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카네이션 - 비밀의 역사
로렌 윌릭 지음, 박현주 옮김 / 이레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팩션과 칙릿의 결합

 

 

 

'로맨스 약국'의 저자이기도 한 이 책의 역자 박현주씨는 이 소설을 두고 '팩션과 칙릿의 결합'이란 표현을 썼더랬다. 역사라는 진중한 그것에 감미로운 로맨스로 덧칠한 느낌이었다. 표지 만큼이나 강렬한 핑크빛 드레스의 색깔로..

 


주인공인 엘로이즈가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에이미라는 여인의 편지를 읽게 되면서 19세기의 스파이들의 활약상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일종의 액자소설이다. 그 시대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대영제국에로의 침공을 도모했던 시기라고 한다. 이에 조국의 안녕을 위해 그 음모를 밝혀 내고자 했던 훈남 스파이 퍼플 젠션이란 인물이 있었다. 평소에는 두꺼운 뿔테안경을 쓴 어수룩한 신문기자인 클라크에 지나지 않지만 인류가 위기의 순간에 봉착했을때 바지위에 팬티입고 어디선가 '짠'하며 나타나 추락직전의 비행기를 재털이에 담배꽁초 버리듯 쉽사리 옮겨 놓고, 입김을 후 불어 대형화제도 손쉽게 진압해버리는 괴력의 사나이로 변신하는 슈퍼맨과 같은 인물. 그렇듯 까칠한 리처드씨는 퍼플 젠션으로서의 두 가지 삶을 살고있는 비밀스런 스파이였다.

 


에이미는 프랑스로 가는 여정에서 그 리처드를 만나게 된다. 항상 퍼플 젠션과 같은 영웅을 동경해 오던 그녀에게 까칠한 리처드와의 만남과 동행은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주는것  없이 괜히 미운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안 드는 그 사람. 그가 퍼플 젠션이랑 동일 인물이란 사실도 모른채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프랑스까지 이동한다. 하지만 리처드는 그런 에이미에게 한 눈에 반해버렸으니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소설이란 문학 장르는 그 스토리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캐릭터의 힘이 상당히 크다. 밍숭맹숭 노말한 인물로는 그것이 당연히 불가능하다. 전제 조건은 주인공은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법칙이 이 소설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에이미가 가진 매력이 이 책의 소설적 재미라는 가치를 100이라고 놓았을때 적어도 70이상은 차지하고 있는듯 하다. 뛰어나게 미인은 아니지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녀로 그려지는 에이미. 발랄하고 진취적이며 영민하기 까지한..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서도 팔척장신의 악당 서너명쯤은 자신의 쇄골과 수밀도 같은 앙가슴으로 녹여버리는 19세기의 섹시 아이콘으로 묘사되기 까지 한다. 그리고 툭하면 자빠지고 어디에 부딪치는 등 덜렁대고 엉뚱한 4차원적인 매력까지 식사후 시원한 식혜 한잔같은 유쾌함을 더해줘 보는이가 즐겁다.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고 특히나 리처드와 에이미를 둘러싼 그웬과 같은 개성있는 조연들의 활약까지 더해져 그들은 무사히 임무에도 성공하고 사랑에도 성공한다는 간단한 스토리이다. 그와중에 퍼플 젠션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던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핑크 카네이션'이란 스파이도 탄생하게 되는데 그 정체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함구하는 바이다.

 


시대와 공간을 넘나드는 이국적인 그것과 19세기 유럽사회의 성실한 묘사. 위기의 순간에도 항상 유머를 잃지 않는 여유, 그리고 작품 전반에 흐르는 긴장과 관능. 그런면들이 만만찮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별로 지루하지 않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장점들인것 같다. 저자인 로렌 윌릭이 밝혔듯이 이 책은 자신이 논문을 쓰면서 머리가 복잡할때 마다 틈틈히 짬을 내서 썼던 소설이라고 한다. 지금 이 순간 머리가 복잡해 뭐 신나는것 없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이들이 보면 좋을듯 싶다.

 


끝으로 사족을 하나 더 붙이자면 이 책은 필자가 지난 일년간 본 책 중에서 아마도 유일하게 대놓고 '베드씬'들이 빈번하게 등장했던 책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봐야 영화나 여타 다른 매체에 비해 그 수위가 동네 개천 수준이겠지만. 항상 퇴근길 버스안에서 책을 즐겨보는 본인으로서는 상당히 난감했던 순간들이 많게 만들었다. 이사 전 강남으로 가는 버스에서는 항상 앉아서 가니 타인들이 내가 보는 책장을 들여다 볼일이 전무하여 상관이 없었는데 이사 후 강북으로 가는 버스는 항상 초만원인 상태라 옆에 서있는 아가씨의 귓구멍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명확히 보일정도이며 나의 모공들 하나하나가 확연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극단적인 근거리에서 아크로바틱한 자세로 어렵사리 책을 보는 요즘인지라 '어머 저 사람은 뭐 저런 야한 소설을 다 보는거지'란 오해를 살까봐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레 책을 봐야했던 시간들이었다.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다 잡는다는 것. 식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해피엔딩은 언제나 즐겁지 않은가. 에이미가 그랬듯이 우리 또한 항상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달려갈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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