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이레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무릎팍 도사 막걸리통 들다 말겠네

 

 

 

 

문득 '우문현답(愚問賢答)' 이란 말이 떠올랐다. 다니카와 슌타로에게 질문을 했던 사람들의 질문이 허접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신선했던 질문이 더 많았던것 같다. 무릎팍 도사가 옆에 있었다면 막걸리통을 들었다가 계면쩍어 하며 슬그머니 내려 놓을것만 같다. 그런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던지는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척척 대답하는 노시인의 모습부터 먼저 그려져서 그 말이 떠올랐나 보다.

 


이 책을 쓴 다니카와 슌타로씨는 1931년생이니 우리나라 나이로 올해 일흔아홉이다. 아직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인생을 팔십년 가까이 살면 분명 세상만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뀔 것이다. 그런 저자의 약력을 보다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학교때 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스물한살에 첫 시집을 내었다. 그의 시는 교과서 뿐만 아니라 여러 CF에도 사용되고 노래로도 만들어지는등 전국민의 사랑을 받게 된다. 어릴때 우리가 즐겨보던 '우주소년 아톰'의 주제가와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엔딩곡 가사도 그가 쓴 것이라고 한다. 여러가지 문학상을 휩쓸고 최근에는 피아니스트인 아들과 함께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시 낭독 콘서트'를 열고 있으며 머잖아 영화감독으로서의 데뷔도 앞두고 있다고 한다. 내년이면 이 분 연세 여든이다. 누가 인생을 육십부터라고 했나. 이젠 여든부터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듯 싶다. 어린이 그림책도 쓴다는데 역시 마음만 젊게 먹으면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걸 보란듯이 증명하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이 책은 그런 저자가 일본의 대표적 인터넷 신문인 '호보일간 이토이 신문' 연재되었던 Q&A를 엮은 책이라고 한다.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적게는 4세부터 많게는 65세까지 천차만별이다. 중간중간 일본에서 유명하다는 연예인들도 질문을 하고 있다. 때로는 어린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때로는 시인의 감성으로 대답을 한다고 전하고는 있으나 무릎을 탁 치며 탄성을 내지를 만큼 놀랍고도 기발하거나 평생 잊지 못할 한편의 아름다운 시처럼 감동적인 대답은 솔직히 많이 찾아보긴 힘들다. 노시인 자신도 잘 모르면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 모습이 오히려 더 인상 깊었던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40페이지를 보자.


질문 14

왜 매일 목욕을 해야 하나요? (치나, 26세)


다니카와의 대답

스물여섯이나 되어,
어쩌다 이런 질문을 해야 할 지경이 되었는지.
난 매일 목욕 안 해요.


이거 보고 오랜만에 웃었다.


 

보다시피 전반적으로 시인만이 구사할 수 있는 아름다운 언어로 아름다운 감성으로 꽁꽁 얼어붙은 현대인의 마음을 화창한 봄햇살처럼 따스히 녹여주는 그런 건 별로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의 기대와는 상당히 어긋난 부분이 많았던건 사실이다.하지만 뭐랄까. 이 책을 보고 난 느낌을 표현해 보라면 필자는 두 가지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

 


그 첫번째는 요즘 필자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단어인 '소통'이다. 57분 교통정보에서 올림픽 대로나 신월나들목 부근 소통이 원활합니다 따위의 문장에서나 들을 수 있던 그 소통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세대를 넘어 지역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그리고 세상과의 소통.

 


또 하나는 바로 '정겨움'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림책을 연상 시키는 순박한 그림들과 어릴적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오시던 붕어빵이 들어있던 그 종이봉투 같은 재질의 책 표지.. 그런 '정겨움'이 떠올라 좋았다.

 


그런 '소통'과 '정겨움' 그리고 노시인의 삶에 대한 열정..


 

그러한 것들이 책 내용을 뛰어넘어 기억에 남을 책이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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