리고 견자단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무술씬이 많지도 않고,

전쟁씬도 용의 부활에 못 미쳐 결국 끌리는 부분이 별로 없는 영화가 되었다.

(옆에 앉았던 아가씨는 정말 재밌다며 일어섰지만, 솔직히 난 좀 힘들었다.

 누군가에게 같이 보자고 했으면 미안할 뻔 했다;;)

 

국가 간의 대립과 대규모 전쟁이 등장하는 영화에서도 어떻게든 로맨스를 끼워넣으려고들 한다.

물론 로맨스없이 풀타임을 가면 오히려 정신적 피로가 발생하긴 하겠지만서도,

이건 정말 무의미하다고 생각되는 말 그대로 그냥 끼워넣은 로맨스들이 너무 자주 보인다.

글쎄, 로맨스가 나오는 비중은 적더라도 조금만 섬세하게 다루면

충분히 마음을 흔들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항상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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