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영웅전설 -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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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유명한 박민규 작가의 장편데뷔작인 '지구영웅전설'
이 소설은 신인작가의 작품답게 매우 거칠고도 신선하다.
우선 미국의 제국주의를 미국이 탄생시킨 슈퍼히어로인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맨, 아쿠아맨을 통해서 비판하고 풍자한 작가의 기발한 발상에 박수를 쳐 주고 싶다.
그러나 내가 이 소설에서 주목한 것은 작가의 미국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이 소설은 매우 기발하지만 이 속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미국에 대한 시선은 전혀 새로울 것도 없고, 진지한 성찰도 없다.
내가 이 소설에서 주목한 것은 바나나맨으로 형상화된 우리의 모습이다.
주인공 바나나맨은 평범한 황인종이며, 약소분단국인 대한민국 국민이다. 게다가 그는 멍청하기까지 하다. 그 스스로도 지진아였다고 고백한다.
감히 그런 그가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과 같은 영웅을 꿈꿨다. 그러나 그는 백인이 아니고 미국시민도 아니다. 그는 영웅이 될 수 없다.
겉은 노랗지만 안은 하얀 백인이라는 '바나나맨'이라... 어쩌면 우리가 바나나맨인지도 모른다. 그건 우리가 현실적으로 미국의 지배와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말로는 미국이 싫다고 늘상 말하지만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보면 우리도 미국처럼 누군가를 지배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바나나맨처럼 영웅이 되기를 꿈꾸고, 만약 영웅이 되지 못한다면 영웅의 친구라도 되어 그들 세계의 일원이 되기를 비열하게 꿈꾼다.
나는 아시아의 변방에 있는 조그만 약소분단국의 평범한 청년이다. 어쩌면 평범보다 조금 못한지도 모르겠다.
나는 미국을 싫어하지만 내 친구들이 다 영어를 공부하기에 두꺼운 영어문법, 단어, 회화책을 들고 다니고, 영어 청취 테이프를 듣는다.
내가 미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매우 논리적이고, 많은 것 같지만 사실 논리도 뭣도 없고, 이유도 딱 한가지다.
'나는 가진 놈들이 싫다!! 나는 지네 집 창고에 남아서 굴러다니다 발길에 채이는 음식이나 물건들을 선심쓰며 던져주는 놈들이 싫다!! 나는 무조건 순종하라는 말도 싫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나보다 많이 가지고, 나를 지배하려는 놈들이 싫다는 거다. 작가의 생각도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미국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깃털처럼 가볍다.
'그래 뭐.. 알고 보면 전혀 무거울 것 없는 일이지'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나는 그의 생각에 동조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이 가벼운 공감이 이 소설의 최대 매력이었다.
만약 작가가 미국과 우리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우리에게 던져주었다면 이 소설은 두가지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아주 휼륭하거나, 아주 형편없거나..'
그러나 작가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미국식 판타지의 주인공들을 내세워 만화처럼 가볍게 얘기하는 방식을 택했다.
신선하고 기발한 발상은 이 소설뿐 아니라 이 작가의 최대의 매력이다. 그의 번뜩이는 재치들은 하루키를 연상시키기까지 했다. 물론 감성적인 면에서는 하루키가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가벼움은 이 소설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한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데뷔작인만큼 이 작가의 다음작품은 더 발전할거라고 생각한다.(현재 발전했는지 안 했는지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카스테라'를 아직 다 읽지 못해서 모르겠다.)
내가 '바나나맨'일지도 모르지만 마지막으로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소설을 읽으면서 '바나나맨'의 모습이 매우 우스꽝스러워서 조금 슬펐지만 슈퍼맨이나 배트맨보다는 덜 우스꽝스러웠다.
내가 '바나나맨'이 아니라는 말은 못하겠다. 그래서 난 슬픈 바나나맨.. 그러나 난 슈퍼맨을 우습게 생각하는 '바나나맨'이다.

사족 - 이 리뷰를 쓰면서 나는 별점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난 이 소설에 별점을 3개를 주기로 했다. 별 한개는 기발한 소재나 뛰어난 말발에 비해 주제의식과 글쓰기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부족때문에 감점됐고, 나머지 한개는 이 소설이 매우 거칠고 완숙미가 없다는 것 때문에 감점됐다. 이 소설에 있어서 별 2개의 감점은 작가의 다음 작품에 대한 나의 기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소설에 3개를 주려고 생각하고 보니 전에 전경린의 '내가 돌아오면'에 준 별 3개가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그 소설에서 별을 하나 더 빼기로 했다.. 별점 주기도 참 힘들다..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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