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은행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9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호시 신이치.. 이젠 살짝 인간미를 내비치나?

 

 

 

모름지기 작가란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개성은 한 단어로 나의 머릿속에 그 잔영을 드리우고 있다. 김훈의 간결함, 은희경의 추억, 성석제의 말빨, 김영하의 파격, 박현욱의 당돌함, 정이현의 도회적 감성, 박형서의 난해함에 이르기까지.. 그런식으로 말이다. 현해탄 건너 일본 작가라도 다를리가 있겠는가. 국내팬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오쿠다 히데오가 '유쾌 상쾌 통쾌'라면 이 책의 저자인 호시 신이치는 바로 '상상과 반전'이 아니었던가. 플라시보 시리즈의 쇼트 쇼트 스토리들은 필자에게 '참 기발하군'이란 생각은 수도없이 들게 만들었지만 그것이 슬프다거나 아니면 웃기다거나 하는 감정이 들게 만들었던 경험은 거의 없었던듯 하다.

 


그랬던 호시 신이치가 이젠 살짝 인간미를 내비치려나 보다란 생각이 들었던 플라시보 시리즈 19편 '망상 은행'이었다. 바로 표제작인 이 작품에서는 사람들의 망상을 보관해주는 먼 미래사회의 독특한 장소가 등장한다. 역시 호시 신이치 다운 기발한 발상이다. 고객의 여윳돈을 안전하게 보관해 주고 대출을 원하는 개인이나 기업에 그 돈을 빌려주고 이자수익을 창출하는 은행이 그러하듯 망상은행 또한 자신에겐 고민거리이자 타인의 손가락질을 받는 그러한 망상들이 어느 누군가에겐 애타게 필요한 그것이 될 수 있다라는 점에 착안한 사업이었다.

 


자신이 역사 속 유명한 장수였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의 망상을 추출하여 그 장수의 연기를 해야하는 극단에 팔아서 수익을 올리는 식으로.. 그 장치를 발명한 F박사는 평소 자신을 열렬히 사모하는 어떤 여인의 망상을 몰래 추출하여 자신이 연정을 품고있던 다른 여인에게 몰래 주입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는데.. 결과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본인은 한참을 침대에서 낄낄 거리며 뒹굴었더랬다. 현재까지 국내에 출간된 플라시보 시리즈를 3분의 1정도 본 시점에서 가장 우스웠던 쇼트 쇼트 스토리가 아니었나 싶다.

 


반면 이번 열아홉 번 째 시리즈의 해설을 쓴 작가 츠즈키 미치오(그도 역시 쇼트 쇼트 스토리를 쓰는 이라고 한다.)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던 '고풍스러운 사랑'은 이루지 못한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 필자의 코 끝을 살짝 시큰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간 깜짝 깜짝 놀래키기만 했던 다른 플라시보 시리즈들에 비해 이런 웃겼다가 울렸다가 하는 매력은 이번 시리즈가 지닌 장점인듯 하다. 츠즈키 미치오가 추천한 또 하나의 작품 '열쇠'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내지는 행운은 노력하는 자의 몫이란 평범한 진리와 그 행운 조차도 자신이 인생을 살아오며 남긴 아름다운 궤적의 가치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교훈을 전해준 작품이었다.

 


끝으로 이 책에서 호시 신이치의 고유의 색깔이 고스란히 잘 나타나 있었던 작품으로는 개인적으로 '음모단 미다스'를 꼽고 싶다. 쇼트 쇼트 스토리 치고는 나름대로 스케일이 방대하다. 실제로 눈으로 보기에는 별로 큰 이익이 없어 보일 정도의 스케일이 간소한(?) 보석상 털이가 어떻게 한 국가의 전반적인 산업을 부흥시키는 나비효과를 만들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꽤 흥미롭다. 마치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 처럼 우리네도 그런 알지 못하는 어떠한 음모에 놀아나고 있지나 않을지 한편으론 섬뜩한 기분도 들었던 작품이었다.

 


광고가 지배하는 미래 사회를 풍자한 '주택문제'도 인상 깊었다. 아니 그건 그렇게 먼 훗날의 이야기 같지만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지금도 우린 광고의 홍수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지 않은가.. 지난밤 늦은 잠자리에 들며 틀어둔 케이블 TV에서는 3개사의 맥주 광고가 로테이션하며 같은 광고가 무려 한 다섯바퀴나 방송된걸 보았더랬다. 덕분에 난 상쾌한 맛을 표현하는 보아의 춤 동작을 마스터 해버렸고 '하XX켄 프리즈'란 영어 문장을 완벽하게 발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난 다시금 벗어둔 옷을 주워입고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오고야 말았다는 나만의 쇼트 쇼트 스토리로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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