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여있던 설거지를 헤치우고 내친김에 수세미로 쓱쓱 닦아주고 밀린 빨래를 돌린다.
아무 생각 없이 설거지에 집중하다보면 내 마음도 씻기는 것 같은 이상한 생각이 들때가 있다.
밥풀이며 양념이 묻어있던 그릇이 깨끗해 지는 걸 보면서 내 마음도 이렇게 싸악 정돈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마음이 참 어렵구나. 바라면서도 바라면 안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또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면서도
바라고 있고 바라는 대로 되어도 미안해지는 것이라며 또 기다리는 이상한 심리.
내 주변 사람들은 어떤 훈련이 되어있어 당위, 라 하는 것을 잘 따른다. 나를 포함하여.
그래서 어떤 것도 해야 한다면 하는 것이다. 하는 이유는, 해야 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당위인데도 마음의 일이라 미적미적 거리고 있는 것이지.
어쩌면은 내가 한 수 아래여서 이런 것일 수도 있고, 알 수 없는 것이라 더 어렵다.
어느순간 경계해야 하는 것으로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이유.
어렵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쉽다.
벌써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전화 한통 하지 않았는데도 베트남에 갔다온 것이며 거제도에 간 것이며
알고 있다. 알고 있다는 것이 그 어떤 위로도 되지 않는데도 나는 기어코 알아내었다.
6개월이 너무나도 순식간이었다. 마음은 어떤 변화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시간만 갔다.
무엇을 원하며 살고있는지 도무지도 알 수 없다, 나란 사람.
애초에 어떤 사람이 되려고 했었나 떠올리고 있는데, 잘 모르겠다.
꿈많던 소녀는 어디로 갔나. 시간은 흐르고 꿈은 없어지고 할 일만 남았다.
나의 일에 대해 열심히 하면 되는데 나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을까,
공부만 잘하면 훌륭한 학생이었는데 지금 나는 무얼 잘 해야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는 걸까.
흔들리는 것이 미덕이라는 20대가 가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