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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남자 2
이림 글.그림 / 가치창조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이젠 또 남은 57일이 궁금하다
어느덧 좋아하게 된 만화로 자리잡은 이림 작가의 죽는 남자 그 두번째 이야기이다. 단순히 그 순간 웃고 즐기는 만화에서 벗어나 삶에 관한 교훈을 잔잔하게 전해주는 내용이 특히나 마음에 드는 책이다. 군데군데 만화적인 유머스러움도 찾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깔끔한 그림체가 보기에 편한 만화책이다.
이 책의 1편 서평을 쓰면서 남은 80일이 심히 궁금하다고 했었는데 이젠 남은 57일이 더욱 더 궁금해져 버렸다. 이 만화는 아주 끝을 보고야 말리라 다짐했다. 간략하게 1부의 스토리를 요약해 보자면 100일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서영이란 남자가 있다. 그는 아주 빨리 현실을 직시하고 '죽을 준비'를 하나하나 해나가기에 이른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여자친구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 세상을 떠나도 그런 여자친구를 지켜줄 상대로 그녀의 직장동료인 현필을 선택한다. 또한 서울역에서 만난 노숙자와도 삶의 용기를 주기 위한 모종의 계약을 하게 된다. 그 둘만으로도 바빠 죽겠는데 또 새엄마란 사람이 아버지의 회사를 노리고 있다는 정보도 입수하여 본가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까지가 1부의 스토리였다.
그녀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현필에게 용기를 주는 본격적인 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두 남자는 일주일간 데이트(?)를 하게 된다. 마치 못쓰게된 컴퓨터의 하드 디스켓을 새 컴퓨터로 옮기는 느낌이다. 서영은 이제 다희와 함께 걷던 길을, 함께 먹던 음식을, 함께 가던 장소를 현필과 같이 가게 된다. 그러면서 그 추억에 잠시 행복해 하기도 한다. 고아 출신인 현필은 자신이 잘못해서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평생을 의기소침하게 지내 온 인물이다. 그런 그였기에 남들에겐 일상적인 소소한 그것들이 매번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현필의 입에서 그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는 말이 나올때 까지 두 남자의 데이트는 계속되었고 결국엔 현필이 새롭게 경험한 모든 것들을 오랫동안 남몰래 짝사랑하던 다희와 함께 하고 싶다는 '모범답안'을 도출해내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현필과 친구가 된 서영은 그가 자라난 고아원을 같이 방문하게 된다. 그곳에서 서영은 현필과 시각장애인 소녀를 통해 새삼 느끼게 된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자부하던 자신은 진심으로 웃어 본 적이 없고 그들이 가진 근사한 미소를 못 가졌다는 것을..
노숙자 어르신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서영은 서울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자신이 매주 지원해주는 돈으로는 저렇게 깔끔하게 해다닐 수 없을것 같은데 의외로 노숙자는 말쑥한 차림으로 서울역 근처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삶의 지론이었던 노숙자는 서영에게서 받은 자극을 계기로 자신이 오래전부터 꿈꾸던 일을 도모하기에 이른다. 서울역 근처 사우나 사장의 남편과 일종의 계약을 하며 그곳에서 머물고 서울역 환경미화원들과 친해져 손쉽게 다시 서영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에게 몫돈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돈으로 하모니카를 산다. 이제 노숙자가 꿈을 펼칠 시간이 되었다.
점점 자신을 옥죄어 오는 고통의 간극이 짧아지게 되고 서영의 마음은 더욱 더 바빠지기만 한다. 아버지를 위해 김장을 담그며 친엄마와의 기억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하지만 새엄마란 사람은 전혀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내가 죽고 나면 아버지는 평생 김치를 마트에서 사먹어야 하나. 생각만해도 가슴이 아파온다. 이젠 걷다가도 코피를 쏟아내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내게 남은 시간은 이제 57일 뿐인데..
용기를 내어 다희에게 고백한 현필의 태도에 다희는 자신의 마음을 종잡지 못해 방황하게 되고, 노숙자는 자신의 첫 연주를 시작하게 되며 2부는 마무리 되어진다.
이렇듯 서영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중 절반 정도를 사용하여 벌써 두 사람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그들에게 용기와 삶에 대한 의지,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꿈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던져 주었다. 이제 남은건 각자의 몫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잘못된 삶을 되돌아본 서영. 그리고 자신이 그간 못느꼈던 우리가 살고있는 일견 팍팍해 보이던 인생이란 진흙속에 감추어진 진주같은 아름다운 모습들을 하나하나 새삼 느껴가게 되는 서영. 하지만 너무 늦은 것일까? 이제 그에게는 57일 밖에 남지 않았다.
이미 많은것을 나누어 준 이 죽는 남자가 결국에 얻게 되는것은 무엇일지.. 서영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앞으로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적어도 100일은 더 살 수 있을것 같은 나는 과연 그렇게 하루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