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데이 (Holiday 2005)
감독 : 양윤호
출연 : 이성재, 최민수, 장세진, 이얼, 조안
(2006.01.19일 개봉/ 120분/ 범죄, 드라마/ 18세)

2006.02.04 5시 10분 남포동 대영시네마 with 배은경

실화를 토대로 한 다른 그만그만한 영화들처럼 이 영화도 사실과 픽션의 조화에 실패한 것 같다. 너무 감동을 짜내는데만 집중한 나머지 캐릭터 설정이나 이야기의 흐름이 엉성한 면이 많았다. 특히나 너무 극단적인 인물의 선악구도는 영화자체를 너무 단순하게 만들었고, 극에 몰입을 방해하였으며, 자칫 영화자체를 싸구려 오락영화로 몰고가려는 듯한 인상까지 주었다.
영화 초반부 빈민촌 철거 반대투쟁중 강혁이 아끼는 후배가 죽는 장면은 너무 작위적이었다. 실제 사건이 아니라면 후배의 죽음을 빼는 편이 훨씬 더 사실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굳이 후배를 죽이지 않더라도 강혁의 분노에 대한 관객의 공감을 끌어낼 방법은 무수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가장 최악의 가장 신파적인 이야기를 만들어서 극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렸다.
최민수가 맡은 교도관 안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너무 극단적인 악인으로 묘사되어 캐릭터의 설득력도 전혀 얻지 못했고, 영화를 너무 뻔한 선악구도로 몰고간다. 안석이라는 인물이 힘없고, 빽없는 자들은 인간취급도 하지 않던 군부정권 시대의 무자비한 공권력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관점에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한다고 해도 너무 극단적인 캐릭터 설정인 것 같다.
그리고 주인공 강혁을 비롯한 탈주범들의 분노에 대한 빈약한 묘사도 실망스럽다. 그들은 어떻게 하여 범죄자가 되었는지, 세상이 그들에게 얼마나 냉혹하고 비정한 곳이었는지.. 그들의 가정사는 어땠는지 조금만 시간을 할애하여 보여주었다면 그들의 분노가 좀 더 관객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면이 너무 부족하다. 그저 돈이 없어서 몇푼 훔친 거 가지고..... 이런 식으로만 보여주니 영화 보는 내내 그들의 분노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 분노들이 생경했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영화의 핵심적 메세지는 어느 정도 전달하는데 성공했고, 가진자에게는 관대하고 못 가진자에게는 비정하기만한 우리사회의 부조리, 탈주범들에 대한 관객의 동정을 이끌어내는데도 어느정도는 성공했다. 신파이기는 하지만 그 신파가 그나마 영화의 절반의 성공인 것 같다.
그밖에 배우들의 연기나 감독의 연출등에는 헛점이 많았다. 특히 최민수는 오바의 극치다. 그는 배우는 어떻게든 꼭 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같다. 아무리 요즘 영화에 오락적인 요소가 중요하다지만 그 금니는 무엇이며, 대체 그 꼬랑지머리하며 손에 낀 반지하며 80년대 당시 악질 교도관에게 그 모양새가 어울리기나 하냔 말이다. 좀 더 악랄하고 파렴치하게 보일려고 애쓴 것은 알겠지만 억지로 내는 특유의 말투는 영화 내내 귀에 거슬렸고, 입만 열면 반짝이던 금니랑 손에서 반짝이던 금반지는 영화에 몰입할만 하면 나타나서 몰입을 방해했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보다 연기는 잘 못해도 극에 잘 녹아드는 배우가 더 휼륭한 배우라는 걸 최민수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성재는 언론에서 말한대로 몸 만들기에 많이 노력한 것 같던데 몸 만드는 것보다 감정연기에 더 노력을 기울였으면 더 좋았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연들의 연기도 조금씩 엉성했는데 특히나 키 큰 아저씨와 키 작은 아저씨 2인조... 뻣뻣 그 자체다.. 키 큰 아저씨는 야인시대때나 지금이나 어찌 연기가 늘지를 않냐? ㅡㅡ;;
그러나.. 사실 난 이 영화를 보고 울었다. 요즘 나는 영화보고 너무 잘 운다. 주책맞게.. 수분 과잉이다. 마지막으로 강혁이 유전무죄라고 외칠 때랑 자막이 올라가면서 비지스의 holiday 노래가 흘러나올 때 뭔가 가슴에서 울컥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많이 불평하다고 생각하기에..

 

실제 지강헌 사건에 대한 나의 기억....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지강헌 사건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영화 보는 중간에는 지존파 사건이랑 헷갈리기도 했는데, 지존파 사건은 이보다 훨씬 뒤에 일어난 사건이고, 지존파가 이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흉악범이었다는 걸 금방 기억해냈다.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난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다른건 몰라도 지강헌이라는 이름은 기억한다. 그가 나랑 같은 지씨였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에잇 왜 하필 티비에 나오는 흉악범이 나랑 같은 지씨냐고'.. 그 때 티비에서는 그들이 흉악범이라고 보도했었다. 인질극이 생방송으로 중계됐던 것도 기억이 난다. 탈주범 누구누구의 애인과 가족이 찾아와서 자수하라고 애원하고 있다는 앵커의 보도를 들으면서 나는 얼굴도 모르는 그 애인가 가족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었다. 20살쯤되는 탈주범들이 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했다는 보도를 듣고 그들도 불쌍했었다.
당시 그들이 남긴 말.. 유전무죄 무전유죄.. 가 맞는 말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인질들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저렇게 눈 앞에서 사람들이 총을 쏘고, 자살하는 장면을 보았으니 밤에 잠이나 잘 수 있을까.. 참 저 사람들은 재수 더럽게 없다. 내 상상은 만약에 우리 집에 탈주범들이 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에까지 확장되었는데 거기서 더 뻗어가지 못했다. 인질범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우리집에 들어올리가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방 1칸이나 다름없는 콧구멍만한 방 2칸짜리 셋방에 옆집은 1M도 안 떨어지고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손님 한명이 아니라 개 한마리가 새로 들어와도 옆집 사람뿐 아니라 앞집, 뒷집까지 다 알 수 있는, 게다가 화장실도 집 밖에 있는 우리집에 어느 탈주범들이 숨어 들어오겠는가? ㅡㅡ;; 그러니까 나는 탈주범들이 우리집에 들어올 걱정 따윈 전혀 할 필요가 없었고, 그런 특이한 경험의 기회따윈 내게는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여기서 내 생각은 끊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게 지금까지 내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현실에 더 분노할 수 밖에 없는 나의 태생적인 이유이다. 그래도 나는 언젠가 이 변두리를 벗어나게 된다고 하여도 변함없이 이곳을 사랑하고 싶다. 아니 벗어나지 않고 이 변두리의 중심에서 분노가 아닌 사랑으로 그저 서 있고 싶다. 그순간 내 옆에는 나랑 같은 생각을 가진 동지(?)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게 나의 정말 꿈 같은 꿈이다. 이루기 어려운... 그러나 이루어졌으면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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