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모션
사토 다카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천천히 그리고 또 천천히..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열명 남짓 모여 모임을 만들었더랬다. 그 친구들 중 말투와 행동이 유난히 느렸던 한 친구가 있었다. 심지어는 술,담배 조차도 우리보다 늦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 친구의 별명은 매우 느리게를 뜻하는 음악 용어인 '아다지오'였다. 전반적으로 급한 성격을 나타내는 우리 경상도 남자들의 모임에서 녀석은 쉽사리 적응을 못했고 결국엔 제일 먼저 연락이 끊긴 친구가 되었다. 우린 그랬던것 같다. 매번 빨리빨리 종용하기만 했을 뿐 한번도 녀석처럼 같이 느리게 또 천천히 가본적은 없었던것 같다.

 


얼마전 그 모임의 친구들이 모였을때 한 친구가 시내에서 우연히 아다지오를 만났노라고 그의 근황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번듯한 직장에 취직도 하고 결혼해서 잘 살고 있더라고 그간 연락을 끊고 지내서 미안했다고 너희들 다 보고싶다고 말이다.약삭빠른 이들이 득세하는 이 세상에서 항상 조금은 느렸던 녀석이 손해나 보고 살지나 않을지 걱정했었는데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결국 빨리 가든 천천히 가든 모두 다 비슷비슷하게 살아갈 거였으면서 그땐 왜 그렇게 느리다고 타박했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 세상은 우리에게 한번쯤 천천히 느리게 살 것을 권하고 있는듯 하다.

 


이 책은 사토 다카코의 성장소설이다. 주인공 치사의 가족은 '블랙빈 패밀리' 이다. 번역하면 콩가루 집안이 되겠다. 까만콩은 몸에 좋기나 하지 콩가루 집안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소녀에게 하등 도움이 되질 못한다. 교사로 일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그리고 배다른 반항아 오빠, 이런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위태위태하게 하루를 보내는 엄마. 그런 가족들과 함께하는 치사의 일상은 한마디로 지긋지긋하다. 그래서 치사는 레이코가 이끄는 소위 말하는 '노는애'들의 무리와 어울린다. 적절히 불량스런 짓도 해가면서 적절히 오이카와란 친구를 왕따도 시켜가면서 그렇게 말이다.

 


그러던 중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오빠가 드디어 사고를 치기에 이른다. 느닷없이 여고생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치사의 학교에 오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항상 모든 행동을 '슬로모션'으로 해서 왕따를 당하는 특이한 그 아이 오이카와를 찍게되고 필름을 돌려달라고 실갱이를 벌이던 그 순간 이후로 치사의 생활은 변하게 되었다. 일생에 참 도움이 안되는 그 오빠 때문에 신경이 쓰여 오이카와를 상대해야 했던것. 그 일로 치사는 레이코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고 오이카와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형무소에 복역중이고 여고생의 냄새라고는 전혀 풍기지 않는 쓸쓸하고 적막한 공간에서 혼자 살고 있던 오이카와. 치사는 오이카와가 왜 매사에 슬로모션으로 행동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로 그런 아버지의 욱하는 급한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아 언젠가는 자기도 사고를 크게 한 번 칠것같아 일부러 느린 행동을 택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절대로 화를 내지 않게 될것이라고.

 


아버지와 오빠가 크게 싸운 후 오빠는 가출을 하였다. 오빠가 갈 만한곳을 다 찾아가 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오이카와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뜻밖에도 오빠는 오이카와랑 동거중이었다. 그래서 치사는 오이카와의 집을 자주 찾아가게 되고 그녀들은 좀 더 깊은 친구가 되었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치사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몸이 아플때 곁에 있어주고 오토바이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저는 오빠를 위해 같이 느리게 계단을 오르며 재활을 도와주는 모습을 통해 치사는 세상에서 제일 한심하다 생각했던 오빠와 특이한 왕따 친구 오이카와를 이해하며 한 뼘 더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소소한 일탈과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담임선생님과 오이카와의 백부란 사람이 그 집을 들이닥쳤던 것이다. '자넨 누군가'란 백부의 질문에 '전 짜파게티 요리사인데요'란 변명도 못하고 그녀들을 도망시켰던 오빠. 그리고 세상을 향해 통쾌한 웃음을 터뜨리던 그 모습. 결국 오이카와는 백부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고 치사와 오빠의 곁을 떠나게 된다. 오빠도 집으로 돌아와 조금은 더 변한 모습으로 자기 앞길을 개척해 나가는 의지를 보이며 그들의 짧은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 책을 통해 필자는 잠시나마 '느림의 미학'에 관해 생각을 해보았다. 매일매일 계획에 의해 꽉 짜여진 바쁜 일상. 헛되이 보내는 단 몇분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 치밀함. 남들만큼 치열하게 보내지 못했던 20대의 삶에 관한 반성이라고 스스로 정당화 시키고는 있지만 한번씩 스스로도 숨이 턱턱 막히곤 한다. 그러다보니 누구 하나 내 삶에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한다. 스스로가 바빠 죽겠는데 남들을 돌아다 볼 여유가 있겠는가.

 

 

눈을 감으면 느린 몸짓으로 보조를 맞추어 계단을 오르내리던 잇페이와 오이카와의 모습이 떠오른다. 잠이 덜 깬 거북과 요통을 앓는 달팽이 같은 그 두사람의 모습.

 


그때의 난 왜 느리게 사는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까. 결국엔 우리 모두 다 비슷한 모습으로 살거였으면서..

 


간결한 문체로 그려낸 한 폭의 투명한 수채화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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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주경희 지음, 이상우 사진 / 현문미디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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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너와 나 사랑했던 추억의 커튼만은 내리지 말아 줘요

 

 

 

1988년 가수 이상우씨가 강변가요제로 세상 사람들앞에 모습을 드러냈을때 우리 가족들은 모두 깜작 놀랐더랬다. 필자의 사촌형이랑 아주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길을 가다가 가수 이상우로 오인하고 달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대신 싸인을 해준 적도 여러번 있다고 하니 얼마나 흡사한지 짐작이 가리라. 촉 처진 눈매와 두꺼운 뿔테 안경이 자아내는 특유의 꺼벙한 모습.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첫 등장부터 정이가고 친숙한 느낌이 들던 가수였다.

 


이 책을 보면 1집부터 4집까지 이상우씨의 히트곡 가사들이 한번씩 나온다. 나도 모르게 그 노랫말들을 흥얼 거리며 책을 본다. 기분이 아련하다. 따뜻한 어느 봄날 모교 러브로드 벤취에서.. 지금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낭만이 있던 그 시절의 노래방에서..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던 학교 대운동장에서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부단히 연습해 불러주던 그 노래들이다.

 


발표하는 곡들마다 각종 가요 순위프로에서 1위를 차지하며 4집까지 냈다는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만큼 이상우의 노래와 특유의 낭랑한 음색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었다. 그러던 어느날 드라마에도 나왔다. 연기도 곧 잘 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리고 사업가로 변신했다. 한가인을 발굴하고 장나라와 휘성을 키웠다고 소식이 들리면서 우리 사촌형을 쏙 빼닮은 이상우란 가수는 어느 순간 필자의 뇌리에서 잊혀져 갔다.

 


최근에서야 어느 공익광고를 통하여 그의 모습을 다시 볼 수가 있었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의 수영대회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물에 젖은 아들의 몸을 닦아주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스포츠'란 광고였다. 그리고 이들 가족의 이야기는 인간극장으로도 방영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인기가수였던 또한 잘나가는 사업가였던 그가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모습으로 세인들에게 회자되기 시작했다.

 


보기와는 달리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한강이남에서 가장 큰 이불공장을 하던 사장님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큰형을 통하여 기타와 음악과 노래를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찌감치 음악을 향한 큰형의 꿈이 부모님의 반대로 물거품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랐다. 그러던 중 화재로 인해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그는 공장에서 스스로 학비를 벌어 학교를 다녀야 하는 고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노래 실력을 항상 아까워 하던 친구들의 도움으로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을 하게 되었고 그 후 다시 대학에 복학하여 강변제에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금상을 수상하며 가수가 되었다.

 


이런 이상우씨가 나름대로 고생하며 꿈을 이루기까지의 이야기와 가수로서의 삶 그리고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주된 스토리이다. 솔직히 필자가 이 책에서 기대했던건 표지의 따뜻한 사진만큼이나 아들 승훈이와의 애절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 부분이 너무 적게 나와있어 아쉽긴 했지만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이상우씨 부부의 겸손함 때문이었겠다고 짐작하며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그것이 왜 힘든일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TV나 여러 매체를 통해 그런 모습을 보고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많은 부모님들이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필자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라 경상도 남자가 흔히 무의식중에 지니고 있는는 단점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그런면에서 이상우씨도 솔직히 고백했듯이 이상우씨 보다는 그의 아내되는 이인자씨에게 더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갑자기 어떤 CF가 생각났다. 배용준은 모든것을 가진 남자다. 곧 이어 배용준이 말한다. 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남자라고. 뭔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냐고 그걸 보며 혼자서 피식 웃곤 했었다.

 

 

아들이 발달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때 이상우씨는 그랬다고 한다. 이런일이 왜 이상우에게 생겨야 하냐고. 하지만 그의 아내는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고 말했다고 한다. 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우리에게 하느님이 보내주신 선물이니 남들과 똑같이 잘 키워야 한다고. 아들 문제로 마음이 아파 남편은 매일을 술에 취해 보낼때 아내는 매일같이 아들을 데리고 기도를 하러갔다. 모든것을 가진 이상우에게 아들 승훈이는 신의 질투가 아니라 남들보다는 느리지만 어떠한 일을 하나하나씩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상우씨 부부가 삶에 지칠때 힘을 주고 작은것에 감사한 마음을 지니게 해주는 선물이었던 것이다.

 


이상우씨의 앞으로의 계획은 장애우들이 모여 살 수 있는 복지관을 건립하는 것이라고 한다. 더나아가 발달 장애우 복지사업을 위한 대규모 정가 공연을 기획 중이고 그 공연 수익금으로 재단법인을 만들어 발달 장애아를 위한 교육과 재활센터 지원에 사용할 계획이며 이 공연취지를 듣고 벌써 수많은 뜻있는 아티스트들이 동참할것을 약속했다고 한다. '내 남편이지만 정말 멋지다'라고 아내는 감동했다. 아내뿐만 아니라 필자도 멋지다고 생각했다.

 


요즘도 이상우씨는 사업하는 바쁜 일정에서도 일주일에 세번정도 미사리에서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돈을 벌 목적보다는 그냥 노래가 하고 싶어서이다. 필자와 같이 이상우씨의 감미로운 노래를 들으며 사춘기를 보냈던 세대들이 그의 노래가 그리워서 많이들 찾아 온다고 한다. 갑자기 그의 노래가 듣고 싶어지는 밤이다.

 


그의 가족 사진은 유난히도 해맑게 보인다. 웃음과 미소가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면서, 행복해하면서, 남들에게 배려하면서 겸손하게 살 거라는 그의 그 다짐 그리고 이상우씨 가족의 그 화목한 모습.. 변치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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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 초밥장인 안효주의 요리와 인생이야기
안효주.이무용 지음 / 전나무숲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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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적 초밥포식자.. 안사장님께 한 수 배우다

 

 

 

난 초밥을 좋아한다. 그런데 솔직히 맛도 모르고 먹는다. 회를 먹어도 연신 초장에만 찍어 먹어 각각의 생선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맛도 모른 채 오로지 초장 맛으로만 회를 먹는다고 같이 간 사람들에게 구박받은 적이 여러 번이다. 얼마전 회사 직급별 간담회를 강남의 모 씨푸드 뷔페에서 했었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능력과 의지를 십분 발휘하여 양껏 먹을 수 있는 뷔페 시스템을 선호하는 편이라 초밥을 아주 작살나게 먹었다. 마땅한 명칭을 작명 해보자면 '전투적 초밥포식자'라고나 할까? 급기야는 장어구이 초밥을 열개정도 가져와서 장어만 홀라당 건져먹는 만행까지 저지르고 말았다. 쓸데도 없는 장어에 왜그리 집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초밥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주 빵점짜리 손님이었을 것이다. 이런 무식한 필자에게 이 책은 초밥매너와 '요리'라는 걸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게끔 해주었다는 면에서 그 의의가 있는 책이었다.

 


솔직히 필자는 요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 본 적이 없는듯 하다. 가장 좋아하는 요리가 계란말이, 어묵볶음 등등 도시락 반찬류이니 말다했다. 이젠 과연 이 세상에 존재나 할까라는 의문이 드는 장차 나의 아내되실분은 그런 식성과 입맛 맞추기 면에서는 참으로 편하겠다는 소리를 종종 듣곤한다. 대충 고기나 한번씩 볶아주고 고등어 한마리 굽고 계란 후라이 하나 얹어주면 군소리 없이 아주 맛나게 먹을테니 말이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하여 혼자살게 되면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엄마가 해주는 밥'을 더 이상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하루 세끼를 꼬박 밖에서 사먹어야하니 그나마 남아있던 우리 엄마의 요리로서의 최소한의 의미도 사라져버렸다. 요리란 단순히 주린배를 채우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것이 되어버렸다. 일이 바쁘거나 독서를 할때면 그 흐름이 밥을 먹으러 가면서 끊어지는 짜증나는 경우를 자주 겪곤했다. 그럴때면 차라리 밥을 안 먹고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도 했었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먹는 즐거움을 누리는것이 얼마나 큰 기쁨일진데 난 남들보다 뭔가하나 손해보고 산다는 생각도 들곤했다.

 


이 책을 쓴 '스시 효'의 안효주 사장은 요리를 통하여 초밥을 통하여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런 그의 요리철학은 그가 빚어내는 다양한 초밥들의 종류만큼이나 필자에게 요리가 가지는 의미의 다양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원래 권투선수가 되려고 했단다. 전국 대회에도 나가고 꽤 잘했었다고 한다. 운동할 돈을 구하고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삼아 일하던 일식집에서 그의 요리인생은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군대를 가고 제대후에 딱히 내세울만한 기술이 없어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다시 일식집에 취직을 했는데 제대로 가르쳐 주지는 않고 욕설과 발길질만 해대던 선배들 때문에 오기가 나서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그러던중 지금의 자신이 있게한 이보경 스승을 만나고 그의 추천으로 신라호텔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진정한 일식 요리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특히 일본 연수 당시에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생선을 하나 다루는데도 우리와는 다른 정성을 다하는 그들의 장인정신에 말이다. 귀국 후 그는 오기로 열심히 하는 사람에서 장인정신과 프로의식을 지닌 사람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그가 열심히 하는데도 넘을 수 없던 그 벽, 그 이유였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자신이 물러날 때를 알고 호텔을 나오며 그의 꿈이던 자신의 가게를 열게 되었다.

 


위와 같은 그가 요리에 입문하게 된 과정과 그가 요리사로서 걸어온 길 외에도 이 책에서는 '초밥'에 관한 많은것을 소개하고 있다. 맛대맛 같은 요리 프로를 볼 때마다 항상 궁금했던 사실이 있었는데 음식을 먹고 그 느낌이 어떠한지를 잘 표현하는 사람들이 어쩜 저리 많을까 하는 것이었다. 앞서 소개한 필자의 개인적인 입맛에 잘 나타나 있듯이 내게 그건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말이다. 두번째 장은 그 맛을 표현하는 능력이 절정에 달한 안효주 사장이 들려주는 맛의 드라마이다. 광어로 시작해서 도미,전복,학꽁치 등을 거쳐 고등어로 끝을 맺는 초밥의 향연이다. 왜 초밥을 먹을때는 오차라고 불리우는 녹차가 항상 있었던건지 왜 단무지가 아닌 생강이 항상 있었던건지 왜 저러한 순서로 먹어야 하는지 등등이 잘 소개되고 있으며 각 생선마다의 독특한 맛과 조리법등이 잘 표현되어 있다. 잘 기억해 두었다가 시간 여유를 가지고 초밥 각각의 개성들을 느껴보는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듯하다.

 


그 외의 장에서는 가게를 오픈하면서 준비했던 이야기들을 빌어 초밥의 기본이라든지 초밥을 먹을때의 매너, 그리고 그의 미래 계획과 요리사란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살아오며 느낀 점들을 초밥만들듯 깔끔하고 정갈하게 소개하고 있다. 초밥먹는 매너란게 따로 있을까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원래 초밥은 손으로 먹는 것이라고 한다. 그 초밥 한알을 맨손으로 만든 요리사와의 교감이라는 측면과 함께 밥의 온도가 체온과 비슷할 때 가장 맛이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시 바에서 요리사와 대화하며 만들어 주는 초밥을 바로 먹을때는 손으로 먹는것이 좋고 방이나 홀에서 따로 먹을때는 젓가락을 사용하는것이 암묵적인 약속이라 하니 알아두면 유용한 팁이 될듯하다.

 

 

그리고 한가지 더 좀 우스운 얘기지만 젓가락질이 서툰 필자는 항상 초밥을 간장에 찍으면 밥알들이 간장에 빠져 난처했던 적이 많았었는데 초밥을 쥘 때는 생선이 놓인 부분이 왼쪽으로 향하게 하여 생선 끝부분에만 살짝 간장을 찍어 먹는것이 정석이란다. 군대에서 수류탄 파지법이나 세면백 또는 식판 파지법만 배웠지 초밥 파지법은 배워 본 적이 없기에 나는 그간 그렇게 간장종지에 밥알을 빠트리며 살아왔었나 보다.

 


열정을 가진 이들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안효주 사장님의 열정과 소명의식 그리고 장인정신 등등 젊은이들도 일을 함에 있어 배울점이 많을 것이다. 끝으로 이책 보면서 아주 힘들었다. 초밥이 당장 먹고싶어 힘들었다. 집 근처에 적당한 초밥집이 있었다면 혼자서라도 비싼값을 치르고 사먹었지 싶다.

 


상도의 임상옥은 모름지기 장사란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고 했다. 난 초밥이란 빈접시를 많이 남기는 것이 남들에게 이기는 거라 생각하며 그간 전투적인 자세로 먹어왔다. 이젠 한 수 배웠으니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하며그 요리를 만든이의 정성과 마음을 느껴 소통하는 경지에 도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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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프레젠테이션 완전정복 - 1%만 아는 취업비밀 50
하영목.최은석 지음 / 팜파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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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엔 연습하면 안되는게 없다

 

 

 

 면접 프레젠테이션에 관한한 국내 최고라고 손꼽힌다는 하영목 박사와 국내 유수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 스킬 교육을 하고있는 최은석 코치가 공저했다. 근자에 본 책 중에서 실용적인 면에서는 군더더기 없이 가장 그 목적에 부합하는 책이었다.

 


필자의 입장에선 한때 심각하게 고민해보았으나 당분간은 이직할 뜻이 없으므로 '면접'이란걸 볼 일이 없으니 당장 큰 도움이 되겠는가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사람일이란 그 누구도 그 앞을 알 수 없는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면접'이라는 특수한 상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앞에서 발표하는 법, 자신의 의사를 논리정연하고도 청중들이 불편하지 않게 전달하는 법,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보기쉽고 정리해서 글 쓰는법 등등 그 범위를 확대시켜서 적절하게 적용시켜 보아도 큰 무리가 없겠구나라고 개인적으로 판단하였기에 그런 의미에서 꽤 유용한 실용서적이라 평가한다.

 


흔히 회사에서 업무적인 발표를 하는 개념으로서의 프레젠테이션에 관한 책은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취업을 위한 면접을 잘 보기위한 책도 그에 못지않게 주변에 널려있다. 하지만 두 가지를 접목시킨 '면접 프레젠테이션'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저자들은 그 독창성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면접 프레젠테이션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 설명하듯 흔히 신이 내린 직장으로 손꼽히는 곳에서 면접시 프레젠테이션 방식을 점차 많이 선호하는 추세라고 한다. 신문을 보면 해가 바뀔수록 기발한 방식의 면접들에 관한 기사를 이따금씩 접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술마시면서 하는 면접이라든지 단체로 MT를 가서 같이 하룻밤을 보내면서 행하는 면접이라든지 지원자들이 지니고 있는 그 회사의 고유한 업무에 관한 스킬을 측정하기 보다는 조직과 융화할 수 있는 점이라든지 매사에 있어 얼마나 진취적이고 창의적인지 등을 테스트 해보는 방식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었다. 하지만 필자는 지극히 평범한 면접만을 보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세대인지라 솔직히 그 개념이 딱 떠오르진 않았다. 그래서 신이 내린 직장에 못 들어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딱딱하고 정적이며 수동적인 면접방식에서 벗어난 면접을 보는 지원자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제한된 시간안에 자신이란 '상품'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홍보를 하며 자신이 지닌 스팩이나 지식보다 부단한 연습과 준비로 체득할수 있는 '내가 왜 이 회사에 필요한 인재인가'를 중점적으로 또한 신뢰감있게 보여주는 능동적 면접방식이라 이해를 하면 될듯하다.

 


성공적인 면접을 위한 공식은 단 한줄로 요약된다. 그리고 이 공식은 어느 회사나 단체에서도 다 통용될 수 있는 모든 면접관들이 원하는 방식이다. 보통 소설책에 비해 분량도 적은 편이지만 이정도 분량조차 읽기 귀찮아할 독자가 있으면 맨 앞에나오는 이 공식만 머릿속에 넣어둬도 면접시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그 공식은 아래와 같다.

 


SP(Successful Presentation, 성공적 프레젠테이션) = SC(Structured Content, 구조화된 내용) + CD(Confident Delivery, 자신감 있는 전달)

 


면접관들은 시간이 없다. 면접을 보는 지원자들 입장에서는 그 시간이 못내 아쉽겠지만 하루에도 수십 수백명의 비슷비슷한 지원자들을 심사해야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시간이 없다. 그래서 지원자에게 가장 중요하고 요구되는 능력은 핵심만을 압축하고 시간안배를 적절히 하는 능력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구체적인 구성과 시간 안배는 다음과 같다.

 


5분 프레젠테이션의 구성과 시간 안배
서론(10%) 도입 15초, 개요 15초
본론(70%) 핵심주장1,2,3 (근거와 사례) 각 1분 10초
결론(20%) 요약 30초, 결론 30초

(P.60)

 


시간 참 빡빡하지 않은가. 부단한 연습만이 살길이다. 항상 명심하라 기회가 왔을때 잡는자는 항상 준비하는 자라는걸.

 


한가지 더 소개해 보자면 발표할 내용을 논리적으로 구조화하는 방법인 '3의 법칙'이 있겠다.

 


1단계 무엇을 말할 것인지 말한다. 2단계 말하고자 하는 핵심 3가지를 말한다. 3단계 무엇을 말했는지 말한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를 한번 자세히 살펴보자. 그러면 이 3의 법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알수 있을것이라고 한다. 또한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 3단계 구조는 글쓰기에도 상당히 유용한 자료라고 생각되어 특히 도움이 되었던것 같다.

 


그 외 떨림증 극복법과 발표시에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단점들을 개선시킬 수 있는 디테일한 충고들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들면 성량, 억양의 강조점, 시선처리, 팔과 다리의 자세, 표정관리, 적절한 제스처, 장소에 따른 발표자의 동선과 움직임까지.. 얼굴이 많이 두꺼운편이라 대중들 앞에서 전혀 떨지도 않고 말하기를 즐겨하는 편인 필자도 발표시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손동작 등에 관한 사항들은 몰랐던 사실이라 꽤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것들을 동영상 CD로 부록까지 주니 참 친절한 저자들이다.

 


실제로 면접을 눈앞에 두고 있는 취업 준비생에겐 안보는것 보단 보는것이 도움이 꽤 될듯한 내용들이고 필자처럼 당분간 면접을 볼 일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대중들 앞에서 '발표'하는 능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될 듯한 깔끔한 '실용서적'이었다.

 


우리 후배들이 열심히 공부를 하는것도 좋지만 이젠 시대가 바뀐 것 같다. 취업을 위한 공부는 기본에 부단한 연습을 통하여 최종관문인 면접에서도 좋은 결과를 거두어 원하는 직장에서 마음껏 꿈을 펼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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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이레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무릎팍 도사 막걸리통 들다 말겠네

 

 

 

 

문득 '우문현답(愚問賢答)' 이란 말이 떠올랐다. 다니카와 슌타로에게 질문을 했던 사람들의 질문이 허접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신선했던 질문이 더 많았던것 같다. 무릎팍 도사가 옆에 있었다면 막걸리통을 들었다가 계면쩍어 하며 슬그머니 내려 놓을것만 같다. 그런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던지는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척척 대답하는 노시인의 모습부터 먼저 그려져서 그 말이 떠올랐나 보다.

 


이 책을 쓴 다니카와 슌타로씨는 1931년생이니 우리나라 나이로 올해 일흔아홉이다. 아직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인생을 팔십년 가까이 살면 분명 세상만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뀔 것이다. 그런 저자의 약력을 보다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학교때 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스물한살에 첫 시집을 내었다. 그의 시는 교과서 뿐만 아니라 여러 CF에도 사용되고 노래로도 만들어지는등 전국민의 사랑을 받게 된다. 어릴때 우리가 즐겨보던 '우주소년 아톰'의 주제가와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엔딩곡 가사도 그가 쓴 것이라고 한다. 여러가지 문학상을 휩쓸고 최근에는 피아니스트인 아들과 함께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시 낭독 콘서트'를 열고 있으며 머잖아 영화감독으로서의 데뷔도 앞두고 있다고 한다. 내년이면 이 분 연세 여든이다. 누가 인생을 육십부터라고 했나. 이젠 여든부터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듯 싶다. 어린이 그림책도 쓴다는데 역시 마음만 젊게 먹으면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걸 보란듯이 증명하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이 책은 그런 저자가 일본의 대표적 인터넷 신문인 '호보일간 이토이 신문' 연재되었던 Q&A를 엮은 책이라고 한다.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적게는 4세부터 많게는 65세까지 천차만별이다. 중간중간 일본에서 유명하다는 연예인들도 질문을 하고 있다. 때로는 어린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때로는 시인의 감성으로 대답을 한다고 전하고는 있으나 무릎을 탁 치며 탄성을 내지를 만큼 놀랍고도 기발하거나 평생 잊지 못할 한편의 아름다운 시처럼 감동적인 대답은 솔직히 많이 찾아보긴 힘들다. 노시인 자신도 잘 모르면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 모습이 오히려 더 인상 깊었던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40페이지를 보자.


질문 14

왜 매일 목욕을 해야 하나요? (치나, 26세)


다니카와의 대답

스물여섯이나 되어,
어쩌다 이런 질문을 해야 할 지경이 되었는지.
난 매일 목욕 안 해요.


이거 보고 오랜만에 웃었다.


 

보다시피 전반적으로 시인만이 구사할 수 있는 아름다운 언어로 아름다운 감성으로 꽁꽁 얼어붙은 현대인의 마음을 화창한 봄햇살처럼 따스히 녹여주는 그런 건 별로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의 기대와는 상당히 어긋난 부분이 많았던건 사실이다.하지만 뭐랄까. 이 책을 보고 난 느낌을 표현해 보라면 필자는 두 가지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

 


그 첫번째는 요즘 필자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단어인 '소통'이다. 57분 교통정보에서 올림픽 대로나 신월나들목 부근 소통이 원활합니다 따위의 문장에서나 들을 수 있던 그 소통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세대를 넘어 지역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그리고 세상과의 소통.

 


또 하나는 바로 '정겨움'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림책을 연상 시키는 순박한 그림들과 어릴적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오시던 붕어빵이 들어있던 그 종이봉투 같은 재질의 책 표지.. 그런 '정겨움'이 떠올라 좋았다.

 


그런 '소통'과 '정겨움' 그리고 노시인의 삶에 대한 열정..


 

그러한 것들이 책 내용을 뛰어넘어 기억에 남을 책이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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