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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 소리가 ㅣ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8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상식만 가득한 우리의 두뇌에 노크를 똑똑
그간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를 한 너댓권 본듯하다. 이제 슬슬 헷갈릴만도 한데 바로 이 책 18편 '노크 소리가'는 필자가 본 플라시보 시리즈 중 가장 독특한 책이었다. 그 이유는 후반부의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이 책에 실린 모든 단편들이 '노크 소리가 났다'라는 문장에서 출발하는 특이한 구성 때문이었다.
필자는 고교시절 연애편지를 참 열심히 썼더랬다. 원체 편지 쓰는걸 좋아하긴 했지만서도 여자친구 집이 워낙에 엄해서 전화를 한다는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삐삐 조차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던 시절, 파발이나 봉화 조차도 여의치 못했기에 오로지 편지로만 내 마음을 전하였었다. 그러던 중 편지지 뒷장의 여백에 여자친구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한편씩 적곤 했었는데 한 두장일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한번씩 한 스무장씩 쓰는날에는 처음 대여섯개 정도만 약간의 감흥을 줄 정도였고 나머지는 소스가 딸려 전반적으로 퀄리티가 떨어져 더이상의 별다른 감동도 주지 못한채 아니한만 못한 이벤트로 마무리 되었던 쓰린 기억이 있다.
그런면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딸랑 이 한 문장을 시작으로 이십여편의 다양하고 기발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호시 신이치는 과연 작가가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란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어 필자에게 특히나 인상깊었던 책이되었다.
그렇다면 호시 신이치는 왜 그런식으로 이 이야기들을 풀어 나갔을까? 그 이유는 저자 후기에 잘 나타나 있다. 호시 신이치가 등단을 하고 약간의 세월이 흘렀을때 그에 앞서 쇼트 쇼트 스토리의 달인이라 불리우던 프레드릭 브라운의 단편집을 번역한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 구조적으로 호시 신이치의 주의를 가장 강렬하게 끈 작품이 바로 '노크'라는 단편이었고 그 후 처음으로 주간지에 작품을 연재하면서 자신으로서는 주간 단위의 단편이 처음인지라 뭔가 독특한 구성을 생각해 내다가 바로 프레드릭 브라운의 '노크'의 구조가 떠올랐다는 변이다.
노크를 통해서 들어올 수 있는 '방'이란 밀폐된 구조가 가져다 주는 장점은 장소와 공간의 이동이 가져다 주는 이야기의 장황함을 사전에 차단시키는 역할을 하고 이러한 요소는 짧고 간결한 분량이 생명인 쇼트 쇼트 스토리에 가장 적합한 구조로 작용하였다. 또한 그만큼 독자들의 주의도 집중시키는 장점까지 있다는 면을 생각했었다고 하니 그 치밀함에 놀라울 따름이다. 워낙에 방대한 분량의 다양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창작해 내는 그인지라 그간 호시 신이치는 그저 번뜩번뜩 생각날때 마다 무조건 써내려가는 식이 아닐까 생각했었기에 말이다.
그러다 보니 그러한 공간의 제약은 일전에 보았던 호시 신이치의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특질 즉 SF적인 요소보다는 '방문'이란 개체를 사이에 두고 '노크 소리'로 표현되는 강약이나 고저등의 음향적 요소가 가져다 주는 어떠한 미지의 그것이 불러 일으키는 미스테리적인 요소가 훨씬 더 강한 특질을 띄게 된 점도 이 책이 다른 플라시보 시리즈와 차별화되는 점이었다고 생각된다.
비록 첫 시작은 그간 많이 등장한 기억상실에 관한 출발로 어느 정도 호시 신이치식의 반전에 익숙해진 필자는 그와의 두뇌게임에서 어느 정도 따라 갈 수 있겠노라 자부하며 호기롭게 시작되었지만 파도가 거세지듯 점층법으로 무궁무궁하게 강도가 더해지는 것들. 뜻하지 않은 횡재를 하고 의외의 곳에서 목숨이 달아나며 간과한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는 등등 허를 찌르는 이야기들.. 결론적으로 이번 시리즈 또한 기대에 부합할 정도로 평균이상의 재미를 가져다 주었다.
뭐랄까 상식으로만 가득한 우리의 두뇌에 노크를 똑똑 하는듯한 느낌이다. 그의 기발함 그 끝이 어디일까 보면 볼수록 궁금해지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